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소사이어티 서평>우린 과거에 매몰돼 있는데 미래를 꿈꾸는 베트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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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특별한 베트남 이야기' 권쾌현 저/연합뉴스 간ⓒ | 오래 전 북한 김일성이 중국 공식방문을 거쳐 베트남 월맹을 찾았다. 그게 1958년 11월 김일성은 당시 베트남의 최고지도자 호치민을 만났는데, 둘 사이의 대화에서 허장성세파 김일성과, 겸손파 호치민의 리더십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장광설을 펼친 쪽은 젊은 김일성이었다. 한국전쟁 전후(戰後) 복구와 사회주의 건설과정을 떠벌렸고, 특히 의무교육(당시 7년제)과 무상 의료정책이 대단하다고 자랑을 했다. 그때 호치민이 농담을 섞어 응수했다.
“다른 데 가서는 그런 말씀을 제발 하지 마시지요. 우리 인민들이 ‘호치민이는 대체 뭘 하고 있는가?’ 하면서 저를 내쫓아내면 곤란하거든요.”
김일성은 호치민보다 22살 아래였고, 활동경력이나 다른 면에서 보잘 것이 없었는데도 그렇게 호들갑을 떨고 다녔다. 이 에피소드는 당시 김일성을 수행했던 황장엽이 펴냈던 책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황장엽 회고록'(한울)에 등장한다. 그건 옛날이야기이고, 2000년대 지금의 통일 베트남의 소식이 궁금해서 집어든 책이 '아주 특별한 베트남 이야기'(연합뉴스 펴냄)였다. 마침 박근혜 대통령의 9월 7∼11일 베트남 국빈 방문을 전후해 재미있게 읽었는데, 저자는 연합뉴스 하노이 특파원 출신의 권쾌현이란 분이다.
베트남이 따라 배우려는 꿈의 나라 대한민국
서점가에 의외로 많지 않은 게 베트남 관련 저술인데, 이 책은 그 공백을 메워준다. 조금 아쉬운 건 이 책이 3년 전 출간됐다는 점이다. 약간의 시차가 없지 않겠지만, 근래 나온 책 중에서는 정보량에서 가장 앞선다. 이 책에 따르면 현대 베트남은 중국과 같이 사회주의 간판 아래 자본주의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도입했다. 집권 공산당이 노동자 농민의 당이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포기하는 대변신을 한 게 2006년의 일이다. 개혁 개방정책인 ‘도이모이’를 모색한 것은 1990년대 초부터인데, 이런 변화 모색은 우연이 아니었다.
1975년 통일 직후 베트남 지도부는 집단농장제 실시 등 아주 교과서적인 공산주의 정책을 고집스럽게 펼쳤는데, 그게 재앙으로 드러났다. 고약한 생산성 저하현상과 함께 국민 불만이 크게 증폭됐다. 시행착오 끝에 도입한 ‘도이모이’ 정책 이후 20년 동안 베트남 경제는 8배 이상 커졌다. 앞으로도 시장경제체제와 대외개방 그리고 자율경영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데, 놀랍게도 베트남이 따라 배우려는 모델은 대한민국이다.
“(처음에) 베트남이 후보로 꼽은 국가는 한국 중국 일보 대만 등 네 곳이었다. 심사숙고 끝에 한국이 베트남이 따라 해야 할 발전모델로 선정됐다. 전쟁을 겪은 불모지에서 국민들의 단결과 노력으로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는 점이 큰 매력이었다. 목표가 정해지자 한국과 접촉을 시작했다.”(107쪽)
두 나라가 정식 수교를 하기 전인 1989년 베트남은 주무 장관들을 잇따라 한국에 보냈고, 수교(1992년) 직전에도 부총리가 한국을 찾아 경제발전 노하우와 새마을운동을 배웠다. 그러다가 개혁 개방정책을 입안한 최고지도자인 도 모어이 서기장이 서울을 찾은 게 1995년이다. 4년 전 이명박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해 두 나라는 빠르게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이번 박근혜 대통령이 한•베트남 FTA와 원전분야 협력강화 등 방안을 논의한 배경에는 한국 베트남 사이의 공감대가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아주 특별한 베트남 이야기'의 저자에 따르면, 베트남의 한국 사랑은 실로 대단하다. 그곳의 책임 있는 오피니언 리더 층에서 “우리에게도 박정희가 필요하다”는 말이 서슴없이 나올 정도다. 이 책은 “(우리 베트남에게도) 박정희 같은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가 나와서 부정부패를 뿌리 뽑고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뤄야 한다”는 현지인의 말을 반복해 전해주고 있다. 여기에서 의문 하나. 우리와 베트남 사이에는 과거사 문제가 있지 않나? 베트남 전쟁 때 우리가 대규모 전투병력을 파병했던 일 말이다.
"월남 참전 베트남에게 사과해야"? 좌파들의 헛소리
그건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이 문제는 적지 않은 국내 좌파 지식인이 문제제기를 해왔던 사안이기도 한다. 우리가 베트남전에 참전한 것은 저들의 민족해방전쟁을 방해한 폭력적 행위라는 것, 때문에 그건 한국의 민족적 양심에 꽂혀있는 가시와도 같은 것이라는 논리가 상당수 나왔다. '아주 특별한 베트남 이야기'는 이 대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놀랍게도 그 동안 미쳐 몰랐던 또 다른 진실, 즉 우리 생각과는 전혀 다른 베트남 사람들의 열린 태도를 알려준다. 그래서 이 책은 베트남 참전 문제를 두고 저들에게 사과를 하지 말라는 조언까지 한다. 이게 무슨 말일까? 지금 베트남의 사람들에게 그런 사과의 말을 하면 저들은 어리둥절해 하거나, 아니면 다소 어색한 상황이 연출되기 일쑤라는 것이다. 왜일까? 첫째 베트남 각급학교에서 한국의 참전 사실을 가르치지 않는다. 미국과 싸웠다는 사실만 부각시켜 교육한다.
즉 한국의 참전은 미국의 압력에 따른 것일 뿐이고, 혹시 사과한다면 한국보다는 미국이 해야 하는 게 맞다고 저들은 믿는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우리와는 영판 다른 저들의 미래 지향적 심성이다. 그걸 잘 보여주는 게 2000년 미 대통령 클린턴 방문이었다. 전쟁 이후 베트남을 찾은 첫 방문이라서 베트남 당국은 조용하게 일정을 짰다. 아예 방문 소식 자체를 공개하지 않았는데, 혹시 있을 수 있는 테러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실제로 클린턴이 하노이 공항에 내린 것은 밤 12시. 하지만 숙소인 하노이대우호텔에 이르는 길거리는 베트남기와 성조기를 든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놀라운 환영열기였다. 이런 반응은 그의 3박4일 방문 일정 내내 이어졌다. 외신 기자들은 클린턴 방문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환영 열기를 취재하기 바빴을 정도였다. 그들이 베트남 당국자에게 물어봤다. “정부가 환영 인파를 동원했는가?” 당시 외교부 대변인의 대답이 너무도 쿨했다.
“아니다. 완전히 자발적인 환영인파이다. 미국 대통령은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왔다. 환영하는 건 당연한 게 아니냐?” '아주 특별한 베트남 이야기'의 저자는 이 말을 전하며 “지금도 과거에 매달려 정쟁(政爭)을 거듭하고 있는 우리와는 너무도 다르다는 느낌에 얼굴이 붉어졌다”고 털어놓았다. 기가 차는 일도 있다. 과거사에 사무친 한국의 한 열혈 운동권 출신 여성이 베트남에 유학 중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군의 양민학살을 주제로 연구한답시고 현장조사를 하는 등 난리를 쳤다. 국내 매체에 기도도 했고, 일부 단체는 베트남 현지에 조사단을 파견하자는 결의를 했으며 베트남 정부에 공식 조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하도 소란을 떨어내니 당시 베트남 측 외교부 대변인이 나서야 했다.
“당시는 한국과 베트남 모두 불행한 시기였다. 그때 한국이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을 도와 참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지금의 양국관계에 어떻게 장애가 될 수 있나? 한국은 지금 베트남의 가장 가까운 친구의 하나다. 과거의 일시적인 불행 때문에 가까운 친구를 잃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베트남은 지금 과거를 돌아볼 이유가 없다. 국가를 발전시키기 위해 앞으로 달려가는데도 힘이 모자랄 지경이다."(50쪽 요약)
왜 저들은 "한국은 진정한 친구이자 사돈의 나라"라고 하나
참고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8년 베트남 방문 때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이 책의 기준에 따르면, 그건 굳이 필요한 발언이 아니었던 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4년 호치민 묘소에 묵념하는 자리에서 “우리 국민들은 마음의 빚이 있다”고 했는데, 그것도 오버였다. 반면 이번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사를 거론하지 않았는데, 베트남 국가주석은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진정한 친구이자 사돈의 나라"라고 각별히 화답했다.
한국인과 결혼한 베트남 여성이 4만 명에 육박한 것을 염두에 둔 우호적인 발언이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에 대규모 경제사절단이 함께 했다고 하지만, 이 책은 포스코E&C, 참빛그룹, 금호아시아나, 미래에셋증권 등 베트남에서 성공한 우리 기업들도 소개하고 있다. 그만큼 이 책은 베트남 진출기업인들이 읽어볼 책인데, 쉽지만 깊이를 잃지 않은 정보를 담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베트남은 한류(韓流)의 발원지이다. 2000년대 초반 '가을동화'나 '겨울연가' 같은 한국 드라마가 방영되는 저녁 시간이면 베트남 거리는 일찌감치 한산해졌을 정도다.
전지현이 주연한 ‘엽기적인 그녀’ 등 한국영화는 베트남에서 할리우드영화 못지않은 인기를 끌었다. 경제협력도 만만치 않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TV와 휴대전화는 베트남 사람들의 필수품으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고, 김치조차 각종 슈퍼마켓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품목이 됐다. 베트남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젊은 인구, 높은 교육열, 개혁정책 등을 발판으로 세계 최고의 이머징 마켓으로 부상하고 있는 나라임을 염두에 둬야 한다.
조상을 숭배하고 유불선을 믿는다거나 우리처럼 설과 대보름, 단오, 추석 등이 있는 것, 술이 한두 잔 들어가면 음주가무를 즐기는 모습 등은 한국과 무척 닮았다. 가정에서 여성의 발언권이 세다는 점, 결혼식 등 잔치는 최대한 시끄럽고 화끈하게 벌이는 점, 밖에서도 아무 거리낌 없이 애정 표현을 하는 젊은 남녀 등을 통해서는 중국의 모습이 엿보이기도 하는데, <아주 특별한 베트남 이야기>는 베트남도 읽고, 기회에 한국의 모습도 다시 비춰볼 수 있는 썩 괜찮은 거울인 셈이다.
글/조우석 문화평론가
< 출처 : 데일리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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