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계 형 (朴啓馨)
소설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상들 중에 용이란 존재가 있다. 상상(想像)의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세상에 실재(實在)하지 않는 대상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용이 과연 상상의 동물이기만 한지, - 한번 확실하게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무지(無知)는 어둠이고 지식은 빛이다. 오늘은 이 용이란 존재를 한번 심도 있게 규명해 봄으로써 우리 가운데 빛을 더해 보자.
나는 이 용이 과연 어떤 동물인지 알아보기 위해 S대 역사학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서 문의해 본 바 있다. 그분 얘기가, - 자기가 참으로 이상하게 생각하는 일은 동양과 서양이 서로 교통을 열기 전부터 각기 용을 가지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들이 그려놓은 용의 그림이나 동철 등으로 만들어 세운 용의 형상들이 거의 같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서로 닫혀있는 상태에서 각자가 만들어 놓은 용의 모양이 흡사할 수가 있는지, 이것은 분명 그들이 어딘가에서 용을 보고 있었다는 얘기이고, 또한 이 용이 비록 이 세상은 아닐지라도 초자연계 어딘가에 반드시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존재하지 않는 동물을 어떻게 볼 수가 있으며 보지 않고 어떻게 상상만으로 그렇게 똑같은 용을 그려낼 있겠는가, 말이다. 비록 육안으로 이 자연계 안에서는 아닐지라도 영적인 세계에서 저들이, 가령 꿈을 통해서나 혹은 환상 중에 이 용이란 것을 본 적이 있는 것이다.
(하기야 우리 주변에도 가끔 이 용을 자기가 꿈에 보았다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도 사실이다. 직접 내 귀로도 용꿈을 꾸었다는 여러 사람의 얘기를 들었다. 또한 산중에서 여러 날 묵상을 하던 중 환상 중에 이 용이 나타나 자기에게 가르침을 주었다고 주장하는 어떤 불교의 수도승을 TV에서 본적도 있다)
이렇게 동서양이 똑같이 용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이 용에 대한 견해는 아주 다르다. 동양에서는 이 용을 길(吉)하고 재수있는 동물로 여기고 있지만 서양에서는 반대다. 흉악한 악마로 소개되어 있다. 서구 쪽에서 들여온 아동만화를 보면, 흔히 입에서 불을 뿜어 사람을 해치고자하는 악마로 용이 출현하고 여기에 대적하는 정의의 용사로서 어린 소년 주인공이 등장한다. 몇 년 전 구라파 여행 중에서 나는 그곳 가이드가 소개하는 용을 구경하였는데 그녀의 말 역시 그곳에서는 용을 악마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십 수년전에 용의 눈물이라는 TV역사드라마가 있었다. 그곳에서의 용은 태조 이성계를 가르키고 있었는데 왕권쟁취를 위한 골육상쟁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그리고 있는 내용이다. 원래 옛 부터 왕을 용에 비기곤 했었다. 왕의 얼굴을 용안(龍顔), 왕이 앉아있는 의자를 용상(龍床), 왕이 입는 옷을 용포(龍袍), - 라고 불렀다. 한마디로 용은 돈과 권력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뱀이 오래되면 용이 된다, 라고 알려져 있는데 중국 용정에 가면 그 우물에서 오래된 뱀이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여 용정(龍井)이라고 불리 우는 우물이 있다. 용정이란 그 동네 이름도 그곳에서 용이 승천한 우물이 있다고 해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특히 중국은 용이 많은 곳인데, 요즈음 중국에도 서구바람이 들어가서 다소 용이 사라져가는 추세이다. 특히 북경에 가 보니까 거의 용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세계올림픽 관계로 서구인들이 몰려 올 것을 대비하여 올림픽 얼마 전부터 취해진 조처 후 일이란 말도 들린다.
이 용에 관한 가장 신뢰할 만한 내용은 성서에 있다, 라고 봐야하겠다. 어차피 이 용이 초자연(超自然)계에 속한 영적인 존재라면, 세상 서적들에서 그 확실한 지식을 찾을 것이 아니고 영적인 책에 가서 찾아야만 하는 것이 상식이다. 또한 우리들의 기본관념상 성서는 「하느님」의 말씀이고 그 안에는 오류가 없을 터이니, 그곳에 가서 한번 용이란 이 기이한 짐승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현명한 처사이리라, 믿는다.
요한 묵시록에서 보면, 성 미카엘 대천사에게 대항하는 흉악한 악마로 이 용이 소개되어 있다. 용이 하늘까지 올라가 성 미카엘 대천사와 대적하여 싸우는데, 결국 당해내지 못하고 제 부하들과 함께 땅에 떨어져 버린다, - 이 용에 대해 성서는 세상을 어지럽혀 온 오래된 늙은 뱀이며 흉악한 사탄의 우두머리, 라고 알려주고 있다.
서구 선진국들이 이 용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념은 일찍이 기독사상이 그들 가운데 들어가 개화시킨 결과라고 봐야겠다. 여기 비하여 기독사상이 늦게 진입된 동양권에서 이와 상반된 개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동양에서 이 용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념도 깊이 따져보자면 서양의 것과 많이 다른 것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같다. 용을 길(吉)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 길하다는 의미를 따져보면 우리들의 권세욕, 황금욕을 채워주는 대상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용꿈을 꾸고 싶어 하는 마음속을 헤쳐 보면 힘 안들이고 일확천금을 꿈꾸는 허황된 욕심, 수단방법가리지 않고 분수 넘치게 높이 떠오르려는 출세욕 등 불의한 욕심으로 가득 찬 곳이다. 용은 바로 이런 흉측한 마음을 타고 들어가 그런 마음위에 군림하면서 온갖 못된 짓을 하도록 사람을 조정함으로서 파멸시키는 것이다. 파멸시켜 결국 제 본고장인 지옥으로 끌고 가는 것이 용의 역할이다. 왕권(王權)과 권좌(權座), 황금(黃金)을 들러 싼 모든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알고 보면 세상을 어지럽히는 이 사악한 늙은 뱀이 일으키는 소란인 것이다.
물론 인간은 누구나 잘 살고 싶어 하고 또 행복해져야만 하는 존재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열심히 일하고 그 결과로서의 정당한 제몫을 바라고, 남을 행복하게 해 주면서 자신의 행복도 바라는, 이런 정의(正義)의 기석(基石)위에서 이루고자 해야 한다.
수고도 하지 않고 떼돈을 바라는 것은 도둑의 심보다.
그리고 인간 각자에겐 주어진 제자리가 있는 법. 제자리를 지키지 않고 턱없이 높이 되고자 한다면, 수많은 별들 가운데 단 하나라도 제 궤도를 이탈하면 온 우주 안에 대 붕괴가 일어나듯이, 온 세상 안에 무질서(無秩序)와 혼란(混亂)이 일어나는 것이다.
분수 넘친 욕망은 스스로와 사회를 다 불행케 하는 요인이다. 우리가 이런 모든 헛된 야심을 버리면 이 흉측한 악마, 용도 우리 가운데 발을 붙이지 못할 것이다.
이 용(龍)이 악마라는 것을 알았으면 우선 우리들 사무실 책상 위 명패(名牌) 안에 들어가 있는 용부터 제거하자. 악마가 어떻게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해 줄까 보냐!
<위 글은 필자와의 협의 후 조갑제닷컴에 게재합니다.>
박 계 형(朴啓馨) 작가 소개
1943년 서울에서 출생
1961년 수도여고 졸업
1965년 고려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1963년 동양방송(현 KBS 2의 전신)개국(開局) 현상문예소설 50만원 당선작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
197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입선작 [어떤 신부(神父)]
1999년 조선일보 선정 [한국을 이끈 50인]의 한사람으로 뽑힘
2002년 [자랑스러운 고려대인(高麗大人)상] 수상
현재 연변과학기술대학교(YUST) 겸임교수
성 어거스틴 회(St. Augustine Society) 대표
저서:
<A Life(임종의 영문판), 영국 Troubador 출판사 출간, 2007>
<留すりたかった瞬間の數數(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 일어판, 新宿書房 출간, 2005>
<정(情)이 가는 발자국 소리>, <해가지지 않는 땅>, <사랑의 샘>
<자유를 향하여 날으는 새>,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
<어느 투명한 날의 풍경화>, <회귀(回歸)>, <환희, 구(舊)임종(臨終) 1,2>
<朴啓馨 全集> 외 약 6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