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집을 보면 고향 생각이 난다.
이처럼 아담하고 예쁜 집을 언제나 가질까?
고향 떠나온 뒤로 한 때도 정겨운 고향집 잊은 적 없다.
[여기는 행랑채 뒷문]
짚으로 만든 도구, 쇠로 만든 도구, 싸리와 대, 나무로 만든 도구가
행랑채를 중심으로 집안 곳곳에 덩그머니 버티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고향에 온 맛을 느낄 수 있다.
어머니는 조금 한가한 틈을 보아 방문 창호지를 다 뜯습니다.
물걸레로 대야 하나를 준비해서 때가 다 가시도록 쓱쓱 닦습니다.
꺼무튀튀했던 문도 이제 노오란 나무 본색을 드러냅니다.
밀가루를 훌렁훌렁 풀어 휘저어가며 풀을 쒀 두십니다.
풀을 쑤면서 해야할 일이 또 하나 있지요. ‘다우다’라는 새하얀
광목 천에 풀을 먹여 빨래줄에 한 번 걸어 둡니다.
어느 정도 말라 풀이 먹었다 싶으면 먼저 창호지를 바르고
그 위에 천을 바릅니다. 마지막으로 문풍지를 바르면 문 여닫을
때도 별 문제 없었지요. 그렇게 하면 소한(小寒) 추위도 끄덕 없었습니다.
시골 날씨는 기상청에서 발표한 것보다 3-4도는 낮습니다.
간장이나 된장 등 짠 것은 얼 일이 없기 때문에 그대로 두고
동치미 독과 배추 김칫독은 마람을 엮어 둘러 씌우는 데도
짚이 쓰이고 뚜껑도 짚으로 이쁘게 만들어 덮었습니다
무 구덩이는 얼지 않을 땅까지 파내고 가에 짚을 둘러 흙에 직접
닿지 않게 하고 무를 상하지 않게 차곡차곡 쌓은 다음 짚을
오므리고 나무 작대기를 꽂아 지붕을 만들고 흙을 덮습니다.
흙이 두텁게 쌓이면 그 위에 큰 짚다발 하나를 꽁지를 단단히
묶고 눈이 쌓여도 안으로 스며들지 않고 바람이 들어가지 않게
착착 마무리 묶음을 합니다.
우지뱅이’가 다 되었으면 가랭이를 쫙 펴서 올려놓으면 무에
바람이 들어 갈 염려도 없고 냉기가 들어찰 까닭도 없이
경칩 때도 싱싱한 무를 보관해두고 먹었습니다.
멍석 하나 있으면 시골에선 짱입니다.
윷놀이 때, 추어탕 먹을 때, 대사치를 때, 멍석말이 할 때 긴요하게 쓰입니다
한 집안의 장맛을 보면 음식 솜씨를 알고, 장맛은 장독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이제 복조리 장사는 대부분 사라졌다. 연세가 많아 자연으로
돌아가신 분들이 허다하고 복조리 없이도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쌀을 일 필요도 없이 좋은 세상이 왔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을 어른들로부터 듣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 지게를 보면 어렸을 때 생각이 많이 날겁니다.
국민학교 같다 오기가 무섭게 아부지는 소 꼴을
비로 가라고 야단 맞은 적이 있을거예요...........
저 지게로 시골에서는 모든일을 다 해냈죠.
국 끓이고 밥하고 나면 그 불기에 고구마와 감자를 구워서
먹었던 그 시절이 아련히 떠 오릅니다.
집으로 소죽 끓여서 소죽통에 넣어주면 소는 고마워서
큰 눈을 껌뻑 거리며 쳐다 보고 있었지요.
병아리와 닭이 살쾡이와 족제비
21일만에 바람에 날릴것 같은 이쁜털을 갖고
남도에서는 도구통, 도굿대라고 불렀습니다
뻐끔뻐끔 하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퇴비를 뒤집고 긁어모을 때 쓰는 쇠스랑, 퇴비를 높은 곳으로
멀리 던지기 위한 포크, 쇠갈퀴와 대갈퀴도 빠질 수 없다.
외양간 근처에는 무쇠로 만든 작두가 있다. 쇠붙이로 만든 게
이뿐이 아니다. 낫, 괭이, 호미, 곡괭이, 약괭이, 톱, 꺽쇠
창이 집안 어디라도 숨어 있으면 다행이다.
지게가 멜빵에 힘을 잃어가고 녹슨 보습이 끼워진 쟁기가
써레와 나란히 놓여 있다. 추수하는데 쓰인 홀테, 탈곡기, 풍구도 있다.
[짚으로 만든 짚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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