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에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분열이 있다는 것은 내면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모습이다. 오늘 한국 교회
안에도 자신들의 유익과 기득권을 놓고 대립하는 것을 보게 된다. 뉴스 시간에도 교회가 싸우는 모습을 여과 없이 내보내고 있다.
교회가 사회를 선도하고 변화시키는 일을 하여야 하건만 본이 안 되고 오히려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문제가 교회뿐 일까? 정치, 사회, 문화 ,경제 ,국방, 교육, 가정
문제가 없는 곳은 없다 . 그래도 거룩하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뭔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기준은 언제나 예수님이여야
한다. -박미애 전도사의 ‘하나님의 동역자들’에서-
예수님은 진리이시기 때문에 기준이 되십니다. 사람 중심에서 우리는
주님 중심으로 , 인본주의에서 신본주의로 되돌아 가야합니다. 교회 안에도 인본주의가 들어와 사람중심을 외치고 진리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기를 기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이유는 삶의 기준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기준이 없으면 다툼이 생기고 다툼은 악한세력을 틈타게 해 멸망의 원인이 됩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We love because he first loved us.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세상속에서
잠수함이 됩시다 - 고린도전서 5장 9-13절
9.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10.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11.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12.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13.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두 가지의 잣대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고 고린도교회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만일 (교회 안에서)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고 말합니다.
쉽게 말해서,
‘세상 사람들 가운데 죄를 짓고,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이라도 친구로 사귀라’고 말하면서, ‘교회 안에서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숭배를
하거나 술 취하거나 빼앗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사귀지도 말고, 함께 먹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먼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교회 안에 있는 형제가운데 이와 같은 죄를 범하는 사람은 무조건 사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자신이 죄를 범하고 살면서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합리화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을 사귀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요? 만약에 그 사람 지속적으로 교회 안에서 음행을 범하고, 죄를 범하면서도 스스로 회개하지 않는다면, 교회 공동체는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정체성을 흔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도 용기를 얻어서 죄를 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세상 밖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만나서 전도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에 그들과 사귀고 만나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세상의 죄를 기뻐하는 모습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잠수함이 되어야 합니다. 잠수함은 바다 속으로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잠수함에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잠수함은 가라않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 속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가장 낮은 자리, 가장 천한 자리, 죄인이 있는 자리에 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에 ‘죄’가 들어오면, 우리는 가라앉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똑같이 죄를 범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사도 바울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죄를 몰아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죄악 속에 깊이 들어가서 세상을 치유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사명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인 것을 확신합니다.
[적용] 당신에게 세상에서 죄인이라고 불리는 친구가
있습니까? 만약에 없다면, 오늘 그런 친구에게 연락하고 복음을 위해서 교제해 보십시오. 그러나 아직 내안에 죄에 대한 유혹이 강하다면,
멈추십시오. 그렇다면, 오히려 내 안에 세상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을 달라고 구하십시오.
[기도] - 하나님! 우리가 거룩한
교회 공동체 안에서 머물러서 우리만의 구원을 이루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을 향해서 통곡하고 눈물 흘리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이 땅의 황폐함과
죄악의 관영함에 눈을 뜨고 기도하게 하소서! - 주님! 아직 내 안에 해결되지 않은 죄가 있습니다. 그것을 합리화하고 반복하며 기뻐하는
죄가 있습니다. 오늘 내 삶에서 성령의 은혜로 죄를 이기는 능력을 부어주시옵소서!
글쓴이 : 전기철 서울신학대학,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졸업 미국 보스톤 조직신학 석사(S.T.M)/연세대학교 박사학위(Ph.D) 강남새사람교회 담임목사
세상의 논리를 뛰어 넘어야
우리가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여 모든
의지하고 있는 우상들을 찍어 내버릴 때, 바람 앞에서 두려움에 떨던 사람이 태풍 속에서도 승리하는 믿음으로까지 이끌어 주시고 만들어
주신다. 그리고 승리하게 하여 주신다. 우리는 하나님보다 먼저 돈과 권력과 명성, 이성, 그리고 나 자신까지도 때로
하나님보다 더 소중한 우상처럼 섬기고 있다. 그런 것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들로서 소중히 여기고 감사해야 하는 것이고
선하게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지 죄짓는 도구로 하나님보다 더 섬기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될 것들이다. -김민희 전도사의
‘하나님만 바라는 믿음 ’에서-
세상의 논리로 바라보면 뒤처지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더 벌어야 하고 더 공부시켜야
하고, 더 높은 지위에 올라가야 하고 더 많은 스펙을 만들어야 하고, 더 외적으로 가꿔야 하고, 그런 것들을 조금이라도 늦추고
있으면 불안감이 밀려와서 하지 않고 있으면 세상에서 루저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불안감을 뛰어넘어 하나님 우선 중심의
삶,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승리의 삶을 원하십니까? 모든 행사를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되기를 바라면서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기를 맡겨드리고 소원해야 합니다. 하나님만 바라는 믿음이 역사를
나타냅니다.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I will praise the LORD all my life; I will
sing praise to my God as long as I live.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광야에서
만난 하나님 - 고린도전서 10:10-13
10.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우리에게는
두 개의 눈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의 육신의 눈인 육안이고, 다른 하나는 영적인 세계를 보고, 느낄 수 있는 영안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에게 보여지는 나라이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바람이 부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주변의 변화와 내
피부에 와 닿는 느낌으로 바람의 존재를 알 수 있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모태에 다시 들어갔다가 나와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영적인 질문에 육적으로 답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영안이 열리지 않으면 육안으로 밖에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영안이 열리면 어떤 변화가 우리의 삶에 생길까요? 무엇보다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늘 즐거운 일만 있는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인생의 광야 길에서 고난은 늘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이라는 거울을 통해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는 과정을 보면서 그들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며 고린도전서 10장은 진행됩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 본문은 ‘원망하지 말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원망하고 싶어서 원망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원망에서 감사로 우리의 삶이 뛰어오를 수 있을까요? 먼저 원망에는 끝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업이
자꾸만 꼬이고, 인간관계가 자꾸만 엉키고, 취업이 어렵기만 하다면 우리는 먼저 원망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원망은 결국 남을 탓하는 마음입니다.
사회를 탓하고 사람을 탓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끝없는 독백일 뿐입니다. 둘째로, 원망의 결과는 백해무익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원망은
관계를 끊어 놓고, 다툼을 만듭니다. 그리고 결국 멸망으로 우리를 이끕니다(10절). 마지막으로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성경은 믿음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상황이 암담할수록 우리는 믿음으로 상황을 바라봐야합니다. 당장 우리의 앞만 바라본다면 우리의 삶은 원망으로
가득 차겠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으며 그분의 약속을 믿고 멀리 바라본다면 감사하는 마음이 솟구쳐오를 것입니다. 영적인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적용> - 거듭났다고 생각하나요? 영안이 열리는 것과 신앙생활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 현재 감사하며 사는지요? 원망하며 사는 시간이 많다면 왜 그런지 생각해 봅시다. - 원망이 감사의 생활로 변하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점검해 봅시다.
[기도] 사랑의 주 하나님, 고달픈 인생길 많이 지쳐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간구하오니 위로하시고 회복의 은혜를 주시옵소서. 불평과 원망이 오히려 감사가 되고 기도하며 찬송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의
그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누리게 하시옵소서.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바람직한 서원 기도로 바뀔
때까지
내게 좋은 직장을 주시면 그 직장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고 약속하고, 내게 좋은 사업을 주시면
그걸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드리겠다는 것과. 내게 좋은 배우자를 주시면 예수님을 주인삼은 가정을 이루고 믿음의 자녀를
키우며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겠다고 하라.‘ 내게 건강을 주시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것을 하나님께
약속하는 것이다. 결과는 영과 육에 골고루 완벽하게 유익한 결과를 얻게 된다.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 구하는 기도야말로 나와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가장 유익하고 아름다운 기도이다. -남수연 목사의‘ 한나의 기도’에서-
기도의 신비의 극치는 우리의 뜻이
하나님의 뜻에 맞춰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뜻을 포기할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일이 빨리 이뤄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무언가 생각하며 우리의 뜻을 하나님께 조정해 가십시오. 얕은 기도는 내 뜻만을 주장하지만 오래 기도하면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이 일치되어 갑니다. 어떤 문제이든 하나님께 의지하고 진지하게 기도하다보면 하나님의 뜻에 점점 내 뜻이 맞춰져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바람직한 서원기도까지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Give ear and come to me; hear me, that
your soul may live.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 - 빌립보서 2:12-16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사람은 누구나 그 종류와 목적이 다를지 몰라도 마음에 몇 가지의 소원은 담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에게도 소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원은 우리를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때때로 옳고 그름을 가리다가, 혹은 나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다가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길을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옳고 그름보다, 나의 주장보다 중요한 것이 아버지의 마음이며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런 실수를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경제적이며
정치적인 자신들의 뜻과 주장을 예수님께 바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만나고 치유하시는데 관심이 있으셨고, 하나님의 나라를
교육하시는데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영혼구원과 복음전파에 모든 관심을 두신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제자가 그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야하듯이 우리도 예수님처럼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이 시대와 문화를 이끌어 가시며 회복시키고자 하십니다. 교회는 무엇입니까?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대상도, 우리가 관심을 갖고 사랑해야 할 대상도 화려한 건물이 아닌, 교회 공동체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은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인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성도가 성도다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구원을 이루어가는 삶’(12절)입니다. 구원은 즉각적이면서도 이렇게 점진적인 면도 갖고 있습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삶, 그 삶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답게 만듭니다. 점차 성숙하여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뜻이 되는 놀라운 지평으로 인도합니다. 그 결과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며 흠이 없고 순전하여 집니다(14-15절a). 어두운 이 세상의 빛들로 나타나게 됩니다(15절b). 이러한
삶을 꿈꾸며 이루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적용> - 나의 소원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제대로 된 소원인지 생각해봅시다. -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대하는 것에 대하여 어떠한지요. - 성도다운 삶을 위해
보완해야할 부분을 정리해봅시다.
[기도] 존귀하신 하나님, 이제 하나님의 소원을 알았사오니 그 소원 이루어 가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을 경외하고 뜻에 복종하며 성숙한 주의 자녀로 세워지길 원합니다. 거룩하신 성령님 도와주시옵소서.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자신과 목회자들을 돕는 길
예수님은 평생을 자기 뜻대로 살지
않으셨다. 말 한마디, 일 하나 할 때 철저하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하고 그 뜻대로만 살았다. 이 모습이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기를 소망하는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요 모습이다. 하나님은 벧엘과 같은 국가적인 성소에서 아무리 잘 훈련받은
예언자들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전하지 않을 때는 언제든지 그들을 버리시고, 비주류를 부르셔서 일하셨다. 이를 통해서
얻는 교훈은 목회자가 이력 쌓기에 골몰하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신 그 소명을 확신하고 말씀의 능력을 믿으며, 가라 하신 곳에서
전하라고 하신 말씀에 충실하도록 기도해주는 것이 돕는 것이다 -윤옥자 전도사의 ‘돈이냐?, 하나님의
뜻이냐?’에서-
우리 자신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맡기신 역할을 얼마나 신실하게 수행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소명 의식은 맡은 역할을 바르게 하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우리 교회는 다른 교회에서 어떻게 하고 있는가? 이전까지
어떻게 해 왔는가? 가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가? 가 가장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하며 그렇게
일하도록 기도해주는 것이 협력자들이 할 일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So Abraham called
that place The LORD Will Provide. And to this day it is said, on the mountain
of the LORD it will be provided."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행위대로
- 겔 7:23-27
23.
너는 쇠사슬을 만들라 이는 피 흘리는 죄가 그 땅에 가득하고 포악이 그 성읍에 찼음이라 24. 내가 극히 악한 이방인들을 데려와서 그들이
그 집들을 점령하게 하고 강한 자의 교만을 그치게 하리니 그들의 성소가 더럽힘을 당하리라 25. 패망이 이르리니 그들이 평강을 구하여도
없을 것이라 26. 환난에 환난이 더하고 소문에 소문이 더할 때에 그들이 선지자에게서 묵시를 구하나 헛될 것이며 제사장에게는 율법이 없어질
것이요 장로에게는 책략이 없어질 것이며 27. 왕은 애통하고 고관은 놀람을 옷 입듯 하며 주민의 손은 떨리리라 내가 그 행위대로 그들에게
갚고 그 죄악대로 그들을 심판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묵상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해 <내가 그 행위대로 갚고 죄악대로 심판하리라>(27절)고 하십니다. 이것은 자연의 질서요 법칙이자 신구약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입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납니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둡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둡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그럼에도 우리는 적게 심고 많이 거두려 하고 육체를 위하여 심으면서도 영생을 거두려고 합니다. 아니, 아예 심지도
않고 거두려고만 하거나 자기가 심은 것보다도 수천 배, 수만 배까지도 거두려는 사람들이 많아 일확천금의 사기꾼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또 오늘
심고 오늘 거두려는 전시풍조가 판을 치는가 하면, 언제나 심는 자보다 거두는 자가 많아 치부한 사람들은 돈더미에 앉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점점 더
가난해져 부의 극심한 양극화가 갈수록 더 심화되고 있습니다. 행위대로, 죄악대로, 심고 뿌린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잊지 마십시오.
지금도 당신의 삶은 그게 무엇이든 뿌리는 행위에 다름 아닙니다. 추석이 박두했고, 연말결산도 몇 개월 남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선을 심고 믿음을
심고 성령을 위해 심으십시오. 심은 대로 거둔다는 수확의 법칙을 비웃지 마십시오. 행위대로 갚으신다는 하나님의 섭리와 공의를 허투루 듣지
마십시오. 그래서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달리 올해도 당신의 삶에는 아름답고도 소담한 성령의 열매가 풍성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적용] - 나는 지금 육체를 위해 심는지 성령을 위해 심고 있는지를 확인해 보십시오. - 과연 지금 내게는 적게 심고
많이 거두려는 마음이 없는지를 점검합시다. - 나는 지금 주님과의 연말결산을 성실히 준비하고 있는지를 확인해
봅시다.
[기도] 주님, 올해도 어느덧 가을이 다가왔습니다. 열매의 계절이고 수확의 계절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성실히 심고
뿌렸는지 자신을 돌아보게 하시고 남은 시간도 더욱 근신하여 연말결산을 준비하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십자가에서 고귀한 값을
치르셨기에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 하나님이 도대체 왜 내 기도를
들으시냐는 것이다. 정말 들어주신다는 확신이 있으면 왜 기도를 안 하겠는가? 하나님은 정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무엇이든 기도하면 정말 응답하신다. 분명 그렇다.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부르짖고 기도하고 구하라는 명령과
응답에 대한 약속을 무수히 많이 우리에게 주셨다. -남수연 목사의‘ 한나의 기도’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아버지께서 왜 나
같은 미미한 존재에 관심을 갖고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냐고 의구심을 갖습니다. 어떻게 엄청난 우주의 주인께서 나 같은 존재에
그런 후의를 베푸시겠냐는 것이죠. 맞습니다. 우리는 그런 대우를 창조주 하나님께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대우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고귀한 값을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그 값어치만큼 우리를 그렇게 귀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기도할 때 응답되는 유일한
조건은 바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Jabez cried out to the God of Israel, "Oh,
that you would bless me and enlarge my territory! Let your hand be with me, and
keep me from harm so that I will be free from pain." And God granted his
request.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대머리
- 겔 7:18-22
18.
그들이 굵은 베로 허리를 묶을 것이요 두려움이 그들을 덮을 것이요 모든 얼굴에는 수치가 있고 모든 머리는 대머리가 될 것이며 19. 그들이
그 은을 거리에 던지며 그 금을 오물 같이 여기리니 이는 여호와 내가 진노를 내리는 날에 그들의 은과 금이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하며 능히 그
심령을 족하게 하거나 그 창자를 채우지 못하고 오직 죄악의 걸림돌이 됨이로다 20. 그들이 그 화려한 장식으로 말미암아 교만을 품었고 또
그것으로 가증한 우상과 미운 물건을 만들었은즉 내가 그것을 그들에게 오물이 되게 하여 21. 타국인의 손에 넘겨 노략하게 하며 세상
악인에게 넘겨 그들이 약탈하여 더럽히게 하고 22. 내가 또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돌이키리니 그들이 내 은밀한 처소를 더럽히고 포악한 자도
거기 들어와서 더럽히리라
[묵상글] <그들이
굵은 베로 허리를 묶을 것이요 두려움이 그들을 덮을 것이요 모든 얼굴에는 수치가 있고 모든 머리는 대머리가 될
것이며>(18절). 굵은 베로 허리를 묶는 행위는 유다 민족의 전통적인 슬픔의 표현과 참회의 방식입니다. <너희 안일한 여자들아
떨지어다 ... 베로 허리를 동일지어다>(사 32:11).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사전에 막는 방식으로 스스로 낮아져서 회개하며
참된 뉘우침과 슬픔의 표현으로 베옷을 입고 머리를 밀어 대머리를 만들고 검불을 쓰고 재 위에 앉아 참회했습니다. 주님도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마 11:21)고 하셨습니다. 죄란 아무리 경계하고 멀리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측면이 분명 있습니다. 택함을 입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도 죄는 짓습니다. 사도 바울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롬 7:24)하며 자신의 죄성을 탄식했고,
요일 1:8도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진정성
있는 회개입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살 길이요 하나님의 불 같은 진노를 피하는 길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죄를 짓지 않기보다 회개하므로 하나님의 노를
달래셔서 진노나 징계가 아닌 축복과 은혜를 누리며 사는 성도가 되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적용] -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계속 죄를 범하게 되는 이유가 뭘까요? - <오호라!>하며 탄식하던 바울이 깨달은 롬 8:1 말씀을 묵상해
봅시다. - 참된 회개란 자각이나 후회가 아니라 가던 길을 되돌아 오는 <결단>입니다. 자신의 회개생활을
점검합시다.
[기도] 주님, 저희는 옛 삶의 관성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죄를 지으며 삽니다. 저희의 추악한 죄성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정말 머리를 밀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통회하는 심정으로 회개하게 하사 모든 허물을 사함받게 해주시옵소서. 탕자가 아버지
집으로 되돌아온 것처럼 저희도 그렇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해주시옵소서.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교회가 아플 때 가장 고통 받는
분
우리가 육신의 장막 안에 갇혀 있는 동안 우리는 결코 고난에서 해방될 수 없습니다. 주님도 그러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이제 주님은 그 자신의 몸인 교회가 아직도 사단의 권세 아래서
고난 받고 있는 것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십니다. 몸이 아플 때 머리가 아프지 않겠습니까? 아픈 것은 몸이지만 그것을 느끼는
것은 머리입니다. 교회가 아플 때 가장 고통 받으시는 것은 머리되신 주님이십니다. -조규남 목사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십시오’에서 -
혹 누가 오늘의 교회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예수는 좋지만, 교회는 싫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히 말해줘야 합니다. “예수는 교회의 머리이시고 교회는 그의 몸이므로, 머리와 몸을 분리하여 ‘이것은 좋지만 저것은
싫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십자가로 인한 고난을 피해가려 하지 마십시오. 교회를 위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당신의 육체에, 당신의 삶 가운데 채워나가십시오. 주님과 함께 아파하고, 주님과 함께 교회를 위해 우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십시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Give, and it will be given to you. A good measure, pressed down,
shaken together and running over, will be poured into your lap. For with the
measure you use, it will be measured to you."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칼과
전염병 - 겔 7:14-17
14.
그들이 나팔을 불어 온갖 것을 준비하였을지라도 전쟁에 나갈 사람이 없나니 이는 내 진노가 그 모든 무리에게 이르렀음이라 15. 밖에는 칼이
있고 안에는 전염병과 기근이 있어서 밭에 있는 자는 칼에 죽을 것이요 성읍에 있는 자는 기근과 전염병에 망할 것이며 16. 도망하는 자는
산 위로 피하여 다 각기 자기 죄악 때문에 골짜기의 비둘기들처럼 슬피 울 것이며 17. 모든 손은 피곤하고 모든 무릎은 물과 같이 약할
것이라
[묵상글] 하나님의
진노는 누구도 막지 못하고 피하지 못합니다. <밖에는 칼이 있고 안에는 전염병과 기근이 있어서 밭에 있는 자는 칼에 죽을 것이요 성읍에
있는 자는 기근과 전염병에 망할 것이며>(15절). 6.25를 겪고 지금도 남북이 칼로 대치하고 있는 우리 민족은 전쟁의 아픔이 얼마나
처절한가를 그 어느 나라 어느 민족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겨우 상황이 종료된 듯한 메르스로 인해 전염병의 가공할 위력도 뼈저리게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전쟁과 역병이 우리의 죄와 허물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인 경우는 더더욱 대책이 없다는 것입니다. 칼과 전염병은 안팎을
다 초토화시킵니다. 그래서 용케 산으로 달아난 자들 조차도 <골짜기의 비둘기들처럼 슬피 울 것>(16절)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아예
하나님의 진노를 사지 않는 것이 상책입니다. 행복하게, 건강하게, 안전하게 살기를 바란다면, 복 받은 민족으로, 전쟁과 역병에 희생되지 않는
나라로 남고자 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다 각기 자기의 죄악 때문>(16절)입니다. 우리
모두의 허물과 죄악 때문에 공의의 하나님께서 진노를 발하사 밖에서는 전쟁의 칼로, 안에서는 무서운 전염병으로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가을의
문턱입니다. 자신의 심령과 삶을 더욱 잘 관리하시고 점검하셔서 허물과 죄악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일이 없으시길 빕니다. 칼과 전염병 같은
징계가 아니라 든든한 방패와 구원의 산성 같은 은혜와 축복이 당신의 삶에 함께 하시길 빕니다.
[적용] - 전쟁과 감염병
같은 재앙이 하나님의 진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 하나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칼과 전염병으로 징계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함을 잊지
마십시오.
[기도] 주님, 항상 저희 인생들의 죄와 허물이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 전쟁과 전염병, 기근 같은 재해를 자초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부디 하나님의 뜻과 기쁨을 위해 살므로 화가 아니라 축복과 은혜를 누리며 사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교회
교회 안에 인본주의 종교생활을 하는 자가 있다. 알곡과 가라지가 교회 밭에서 자라고 있다. 그럼에도
본인은 신앙생활 잘하고 있는 줄 알고 스스로 속고 있어 바리새인의 의가 충만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피 값으로 산 성도가
되었다면 반드시 예수의 삶이 그의 생활에서 나와야 하며 예수의 피로 산 성도들이 모인 집합체가 진정한 교회라고 할 수
있다. -박순양 목사의 ‘교회의 부흥과 실패의 원인’에서-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는 예수님의 천국복음이 있고 그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영생의 말씀으로 살며 천국의 보화를 소유한 자들의 모임이기에 천하의 바로의 자리를 준다 해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신앙고백을 하는 교인들이 모인 교회가 주의 피로 사신
교회입니다.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So with you: Now is
your time of grief, but I will see you again and you will rejoice, and no one
will take away your joy.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가장
귀한 선물 - 요한 20:19-23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사람들은
누구나 새로운 삶을 향한 소망들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정말 이런 새롭고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삶이 가능할까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그분이 나와
함께 할 때 가능합니다. 우리가 부활 신앙을 소유하고 있으면 그토록 원하는 새로운 삶의 장이 열립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낙심하고 두려워 문을
잠그고 있는 제자들을 먼저 찾아와 주셨습니다. 주님이 찾아오셔서 그들에게 주신 첫 선물은 평강입니다(19,21,26). 선물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주님은 왜 평강을 거듭거듭 말씀하셨을까요? 주님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돈과 세상의 어떤 것들이 당장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평강입니다. 이 평강은 돈으로 구하고 얻을 수 없는 유일한 것으로
주님으로부터 가능합니다. 지금 우리는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국제정세, 글로벌 경제위기, 남북관계, 자녀문제, 건강문제 불안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이런 시대에 필요한 것이 바로 주님이 주시는 평강입니다. 주님이 주신 다음 선물은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사명입니다(21). 사명이 왜 선물일까요? 아무에게나 귀한 사명을 주진 않습니다.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능력과 자격을 부여하시고 사명을 주신
것은 귀한 선물입니다. 같은 일을 해도 사명의식으로 하게 된다면 행복합니다. 사명을 위해 사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언제나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마28:19-20). 내가 이 가정에서 사는 것도, 이 사업을 경영하는 것도, 이 사람을 만나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라,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통해 하시고자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고 주님 주신 사명감으로 임해야 합니다. 내게 주어진 달란트와
은사를 가지고 주님이 주신 부활신앙을 확인하고 세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은 생각과 가치관과 언어가 삶의 틀이 완전히
바뀌어야 합니다. 마지막 선물은 바로 성령입니다(22). 우리는 하나님의 영인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때 세상을 변화시키며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한 삶을 유지하려면 바른 예배자가 되고, 기도하고, 말씀사랑하고, 성도의 교제에 힘쓰는 것이 비결입니다. 성령충만해야 나의
삶과 직장과 가정이 변화합니다. 성령은 보혜사로 따스한 영으로 살리는 영이십니다. 따스한 봄기운이 부니까 온천지에 생명의 기운이 솟아나 봄꽃들로
만발합니다. 우리의 심령도 불같은 성령이 역사할 때 우리가 보냄 받은 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삶은 부활의 주님을
만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주님이 주시는 이 귀한 3종 세트의 선물을 받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시기를 바랍니다.
[적용] -
환경을 초월하는 평강이 없다면 부활의 주님을 개인적으로 만나기 위해 올인 하세요. - 부활의 주님이 나에게 주신 나만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기도하고 결단하십시오. - 나는 성령의 사람인지 확인해 보고, 성령 충만한 승리의 삶을 위해 도전하십시오.
[기도] 고마우신 하나님, 소망없이 살아가던 저를 불러주시고 만나주심을 감사합니다. 주안에서 전천후의 평강을 누리며 맡겨주신
사명 감당하길 원합니다. 모든 것을 새롭게 하옵소서. 늘 예배중심, 말씀중심, 기도중심으로 성령 충만함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되게 하시옵소서.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