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드고아의 목자

鶴山 徐 仁 2017. 2. 11. 09:49
2월 11일 (토)
드고아의 목자 (아모스 1:1-2)
  
 

1.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
2.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소리를 내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마르고 갈멜 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

 
  
  
 

<아모스서> 역시 저자인 <아모스>의 이름을 붙여 명명한 것인데 <아모스>란 <짐을 짊어진 자>라는 뜻입니다. 실제 <아모스> 선지자는 그의 이름처럼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부여하신 무거운 짐, 즉 <반역하는 이스라엘에 대해 심판을 선포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그 누구보다도 훌륭하게 수행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드고아의 목자였습니다. 그러니까 남왕국인 유다 사람이었지만 주로 벧엘에서 북왕국 이스라엘에 대해 예언했습니다(7:13). 그와 동시대에 활동한 선지자로는 호세아를 꼽을 수 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는 1:1에서 보듯 유다 왕 웃시야와 북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던 때(주전 767-753년)로 이 때는 양국이 모두 다윗과 솔로몬의 통일 왕국 이후 최대의 정치적 경제적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였습니다.

특히 북이스라엘의 번영은 아람 왕 벤하닷 3세가 신흥제국 앗수르에 패하여 그 세력이 급격히 쇠퇴해진 틈을 타 여로보암 2세가 아람을 공격, 그 영토를 하맛까지 확장한 터였습니다(왕하 14:25). 그러나 이러한 정치, 경제적 번영은 전례가 없을 만큼의 종교적, 도덕적 부패 현상을 불렀습니다(2:6-8, 5:11-12, 21-27). 그리고 그런 부패현상은 지방계층의 타락에 기인한 것으로 이스라엘 사회 전반에 심각한 정의 부재현상을 낳았습니다. 따라서 남왕국 드고아 출신의 목자가 상대적으로 더 타락이 심했던 당시 북왕국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의 공의 회복을 선포한 것이 바로 이 아모스서의 내용입니다.

본서는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① 이스라엘과 주변국들에 대한 8가지 심판 예언(1-2장), ② 심판에 대한 3가지 설교(3-6장), ③ 심판에 관한 5가지 환상(7:1-9:10), ④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약속(9:11-15) 등이 그것입니다. 아모스의 예언은 참혹한 멸망으로 끝나지 않고 미래에 있을 이스라엘의 회복으로 마무리 됩니다. 즉 그날에 다윗의 무너진 장막이 재건되고 이스라엘의 완전한 번영과 평화가 회복될 것이라는 예언으로 끝나는데 그것은 곧 메시아를 통한 하나님의 백성과 그 나라의 회복을 뜻하는(행 15:16) 메시지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를 <정의의 선지자>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5:24)?
-아모스 시대의 북이스라엘의 사회상을 말씀해 보십시오.
-2절에 나오는 <갈멜산>을 엘리야와 관련해 말씀해 보십시오(왕상 18장).

 
  
  
 

주님, 과거 북왕국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고 우상을 숭배하며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고 압제할 때 드고아의 목자였던 아모스를 부르사 장차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외치며 정의와 공의를 회복하라고 촉구한 이 아모스서의 말씀을 상고하며 기도하오니 저희에게도 큰 도전과 깨달음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어쩌면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메시지가 바로 이 아모스서의 말씀일 수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사오니 모쪼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시들어가는 꽃과 같은 신앙

의인의식을 가진 성도들은 평생 예수를 믿어도 죄 문제로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가슴을 치며 눈물로 회개하지 않는다.
신앙자체가 무덤덤하고 감격과 생기가 없다.
가뭄에 시들어가는 꽃이나 풀과 같다.
이런 분들을 향해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 한다‘고 외쳤다.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는다는 탄식이다.
-권오선 목사의 ‘의인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에서-

 
   
 
  
 


의인의식이란 기존의 성도들이 흔히 범할 수 있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만 적용하는 좋지 못한 습관입니다.
자기가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목사가 아무리 죄에 대해서
설교를 해도 놀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죄와 심판에 대한 설교를 해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습니다.
정말 이것은 죄인을 향한 말씀이지, 의인인 자신과는 관계가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인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말씀을 듣고 자기의 죄가 없다 하고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진정 회개해야 될 사람입니다.

 
   
    
 

예수만 섬기는 우리집

 

우리 가정에 언제나 주인이시고
다스리시는 분은 우리 주 예수님

 
    
 
  
 김옥엽 시인
 낙심하지 않을 이유
  
  



2월 10일 (금)
심판의 골짜기 (요엘 3:14-21)
  
 

14.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
15.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그 빛을 거두도다
16.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내시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리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시리로다
17. 그런즉 너희가 나는 내 성산 시온에 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알 것이라 예루살렘이 거룩하리니 다시는 이방 사람이 그 가운데로 통행하지 못하리로다
18. 그 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성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
19. 그러나 애굽은 황무지가 되겠고 에돔은 황무한 들이 되리니 이는 그들이 유다 자손에게 포악을 행하여 무죄한 피를 그 땅에서 흘렸음이니라
20. 유다는 영원히 있겠고 예루살렘은 대대로 있으리라
21. 내가 전에는 그들의 피흘림 당한 것을 갚아 주지 아니하였거니와 이제는 갚아 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에 거하심이니라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14절).
여호와의 최후의 심판을 예언하는 본문은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우선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심판 받을 사람이 골짜기에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의 날인 여호와의 날이 심히 가깝다는 것입니다. 에녹은 심판주가 마치 문 앞에 서 계신 것처럼 <보라 주께서 ... 임하셨다>(유 1:14)고 했고, 요한계시록 3:20도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 있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그 때는 자연계에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그 빛을 거두도다>(15절). 그때는 재판장 되신 여호와의 영광의 빛이 너무 강렬해 자연의 모든 광채들이 그 빛을 잃습니다. 그래서 많은 악인들에게는 그날이 몹시 무섭고 두려운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그 수는 적을지 모르나 남은 자들,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결코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시리로다>(16절)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백성, 곧 이스라엘입니다. 교회는 예루살렘입니다.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 예루살렘은 더욱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의 영원한 성산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시는 이방 사람들이 그 가운데로 통행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그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성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18절)고 합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날은 악인들에게는 무서운 심판의 날이지만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에는 무한한 축복의 날이며 구원의 날입니다. 마치 노아의 홍수가 세상 사람들에게는 무시무시한 심판이었지만 방주 속 노아의 8식구에게는 오히려 구원이었던 것과 꼭 같습니다. 그리하여 <유다는 영원히 있겠고 예루살렘은 대대로>(20절) 있을 것입니다.

 
  
  
 

-14절에 나오는 <심판의 골짜기>를 <여호사밧 골짜기>(3:2), <하몬곡 골짜기>(겔 39:11), <아마겟돈 골짜기>(계 16:16)와 비교해 보십시오.
-오늘 본문에 근거하여 <여호와의 날>의 특징을 말씀해 보십시오.
-<여호와의 날>에 지키시고 구원하실 <이스라엘> 혹은 <유다>와 <예루살렘>을 이 시대에 적용한다면 어떤 해석이 가능할까요?

 
  
  
 

주님, 심판의 날과 관련된 두 가지 사실을 거듭 깨닫습니다. 우선 <사람이 많음이여> 하신 것처럼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최후 심판의 골짜기를 매울 것이라는 점과 이제 그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옵니다. 부디 더욱 긴박한 종말의식으로 늘 깨어 있게 하사 끝까지 소수의 남은 자들 편에 있게 해주시옵소서. 그날이 다수 세상 사람들에게는 두려운 심판의 날이지만 소수인 저희 하나님의 남은 백성들에게는 영원한 구원의 날이요 기쁨과 보람의 날임을 믿고 늘 소망 가운데서 사는 성도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어느 것이 생명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가?

공산주의 세계관과 기독교 세계관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공산주의는 물질이 인간을 행복하게 한다고 믿지만,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을 행복하게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공산주의와 기독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세상을 해석의 차원이 아니라, 변화의 차원으로
보는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은 하나님 때문에 인간이 고통을 당한다며 추방시켜야 된다고 하지만, 기독교는 하나님과 예수가 없기 때문에 인간이 고통을 당한다는 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다.
어느 것이 진정한 생명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인가?.
-권오선 목사의 ‘의인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

 
   
 
  
 


공산주의 이론의 창시자인 칼 마르크스는 책상에 앉아서 고민하고 생각만하는 철학자들을 제일 싫어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게으른 철학자들은 단지 세상을 서로 다른 방법으로 해석하기만 한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2천 년 전에 세상과 인간을 변화시키려고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변화시키신 분입니다.
변화되는 현장에는 “진통”이 있습니다.
예수를 영접하고 변화되는 현장에는 고통이 따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생각지 말라. 검을 주려고 왔다”고 하셨습니다.
예수 때문에 가정에 불화와 갈등이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변화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변화의 진통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절대승리

 

우리 주님이 승리하셨기에
그 승리는 완성된 것이기에
우리도 이 세상에서 담대히 승리합니다.

 
    
 
  
 FIM국제선교회 유해석 선교사
 이슬람 형성에 영향을 끼친 다양한 종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