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아시아 중동圈

[스크랩] ◆ 인도/네팔 8대 불교성지순례◆

鶴山 徐 仁 2014. 2. 13. 20:37

◆ 인도/네팔 8대 불교성지순례◆

델리- 스라바스티(제5성지)-기원정사(사헤트)-룸비니(제1성지)-쿠시나가르(제4성지)-바이샬리

(제6성지)-나란다(제8성지)-라지기르(제7성지)-보드가야(제2성지)-사르나트(제3성지)-상카시아-타지마할, 아그라성 관광-델리

◆ 일시 : 2013년 12월2일~13일(11박13일)

◆ 단체 : ○○○우리

◆ 인원: 52명

사진제공

다음카페/풍운아와 함께하는 불교성지순례(http://cafe.daum.net/chinasan)

☞ 아래 주소를 클릭하시면 더 많은사진을 볼수 있습니다

[http://cluster1.cafe.daum.net/_c21_/bbs_list?grpid=1DmnS&fldid=PyfC]

▷▶ 스라바스티의 성터:사헤트,마헤트

스라바스티는 석가모니께서 24안거를 지내면서 “금강경”“원각경”“능엄경“등 현재 전하는 경전의 3분의2가량을 설한 곳.

안거란 우기동안 한곳에 머무르며 수행하는 것으로 당시 인도에는 우안거(雨安居)만 있었으므로 부처님 평생에 걸쳐 24년동안 이곳 기원정사에서 안거를 지냈다.

기원정사와 사위성터를 합하여 사헤트 마헤트라 부르며 부처님께 교화된 앙굴리마라터가 있고 보리수,사원,승원, 거탑등의 많은 기단이 있다.

● 수닷타장자가 세운 최초의 승원터인 코삼비쿠티와 경행터

▷▶ 스라바스티의 성터:사헤트,마헤트

스라바스티는 석가모니께서 24안거를 지내면서 “금강경”“원각경”“능엄경“등 현재 전하는 경전의 3분의2가량을 설한 곳.

안거란 우기동안 한곳에 머무르며 수행하는 것으로 당시 인도에는 우안거(雨安居)만 있었으므로 부처님 평생에 걸쳐 24년동안 이곳 기원정사에서 안거를 지냈다.

기원정사와 사위성터를 합하여 사헤트 마헤트라 부르며 부처님께 교화된 앙굴리마라터가 있고 보리수,사원,승원, 거탑등의 많은 기단이 있다.

● 수닷타장자가 세운 최초의 승원터인 코삼비쿠티와 경행터

 

아난존자가 보드가야에서 묘목을 옮겨 심었다는 아난다 보리수나무

간디쿠디(향전):기원정사의 중심유적인 향전은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경전을 설했던 현장으로 대승불교의 핵심 경전인 "금강경“도 여기서 탄행했다.

기원정사(사헤트)는 중인도 교살라국의 도성이었던 사위성(스라바스티)의 남서쪽에서 약800m지점에 있으며 당시 교살라국의 상인 스닷타장자가 부처님께 귀의하고 도시 남쪽에 정사를 세우기에

적당한 땅을 발견하고는 국왕의 태자인 기타 왕자의 요구대로 그 토지에 황금을 깔기도 하는 열의를 보여 건립하였고 여기서 부처님은 24회의 우안거를 지내시며 설법하셨다. 이곳은 부처님께서

제자 스부우티에게 최고의 대승경전 금강경을 설하신것과 여러 기적을 행하신 것으로 유명하다.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대좌가 남아있고 후대에 생긴 많은 절터가 있다.

 

 

 

아쇼카석주: 이기둥에 인도 아쇼카왕자가 부처님이 탄생한곳이라는 인증을 합니다.

B.C249년 당시 인도를 통일했던 아쇼카왕이 룸비니에 세원 돌기둥.

2천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불교의 역사와 부처님의 탄생의 역사를 증명하듯이 당당하게 서 있다.

돌기둥에 세겨졌던 마상은 사라졌지만 당시의 아쇼카왕이 참배하고 세운 돌기둥에는 『 카로슈티 』문자로 기록된 4줄이 세겨져 있다. 이로 인해 전설속의 탄생지가 아닌 실제 역사적 사실임을 아쇼카 석주가 증명하고 있다.

19세기 말에 동기둥의 부러진 상이 발굴됨에 따라 2천 5백년 이전의 싯타르타 탄생지임이 확인된것이다. 만일 룸비니 동산의 아쇼카 석주가 발굴되지 못했더라면 부처님의 탄생지 룸비니의 어디쯤인지 알수가 없어 전설속에 남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 쿠시나가르<니르와나 템플(열반사)>

●부처님이 입적하신 땅임을 기리는 니르바나 사원(열반사)

부처님이 열반에 든땅으로 경내의 열반당은 1876년에 발굴되어 복구되었고 1956년에 부처님 열반 2,500년을 기념하여 새롭게 단장되었다. 흰벽 열반당 안에는 두그루의 사라나무를 비롯하여

1876년에 발굴된 길이 6m가량의 대열반상이 있다. 유적지에서 동남쪽으로 조금 가면 라무바루라는 곳에 커다란 탑지가 있는데 이곳에서 다비식이 있었다고 한다.

마지막 안거를 바이샬리 근처 마을에서 지내고 고향인 카필라성을 향해 가던중 쿠시나가르 교외에 이르러 사라나무숲 두그루의 사라나무 사이에서 최후의 법언을 남기시고 입적하셨다.

 

람바르 스투파:부처님의 유해가 다비된 다비터

 

▷▶ 케사리아의 만다라 발우탑

부처님은 이곳까지 따라와서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릿차위족 사람들에게 발우를 건네주었고 사람들이 나중에 이를 기념하여 쌓은 거대한 탑이다. 둘레가 무려 427m, 높이는 15.5m, 상단부의 반구형 탑은 무너져 일부만 남았다.

현재 절반 쯤 발굴되었는데, 6층으로 된 테라스 형태의 기단이 있고, 상단부에는 원형의 단이 있다.

사진에 보이는 감실은 예전에 수행자의 수행공간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하는데 감실 안에 불상도 안치되어 있으나, 많이 훼손되어 있다.

▷▶ 바이샬리-부처님 근본8탑의 하나인 진신사리탑 유적지

●진신사리는 박물관에 모셔져 있고 지금은 기단부만 이렇게 쓸쓸하게 남았다.

그래도 여긴 부처님의 진짜, 정말, 원조, 진신사리의 기운이 뭉친 곳, 그래서 8대 성지에 포함된 곳이다.

▷▶ 바이샬리: 아난존자 사리탑

● 유마거사에 의한 초기 대승경전인 유마경의 무대이기도 하며 제 2결집을 행한 장소이다. 기녀 암라팔리여인이 보시한 망고원과 원숭이떼가 부처님 발우에다 꿀을 공양한 곳이며 열반에 이를것을 예언한곳

마하가섭존자에게 다자탑전분반좌이 전법을 행한곳이며 특히 비구니 승단이 출범한 장소로 유명하다.

▷▶ 죽림정사와 영축산이 있는 라지기르

●왕사성으로 잘 알려진 라즈기르는 마다가국 빔비사라왕의 초청을 받은 부처님께서 1,000여 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가셨던 곳이다. 빔비사라왕의 정성어린 지원과 신심에 힘입어 불교교단은 왕사성에서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불교 최초의 사원이었던 죽림정사와 『 법화경 』의 배경이 되는 영취산 역시 이곳에 있었다.

●영취산 정상에는 부처님께서 계시던 수행처인 향실을 중심으로 다섯 개의 대(臺)가 있다. 중국에 불교를 전한 가섭마등과 축법란은 오늘날 중국의 오대산이 인도의 영취산과 닮았다고 해서 오대산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라즈기르에는 왕실과 부처님의 추지의셨던 지바카의 병원터, 아들인 아자타사트루에게 감금된 빔비사라왕이 최후를 맞이했던 감옥 터가 있다.

●영취산은 법화경의 서품에 나오는 수 많은 불보살님들의 수행처이며 배경이다. 빔비사라왕길을 따라 걸으며 부처님께서 주석하신 향실이 나온다. 향실 밑으론 아난존자 사리불존자 마하가섭존자의 동굴이 지금도 남아 있다.

영축산 향실의 위치는 왕상성을 굽어 볼 수 있는 곳으로 우리 오대산 적멸보궁자리와 같은 지형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서 부처님 말년을 법화경을 설하셨는데 법화경의 주 내용은 부처님께서 수 많은 제자들에게 내세에 부처가 될거라 수기를 주시는 것이다.

향실에 앉아 법화경 사구게를 간파한다면 이는 곳 부처님의 수기를 받는거라 하 수 있을 것이다. 옛 왕사성터를 바라보며 사구게를 온몸으로 받아들여 보는 기쁨은 이 자리에 와서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 죽림정사

● 불교계 최초의 절이다.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기에 죽림정사라고 한다.

다른 유적지에 비해 발굴이 거의 되지 않은 상태다. 입구의 작은 법당과 스님들 목욕터가 다라고 할 수 있다.

허나 정사는 이곳 저곳을 거닐다보면 부처님과 1250제자들의 여법한 기운을 느낄 수 있으니 30분이상 머물기를 추천한다. 현재 태국스님 한분이 머물변서 복원에 큰 뜻을 두고 계신다고 한다.

▷▶ 나란다대학

● 세계 최초의 불교종합대학인 나란다 대학

나란다 대학은 탁실라, 비끄라마실라와 함께 3대 불교대학이었다. 굽타왕조가 다스리던 5세기경에 조성되기 시작한 나란다대학은 입학이 무척 어려웠지만 일단 들어오기만 하면 나라와 백성들의 보시로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용수( ), 무착( ), 파드마삼바바( ),현장과 같은 대학자와 고승들 역시 이곳에서 수학했으니, 이곳의 학문적 깊이가 어느 정도였는지 충분히 진작할 수 있다. 전성기의 나란다대학은 가로 10km, 세로 5km의 면적에 일만여 명의 스님들이 공부했다.

하지만

11세기에 이르러 이슬람 세력의 침략으로 인해 불타고 말았는데. 그 불길이 6개월 동안 보였다고 한다.

▷▶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룬 곳 부다가야

● 마하보디 대탑은 사실 탑이라기 보다는 불당이다. 그래서 대보리사로 불리기도 하고, 금강좌 사원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자리에 세운 높이 52m에 달하는 피라미드형 사원이다. 부처 성도 후 약 250년이 지난 기원전 250년경 아쇼카왕이 보리수나무 옆에 마하보디 대탑을 세우고 부처가 않았던 그 자리에 금강좌를 조성했다

.

●이곳은 성지 중에서 최고의 성지이다. 부처님처럼 보리수 나무 아래 앉아, 본래 불성을 찾아 명상을 감겨보는 귀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 불당 안 정면에 있는 2m 크기의 부처님 불상, 불상은 10세기 경에 조성된 것이지만, 불상의 좌대는 보리수 아래에 있던 금강좌를 옮겨 놓은 것이다.

불상은 경전에 따라 (깨달음을 이루었을때 부처님이 취했다는)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앉은 모습은 참에 가까운 자세이다(불당안 가까이에서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티베트 승려들의 오체투지,

부처님의 경행처 뒤쪽, 지금 이곳에는 수많은 절판을 고정시설물로 설치해놓고, 주로 티베트 승려들이 오체투지 수행을 하고 있었다.

티베트 불교는 세상에서 절을 가장 많이 하는 종교다.스님이 되려면 반드시 10만 배의 절을 해야 한다고 들었다.

두 손바닥에는 앞으로 밀기 좋도록 깔개를 깔고, 앞으로 쭉 밀며 이마가 닿도록 절을 한다.

절판은 특별한 절차 없이 누구나 빈 절판을 차지할 수 있으며, 누가 특별히 간섭하지는 않는다고 들었다.

대부분 몇 달씩 머물며 이곳에서 오체투지 수행을 한다고 한다.

마하보디 대탑을 향한, 부처님을 향한 티베트 승려들의 지극한 정성, 그들 자신을 깨우고, 바라보는 우리들까지 깨우려는 지극한 원(願)!

이들의 오체투지에는 자기를 초월하려는 팽팽한 긴장이 있다

▷▶ 마하보디 대탑:삼보일배 새벽예불

▷▶ 수자따탑

수자타는 네란자라 강변마을 촌장의 딸이다.

부처님께서 성도 직전에 고행을 버리고, 새로운 수행을 시작할 때, 유미죽 공양을 올렸다.

후대에 부처님께 최초로 공양을 올린 공덕을 기리기 위해, 수자타의 집터에 탑을 세웠다.

▷▶ 부다가야에 있는 일본사찰의 대불

▷▶ 부다가야에 있는 티벳사원

● 티벳사원의 동자승과의 만남의 시간

▷▶ 초전설법성지 사르나트"녹야원"

사르나트는 우타르프라데쉬 Uttar Pradesh주의 바라나시에서 12km 떨어져 있다. 힌두교의 최대 성지 중의 하나인 바라나시 지척이지만 바라나시의 혼잡과는 거리가 멀게 조용하고 한가한 곳이어서,

사뭇 색다른 맛을 가진 곳이다.

부처님께서 정각을 얻으신 후 '사슴이 뛰어놀던 아름다운 동산' 이라 불리는 이곳에서 수행중인 교진여 등 5비구를 만나 처음 설법을 행하신 곳.

7세기까지 1,500여명의 스님들이 수도할 만큼 번성했다고 한다. 대부분 이슬람교도들에게 파괴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최근 발굴되고 있다.

일설에는 브라흐닷타 왕이 이곳에 사슴들이 살도록 풀어놓았기 때문에 사슴의 동산 (鹿野苑)'이 되었다고 전해지며, 조용하고 평온해 보이는 한쪽에는 아직도 사슴 몇 마리가 무리 지어 살고 있어 녹야원이라는

이름을 실감케 한다.

또한 성자가 머무는 곳이라는 뜻의 리쉬파타나라고도 불리었던 이곳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신 내용을 처음으로 세상에 펼친 곳이었다.

부처님이 다섯 도반에게 처음 법을 설한 장소를 기념하기 위하여 아소카 왕이 세운 다메크 탑

초전법륜(初轉法輪)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든 탑이므로, 다르마 차크라 (Dharma Chakra)라고도 부른다.

기단부는 직경 28.5m, 높이 34m(원형 추정 43.6m)의 거대한 탑이다.

녹야원에서는 어디에서나 보이는 녹야원의 상징과 같은 탑이다.

부처님의 메시지가 매우 설득력 있고 논리적이었기 때문에 경청한 다섯 도반들은 그 자리에서 부처님의 첫 번째 제자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 힌두문명의 발상지 갠지스강의 일출

힌두교 신자인 인도인들에게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강으로 히말라야에서 발원한다.
힌디어로 '강가(Ganga)'로 불리는 갠지스강은 인도 힌두교도에게는 가장 성스러운 강이다.
히말라야의 만년설에서 발원한 갠지스강은 인구밀도가 높은 유피주와 비하르주를 거쳐 뱅골만으로 흘러든다. 6월에서 9월까지 진행되는 우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 이 지역에서 갠지스강은 유일하게 마르지 않는 강이다.

갠지스강 유역에 펼쳐진 광활한 힌두스탄의 충적평야는 인도 북부의 곡창지대일 뿐만 아니라 힌두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힌두교의 삶은, 태어나 갠지스강에서 세례를 받는데서 시작해 숨을 거둔 뒤에 화장돼 이 강에 뿌려지는 것으로 끝난다. 화장한 재를 갠지스강에 뿌리는 것은 성스로운 강물로 영혼이 속죄를 받아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하는 의식이다.

●신성한 갠지스 강에 몸을 담그고 기도를 하는 인도인들.

강물에 목욕을 하면 죄를 면할수 있으며 죽은뒤에 강물에 뼛가루를 흘려보내면 극락에 갈수 있다고 힌두교 사이에서는 믿고있다.

● 갠지스강의 화장터

☞ 하루도 빠짐없이 장례행렬이 이어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화려하게 치장을 한 고인을 신성한 갠지스강물에 목욕을 시키고 향나무위에 올려놓고 쇠기름을 부어 불을 붙인다.

화장하는 곳도 계급에 따라 나뉘어 지는데 상류층의 경우 강과 가까운곳에서 화장을 하고 냄새를 잡아주는 고급나무를 사용하고 별도의 화장터를 가진 반면 하류층인경우 공용화장터를 이용한다.

☞인도인들의 최대소원은 갠지스강을 순례하다가 그곳에서 죽어 화장되어 갠지스강에 뿌려지는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인도인들에게 신성한 어머니와 같은 강 "갠지스강"

▷▶ 바라나시 갠지스강으로 가는길

● 릭샤체험: 늦은오후 릭샤를 타고 갠지스강으로 향한다. 먼지가 많아 마스크는 필수!!

▷▶ 힌두교의식 [아르띠푸자]

7명의 사제들이 제단위에서 신들에게 정결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종교의식을 치루고 있다.

갠지스강의 여신에게 바치는 매우 화려하고 성대한 제사의식은 매일밤 행하여 지는데 "아르띠푸자"라고 한다.

▷▶ 도리천에서 내려온 땅- 상카시아

싯다르타 태자가 태어난지 7일째 돌아신 어머니 마야부인이 계시는 도리천에 올라와 설법을 하고 내려오신 곳이다 .

부처님이 스라바스티의 기원정사에 있을 때, 천불화현(千佛化現)탑 언덕에서 3가지 기적을 행한 다음,

3걸음만에 도리천으로 올라가서, 어머니를 위해 3개월 동안 설법을 하고, 내려오실 때는, 이곳 상카샤의 바로 이 언덕으로 내려오셨다는 것이다

스투파로 추정되는 작은 언덕

부처님이 도리천에서 내려오실 때 하늘길이 열렸다는 바로 그 '기적의 언덕'

법당에는 이 장면을 묘사한 상이 모셔져 있고 법당은 허물어진 사원위에 작게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아쇼카왕이 세운 아쇼카석주가 있는데 파손되어 몸체일부와 상륜부 코끼리가 손상 된 채로 보존하고 있다.

●삼계보도(三階寶道) , 꿈의 계단, 하늘길의 기적.

부처님이 천상에서 내려오시는 모습이다.

부처님 좌우로는 제석천과 범천상이 조각되어 있고 그 뒤에는 지상에 남았다는 7개의 하늘 계단이 표현되어 있다.

▷▶ 타지마할:영원의 얼굴위에 흘러내리는 눈물

사랑으로 빚어낸 ‘찬란한 무덤’이라 불리는 타지마할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인도의 무굴제국 샤자한이란 황제가 아내를 너무나 사랑하여 아내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지은 궁전으로 여왕의 무덤이다.

새하얀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타지마할은 사방 57m이고, 높이는 67m의 큰 건물이지만 그 뒤로 펼쳐진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설계되었다.

타지마할은 높이 5.5m, 가로 세로 94m의 정사각형의 기단 위에 세워졌다.

타지마할은 세계7대 불가사의로 인류가 이 지상에 남긴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고, 무덤이며, 예술작품이다.

그래서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은 한 여자에 대한 한 남자의 사랑 위에 이 완벽한 대칭과 무한반복의 아름다움이다.

반면, 샤자한은 타지마할이 완성된 직후 공사에 참여한 인원들의 손목을 자른것으로도 유명한데 타지마할보다 더 아름다운 궁전을 만들려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하여 비극의 성이라고도 한다.

▷▶ 아그라성

● 샤자한 왕의 아들 아우랑제브가 델리로 수도를 옮겨 대 무굴 제국을 세우기전인 1658년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아버지를 가둔곳이다.

타지마할을 호화롭게 지은 샤자한 왕이 자기 무덤도 초호화 건물로 지으려 하면서 엄청난 국가 재정을 낭비하자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나 폐위 되었는데 아들 아우랑제브는 부왕의 부탁으로 타지마할이

내려다 보이는 강북쪽에 아그라성을 세워 샤자한왕은 그곳 궁성 감옥에서 죽을때까지 죽은 아내를 그리며 타지마할 궁을 바라보면서 살다가 죽었다.

▷▶ 유네스코 문화유산 쿠뚭탑

인도의 델리 남부에 위치한 꾸뜹미나르는 술탄 꾸뜹우드딘 에이백이 세운 탑이라는 뜻으로 미나르는 탑이라는 의미다.

원래는 슬람사원과 다양한 건축물이 함께 있던 거대한 유적군이었으나 현재는 대부분 파괴되고 흔적만이 남아 있으며 높이 72.5m인 5층의 거대한 탑은

술탄 꾸뜹이 1193년 델리의 마지막 힌두 왕국을 정복한 기념으로 힌두교사원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세운 승전탑으로 사암과 대리석으로 각 층의 색이 구별되어 있고 1층은 힌두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2·3층은 이슬람 양식으로 지어져 독특함과 아름다운 조각이 인상적인 탑이다. 각 층마다 발코니있고 좁은 380여 개의 계단이 있다.

'쿠툽'이라는 이름은 '축'을 의미하며, 이슬람 세계의 새로운 축을 자임하는 의미이다.

델리의 대표적인 상징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출처 : ♣아름다운 중년 ♣
글쓴이 : 풍운아(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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