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사자가 포효할 때 외 1

鶴山 徐 仁 2017. 2. 24. 08:58
2월 24일 (금)
사자가 포효할 때 (아모스3:1-8)
  
 

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에 대하여 이르시는 이 말씀을 들으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모든 족속에 대하여 이르시기를
2. 내가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을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하셨나니
3.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
4. 사자가 움킨 것이 없는데 어찌 수풀에서 부르짖겠으며 젊은 사자가 잡은 것이 없는데 어찌 굴에서 소리를 내겠느냐
5. 덫을 땅에 놓지 않았는데 새가 어찌 거기 치이겠으며 잡힌 것이 없는데 덫이 어찌 땅에서 튀겠느냐
6. 성읍에서 나팔이 울리는데 백성이 어찌 두려워하지 아니하겠으며 여호와의 행하심이 없는데 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
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8.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8절).
선지자 아모스의 분노는 개인적이고도 인간적인 감정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에 의해 충동된 의분입니다. 선지자가 사회 정의를 외치는 것은 그만큼 신앙의 문제와 사회 문제가 서로 유리되어 있지 않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아모스서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이 신앙과 정의의 관계입니다.

선지자는 당시 이스라엘이 종교와 윤리를 갈라놓고 종교는 일상생활과 구별된 다른 영역에 속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종교는 자칫 인간과 그 세계를 부패하게 하고 추악하게 합니다. 따라서 아모스가 시종일관 규탄하는 것은 종교를 빙자하여 정의를 유린한 당시 사회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끝까지 공의가 기득권자들과 부자들에 의해 유린되는 현실에 분노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고발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왕국 건설 후 1세기도 안돼 급속한 사회적 변천을 겪으며 유목생활에서 농경사회로 이행하는데, 거기서 상인들이 생겨나며 점차 경제적 계층과 함께 계급이 형성됨으로써 불평등이라는 큰 사회적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더구나 여로보암 2세 때는 문제투성이의 그 번영이 정점에 달했습니다. 바로 그때 등장한 선지자가 드고아의 목자에 불과했던 아모스 아니었습니까?

그는 오늘 본문처럼 그 부조리한 현실 한복판에 서서 맹렬히 북왕국 이스라엘의 권력자와 기득권자, 가진 자들을 공격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며 그야말로 사자처럼 포효했습니다. 오직 경제적 번영만을 구가한 당시 사회를 향해 너도나도 함부로 유린하고 있는 정의를 바로 세우고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분노를 귀담아 들으라며 사회적 부정의를 고발했습니다.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 사자가 움킨 것이 없는데 어찌 수풀에서 부르짖겠느냐>(3-4절).

하나님과 끝까지 동행하기를 바란다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해야 합니다. 공의를 실현하라고 하나님이 마치 사자가 포효하듯 엄히 말씀하실 때 바르게 듣고 응답해야 합니다.

 
  
  
 

-일찍이 아모스 선지자가 고발했던 사회적 부정의와 오늘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한번 비교해 보십시오.
-아모스 선지자가 성토한 당시의 재판관과 권력가, 부자들과 지금 우리 사회의 기득권자들을 비교해 보십시오.
-아모스 선지자처럼 이 시대의 사회악과 부조리를 고발할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주님, 사자가 포효하면 두려워하지 않을 자가 없고,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명령하시면 그걸 예언하지 않을 자가 없듯 저희도 그렇게 이 시대를 향해 주님의 경고와 분노를 외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아모스 선지자가 고발했던 당대 이스라엘의 부조리와 온갖 사회적 모순은 그대로 이 시대 저희 사회의 악이요 모순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랜 역사가 흘렀음에도 사회악의 본질은 이렇듯 하나도 변한 게 없습니다. 여전히 <유전무죄고 무전유죄>이며 드물지 않게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기도 합니다. 부디 저희들 아모스 선지자처럼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하는 심정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며 부패와 모순을 고발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양심들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믿음의 삶을 산다는 것은

믿음의 삶은 독수리의 날개타고 날아오르는 것과 같이
최고의 영광스러운 것을 연이어 경험하는 삶이 아니라,
변함없이 꾸준한 삶, 지치지 않고 걸어가는 삶이다.
그것은 성화에 의한 거룩함의 문제가 아니라
길을 따라 더 멀리 더 오래가는 것의 문제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연단되고
시험을 통과하여 검증되는 것이 믿음이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아브라함의 믿음의 삶’에서-

 
   
 
  
 


믿음의 삶을 산다는 것은 결코 우리가 어디로
이끌려가고 있는지를 모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이끄시는 분을 사랑하고 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지각과 이성의 삶이 아니라
믿음의 삶, 우리를 오라고 부르시는 분을 아는 삶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믿는 분을 아는 지식에 뿌리를 두고
연단되고 변함없는 신앙의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 이루었다

 

다 이루시고 침묵하시고 구원을 완성하신 예수님

 
    
 
  
 명성엘림교회 김성환 목사
 주님 안에서 감사하는 생활
  
  



2월 23일 (목)
신발 한 켤레 (아모스 2:6-16)
  
 

6.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
7. 힘 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고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8. 모든 제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그들의 신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
9. 내가 아모리 사람을 그들 앞에서 멸하였나니 그 키는 백향목 높이와 같고 강하기는 상수리나무 같으나 내가 그 위의 열매와 그 아래의 뿌리를 진멸하였느니라
10.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인도하고 아모리 사람의 땅을 너희가 차지하게 하였고
11. 또 너희 아들 중에서 선지자를, 너희 청년 중에서 나실인을 일으켰나니 이스라엘 자손들아 과연 그렇지 아니하냐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2. 그러나 너희가 나실 사람으로 포도주를 마시게 하며 또 선지자에게 명령하여 예언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13. 보라 곡식 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 같이 내가 너희를 누르리니
14. 빨리 달음박질하는 자도 도망할 수 없으며 강한 자도 자기 힘을 낼 수 없으며 용사도 자기 목숨을 구할 수 없으며
15. 활을 가진 자도 설 수 없으며 발이 빠른 자도 피할 수 없으며 말 타는 자도 자기 목숨을 구할 수 없고
16. 용사 가운데 그 마음이 굳센 자도 그 날에는 벌거벗고 도망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의 책망과 경고가 이스라엘 주변을 빙 돌아서 마침내 그 중심에 자리한 이스라엘에 당도했습니다. <...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매>(6절).
모든 나라들이 다 그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을 받는다면 이스라엘이라 하여 어찌 벌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특히 당시 하나님이 추궁하신 그들의 죄는 공의를 굽게 한 재판관들과 방백의 죄였습니다. 뇌물을 받고 의인을 죄인으로 둔갑시키고, 신발 한 켤레에 피해자인 가난한 자를 가해자로 만드는 악행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모스 시대 이스라엘의 재판은 사실 관계나 옳고 그름에 따른 판결이 아니라 언제나 뇌물이 그 재판의 결과를 결정했습니다. 경매시장처럼 가장 많은 뇌물을 지불한 자의 주장이 곧 정의로 통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힘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고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철저하게 하나님의 공의를 유린했습니다.

원래 전당 잡은 가난한 자들의 겉옷은 저녁에는 일단 돌려줘야 합니다(신 24:12-13). 낮에는 그게 겉옷이지만 밤에는 추위를 막는 모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진 자들은 가난한 자들의 그 전당 잡은 옷을 깔개로 더욱 안락한 잠을 이뤘다는 것입니다.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8절). 이스라엘의 재판관, 방백, 부자들은 이렇게 뇌물과 압제와 토색으로 얻은 것들을 마음껏 즐기면서도 하나님을 공경하는 체하며 가증한 죄를 범했을 뿐만 아니라 한 술 더 떠 우상숭배까지도 일삼았습니다. <신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셨다>(8절)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곡식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 같이 내가 너희를 누르겠다>(13절)고 하십니다. <빨리 달음박질하는 자도 도망할 수 없으며 강한 자도 자기 힘을 낼 수 없으며 용사도 자기 목숨을 구할 수 없게>(14절) 하겠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정의와 공의를 압살하는 자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확인해야합니다. 그가 누구든 또 어떤 민족이든 뇌물로 의인을 팔고 가난한 자를 해치는 자는 하나님이 반드시 응징하시고 진멸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본문에서 하나님이 지적하신 이스라엘의 죄악을 확정해 보십시오.
-뇌물을 받고 의인을 죄인으로,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불의한 일이 현재 우리 사회에도 있을까요?
-신명기 24:12-13 말씀을 찾아 읽어 보시고, 가난한 자들의 인권을 배려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보십시오.

 
  
  
 

주님, 과거 아모스 시대 이스라엘은 그 주변 이방들 못지않게 악했고 불의하고 비열했습니다. 뇌물이 재판의 결과를 결정했고, 돈이 없으면 의인도, 피해자도 다 죄인으로 정죄되고 그 어떤 송사에서도 승소할 수 없었습니다. 재판관이 신발 한 켤레를 뇌물로 받고도 가난한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킬 만큼 눈먼 불의한 사회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진노하시며 엄중한 심판을 경고하셨음을 기억합니다. 부디 저희들 하나님의 공의를 해치거나 정의를 유인하지 않도록 늘 성령으로 지켜 주시옵소서.

 
  
   
 

나에 대한 권리가 결코 내게 없기에

우리는 내 육체와 영이 다 하나님의 본성과 조화롭게 될 때까지
온갖 더러운 것들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있는가?
그리스도께서는 날마다 우리자신에게 물으라고 하신다.
내 영의 생각은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과 완전히 일치하는가?
아니면 나는 정신적으로 주님께 반역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기 자신에 대한 권리가 결코 자기에게 있는 것이 아니기에 언제나 깨어있어 자신의 영이 늘 하나님께 순복하는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오스왈드 챔퍼스의 ‘매일 묵상’에서-

 
   
 
  
 


우리에게는 우리의 영이 늘 하나님의 영과 일치되게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내가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복하는 수준, 다른 것에 눈길을 주지 않는 수준까지 나를 끌어 올리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이런 거룩함을 이루어 가십시오.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 그의 길을 이루시고 사람들은 나의 삶속에서 점점 하나님을 가까이 만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를 기억하라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대신 지신 그 십자가를 기억하라”

 
    
 
  
 김옥엽 시인
 사랑의 유효기간
  
  


'Faith - Hy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추수의 법칙   (0) 2017.02.27
겨울 궁과 여름 궁  (0) 2017.02.25
성령이 임하시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0) 2017.02.22
하나님은 나의 깃발   (0) 2017.02.21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0) 2017.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