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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법치] '떼법' 점거농성... 법원·검찰이 부추긴다

鶴山 徐 仁 2019. 2. 5. 20:40

[흔들리는 법치] '떼법' 점거농성... 법원·검찰이 부추긴다

오경묵 기자      


입력 2019.02.05 07:40


틈만 나면 점거농성... 길거리는 현수막이 점거
법원 "명백한 폭력 없으면 업무방해 성립안돼"
검찰 "판결기준 까다로워 수사 소극적일 수밖에"

지난해 5월 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국철도노조 KTX승무지부 소속 해고승무원들이 대법원 1층 로비에 뛰쳐 들어갔다. 피켓을 들고 앉아 연좌농성에 돌입했고, 대법정 문을 열고 들어가 김명수 대법원장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이들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박근혜 정부와 재판을 거래해 10년 넘게 싸워온 해고 승무원들을 절망에 빠뜨렸다"고 했다. 대한민국 최고법원 안에서 시위가 벌어진 것은 처음이었다.

전국철도노조 KTX승무지부 조합원 등이 지난해 5월 29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수사와 김명수 대법원장의 면담을 요청하며 대법원 대법정 앞에서 점거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과격한 노동계 시위가 사법부와 검찰의 심장까지 드나들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이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법치에 불복’하는 농성과 시위는 눈에 띄게 늘었다. 법조계에서는 '떼법'에 대한 실효적인 처벌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더 큰 혼란이 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점거·점거·점거…뒷짐 진 수사기관
작년 11월 13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 로비를 점거했다. 이들은 "현대·기아차 등 대기업의 불법 파견을 처벌하라" "검찰이 불편파견 관련 사건을 재수한지 8개월이 지났음에도 기소 여부 등 사건을 처리하지 않고 있다"며 검찰총장 면담을 요구했다. 무려 8시간 동안 대검 청사에서 농성을 벌인 노조원들은 이날 밤 경찰에 체포됐지만, 2~3시간만에 귀가했다.

민주노총 비정규직 노조 간부들이 지난해 11월 14일 대검찰청 로비에서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다. /김지호 기자
민주노총의 막무가내식 공공기관 점거 농성은 한두 번이 아니다. 경북 김천시청 시장실, 대구지방고용노동청 청장실, 고용노동부 창원지청 대회의장, 한국잡월드, 춘천시의회 본회의장 등 장소도 다양하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해 달라", "판결이 이유없이 뒤집혔다", "신속하게 수사하라"... 이유도 여러 가지다.

명백한 불법행위지만 공권력의 대응은 무기력하다. 수사기관 책임자가 나서서 설득하거나 점거당한 기관 실무자가 농성을 풀어달라고 사정하기도 한다. 최고 수사기관인 대검찰청을 점거했던 노조원 6명은 점거 당일 경찰에 체포됐지만, 그날 자정쯤 석방됐다. 간단한 조사만 받았을 뿐이다. 대법원을 점거한 철도노조 KTX 승무지부 승무원들도 김명수 대법원장을 만나는 것은 실패했지만, 김환수 당시 대법원장 비서실장과 면담한 뒤 농성을 풀었다.

정부의 대응 기조는 지난해 12월이 돼서야 조금 변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주요 간부회의에서 "불법점거가 발생한 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많은 국민들이 청사 출입과 업무처리에 불편을 겪고 있고, 직원들이 청사 방호를 위한 비상근무로 본연의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어려운 상황이다. 불법 점거에 대해서 엄정하게 법을 집행하라"고 했다. 고용노동부는 이후 점거했던 일부 노동계 인사들에 대해 직접 고발 조치를 하고 나섰다.

찢어진 플래카드 뒤로 서울중앙지법 청사가 보인다. 이 플래카드에는 법원의 판결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박현익 기자
◇비난 현수막에 점거당한 서초동 법조타운
법원과 검찰청이 모여 있는 서초동 서초역네거리 주변에는 판사와 검사, 법원과 검찰을 비난하는 플래카드가 수십 개 걸려있다. 이 부근에서 단골로 집회·시위 신고를 내는 단체는 5~6곳. 지난 6월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가 시작된 이후 더욱 늘었고, 노골적으로 변했다. 경찰 관계자는 "법원과 검찰을 상대로 한 보여주기식 시위이라고 판단해, 별다른 경비경력을 투입하지는 않고 있다"고 했다.

플래카드는 대부분 ‘불법 재판 다시하라’, ‘불공정 판사 파면하라’, ‘적폐 판사, 적폐 검사 구속하라’ 등 법원과 검찰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낸다. 판사와 검사의 실명과 사진도 공개해 놨으며, 자신과 관련된 사건의 수사와 재판에 대한 불복을 표시하고 있다.

판사와 검사들은 "조롱당하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서울중앙지법 한 판사는 "현수막들을 보면 국민들이 다함께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서울고검 한 검사는 대놓고 법조인들을 조롱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는지 답답할 뿐"이라고 했다. 서울고법 한 부장판사는 "내 얼굴이 플래카드에 걸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그쪽 길을 피해 다닌다"면서 "명백한 명예훼손이고,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만 일일이 대응하는 것 자체가 망신이라 참고 있다"고 했다.

◇폭력 없으면 ‘무죄 판결’...점거농성 노골화 부추겨
이 같은 막무가내식 시위를 부추기는 것은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노조 소속 조합원 10명은 지난 2017년 8월 29일부터 지난해 1월 31일까지 대구지검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대구지검 본관 현관 출입문을 점거하며 대구지검장 면담을 요구한 혐의(공동주거침입 등)로 기소됐다.

하지만 법원은 이들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범죄 목적이 없고 업무를 방해하지 않았다는 취지였다. 대구지법은 "일반적으로 개방된 건물은 건물 관리자의 승낙이 없어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며 "피고인들은 검찰청 현관에 모여 있었을 뿐 다른 사람의 출입을 막지 않았고 폭력적인 행위도 하지 않아 점거 행위만으로 검찰청 업무를 방해했거나 보안에 위험을 가져온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통합진보당 명예회복과 이석기 전 의원 석방을 위한 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해 8월 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로비에서 기습 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과 이석기 전 의원의 석방을 촉구하며 김명수 대법원장 면담을 요구했다. /뉴시스
이 판결을 기준으로 하면, 폭력적 행위가 없었던 대검 점거시위나 대법원 점거시위도 모두 무죄가 선고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과 관련한 '재판거래' 의혹에 항의하며 대법원 청사 출입통로를 점거하고 연좌농성을 벌였던 옛 통합진보당 당원들도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명백한 '폭력행위'가 있는 경우 유죄를 선고하고 있다. 산재보험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노조원 10명과 함께 근로복지공단 울산지사장실을 점거하고 공단 직원을 폭행한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간부 A씨는 검찰이 불구속 기소를 했으나 1심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아 법정구속됐다. 당시 재판부는 "A씨가 화분을 던져 공단 직원이 입은 상처가 경미하다고 보기 어렵다. 굳이 지사장실에서 퇴거하지 않고 그곳에서 장시간 대기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를 찾을 수 없으며, 그곳에서 음식과 술을 주문해 먹는 등 몰상식한 행동을 했다"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이 같은 법원의 판결 기준에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안 분야에서 오래 근무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관공서 근무 직원의 입장이나 민원인들의 편의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며 "폭력행위가 없으면 처벌할 수 없다는 판례가 있어 수사기관도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2/05/20190205000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