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우리의 건강한 영혼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먹어야 합니다./ 외 3 CTS 큐티

鶴山 徐 仁 2015. 9. 22. 11:13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려면


우리는 세상의 자랑과 육체의 욕망을 쫒으면
계속 죄를 마시고 갈증을 느끼며 살게 된다.
우리 인생들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끊임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도전한다.
채워도 채워도 만족하지 못하고,
마치 깨어진 항아리에 물을 채우듯이
계속 갈증과 공허함을 느끼며 삶을 갉아먹는다.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 하려면 어떤 물을 마셔야 하는가?
-김영철 전도사의 ‘깊은 산 속 옹달샘’에서-

육체를 위하여 음식을 먹듯이 우리의 건강한 영혼을 위하여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내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날마다 주안에서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물을 마시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시편 90:14>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Satisfy us in the morning with your unfailing love, that we may sing for joy and be glad all our days.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 - 역대하 26:1-5
1. 유다 온 백성이 나이가 십육 세 된 웃시야를 세워 그의 아버지 아마샤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으니
2. 아마샤 왕이 그의 열조들의 묘실에 누운 후에 웃시야가 엘롯을 건축하여 유다에 돌렸더라
3. 웃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십육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이 년 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골리아요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4. 웃시야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5.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
현대인은 날마다 거울을 보면서 생활합니다. 특히 여인들은 손거울을 가지고 다니면서 수시로 얼굴을 보고 화장을 고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외모 관리만을 위하여 거울을 보면서도 나의 내면의 거울을 보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거울은 양심의 거울과 역사의 거울, 그리고 성경이라는 말씀의 거울입니다. 이러한 거울 앞에서 우리의 모습을 마주 보는 혜안이 필요합니다.
웃시야는 유대나라의 왕으로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다’입니다. 그는 이름처럼 살다간 인물로 그가 하나님을 찾을 때에는 형통하였지만, 하나님을 등지고 살았을 때에는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16). 우리들도 주님의 은혜가 있을 때 잘해야 하고, 형통하고 범사가 잘될 때 헌신하고 충성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들이 형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형통의 비결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야 합니다(4). 그 분이 우리를 보시는 것은 사람이 보는 것과 다릅니다. 사람들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삼상16:7). 생각을 감찰하시기에 모르는 것이 없으시고 거짓에 속지 않으십니다. 진심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아시고, 진실한 믿음의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크리스천의 표식은 정직이며, 정직은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오늘날 사회가 공의와 정의가 실종되고 온갖 부정부패가 난무하게 된 것은 우리 기독교의 책임입니다. 정직이 형통한 삶의 비결입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자를 기뻐하십니다(잠12:22). 정직한 사람의 집이 형통한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욥8:7-8).
또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찾아야 합니다(5). 그는 스가랴 선지자가 말씀으로 자문할 때에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조사하였고, 그대로 살기위해 노력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그분은 지혜의 원천이시고, 새 힘의 근원이시며 승리의 근거이십니다. 겸손한 자만이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의 말씀을 사랑하고 지켜 행하게 됩니다. 이것이 사는 길이요 형통한 인생의 비결입니다.

[적용]
- 나의 이름의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이름처럼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해 봅시다.
- 하나님 보시기에 나의 정직성을 돌아보고, 정직하지 못함을 통회하십시다.
-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 말씀묵상과 기도생활에 대한 새로운 계획을 세워봅시다.

[기도]
크고 놀라우신 하나님, 어리석고 미련하여 어떤 길이 복되고 형통한 길인지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이제 돌아보며 주님 앞에서 정직히 행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어떤 일보다 먼저 주님의 뜻을 구하고, 현실에 담겨진 주님의 뜻을 깨달아 말씀 붙들고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참된 신앙의 계승


2차 세계 대전 때 있었던 일이다.
한 군목에게 총에 맞아 죽어가는 병사가 말했다.
“어머니께는 제가 기쁘게 죽었다고 써주세요,
그리고 지금 교회학교 선생님이 떠오릅니다.
어릴 적 나에게 성경을 가르쳐준 분이지요.
그 분께는 제가 그리스도인으로 죽었다고 써주세요.”
-노수영 전도사의 ‘신앙은 계승된다’에서-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사명입니다.
우리자신도 이러한 자리에 이르려면 열심히 배워야합니다.
교회에서 목사님을 통해 성경을 배우고,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배워야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지금 누군가를 가르치고 있다면
무엇보다 먼저 자신부터 성경을, 교회를, 예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럴 때 믿음의 다음 세대 또한 든든히 서가게 될 것입니다.
참된 신앙의 계승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신명기 1:33>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who went ahead of you on your journey, in fire by night and in a cloud by day, to search out places for you to camp and to show you the way you should go.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태양신 - 겔 8:14-18
14.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 이르시기로 보니 거기에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
15.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그것을 보았느냐 너는 또 이보다 더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16.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성전 안뜰에 들어가시니라 보라 여호와의 성전 문 곧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스물다섯 명이 여호와의 성전을 등지고 낯을 동쪽으로 향하여 동쪽 태양에게 예배하더라
17.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보았느냐 유다 족속이 여기에서 행한 가증한 일을 적다 하겠느냐 그들이 그 땅을 폭행으로 채우고 또 다시 내 노여움을 일으키며 심지어 나뭇가지를 그 코에 두었느니라
18. 그러므로 나도 분노로 갚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예루살렘 성전은 동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성전 문을 열면 떠오르는 찬란한 햇살이 성전의 전면을 환하게 비춥니다. 그때 제사장은 태양을 등 뒤로 하고 빛나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점차 이스라엘의 믿음이 퇴색하면서 엉뚱하게도 성전을 비추던 태양이 경배의 대상으로 변질되어 간 것입니다. <...여호와의 성전 문 곧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스물다섯 명이 여호와의 성전을 등지고 낯을 동쪽으로 향하여 동쪽 태양에게 예배하더라>(16절). 이렇게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서까지 행해진 태양신 숭배를 통해 우리는 특히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얼마나 타락했었는지를 넉넉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기 현관과 제단 사이의 <스물다섯 명>의 태양신 경배자들을 주목하십시오. 원래 성전의 이 지점은 레위인들이나 제사장들만이 출입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다 레위인과 제사장들일 가능성도 높습니다. 물론 당시의 타락상을 고려할 때 태양신 사제들일 수도 없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제사장의 묵인 없이는 성전 안에서 태양신을 숭배하는 일이 불가능하므로 종교 지도자들이야 말로 그 가증한 일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서 자행된 태양신 숭배행위는 당시 성전 지도자들의 타락상이 막장까지 간 사실에 대한 극명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그 스물다섯 명이 태양신을 숭배한 시간과 장소입니다. 그들은 해 뜨는 시각 하나님의 성전 문 현관에서 성전을 등지고 낯을 동쪽으로 향해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경배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우러러 보며 예배해야 할 시간에 성전을 등지고 태양을 향해 경배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 보십시오. <그러므로 나도 분노로 갚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며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18절).

[적용]
- 지금도 달이나 별이나 태양에 절하며 복을 비는 사람들을 볼 때 당신은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 성전 안에서 성전을 등지고 태양을 향해 경배했던 사람들처럼 지금도 교회 안에서 주님을 등지고 우상 앞에 고개 속이는 사람들이 없는지 점검해 봅시다.
- 태양이나 달이나 자연은 모두 하나님이 창조하사 우리에게 맡기신 관리의 대상일 뿐 결코 경배의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합시다.

[기도]
주님,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 안에서 하나님을 등지고 도리어 태양을 경배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합니다. 혹 저희도 지금 교회에서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들을 살피게 해주시옵소서.
저희의 경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뿐이고 교회는 오직 하나님만을 경배하며 주님께 기도하는 공동체임을 잊지 않게 하시옵소서.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은혜를 의지해서 드리는 기도


구약의 기도하고 지금 신약시대의 기도하고는 좀 차이가 있다.
구약의 기도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에 의지해서 기도했다.
신약의 기도는 예수님과의 이런 관계 안에서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가 너희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한 공로로
하나님이 응답하신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그러니까 기도할 때 무슨 내가 주님을 위해 한 일이 없는데
구하기가 민망하다 이런 생각은 틀린 태도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치르신 그 귀중한 대가로
응답하시는 것이다.
-남수연 목사의‘ 한나의 기도’에서-

아무리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많은 봉사를 한다 해도
그것 때문에 우리 기도를 들어주시는 게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니까 카톨릭에서 성인들은 공로가 남아돌아서
남의 기도도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은 완전 엉터리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는 예수님 한 분이십니다.
그러니 기도할 때도 우리의 신앙경력이나 봉사나 헌신이나
기도의 양이 하나님의 응답과 관련 있다고 생각하면 큰 일 납니다.
다만 예수님의 은혜를 의지해서 그를 믿는 믿음 안에서
드리는 모든 기도를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시편 31:24>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Be strong and take heart, all you who hope in the LORD.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각양 곤충 - 겔 8:6-13
6.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행하는 일을 보느냐 그들이 여기에서 크게 가증한 일을 행하여 나로 내 성소를 멀리 떠나게 하느니라 너는 다시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7. 그가 나를 이끌고 뜰 문에 이르시기로 내가 본즉 담에 구멍이 있더라
8.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이 담을 헐라 하시기로 내가 그 담을 허니 한 문이 있더라
9. 또 내게 이르시되 들어가서 그들이 거기에서 행하는 가증하고 악한 일을 보라 하시기로
10. 내가 들어가 보니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을 그 사방 벽에 그렸고
11.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 중 칠십 명이 그 앞에 섰으며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도 그 가운데에 섰고 각기 손에 향로를 들었는데 향연이 구름 같이 오르더라
12.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들이 각각 그 우상의 방안 어두운 가운데에서 행하는 것을 네가 보았느냐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며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다 하느니라
13.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다시 그들이 행하는 바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본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일>(6, 9, 13절)을 행하였음을 반복하여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 <가증한 일>이란 하나님의 성전에 우상을 둔 것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각종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을 그 사방 벽에>(10절) 그려놓고 그 앞에서 절하며 그것들을 섬겼습니다. 각종 곤충과 짐승을 섬기는 우상숭배가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성전에서 공공연하게 이뤄졌다니 실로 경악할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각양 곤충과 짐승>을 숭배하는 가증한 일은 아득한 고대 이스라엘뿐 아니라 문명 사회라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지구촌 사방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쥐를 신으로 섬기고 원숭이, 뱀, 소와 코끼리, 호랑이 등을 신으로 섬기는 나라와 종족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이 성전안에서 이런 짓을 일삼았다니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하나님을 알되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1-23). 결국 인간의 이런 가증한 짓이 <나로 내 성소를 멀리 떠나게 하느니라>(6절)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성전에서 각종 곤충과 짐승을 숭배하는 백성들의 가증한 일과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성도들의 못난 짓이 마침내는 성전에서 하나님을 떠나시게 하고 내 안에서 성령을 소멸하는 결과를 부른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전인 내 심령 안에서 각종 곤충과 짐승을 척결합시다. 내 안에 그려놓은 가증한 우상으로 인해 성령이 훼방을 받으시거나 근심하시는 일이 없도록 모두 소탕합시다.

[적용]
- 지금도 각종 짐승을 신으로 심기고 있는 나라나 종족들을 볼 때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 롬 1:20-25 말씀을 근거로 현대인들의 유치한 우상숭배 행위의 동기들을 짚어 보십시오.
- 각종 우상을 섬기는 가증한 일이 내 안에 계신 성령을 소멸하고 있지나 않은지 스스로 점검해 보십시오.

[기도]
주님, 인간의 어리석음과 무지는 정말 끝이 없습니다.
각종 곤충과 짐승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으로 저희가 다스리고 관리해야 함에도 도리어 그 앞에 절하며 성전에서 그것들을 경배했다니 통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부디 저희는 그런 짓을 삼가게 하사 하나님의 영광을 욕되게 하는 일이 없게 해 주시옵소서.
위로 하나님만을 섬기고 아래로 자연 만물을 다스리며 관리하므로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고난을 통하여 거룩을 완성하시는


지금 영문도 모르는 혹독한 고난 가운데 있습니까?
예수의 사람들은, 모두 고난을 통과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그 삶에 만사형통, 일사천리의
복만 쏟아지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일 가능성이 아주 높기 때문입니다.
자기 의를 내세우는 교만한 바보로 살다갈 가능성이 높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고난당할 때조차
감사함으로 받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김성수 목사의 ‘할렐루야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에서-

우리는 고난을 통과하며 우리의 거룩을 완성시켜 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바울과 다윗의 고백처럼 부끄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주는 멧세지를 읽어야합니다.
주의 뜻을 분별해내는 영적 감응을 키워
그 속에 있는 무한한 섭리를 읽을 수 있고
천상의 할렐루야 찬양을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요한계시록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I am the Alpha and the Omega, the First and the Last, the Beginning and the End.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질투의 우상 - 겔 8:1-5
1. 여섯째 해 여섯째 달 초닷새에 나는 집에 앉았고 유다의 장로들은 내 앞에 앉아 있는데 주 여호와의 권능이 거기에서 내게 내리기로
2. 내가 보니 불 같은 형상이 있더라 그 허리 아래의 모양은 불 같고 허리 위에는 광채가 나서 단 쇠 같은데
3. 그가 손 같은 것을 펴서 내 머리털 한 모숨을 잡으며 주의 영이 나를 들어 천지 사이로 올리시고 하나님의 환상 가운데에 나를 이끌어 예루살렘으로 가서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에 이르시니 거기에는 질투의 우상 곧 질투를 일어나게 하는 우상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
4.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거기에 있는데 내가 들에서 본 모습과 같더라
5.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제 너는 눈을 들어 북쪽을 바라보라 하시기로 내가 눈을 들어 북쪽을 바라보니 제단문 어귀 북쪽에 그 질투의 우상이 있더라
<질투의 우상>이란 <곧 질투를 일어나게 하는 우상>(3절)을 말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문에 바로 그 <질투의 우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누구에게 질투가 일어나게 하는 우상이었을까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으로 하여금 질투하시게 하는 우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신이십니다.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이니라>(출 34:14).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라>(신 4:2). 맞습니다. 우상들은 다 <질투의 우상>, 하나님으로 하여금 <질투하게 하시는 거짓 신>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사 우리가 당신을 바라보지 않고 우상에게 눈길을 주거나 다른 신에게 추파를 던지며 수작하면 견딜 수 없어 하시고 시기하시고 미워하십니다. 참으로 불가사이한 일 아닙니까? 내가 뭔대 하나님이 이처럼 짝사랑하시고 또 나는 어째서 하나님보다는 늘 세상이나 우상에게 마음을 빼앗기며 눈길을 돌릴까요? 과거 유다 백성은 예루살렘 성전 뜰로 향하는 북향문에 <질투의 우상>을 안치하고 그 거짓 신 앞에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이것은 너무도 잔인한 짓이며 <질투하시는 하나님>을 고문하는 패역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살핍시다. 나는 지금 교회 뜰을 드나드는 <북향문>에 <질투의 우상>을 세우고 절하며 하나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 봅시다. 하나님은 오직 나만 사랑한다고 하시는데 나는 어떤지, 하나님 만큼 사랑하는 우상으로 가득 차 있지나 않은지 점검해 봅시다. 주님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실 때 <예!>라고 담대하게 고백할 수 있도록 모든 내 마음의 우상들을 척결합시다.

[적용]
- 지금 내 삶에는 <질투의 우상>이 없는지 진지하게 확인해 봅시다.
- <질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묵상하며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헤아려 봅시다.
- 내가 지금 출석하고 있는 교회 안 뜰에는 <질투의 우상>이 없는지 생각해 봅시다.
-
[기도]
질투하는 신이신 하나님, 정말 저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신비 중의 신비입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희는 그 같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을 누릴 만한 가치가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하오나 하나님은 일편단심 저희 만을 사랑하시며 지금도 저희를 향해 <너도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고 계십니다. 부디 하나님의 그 물으심에 저희가 다 <예!>하며 대답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