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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
참 좋은 친구되신 예수님. 예수님보다 좋은 친구 이 세상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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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종석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우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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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전후의 감사 - 시편 103:1-5 |
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3.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4.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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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잘 자라면 자연히 열매가 맺혀지는 것처럼, 감사의 나무에 은혜처럼 열리는 열매가 ‘행복’이라는 과실입니다. ‘참된 행복’은 믿음으로 누릴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인 우리가 누리는 ‘참된 행복’을 온누리에 전하는 행복한 사람들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감사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하는 감사를 내가 하려면 생각을 아주 잘 해야 합니다. 생각을 약간만 바꾸면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감사할 수도 있고 불평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결과이든 그 결과를 불평한다면 그 결과는 불행할 것이고, 결과를 감사한다면 그 결과는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믿음의 선각자로서 전천후적인 감사생활을 한 분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전천후적인 감사 이것이 다윗의 특징입니다. 다윗은 “내 영혼아 내 속에서 모든 생각을 다 하여서 이 은혜주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송축”하자고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송축’이라는 단어는 찬양하자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praise’, 즉 찬양하자는 것입니다. 다윗은 모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자고 외치고 있습니다. 1차원적인 감사는 모든 것을 생각하니까 감사의 조건들이 너무 너무 많더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잘 되고 어려움이 없고 형통하니까 큰 걱정도 없어지고 그래서 너무 좋아서 감사하는, 이러한 일반적인 감사를 가리켜서 1차원적인 감사라고 말합니다. 감사 열매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2차원적인 감사로 나아가야 합니다. 다윗은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3- 4)라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자비와 긍휼, 사랑을 베풀어 주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1차원에서 2차원으로 한 단계 높은 차원인 것입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이 뜻대로 잘 되지 않고 어렵고 힘들고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믿음으로서 할 수 있는 감사입니다.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용서받은 죄 사함을 받은 기쁨에 대한 감사입니다. 내가 아픔에도 불구하고 나의 모든 병을 고쳐주시고 회복시켜주시고 강건해 주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내가 죽을 생명인데도 불구하고 내 영혼을 구원해주신데 대한 감사입니다. 감사 열매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3차원의 감사로 이어져야 합니다.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 도다”(5)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감사는 믿음으로 확신하고 나의 모든 미래와 일을 하나님께 맡기는 감사입니다. 나의 아름다운 소원을 허락해 주실 것을 믿는 감사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을 새롭게 주실 것을 바라보고 드릴 수 있는 감사입니다. 감사는 기적을 낳고, 감사는 감사를 낳습니다. 감사의 열매가 곧 축복입니다. 감사의 열매가 곧 기적입니다. 감사의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가 곧 행복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만 잃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적용) - 나는 어떤 차원의 감사생활을 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다. - 전천후적인 감사생활을 위해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십시오. - 감사를 회복하고, 승화시키는 삶을 위하여 계속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주 하나님, 선택하여 부르시고 천국백성 삼으심 감사합니다. 구원받은 자답게 불평보다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님 도와 주시옵소서. 담대한 믿음으로 승리하는 전천후 신앙을 허락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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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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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를 키워내는 교회
“제자를 삼으라.”는 가서, 세례를 주고, 가르치라는 것이다. 이 말씀에 따르면 전 지구촌의 모든 민족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만드는 것이 교회의 존재 목적이다. 주님의 제자란 전 인격적으로 주님을 닮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가르쳐 주고 배우는 곳이 교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만들려면 주변의 죽은 영혼들을 구원해 내야하며, 그 내 구원받은 영혼들을 주님의 제자로 만들어 가야 한다. -이병천 목사의 ‘교회의 존재목적’에서-
스승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배우고 습득한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해 내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제자입니다. 교회만 다니고 설교를 열심히 듣는다고만 주님의 제자는 아닙니다. 배운 것을 정확히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가르치십시오. 배운 것을 타인에게 전수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배우는 제자를 키워내는 것이 교회의 존재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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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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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
토닥토닥. 나를 위해 못 박히신 그 손이 나를 위로하십니다. 힘내라고, 걱정 말라고 격려하십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힘내고 용기내어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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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종석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우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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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깨끗하게 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 창세기 20장 1-8절 |
1.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2.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3.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4. 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5. 그가 나에게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6.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 7.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8. 아비멜렉이 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모든 종들을 불러 그 모든 일을 말하여 들려 주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였더라 9.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하였기에 네가 나와 내 나라가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느냐 네가 합당하지 아니한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하고 10. 아비멜렉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렇게 하였느냐 11.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12. 또 그는 정말로 나의 이복 누이로서 내 아내가 되었음이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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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말씀은 아브라함이 네게브 땅에 거할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랄 왕, 아비멜렉은 사라의 미모에 빠져서 그의 침실로 데려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사라가 너무 예뻐서 사람들이 자신을 해치고서 사라를 빼앗을까봐 자신의 누이라고 소개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비멜렉은 사라를 데리고 아내로 맞이하려고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던 아브라함의 이런 모습에 당황하게 됩니다. 롯과 비교해서 그렇게 믿음이 좋았던 아브라함이 왜 이런 일을 행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이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믿음이 좋다고, 절대로 하나님께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오늘 아브라함과 같은 일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마다 강한 부분과 연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욕에는 강하지만, 물욕에는 약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은 물욕에는 강하지만, 명예욕에는 약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명예욕에는 강하지만, 성욕에는 약합니다. 이렇듯 우리는 연약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린도전서 10장 12절)는 말씀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나의 약점이 무엇인지 오늘 발견하고, 그것을 실수가 없으시고, 후회가 없으시며, 부끄러움을 당치 않게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걸어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비멜렉이 사라를 자기의 침실로 들였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이 말씀을 듣고서, 아비멜렉은 사라에게 손끝 하나도 건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비멜렉을 살려주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사라를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아브라함과 같이 상황에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거나, 숨기면서 살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그런 모습마저도 변화되기를 기대하십니다. 우리가 온전하게 되기를 기대하십니다. 우리가 깨끗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실 때, 내 삶에서 가장 순전한 모습으로 예배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나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살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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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전기철 서울신학대학,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졸업 미국 보스톤 조직신학 석사(S.T.M)/연세대학교 박사학위(Ph.D) 강남새사람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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