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풍성한 결실의 비결 외 1

鶴山 徐 仁 2017. 3. 21. 20:25
3월 21일 (화)
풍성한 결실의 비결 (마가복음4:10-20)
  
 

10.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더불어 그 비유들에 대하여 물으니
11.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12.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13. 또 이르시되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
14.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15.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16.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17.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18.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19.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20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계속되지만 이젠 완연한 봄이 왔습니다. 농부들의 손길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계절입니다. 사순절을 보내며 고향 생각을 잠시하며 감사했습니다. 두메산골의 가난한 농부의 가정에서 자라나며 불평도 많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감사한 조건입니다. 자연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농부의 그 순박한 마음을 사랑하는 것과 그들이 땀 흘려 생산한 농작물을 대하며 감사하는 것도 농촌 출신이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농부는 땅을 소중히 여기고 기름지고 좋은 땅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유는 땅이 좋아야 풍성한 결실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풍성한 결실을 위해서는 식물이 자랄 수 있는 환경(햇빛, 공기, 수분)과 좋은 종자와 비옥한 땅입니다. 그러나 모든 환경 조건이 좋아도 땅이 나쁘면 소용없습니다. 예수님은 씨뿌리는 비유를 통하여 이 진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비유를 통해 복음의 씨가 뿌려짐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풍성한 열매 맺는 비결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밭에 뿌려진 씨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14). 생명의 양식이요, 복된 구원의 소식입니다. 지금도 이 복음의 씨는 온 열방에 뿌려지고 있습니다. 밭은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4종류의 밭이 소개되고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거기서 거기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을 옥토로 만드는 것입니다.

먼저 사탄을 조심해야 합니다(15). 사탄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합니다. 멍청하지 않고 지혜로우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 잘 믿지 못하게 하고 의심과 분쟁과 욕심따라 살아가게 만들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게 하며, 예배 시간에도 엉뚱한 생각을 하게 합니다. 마치 새가 길가에 떨어진 씨앗을 쪼아 먹어버리듯 말씀을 뺏어가 버리고 맙니다. 굳은 마음 깨뜨려 달라고 성령의 단비를 내려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감정을 초월해야 합니다(16). 우리의 감정은 시시 때때로 변합니다.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함으로 정서적으로 유쾌하고 기분도 좋아 신앙생할 잘할 것 같았는데 조금한 어려움이 닥쳐도 사정없이 흔들리게 됩니다. 마치 밭은 밭이지만 돌과 자갈이 가득하다면 씨앗이 돌 사이에 있는 흙에 뿌리를 내리는 것 같지만 흙이 깊지 못하여 쉬 말라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감정을 초월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위에 믿음의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나를 넘어지게 하는 것들이 있다면 캐내어 버리고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욕심을 제어해야 합니다(18). 현대인의 염려거리는 좀 더 잘살고 편안하게 생을 즐기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가시떨기는 돈과 명예와 쾌락입니다. 가시떨기가 무섭게 번지고 좋은 땅을 점령하듯이 성공주의와 쾌락지상주의가 현대인을 정복해 가고 있습니다. 가시밭은 가시와 함께 식물이 자라기에 가시가 기운을 다 뺏어버려 열매 맺지 못합니다. 이런 마음은 신앙생활 잘하다가도 결실을 기대할만한 결정적일 때 쓰러지는 경우입니다. 기도하면서 성령의 불로 온갖 잡초와 가시를 태워버려야 합니다.

나는 어떠합니까? 신앙인으로 외형적인 모습은 갖추었지만 주님이 원하시는 열매가 없다면 세상 염려와 재리의 유혹 때문입니다. 이제 시편기자처럼 주님께 기도하십시오. “주여 내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옵소서”(시50:10). 이 기도가 옥토화의 첫 단계입니다. 그리고 결단하셔야 합니다. 굳은 마음은 깊이 갈아엎어야 합니다. 돌을 캐내고 골라내어 제거해야 합니다. 가시덤불은 걷어내어 불살라 버려야 합니다. 풍성한 결실은 그냥 되지 않습니다.

 
  
  
 

- 나의 마음은 어떤 밭과 같은지 살펴보고, 무엇이 문제인지 구체적으로 정리해봅시다.
-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지금 결단하시고, 성령님을 의지하십시오.
- 마음의 옥토화를 위한 결단과 실천을 위해 기도하십시다.

 
  
  
 

전능하신 하나님,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천국을 깊이 이해하고 깨달아서 천국을 소유하게 하시옵소서. 강팍하고 굳어있는 마음 깨뜨려 주시옵소서. 온갖 유혹에 노출되어 있는 마음 정결케 하시옵소서.

 
  
   
 

내 능력껏 최선을 다할 때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 두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으스대지 않았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우월감이 없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시기하지 않았고 감사하였다.
그리고 받은 것 만 큼 능력대로 일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 밖의 일을 원하시지 않는다.
돈 없는데 헌금 많이 하라 하지 않으신다.
과부의 엽전을 귀하게 여기신다.
능력이 없는데 지나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가진 것으로 최선을 다해 달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무능한 것을 야단치지 않는다.
-하용조 목사의 ‘달란트 비유’에서-

 
   
 
  
 


우리는 무능한 것을 탓하지 말고
충성스럽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유능하고 똑똑하고 잘 난 사람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남의 것을 부러워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감사하십시오.
또 많이 받았다고 남을 무시하는 언행을 하지 마십시오.
많이 받았으면 많은 대로 적게 받았으면 적은 대로
내 능력껏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시편 138:3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
When I called, you answered me
you made me bold and stouthearted.

 
    
 
  
 명성엘림교회 김성환 목사
 믿음에 자라게 하는 마음
  
  




3월 20일 (월)
아름다운 걸작품 (시편8:1-9)
  
 

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2.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5.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6.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7.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8.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9.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1923년 시카고의 에지와트 비치호텔에서 미국 최대 부호 아홉명이 자리를 같이 했을 때 언론에서는『20세기의 신화』라고 대서특필했습니다. 그러나 25년 후인 1948년에 그들 중 한 명은 미치고, 셋은 파산하고, 둘은 출옥 후 패인이 되었고, 셋은 자살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돈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올바른 목적을 상실하고 어리석게 살아가면 나침반 잃은 배와 같습니다. 나침반을 잃으면 목적하는 항구는커녕, 그 배의 결과는 파선이요, 침몰이요, 죽음입니다. 인간의 삶의 목적은 주의 이름을 온 땅에서 정말 아름다우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1,9).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본문을 작시한 다윗은 참으로 어린아이 같이 순수한 사람입니다. 어린아이처럼 감탄사를 연발하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보면서 정말 좋다. 멋있다. 아름답다고 감동하고 있습니다. 감동해 보신 지가 얼마나 된 것 같습니까? 사탄은 우리를 속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세계를 보고 그 안에서 살면서 그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느끼지 못하도록 합니다. 바쁘게 만들고, 짜증나게 하고, 염려하며 낙심하게 합니다. 이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어린아이처럼 감탄사를 연발하며 감동 있는 신앙생활하시고, 기쁨이 넘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십시오.

다윗은 우주를 바라보면서도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을 내가 보오니”(3) 감탄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시는 체험과 경험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는 외롭게 양을 치면서 밤하늘에 영롱히 빛나는 달과 별빛을 보았습니다. 은하수의 강을 보았을 것이고, 힘차게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았고, 한 낮의 강렬한 태양을 보았으며, 저녁노을을 보면서 하나님이 지으신 대자연을 보면서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을 것입니다. 대자연의 신비를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의 작품 앞에 초라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4절에서 ‘사람이 무엇이관대’라는 이 말속에는 하나님께서 결코 사람에게 그렇게 관심을 둘 대상이 아닌데라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특별한 관심을 두고 계시니 이상하다는 말입니다. 그 구체적인 표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생각하십니다. 생각한다는 말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말입니다. 관심이 있기에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죄인된 우리를 사랑하시고 생각하셨던지 자신이 죽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 하나님 당신의 죽음의 자리가 바로 갈보리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권고하십니다. 권고는 조심스럽게 충고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인격을 최대한 존중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의 대화의 파트너로 우리를 인정해 주십니다.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습니다. 영적으로는 사람만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어느 피조물에도 없는 하나님의 형상을 사람만이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을 이러한 영화로운 존재로 삼으신 이유는 “주의 손으로 만드신 모든 것을 다스리는 그 임무를 주시기 위해 이런 특별한 존재로 창조하셨던 것입니다(6-8).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창조의 모든 걸작품을 인간에게 확실하게 맡기신 것입니다(창 1:28). 다윗같이 순수한 신앙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어진 삶을 살아가심으로 감격이 넘치는 아름답고 복된 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나는 삶의 목적을 주의 이름을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해 봅시다.
- 구원받은 사람으로 나의 신분에 대한 자아정체성이 있으십니까?
- 가까운 공원에서 솟아오르는 생명의 소리도 들으며 하나님의 숨결을 느껴봅시다.

 
  
  
 

창조의 하나님, 지금 보고 누리고 살아가는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걸작품인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함부로 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겸손함으로 사명 다하게 하시옵소서.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이런 책임감 있는 존재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그 분의 피에 우리의 죄를 적셔야 한다.

이 저주의 삶과 저주의 신앙에서
어떻게 축복의 신앙으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한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와야 한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침묵하셨다.
자기를 죽이는 자들을 저주하지 않으셨다.
‘아버지여, 저들을 축복하여 주옵소서’’라고 하신
그 분 앞에 와야 한다. 그 분의 얼굴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 분이 흘리신 피에 우리의 죄를 적셔야 한다.
.그때 우리는 이 저주의 삶에서부터 축복의 삶으로 탈출할 수 있다.
- 하용조 목사의 ‘화있을 진저’에서-

 
   
 
  
 


성령이 임하셔야 우리 안에 있는 이 죄의 소욕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 무릎 꿇고
교만하지 말고 자기를 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는 사탄의 본성이 있습니다.
자기 신앙의 의를 말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피 흘려 돌아가시므로
우리를 의롭다 하신 것입니다.
그 공로 의지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축복의 삶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욥기 11:16

 

곧 네 환난을 잊을 것이라 네가 기억할지라도
물이 흘러감 같을 것이며
You will surely forget your trouble, recalling
it only as waters gone by.

 
    
 
  
 김옥엽 시인
 영혼의 닻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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