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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Opinion

[넷향기] 이병준 대표의 "기타행복론(I)- I처럼 묻고 도움을 요청하라" 외 1

鶴山 徐 仁 2016. 12. 9. 19:35
기타행복론(I)- I처럼 묻고 도움을 요청하라
이병준

안녕하십니까? 부부 Fun더하기 이병준입니다.
가끔 상담실에서 완벽주의로 인해 힘겨워 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일반적으로는 얼렁뚱땅, 대충대충 살아가서 문제라면 이분들은 너무 확실하고, 너무 꼼꼼하게 점검하고 챙기다보니 강박 수준에 이른 것이 문제죠.
그래서 어지간한 일은 혼자서 해결하지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이런 스타일이 악기를 배울 때도 악착같이 연습하긴 하지만 선생님께 잘 묻지 않습니다. 


사부는 물어오기를 기다린다

연습이 잘 안 될 때, 아무리 혼자 끙끙대고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단순히 연습의 부족이라고만 여길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연습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되는 부분이 있다는 뜻이죠. 그럴 때는 빨리 사부님께 묻는 것이 상책입니다.
한번은 그런 일도 사부님께 여쭈었더니 사부님은 아주 기뻐하시면서 물으러 오기를 기다렸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고 보고 그 다음 단계는 스스로가 안 되는 것을 깨닫고 물으러 오는 것이 단계였다는 개념입니다.
덕분에 칭찬도 받고 또 그 부분을 넘어서는 법을 배우니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좀 더 커질 수 있었습니다.


묻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질문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질문 받는 것도 질문하는 것도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강연가들 사이엔 ‘홍해의 기적’라고 하는 현상을 매일 봅니다.
강사가 선 자리를 중심으로 반경 3-5미터에는 아무도 없고, 또 모여 있다가도 강사가 지나가면 좌우로 갈라지는 현상을 지칭합니다. 이유는 질문 받게 될까봐 두려워해서입니다.
그래서 저는 절대 질문하지 않는다고 미리 알려줍니다. 그나마 마음을 조금 놓고 다가옵니다.
사실, 우리는 질문하는 법을 모릅니다. 그저 저장장치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인출하는 정도의 기능, 그것은 질문이라기보다는 점검이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요?
“저 큰 세단의 색깔은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 보다 “왜 저 큰 세단은 주로 검은 색을 많이 사용할까요?” 또 여기와 아울러 “그렇다면 경차와 같은 작은 차는 검은 색은 거의 없을까요?” “큰 세단은 왜 빨간색이나 분홍 노란 색 같은 것은 드물까요?” 라는 질문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악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사부는 “여기 악상 기호 이름이 뭘까?” 라는 식으로 묻지 않습니다. “여기 이 기호는 포르티시모 라고 불러, 아주 강하게라는 뜻이지. 그 이유가 뭘까?” 이렇게 접근을 해야 작곡자의 의도도 읽어낼 수 있고 자연스레 그 악상기호의 이름도 익히게 됩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지혜 중의 지혜다.

묻는다는 말은 남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 나의 부족을 인정한다는 것이 훨씬 더 큽니다. 따라서 아이처럼 물어오는 사람에게 박절하게 대하는 사람은 우월감에 찌든 사람일 뿐입니다.
도움을 부탁하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상담실을 무슨 정신병으로 여기고 오는 사람이라면 그 분은 정중히 돌려보내기도 합니다.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그래서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해결한다는 것은 스스로가 교만하다는 뜻이요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었다는 뜻입니다.
넷향기 가족 여러분!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느끼십니까? 그럼 주변에 나보다 탁월한 사람을 찾아 물으십시오. 그러면 그분은 흔쾌히 나를 도울 것입니다.
나는 그분의 도움을 받아서 성장하고, 그분은 나를 도움으로서 마음에 기쁨과 보람을 얻는 것이니 둘 다 좋은 일 아닐까요?

감사합니다.




연성
이시형

우리는 참으로 유연한 기질을 가지고 있는 민족입니다.
반도국가의 운명은 세계 어디나 참으로 고약합니다. 생각을 해보십시오. 바다에서 올라오는 사람, 육지에서 내려오는 세력. 그래서 항상 반도는 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세계 어디나 반도국가는 운명이 고약합니다. 우리만 하더라도 역사에 기록된 것만으로 961번인가 침략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한국은 피침의 역사 그대로 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역사는 5천년 면면히 이어왔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습니까.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강하게 만들었을까요?
실제로 우리는 강하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약하고 부드럽습니다. 유연하고. 그래서 저는 한국을 버드나무 체질이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버드나무라는 것은 휘청거리기는 하지만 부러지기가 않습니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흔들리고 휘청거리고.
우리는 한 번도 역사상 싸움을 걸어본 적이 없는 평화스러운 민족입니다. 만약에 이 세계 강대국 사이에 끼어있는 우리가 '그래 한판 붙자' 그랬다면 어쩌면 한반도는 공중분해하고 없어졌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조상들은 참으로 현명했습니다. 그 식민지에 수모를 참고 견뎌낼 수 있었다는 것은 저는 우리 조상은 대단히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우리는 사대주의다.'라고 비판하고 심지어 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비굴함도 참고 견뎌내고 인내할수 있는 유연성. 저는 우리 조상의 슬기가 오히려 존경스럽습니다.
이러지 않고 '그래 한판 붙자' 그랬다면 우리 한반도는 공준분해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넉넉하고 여유있는. 우리 바지 저고리 보자기를 한번 펴보십시오. 얼마나 우리가 여유있고 넉넉합니까? 007가방은 사과도 하나 안들어갑니다. 보자기를 펴 놓으면 호박을 사가지고도 갈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대단히 민첩하고 대국을 통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식민지의 가난의 역사고 싸움의 역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굉장히 빨리 순간적인 판단하지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생존의 수단이었습니다.
기민하지 않으면 살아남을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정말 열강의 각축장이 된 한반도였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강성체질이었습니다. 약하기에 강성체질이 되고 우리는 피침 속에 가난하기는 했지만 풍부한 정보를 받아들일 수도 있었습니다.
오늘 강성한국의 원동력은 바로 버드나무 체질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버드나무는 어디든지 꽂아놓으면 삽니다. 마른가지도 꽃아놓으면 잎이 핍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 사람들은 적응도 잘하고 쉽게 뿌리를 내려 잘살고 있습니다.
이게 어떻게 보면 반도적인 운명의 저주가 이제 우리에게는 축복이 되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인천공항이 아마 외국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세만 받아도 상당한 수입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반도적인 운명이 오히려 우리에게는 축복이구나 하는 생각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