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그라운드] “롤러코스터 타는 느낌” 아파치 공격헬기 동행 밀착 르포
서해 태안 앞바다 침투저지 훈련
조종사 "롤러코스터 타는 느낌"
아파치 1대 적 전차 16대 파괴
군에선 헬기 미루고 전차 구매
지난 19일 항공작전사령부를 찾아 아파치 편대의 올해 마지막 비행훈련에 동행했다. 이륙하는 순간부터 임무를 마치고 기지에 착륙할 때까지 UH-60 헬기에 탑승해 옆에서 지켜봤다. 사진과 영상 촬영을 위해 왼쪽 문을 활짝 열고 비행했다. 겨울 바다의 세찬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문을 열고 비행하면 밖으로 튕겨 날아갈 위험도 있다. 난기류를 만나면 베테랑 조종사도 딱히 방법이 없다. 이 때문에 이륙에 앞서 신형 하네스(공중에서 추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벨트 조끼)를 착용해 연결고리를 헬기 바닥에 고정했다.
14:30
완벽한 임무는 철저한 준비에서 시작된다. 비행에 앞서 조종사들은 임무 브리핑에 참석해 작전지역 기상을 살펴봤다. 바다에서도 비행할 예정이라 혹시라도 사고로 바닷물에 빠질 때를 대비해 생존 조건을 확인했다. 이날 해수 온도 5~10℃에서는 최대 3시간 30분ㆍ평균 3시간을 생존한다고 추정했다. 그러나 만약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최대 1시간ㆍ최저 15분으로 생존 가능 시간이 크게 준다. 비행을 책임진 901 항공대대장 조광익 중령(학군 37기)은 “바다에 빠질 경우 2시간 안에 구조대가 도착해야 살 수 있다”며 빠른 대처를 당부했다.
이날 비행에 나서는 조 중령과 조종사들은 야간 비행계획과 통신운용 상황을 비롯한 유사시 대비책을 토의했다. 이륙한 뒤 발생하는 통신두절이나 기상악화 때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깊이 있게 분석했다. 비행 대형에서 벗어날 경우 어느 기지로 복귀할지도 구체적으로 사전에 조율했다. 조종사들은 “안전”을 강조하며 비행보고를 마쳤다. 활주로에서도 비행을 앞두고 마지막 준비를 점검했다. 출동 전 항공기 및 무장까지 꼼꼼하게 챙겼다.
16:30
기자가 탑승한 UH-60 헬기가 먼저 이륙하자 아파치 헬기도 이륙할 활주로 끝으로 이동했다. 이때 기자는 지상에서 차를 타고 달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땅 위로 살짝 떠올라 땅에 스치듯 저공으로 비행했기 때문이다.
아파치 편대는 이륙을 시작했다. 가장 앞에 선 헬기부터 줄지어 4대가 출격했다. 기자를 향해 다가오던 아파치는 기자 앞에서 급격히 상승해 머리 위로 '휙' 하니 지나갔다. 아파치가 이륙하면서 만들어낸 소음과 진동이 그대로 가슴에 전달됐다. 그 순간 숨이 멎을 듯이 아찔했다. 사진 기자 움직임은 동물적으로 빨라졌다. 역동적인 출격 순간을 담아내려는 손놀림에 헬기는 셔터 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경기도 이천 항공작전사령부를 이륙한 헬기는 인접한 용인 백암면 상공을 지나 서쪽 태안으로 방향을 잡았다. 활짝 열린 헬기 문밖으로 아파치 무리가 줄지어 비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뿌연 구름과 곳곳에 녹지 않은 눈 그리고 가지만 앙상한 검은 산 위로 비행하는 모습이 수묵화처럼 보였다. 모든 순간이 훈련이다. 이처럼 작전지역으로 이동하는 비행은 ‘전술지형비행’으로 불린다.
이룩한 지 20분쯤 지나자 산악 지형을 벗어났다. 그러나 헬기 밖은 또 다른 회색빛으로 가득했다. 빼곡하게 채워진 아파트 단지 위를 비행했다. 경치를 즐길 여유는 없었다. 헬기에 오른 기자들은 침묵 속 경쟁을 벌였다. 서로 대화도 없이 모든 초점은 아파치로 모여졌다. 마치 총구를 겨누듯 기자들 카메라는 아파치를 담아내려 쫓았다. 열린 문으로 찬바람은 쏟아져 들어왔다.
17:15
태안 앞바다 상공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기자가 탑승한 UH-60 헬기가 먼저 자리 잡았다. 바다를 내려다보며 아파치가 등장할 순간을 기다렸다. 이윽고 중무장한 아파치 헬기가 꽃지 바위 왼쪽에서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해무를 배경으로 서서히 나타난 뒤 도열하자 공포감이 엄습했다. 기자를 태운 헬기와 1대 4로 정면에 대치했다. 아파치 무리에선 헬기 위치를 알려주는 비컨 램프 4개가 반짝이는데 이는 경고등처럼 보였다. 아파치는 각종 미사일과 로켓포, 연발 기관포 등으로 무장해 막강한 공격력을 갖추고 있다.
여기서 잠시 객관식 문제를 풀어보자. 적 전차 10대가 공격해 온다면 어떤 무기로 싸워야 유리할까. 보기는 간단히 두 가지인데 막강 화력을 자랑하는 K-2 흑표 전차와 아파치 헬기가 있다. 기자는 주저 없이 아파치를 선택하겠다.
아파치 1대는 적 전차 16대를 파괴할 수 있고 18대의 1개 대대는 전차 100여 대로 구성된 기갑여단 전체를 상대할 수 있다. 무기체계 분석을 담당하는 군 관계자는 “보수적으로 평가해도 아파치 1대가 상대할 수 있는 적 전차는 최소 10대 이상”이라며 “아파치는 헬파이어 대전차 미사일을 최대 16발 탑재하는데 악조건에서 60%만 명중해도 10대를 파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아파치는 ‘탱크 킬러’로 불린다. 전차를 파괴하는 AGM-114 헬파이어 미사일과 지상 작전을 지원하는 2.75인치 로켓으로 무장해서다. 헬기 아래 달린 M230 체인건은 작동 소리만 들어도 적에게 공포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날개 양쪽 끝에 장착한 AIM-92 스팅어는 적 항공기를 공중 요격할 수 있다. 사거리 8㎞인 헬파이어 미사일은 적 전차를 향해 발사된 뒤엔 스스로 알아서 표적을 맞힌다. 특히 아파치의 꼭대기에 장치된 롱보우 시스템엔 레이더가 장착돼 있어 은폐물 위로 롱보우만 쏙 내밀어 적을 탐지할 수 있다. 탐지한 정보를 다른 아파치와 공유할 수 있어 효과적으로 임무를 분담한 작전이 가능하다.
아파치는 크기(길이 17.8mㆍ폭 14.9mㆍ높이 5.2m)도 남다르고 최대이륙중량은 10.4t에 이른다. 최대 비행 속도는 시속 269㎞까지 가능해 매우 빠르다. 외부 보조연료탱크를 달면 최대 5시간 30분까지 비행할 수 있다. 육군은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3월까지 아파치 36대 전력화를 모두 마쳤다.
17:37
아파치가 물러나기 시작했다. 애처로운 눈빛으로 먹이를 놓아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회색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짙은 색 맹수가 등장하자 웅장함과 위압감이 느껴졌다. 훈련이지만 아파치와 대치한 상황에선 공포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적에겐 어떤 공포를 줄지 체험해 본 기회였다. 아파치 편대는 ‘해상 및 해안 침투저지를 위한 전투진지 점령 훈련’을 마치고 복귀에 나섰다.
실제 아파치에 탑승하는 조종사들은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했다. 비행에 앞서 2018년 육군항공 사격대회에서 탑 헬리건으로 선발된 임경섭 소령(38· 3사 41기)을 만나봤다. 임 소령은 “탑 헬리건에 선발돼 영광”이라며 “미 육군 항공학교에서 처음 아파치를 마주했을 때 그 웅장함과 강인함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육군항공 사격대회’는 헬기 조종사의 항공사격 전투 기량을 겨루는 대회다. 1989년부터 시행됐다. 99년부터는 사격대회에서 최고 성적을 보인 사수(射手)를 그해 ‘탑 헬리건’으로 선정해 국방부 장관상을 수여했고, 2002년부터 대통령상으로 격상시켰다.
여성 조종사 류은명 소령(여군 49기)은 “이륙하는 순간부터 항공기 힘을 느낀다” “180도 선회 후 급강하면서 떨어질 때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이고 아찔하다”며 아파치헬기의 역동성을 표현했다.
18:30
아파치 편대는 이륙할 때처럼 줄지어 항작사 활주로에 착륙했다. 멀리서 다가온 불빛은 땅에 내려 계류장으로 이동했다. 이날 이뤄진 야간비행은 무사히 마무리됐다. 안전비행에는 숨은 노력도 있다. 육군 항공작전사령부는 아파치를 도입한 이후 지금까지 무사고 비행을 이어가고 있다. 해상비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엔진을 청소해 다시 완벽한 상태로 만든다. 바다 위 공기에는 염분이 많아 헬기 기체를 녹슬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파치 제조업체 보잉과 록히드마틴에선 현장에 전문가를 배치해 정비 기술을 지원했다.
공격헬기는 한반도 전장에 최적화됐다. 아파치와 같은 대형 무장헬기는 전차보다 행동반경은 10배 이상이고 기동력으로 민첩하게 융통성 있는 다양한 임무 수행이 가능하다. 아파치는 특전사와 해작사와 연계해 신속대응 임무를 맡았고 서북도서 방호 임무도 수행한다. 동·서해에서 북한군 고속부양정이 빠른 속도로 침투할 때 대응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공격헬기 '아파치' vs 전차 '흑표' & 소형무장헬기
지난 3월 당시 송영무 국방부 장관 지시에 따라 합참은 아파치 추가 구매를 위한 긴급 소요 검토에 들어갔다. 대신 흑표 전차 100여 대를 추가 구매하는 사업을 취소하는 방침도 정했다. 군 소식통은 “흑표 예산을 줄여 상대적으로 전투력이 뛰어난 아파치 40대 안팎을 더 사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말했다. 아파치 1대는 350억 원이고 흑표 전차는 80~100억 원 수준이다. 아파치는 전차보다 대당 가격은 3~4배 비싸지만, 전투력 면에서 10~20배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 비용 대 효과, 즉 ‘가성비’가 좋은 무기로 평가된다.
그러나 좀처럼 전차에 쏠린 한국군 전력 구조는 변할 틈이 없어 보인다. 전차를 50대 수준으로 줄여 들어오자는 절충안이 거론됐다. 나중엔 기존 계획대로 100여 대를 모두 구매하는 방안으로 정리됐다. 군 관계자는 “정경두 장관 취임 이후엔 아파치 추가 도입은 사실상 폐기됐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지난 18일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제작한 소형무장헬기(LAH) 첫 시제기 출고식이 열렸다. 500 MD와 AH-1S 코브라 등 육군 노후 공격헬기를 성능이 우수한 국산 무장헬기로 교체하는 소형무장헬기 사업은 2023년까지 개발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아파치와 비교하면 성능 차이가 크다. 군 관계자는 “AH-1S 코브라 헬기는 전차 4대 이상을 파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코브라 헬기 18대 구성된 1개 대대는 북한군 전차 1개 대대(전차 30~40대)를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 아파치 1개 대대가 1개 여단을 제압하는 능력보단 적다. 따라서 코브라 공격헬기가 맡던 임무 중 일부는 아파치가 넘겨받아 압도적인 능력을 입증했다. 군 안팎에서 “전차보다 아파치 1~2개 대대(18~36대) 규모를 더 늘리는 게 합리적이고 국방개혁에도 부합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천·태안=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영상 강대석 기자 park.yongh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