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政治.社會 關係

중앙일보의 空想

鶴山 徐 仁 2016. 7. 27. 17:55

조갑제닷컴




중앙일보의 空想
자주국방을 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고도 용기나 책임감이 없어 외국에 국방을 의존하는 국가나 국민, 그리고 언론이 못할 짓은 없다. 수치심이 없기 때문이다. 중앙일보가 그 증거이다.
 

趙甲濟 



중앙일보는 사실상 社是가 사드 반대로 보인다. 연일 사드 반대를 외치는 기자 칼럼, 외부인 기고문을 싣는다. 오늘은 1면 머리에 아세안 외교장관회의에서 중국 외교부장이 북한을 환대하였다면서, <한국 보란 듯 이용호(북 외무상) 손잡은 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기사를 읽으면 박근혜 정부가 혼이 나고 있다고 즐거워하는 것 같다. 최소한의 민족적 양심이나 정의감, 또는 균형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의 생존을 위협하는 북한정권에 대한 분노와 북한을 감싸면서 한국의 內政에 간섭하는 중국에 대한 비판의식이 보이지 않는다. 만약 일본 정부가 한국을 견제하려고 이런 태도를 취하였더라면 중앙일보는 어떤 보도를 하였을까?

<회담장에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두 사람은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띠었다.>

國益이 걸린 외교를 이런 감상적 관찰로 분석하는 것은 진실을 흐린다. 선전포고도 웃으며 할 수 있는 것이 외교인데 '환한 미소'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더구나 국제 회의에서 경멸을 받아 대화조차 피하는 대상이 된 북한 외무상이, 국제규범을 지키지 않아 지탄의 대상이 되는 중국의 외교부장과 만나 울든 웃든 그게 무슨 기사거리인가? 중앙일보는 저널리즘의 원칙 이전에 최소한의 자존심도 없는 언론인가.
중앙일보에 실리는 사드 반대론의 공통점은 代案이 없거나 있어도 하나마나의 원론적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살고 죽는 문제가 걸린 北核에 감상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이다. 오늘자 오피니언 면에 실린 송호근 서울대 교수의 '비무장지대에 관한 空想'이 그렇다. 송 교수는 <세계무력의 40%가 집중된 한반도에 첨단무기를 속속 도입하면 끝내 폭발할지 모른다>면서 <사드도입은 20세기 지상전 논리를 21세기 사이버전쟁에 그대로 적용한 결과다>고 단정하였다. 

세계무력의 40%가 한반도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은 그 어떤 통계로도 증명할 수 없는 그야말로 空想이다. 한반도와 관련된 미국, 중국, 한국, 일본 군사력의 총합이면 몰라도 한반도에 집중된 武力은 많아야 세계 전체의 10% 이하일 것이다. 사드도입은 地上戰 개념이 아니다. 북한의 핵미사일을 하늘에서 격추시키려는 핵전쟁, 또는 공중전 개념이다. 사드배치와 사이버전쟁은 직접 관련이 없다. 사이버전쟁이라고 하면 그럴 듯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어디까지나 사이버 세상의 바깥에서 일어나는 實戰을 돕는 개념이다. 전쟁의 승부는 최종적으론 땅 위에서 보병이 결판내는 것이지 사이버 세상 안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패트리엇과 사드의 다중 방어망이 만주와 연안지역에 촘촘히 배치된 동평미사일, 북한의 대포동, 노동미사일을 보기 좋게 요격해도 핵무장과 사이버전쟁의 야만적 행진을 저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이 문장은 논리에 대한 반역이다. '보기 좋게 요격'할 정도이면 적의 핵능력은 無力化되는 것이다. 이게 아무 쓸 데가 없다니?  송 교수는 <이 시대의 광기를 조금이라도 순화시킬 한국의 독자 논리는 없을까?>라고 묻는다. 그는 이 칼럼에서 묻기만 할 뿐 대안을 내어놓지 못한다. 대안 비슷한 건 있다. 

<'무장평화'가 전쟁으로 가는 길이라면 '비무장평화'만큼 인류를 구제할 지혜로운 철학이 없음을 말이다.>

'무장평화'가 전쟁으로 가는 길이라니? 1953년 7월27일 이후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은 것은 무장평화의 전략이었다. 북한은 무장을 하고 한국은 무장을 하지 않는  '비무장평화'가 가능하였겠는가. 미국이 냉전에서 소련을 무너뜨린 전략도 군비경쟁을 기반으로 한 '무장평화'였다. 인도에 이어 파키스탄이 핵무장한 다음에는 인도-파키스탄 사이에 공포의 균형이 이뤄져 전쟁이 없다. 소련이 무너진 것은 핵이 없어서가 아니라면서 핵무용론을 주장하는 이도 있는데, 냉전 시대에 소련은 핵을 가지고 미국은 핵이 없었더라면 어느 쪽이 무너졌을까? 

이 시대의 狂氣를 순화시킬 유일한 방법은 광기의 진원지인 북한정권의 無力化 내지 무장해제이다. 북한 정권의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평화론은 언어의 유희에 불과하다.  

사드는 공격용 무기도 아니다. 핵무장한 적의 공격을 막으려는 사드야말로 최소한의 평화의 무기이다. 칼을 든 강도가 담을 넘고 있는데 주인은 칼을 들 생각도 않고 문 단속을 단단히 하는 정도이다. 중앙일보는 이것이 그렇게 불만인가? 사드를 배치하지 않아도 북한의 핵위협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면서 반대해야 할 것 아닌가? 

사드보다는 핵무장을 하자든지, 철수한 미국의 전술핵을 재배치하고 한국이 공동사용권을 갖자든지, 참수공격력을 완비하자든지, 아니면 항복하자든지. 무슨 대안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중앙일보의 논조를 보면서 생각 난 말이 있다. 朴正熙 대통령은 1970년대의 어느 날 학생시위 관련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독백하듯이 말하였다. 

'주한미군이 있는 한 시위는 없어지지 않을 거야.'

자주국방을 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고도 용기나 책임감이 없어 외국에 국방을 의존하는 국가나 국민, 그리고 언론이 못할 짓은 없다. 수치심이 없기 때문이다. 중앙일보가 그 증거이다.   

 

[ 2016-07-26, 11: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