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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입시라면 난 입학도 못해… 중요한 건 人文소양"/ 조선닷컴

鶴山 徐 仁 2014. 11. 24. 11:48

"요즘 입시라면 난 입학도 못해…중요한 건 人文소양"

  • 김미리 기자


  •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입력 : 2014.11.24 05:57

    ['자랑스러운 서울대인' 賞 받은 화가 이우환 인터뷰]

    중퇴한 예술가 첫 단독 수상
    "한국 학교에서 배운 건 '사람'… 예술가이기 전에 지식인돼야"

    
	학창 시절을 회상하던 이우환이 상념에 젖었다. “전쟁 직후 우리 모두 참 가난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힘들었기에 로망(낭만)이 있는 청춘이었어요.”
    학창 시절을 회상하던 이우환이 상념에 젖었다. “전쟁 직후 우리 모두 참 가난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힘들었기에 로망(낭만)이 있는 청춘이었어요.” /장련성 객원기자

    "허허, 조금밖에 안 다녔는데…. 내가 받을 상이 아니라니까요."

    지난 20일 '제24회 자랑스러운 서울대인' 상을 받은 화가 이우환(78)은 내내 "나는 부적격자"라면서도 싱글벙글했다. "에이, 그래도 이력에 '서울대 중퇴'는 꼭 넣으시더구먼." 축하하러 시상식을 찾은 학교 후배이자 동료인 조각가 심문섭(71)씨가 건넨 농담에 그는 얼굴을 붉혔다.

    이우환은 '서울대 56학번'이지만 서울대 졸업장은 없다. 1956년 이 학교 회화과에 입학했지만, 2개월 반만 다니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신문 기자였던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도쿄에 있던 삼촌에게 약을 전해주러 갔다가 눌러앉았다. 그리고 니혼대 철학과에 진학했다. '56학번 동기'인 화가 윤명로(78)씨는 "범상치 않은 친구라 생각했는데 종적을 감추는 바람에 한국인 밀항자를 가뒀던 오무라(大村) 수용소에 수감됐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고 회상했다.

    1991년 '자랑스러운 서울대인' 상이 제정된 이래 예술가가 단독으로, 게다가 중퇴한 인물이 수상한 것은 처음이다. 이철수 서울대 기획처장은 "선정 과정에서 이견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잘난 사람'보다는 '된 사람' '든 사람'으로 '자랑스럽다'는 개념을 재정립하자고 의견을 모은 결과 이 작가를 선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시상식 참석차 파리에서 일시 귀국한 이우환을 만났다.

    ―한국 대학에서 배운 가르침은 무엇인가.

    "원래 문학을 하고 싶었다. 고교 2학년 때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 가작으로 당선했다. 신문에 투고한 시가 두 번 실리기도 했다. 문리대를 가고 싶었는데 성적이 모자라 미대에 갔다. 석고 데생도 안 배우고 실기 시험을 쳤는데 학장이었던 장발 선생이 '이게 그림이냐'고 호통치더라. '김홍도나 정선이 그런(서양식) 데생 했느냐'고 대들었는데, 필기 성적이 좋았는지 붙여주더라.(웃음) 서예가 손재형 선생과 글씨에 대해 얘기한 기억도 난다. 결국 내가 서울대에서 얻은 자산은 '사람'이었다."

    ―요즘 입시 제도였으면 입학 못했을 수도 있었겠다.

    "대학(일본 다마미술대)에서 입시 문제 출제에 참여했을 때 당시 '손과 연필과 종이의 관계를 표현해 보시오'란 문제를 냈다. 단순히 데생이 아니라, 머리와 손을 함께 써야 한다는 의도였다. 이 문제가 일본의 각 미술 입시에 영향을 줬다고 한다. 이젠 학원에서 배운 걸 그냥 베끼면 되는 시대가 아니다."

    
	조각 작품 ‘관계항-베르사유의 아치’ 사진
    조각 작품 ‘관계항-베르사유의 아치’.

    ―구체적으로 미술 교육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오늘날 예술가는 먼저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 인문학적인 교양을 쌓고, 어학 교육을 많이 받아서 내외적인 통풍이 되도록 해야 한다. 국립대인 서울대부터 개혁해야 한다. 서울대 미대와 홍대 미대 출신으로 나뉘어 좁은 세상에서 아웅다웅 밥그릇 싸움하는 건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 된다. 밖을 바라보며 실력 있는 인재를 배출하기 위한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한다."

    ―최근 1976년 작(作) 회화 '선으로부터'가 미국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216만5000달러(약 23억7000만원)를 기록했다. 뉴욕 경매 시장에서 거래된 이우환 작품 거래가 중 최고가였다.

    "값이 나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에 관심 없다."

    ―대구 이우환미술관 건립 문제로 시끌시끌하다. 위작 문제도 지속적으로 등장하는데.

    "사회문제에 내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괴롭고 부끄럽다. 내가 일본 사람이라느니 있지도 않은 일을 꾸며서 모함하는데 화가 난다. 난 한국 국적을 한 번도 버린 적이 없다. 정작 작가로서 내 세계가 어디에 있는지 묻는 사람이 적다는 게 서글프다."

    이우환

    1936년 경남 함안 출생. 1956년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 철학과를 나왔다. 1960년대 말 일본의 진보적 미술운동인 ‘모노하(物派)’를 주도했고,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회고전(2011년), 프랑스 베르사유궁 개인전(2014년) 등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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