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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단편소설> 소백산 사람들

鶴山 徐 仁 2012. 10. 5. 21:52

 

 단편소설

소백산 사람들

정소성

 

윤호와 갑식이 중 누가 더 출세를 했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런지도 모르겠다.


환갑을 지난 나이에 누가 더 유명해지고 누가 돈을 더 벌었다는 사실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는가. 그들에게는 노화와 병고와 죽음이 목전의 일이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들 하는 소리로 출세는 윤호가 더 했고, 돈은 갑식이가 더 벌었다고들 한다. 하지만 두 사람 다 기복이 심한 일생을 살아서, 오히려 시골에 묻혀 면서기나 하고 조용히 살다 병으로 먼저 간 을구를 더 치는 사람도 있다.


갑식이는 사실 무시할 수 없는 재력을 지난 사람이다.


갑식이는 서울에 꽤 큼직한 빌딩을 두 채, 부산에는 무려 세 채를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는 지독한 근검절약과 부동산 그리고 어물도매로 일어선 사람이라는 소문이다.


갑식은 돈을 버는 과정에서 너무 지독하게 굴어서 친척들이나 고향 사람들에게 실인심을 하였다. 그래서 사실 그는 그의 주변 사람들에서는 인기가 별로 없다.


얼마나 인간다운 삶을 살지 않는가는 그가 단 한 번도 재경, 재부 향우회에 얼굴 한번 내민 적이 없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알만하다.


그러나 갑식은 정확하게 향우회 일년 회비 3만원 만큼은 매년 정확히 향우회 온라인 계좌로 부쳐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가 그래도 고향을 잊고 있지 않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으리라.


“씨브랄, 몇 백억을 은행에 넣어 놓았다는 자식이 겨우 3만원이야...더러버서...야들아, 그 돈 받지를 말자아!”


만년총무라는 별명을 가진 병헌이 갑식이의 연회비 입금을 알고서는 언제나 내뱉는 말이다. 적어도 백만원 이상은 기대하다가 번번이 기대가 무산되니 터져나오는 불멘 소리다.


“은행에 맡겨놓았다는 그 많은 돈, 동창회를 위해서 일년에 백만원도 못쓰나, 켁 켁...”


가끔 고향에서 서울에 올라와 동창회 사무실에 들르는 을구도 켁켁거리면서 갑식의 인색함에 분노를 터트렸다. 그는 신병을 오래 앓았다.


“무신 소리고! 을구 니는 입을 다물어라, 제발. 니는 을구 돈을 이자 없이 쓰는 유일한 놈이라면서! 무신 할 말이 있다고!”


병헌이 소리쳤다. 을구는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예외적으로 갑식에게서 우대를 받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을구 마누라가 어린 시절 갑식의 짝사랑이었다나 그런 알쏭달쏭한 소문이 돌아다녔다.


몇 년에 한두번씩 안동 들어가는 예고개 언덕에 잘 빠진 승용차 한 대가 멈쳐서서 여기 산정리를 한참동안 내려다보다가는 떠나곤 하는데 그것이 바로 갑식의 차라는 정말 믿을 수 없는 소문이 여기 산정리 사람들 사이에는 퍼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이가 몇 살인데 환갑 진갑 다 지난 나이에 그때 50년도 더 전의 아이들간의 연정같은 걸 가지고 무슨 이야기를 붙일 수 있단 말인가.


“윤호는 무신 생각을 할까?”


“물어보나 뻔한 거지뭐...윤호하고 갑식이하고는 기름하고 물이데이...그거야 조상들은 안그랬는데...참 이상도 하다 이 말이다....”


“그래봤자, 주인하고 머슴이지 별 수가 있나! 그래서 틀어진기다!”


“윤보가 암에 걸려 죽어가는데, 갑식이가 주인집 젠지를 사준 것은 자신를 위한 것이 아니었고 결국 주인을 위한 것이었다 안 카나!”


윤호네가 가산을 탕진하고 그 많던 토지들이 갑식이네로 넘어간 것은 윤호의 형 윤보의 병치레 탓이었다. 가난했던 그 시절 페암은 곧바로 사망선고였었다. 그래도 윤보는 전지 판 돈으로 좋은 약을 쓰고 좋은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있었기에 근 삼년이나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그러자니 윤보네의 재산이 거덜이 나고 말았다.


당시 산골 마을에는 토지 이외에는 별다른 재산이란 것이 있을 수 없었다. 갑작스레 토지를 내어놓으면 살 만한 마땅한 사람이 없기도 했다.


주인집에서 새경을 받아 착실히 모아두었던 갑식이는 아주 좋은 값으로 시의적절하게 주인집에서 나온 토지를 사들일 수 있었다.


“윤호가 어려워졌다는 소문이던데...”


고향을 떠난 윤호네는 서울 청량리에서 크게 일어섰고, 게다가 윤호가 검사가 되는 사법시험에 붙어 기우러지던 가세가 크게 일어섰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윤호는 여기 산정마을이 포함된 지역구에서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그러나 국회의원을 늙어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요즈음 법관도 국회의원도 그만 두고 집에서 하는 일 없이 소일하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하기야 별달리 뚜렷이 하는 일이 없잖능가! 그러니 별다른 수입이 없을게야 아마!”


“설마 이 사무실 비우라고는 하지 않겠지!”


이들은 소백산맥 아래 작은 산촌 출신들이다.


산악이 깊어 언제나 산그늘에 가려 있는 산동네였다.


6.25가 끝나고 겨우 십년 세월이 흐른 후였다. 그러니 나라나 개인들이, 특히 농촌사람들이 가난에 찌들대로 찌든 상태였다.


보릿고개 때는 농촌사람들은 생보리를 쪄서 먹거나, 산에 가서 나무줄기의 껍질을 떠와서 먹고서는 겨우 생명을 부지하던 세월이었다. 하도 배가 고파 어린아이를 삶아 먹는다는 흉흉한 소문도 돌았다.


그 동네에서 윤호네는 단연코 논 스무 마지기를 부치는 부농이었다. 전라도 호남평야에 가면 논 스무 마지기라면 조족지혈이다. 그러나 이런 산골마을에서는 논 열 마지기만 부처도 부농이다. 논 열 마지기만 되면 한여름에도 이밥을 먹을 수 있다.


이 마을에는 동네 어구에 작은 샘물터가 있었다. 이런 지독한 돌산마을에 이런 샘물이 있다는 것이 기적이었다.


그리고 이 샘물은 아무리 가물어도 도무지 마르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가물면 가물수록 더 차갑고 맑은 물이 풍부히 샘솟는 것이었다.


원래 이 샘물터는 을구네의 집터 안에 있었다.


시골에서의 집터란 대부분 2,3백평은 되고 거의가 널직한 터밭을 끼고 있다. 그 터밭 한쪽 귀퉁이에 이 샘물이 있었던 것이다.


동네가 평지에 성동된 것이 아니라, 조금 비탈진 골짜기 같은 땅 위에 들어서 있었고, 을구네는 가장 아래에 위치해 있어서 그래서 그들의 집터 안에 샘터가 생긴 것이다.


윤호네 집터는 바로 을구네 집터 바로 위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대지가 300평은 넘을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을구네 집터는 윤호네 집 마당이 끝나는 데서 축대를 쳐서 뒷담으로 하고 있었다. 윤호네 마당 끝에서는 을구네 집과 뒤안, 그리고 샘터가 한 눈으로 보였다.


그러나 샘터는 조금 옆으로 언덕에 비켜 있어서, 위치가 낮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샘물이 있다하여 동리 이름도 산정리(山井里)라고 지어졌다.


이 샘물터가 을구네 집터 안에 있을 때만 해도, 샘물터는 천연의 것 그대로 였다. 그러니까 무슨 나무덮게라든가, 네 다리 달린 커다란 천정같은 것을 해달지 않았던 것이다.


샘물을 길으러 오는 사람들은 물론 동리아줌마들이거나 처녀들이었다.


그러나 무슨 이 유인지는 모르지만 아줌마들이 여기로 샘물 길으러 오는 경우는 퍽 드물었고, 대부분이 그집 처녀들이 긴 댕기머리를 흔들면서 옹기를 이고 샘물을 길으러 오곤 했다. 처녀가 없는 집에서는 새댁들이나 나이 지긋한 아줌마들이 옹기를 이고 물 길으러 오곤 했다.


하(下) 산정리 사는 풍호의 맏딸 예선이도 여기 상(上) 산정리 을구네 샘터로 물을 길으러 다녔다. 풍호는 자기 전지는 한 뙤기도 없는 가난한 농군이였다. 그는 윤호네 논 세 마지기와 밭 열마지기를 추수하고 나서 도조(賭租)로 반을 내주는 도지를 부치고 있었다.


예선이는 동갑네기들인 윤호 갑식이 을구보다가는 네 살 정도 아래였는데, 물찬 제비처럼 예뻤다. 그것은 다들 아비 풍호를 빼닮은 미모라고 동리사람들은 쑤군거렸다.


풍호는 가난을 면해 볼 요량으로 윤호네 땅을 도지로 경작하는 한편, 이발 기술을 배워 동리사람들의 머리를 갂아 주었다.


머리를 한번 갂아주면 보리쌀 한 됫박씩을 받았는데, 대부분 여름철 보리추수기에 몰아서 받았다.


풍호가 이발기계를 꼰아쥐고 머리를 갂을 때는 그의 대나무처럼 반듯하게 선 콧날이 넘어가는 석양에 비껴 선명하게 빛이 났다. 게다가 그는 대리석같은 피부를 가지고 있어서 이 서양의 비너스처럼 빛나는 콧날과도 잘 어울렸다.


“자네 풍호, 자네는 무신 양코쟁이같은 콧날을 가졌나! 멀리서 보니 자네 마치도 양코쟁이같이 보이네 그려...”


점잖기로 소문난 윤호아비 오록어른이 한 마디씩 하곤 했다. 그러니까 오록어른은 풍호의 도지 주인이다.


“뭔 무신 그런 말씀을...껌둥이 말고는 양코쟁이 구경을 6.25 때 딱 한번 하고는 본 적도 없십니더...”


“아비 닮아 딸자식이 물찬 제비처럼 예쁘단 말일세.”


“다들 그렇게도 말해주니 기분이 좋습니다만 제가 양코쟁이 닮았다는 말씀만큼은 하지 말아 주이소.”


“내만 그런 생각을 하는 기이 아니라, 소천이나 물야도 그렇게 생각하더라고...”


소천은 을구 아비의 택호이고, 물야는 갑식의 어른 아호이다. 다들 이 산골지역의 마을이름들인데, 자신의 마누라의 친정동네 이름이다. 이 고장에는 한 사내의 택호를 정할 때 집 사람의 친정동네 이름을 그대로 부르는 오랜 관습이 있었다.


오록이니, 소천이니, 물야니 하는 이들 어른들의 택호는 여기 산골지역의 어느 동네나 면소재지의 이름이었다.


“아직은 예선이가 어리지만, 장차 덩치 큰 처녀가 되마 어느 사내놈의 택호가 산정이 될런지 다들 궁금하게 생각들 하고 있네. 자네 알고나 있는가?”


“아이고 무신 그런 말씀을! 아직 이마에 쇠똥도 벗겨지지 않는 아이를 가지고서! 말도 아입니더!”


“저 단발머리 가시나가 한 두 해 후에는 엉덩짝 흔드는 처녀가 되네. 자네 딸아이를 잘 간수하라고!”


“아이고 잘 알았십니더. 듣고 보니 맞는 말씀입니더...”


오록어른은 예선의 뛰어난 미모를 언급하다가 엉뚱한 주문을 하고 말았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자신의 둘째 아들놈인 윤호가 자기 아랫집인 을구네 샘터로 물 길으러 오는 예선이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눈치이기 때문이었다.


아이들 노는 것을 가지고 이런 생각을 하면 주책이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오록어른은 본디 눈썰미가 뛰어나 그가 찍는 말은 틀림이 없이 그의 생각대로 진행되는 것이었다.


언젠가 윤호가 을구를 마구 두들겨팼다. 단단한 마빡으로 을구의 콧잔들을 들이받아 코피가엄청나게 흘렀다. 코뼈가 부러지는 중상은 면했지만, 어린 을구는 혼비백산했던 것이다.


큼지막한 옹기에 샘물을 가득 채운 예선이가 그걸 머리에 이다가 샘터 비탈에 미끄러져 넘어졌다. 결국 옹기는 깨어지고 말았고, 예선이는 나동그라졌다. 자기 마당에서 이 장면을 보고 있던 을구가 뛰어와서 예선이를 일으켜세우고, 자기 어미인 소천댁에게 이야기해서 자기네 집 옹기를 내어주었고 이번에는 자신이 도와서 무사히 예선이가 물을 길러 가게 했다는 것이다.


“을구 니 말이다, 예선이가 샘터에 나타나마 얼씬도 하지 말거래이! 얼찐거맀다가는 이번에는 정말로 코뼈가 불어질기다마! 알았제!”


“알았다, 알았다, 하지만 예선이가 날 부르마 우짜노?”


“니를 부를 턱이 있나, 정 그라마 니가 우리집으로 나를 불러라! 콘 목소리로! 그라마 내가 옹가지를 가지고 뛰어올기다! 알았제!”


“오록아지매가 옹기를 안주마?”


“야 이노마야, 너거 엄마 소천아지매는 옹기를 주고 너거 보다 몇배나 더 부자인 우리 어메가 옹기를 안줄 턱이 있나!”


“아이다, 너거 어메하고 너거 아부지하고 무섭다고 소문이 나 있다 아이가! 옹기같은 거 절대로 안준다카더라.”


“요느마 새끼가! 우리 아부지하고 어메를 욕하다이!”


윤호는 또다시 달려들어 을구의 얼굴을 묵사발을 만들어버렸다. 을구의 얼굴에서는 코피가 낭자하게 흘렀다.


당시만 하더라도 윤보가 살아있던 때라,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오록어른이 맏아들 윤보를 내려보냈다. 윤보는 윤호와 을구를 떼어놓았다.


“윤호야, 물러서거래이. 을구는 나쁜 아이가 아이다. 니 말이다, 생(형) 말을 듣지 않을래!”


“생이는 콜록 기침이나 우째 잘 해봐! 을구 이 짜식 샘 자기네 꺼라고 너무 덤벼짢아!”


윤호는 윤보에게 끌려가면서도 분을 참지 못하겠다는 투다.


동갑네기들인 윤호, 갑식이, 을구가 읍내에 있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 때, 풍호의 딸인 예선이가 역시 이 학교에 입학하였다.


산골 네 아이들은 언제나 같이 숙티재를 넘어서 학교에 다녔다. 하교길은 함께 하지 않을 수도 있었으나, 등굣길만은 언제나 같이 뭉쳐서 다녔다. 동네어른들이 그렇게 시켰다. 하교길도 가능하다면 같이 다녔다.


“너거 언제나 몰리서 다니거라. 재 넘다가 문딩이 덤비마 같이 덤비거라. 그라마 고노마들도 도망을 칠끼다!”


“알았구마.”


“그라고 예선이는 알라니까, 너거들이 뒤로 빼내서 문딩이가 업어가지 않도록 해야한다!”


“알았십니더!”


윤호와 갑식이 그리고 을구는 자신의 주먹을 어루만지면서 어른들을 안심시켰다. 이들은 팔뚝길이만한 참나무 작대기를 하나씩 가방 속에 넣어서 다녔다. 그런 무서운 사람이 나타나면 작대기를 휘둘러 그를 제압할 요량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에 불과한 이들 아이들이지만, 험한 산야에서 들일과 산일을 해서 힘이 올라 장사 못지 않았다. 산일이란 주로 나무를 하는 것을 말한다. 어른들은 집안의 뗄 나무만큼은 이들 아이들한테 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흉약한 사람의 출현이 아니었다. 숙티재 아래로 흘러서 내성천으로 빠지는 꽤 넓은 개천이 있었는데, 장마가 지면 건너기가 예사로 힘들지 않았다. 엉성한 나무다리같은 것이 수시로 장마에 떠내려가기 때문이었다.


산정마을 사내아이들 세 명은 그래도 용케 이 불어난 개울을 잘도 건너갔다. 책과 도시락과 옷가지들은 조그만 보따리를 만들어 머리에 인 채로 얼굴 아래 턱밑으로 끈을 묶어서 고정시키고 알몸으로 도랑으로 뛰어들어 건넜다.


그러나 문제는 예선이었다. 조그만 계집아이가 청년이 다된 사내아이들 흉내를 낼 수는 없었다. 세 사내아이들 중 하나가 그녀를 업거나 어깨에 무등을 태워서 건너는 도리밖에 없었다.


“야, 순(선)이는 우짜마 좋겠나?”


세 사내 아이들은 자기들이 우선 개천을 건너가는 것이 급해 예선이가 자기들처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예선이가 혼자서 개천 건너편에서 징징거리며 울고 있었다. 개천에 뛰어들기도 했지만 물살이 너무 세차서 여자아이는 도로 뒤로 물러서곤 했다.


세 사내 아이들은 벗어서 이고 왔던 옷가지들을 주워입다가 다들 손을 놓고 서로들 쳐다보았다. 자기들이 큰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가시나가 떠내려 간다마...내가 가서 업고 올끼다!”


윤호가 팬티만 주워입고 몸을 돌렸다.


그러나 잠시 뜸을 들여, 갑식이가 나섰다.


“윤호야, 내가 업고 올끼다. 내가 풍호 아제하고 약속을 안했나. 이런 일이 있으마 내가 순이를 제일 먼저 업고 건너기로 울 아부지하고 풍호 아제가 약속을 했고, 내한테 우리 아부지가 단디이 다짐을 했다마! 너거는 상 산정이지만, 우리는 하 산정에 바로 옆집에 산다 아이가!”


갑식이는 조금 이상한 데로 생각의 갈래를 이끌어갔다. 좀 못한 동네에 이웃하고 사는 사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좀 나은 동네에 사는 윤호네와 을구네에 대한 반항의 감정을 말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것이 별것 아닌 것같지만, 산악 속에 갇혀 사는 산골동네 아이들에게는 분명 이런 차등의식이 깃들이 있었다.


갑식이는 벌써 팬티를 주워 입고 개천으로 뛰어 들었다.


그런데 을구도 나섰다.


“너거 켔사도 순이가 진짜로 자기를 업어서 개천을 건네주기를 바라는 아는 바로 내데이! 순이한테 한번 물어볼까! 너거 뒤로 물러 서거라!”


평소에 고분고분하던 을구가 아니었다. 한번 해볼테면 해보자는 식으로 나왔다.


세 사내 아이들은 누구든 먼저 개울의 건너편에 닿으면 예선이를 업고 개울을 건너올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규약이라도 있는듯이 마구 물살을 가르면서 건너갔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 보니, 갑식이가 먼저 개울 저편 예선이가 앉아서 눈물을 짜고 있는 데 닿았다. 이어서 을구가 이르렀고, 윤호는 꼴찌였다.


세 사내 아이들은 거센 물살을 헤치고 왔기에 다들 씨근덕거렸다. 윤호가 나서면서 호기있게 말했다.


“너거들, 뒤로 비켜서거라. 내가 순이를 업고 개천을 넘을끼다. 순이가 그걸 제일 바랄 끼다. 그렇제? 순아!”


“...”


그러나 윤호의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예선이는 그렇다는 대답을 딱부러지게 하지 않았다.


갑식이가 나서서 자기냐고 물어도 예선이는 역시 대답이 없었다. 을구도 마찬가지였다.


“순이가 너무 어려서 그러니 우리 씨름을 해서 결정을 하마 어떻겠노?”


윤호는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했으나 무턱대고 화를 낼 수도 없는 모양이었다.


“맞다, 윤호 말이 최고다. 허지만 씨름은 윤호가 잘하는데...”


을구가 나섰다. 이렇게 되니 갑식이도 윤호의 제의에 찬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녀석들은 개천가 모래판에서 한바탕 씨름판을 벌렸다. 결국 윤호가 최후로 이겼다. 윤호는 씨름에 한가지 그만의 기술이 있었는데, 내다메치는 기술이 그것이었다. 그의 이 기술에는 학급내에서도 당할 학생이 없었다.


사실 뚝심으로는 윤호는 갑식이를 당해내지 못했다. 그러나 갑식이는 이런 그만의 씨름기술이 없었다. 일 대 일로 마구잡이로 붙으면 윤호는 갑식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씨름판에서는 이야기를 달랐다.


갑식이와 을구를 씨름으로 제압한 윤호는 예선이를 업고 개울을 건넜을 뿐만 아니라, 개울을 건너놓고도 그녀를 내려놓지 않고 계속 업고 재를 넘었다. 그래도 예선이도 그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윤호는 이렇게 덩치 큰 여자아이를 업어본 것은 처음이었고 그리고 그의 전 생애에 마지막이었다. 그런데 그때 자신의 등판에 그렇게 찰싹 붙어오던 예선의 살 감각을 지금도 잊을 수 없었다. 결혼 후 아내를 업어보아도 그런 감각은 도저히 느껴져 오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몇 달의 세월이 흐른 후, 윤보가 세상을 떴다.


윤보가 세상을 뜬 후 서너달이 지났을 때, 윤호 아비 오록어른은 을구 아비 소천어른집을 방문했다. 이런 촌구석에 무슨 방문이라는 단어는 격에 맞지 않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지방 소백산 아래 동네에는 이상스럽게도 이런 사람들의 예의 범절같은 것이 남아 있어서 다들 말이나 행동을 점잖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소천이 있는가?”


“아이고, 오록 어르신 우짠 일이십니껴?”


“저녁 먹고 그냥 마실 나왔네. 조금 들어가도 되는가?”


가난하게 사는 소천네가 무슨 사랑채가 있을 턱이 없었다.


요새 세상에 그런 것이 없다고 하지만, 자기에게 도지를 주고 있는 오록어른은 소천네에게는 가히 상전과도 다르지 않았다. 소천은 오록을 자신의 윗방으로 모셨다. 무슨 할 말이 있어서 온 것이 틀림이 없었다.


“우짠 일로 이렇게 아무런 기별도 없이 내려오셨능교?”


“이 사람아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사는 우리가 기별은 무신 기별인가!”


그러나 오록어른은 오다가다 우연히 들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오랫동안 생각했다면서 윤보란 놈이 오래 몸져 있어서 막상 소천에게 말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놈이 저 세상으로 가고 없으니, 이제 자식이라고는 아들 한놈 윤호만이 남아 있는데 녀석의 원을 들어주는 도리밖에 없다고 하면서 입을 뗐다.


“무신 말씀이신교? 무신 말씀이라도 하이소!”


“자네 집터를 시가의 두배로 나에게 넘겨주게나!”


“내 집! 내 집터를요!”


소천은 너무나 놀라 어안이 벙벙했다.


윤보가 살아 있을 적부터, 윤호가 아랫집 소천의 집터를 사자고 졸랐다. 그러나 윤보의 병에 정신을 빼앗긴 오록어른은 둘째 아들놈의 뜬구름같은 말에 전혀 귀를 기우리지 않았다.


그러나 아들 두 놈 중 큰 놈이 세상을 뜨고나니, 둘째 놈의 요구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소천은 마다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지금 자기 집의 터는 흔히들 인근에서 한 2천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그러면 오록의 말대로 하면 4천만원인데, 하 산정리로가면 이만한 땅은 천만원이면 살 수 있다. 나머지 3천만원이면 상당한 논과 밭을 그야말로 자기 이름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꿈같은 일이었다. 자기 논 한 마지기, 밭 한 뙤기 없는 서러움을 면할 수 있는 것이다.


“지가 뭐 할 말이 있겠십니껴! 그저 오록어른 하라는대로 하겠십니더!”


결론은 간단히 났다.


빈 집이 된 을구네 집을 수리한 오록네는 그 집에 외동아들 윤호의 공부방을 차려주었고, 아직 장가를 보내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그의 집으로 삼았다.


윤호는 아침 저녁으로 물 길으러 오는 예선에게 지극정성으로 물을 길러 옹기에 담아 주었고 그리고 또 일으켜 세워 머리 위에 얹어도 주었다. 서양인처럼 오똑한 콧날과 대리석처럼 메끄럽게 빛나는 예선의 피부는 도무지 그녀를 산골처녀로 보지 않게 했다.


그런 일이 있고나서 꽤 세월이 흐른 후, 이제 청년이 다 된 윤호가 객지에 나가 공부를 하다가 잠시 귀향하러 야간에 숙티재를 넘다가 문둥이를 만난 것이 아니라, 얼굴을 가린 괴한을 만나 몽둥이로 무진 얻어맞아 반 병신이 된 사건이 발생했다. 새벽에 피투성이가 되어 허옇게 뻗어있는 윤호를 동네사람들이 발견하여 지게에 지고 왔던 것이다. 다행히 병신은 면했지만 윤호는 사람이 달라졌다. 더 이상 산정마을에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아비인 오록어른에게 자주 하는 것이었다. 그는 산정마을에 만정이 떨어졌다고 했다. 그 괴한이 누구인지 끝내 밝혀지지 않았지만 뚝심이 보통이 아니었다. 급습을 받은 윤호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기에 괴한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었다.


오록 어른의 가세가 결정적으로 기운 것은 역시 맏아들 윤보의 병치레 탓이었다.


기운 가세 탓이었을까 아니면 외동아들 윤호의 요구탓이었을까, 오록은 남은 전지를 다 팔아서 서울 청량리로 솔가했다. 산정 마을과의 인연이 끊어진 것이다. 한번 서울로 이사간 오록집안은 좀처럼 산정마을로 내려오지 않았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청량리시장에서 고무신 장사를 하여 큰 돈을 벌었다는 것이다.


윤보의 병치레 탓으로 큰 돈이 필요했던 오록어른의 요구로 그 집 땅을 사들였던 갑식이는 부농이 되었다.


그러나 갑식이네도 산정마을에 더 오래 살지 않고, 땅과 집을 을구네에게 헐값으로 팔고 부산으로 솔가하였다.


그래서 을구네는 다시금 상 산정리로 이사를 왔다. 자기네가 옛날에 살던 집과 옛날 자기에게 도지를 주던 윤호네 집까지 다 가지게 된 것이다.


을구는 아주 자연스럽게 예선이와 결혼하였다. 도무지 고향에는 그들 두 사람 이외에는 혼인할만한 처녀 총각이 없었던 것이다.


갑식이네는 부산에서 어물장사를 하여 큰 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고향에 퍼졌다.


그러나 갑식이도, 윤호도 서울로 부산으로 나가 다들 장가를 들고 사업들이 번창하고 검사가 되는 등 출세를 했지만 고향 산정리를 찾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 특히 윤호는 고향에서 단 한번 국회의원 노릇을 하고서는 재선에 실패한 후 고향에는 얼씬을 하지 않았다.


근 20 여년간 고향에는 얼씬을 하지 않던 윤호가 국회의원에 입후보했을 때, 사람들은 다들 반가운 마음 반, 미운 마음 반이었다고 한다. 그가 헌신짝처럼 버렸던 고향을 완전히 잊지 않고 찾아준 것은 고마운 마음이었고, 하지만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유력 정당의 공천을 받아 고향을 찾아준 것은 미운 마음이었다.


하기야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고향에 나타나준 윤호에게 다들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돈을 벌었다는 갑식이는 도무지 어디에 사는지조차도 알려져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갑식이는 지 애비 묘소도 서울로 이장을 해 가버렸다.


하지만 윤호가 고향을 잊지 않고 찾아준 사실이 반가워서 다들 죽을 힘을 다해 그의 당선을 위해 뛰었다.


선거운동 기간 중 윤호는 딱 하루밤 산정리 을구네 집에서 잔 적이 있었다. 지금은 을구네 집이지만 수십년 전에는 자신의 집이었다.


아침에 밥상을 차려 들고 들어오는 을구 부인 예선이를 보고서는 을구는 벌떡 몸을 일으켜세우더니 기이하게도 아무런 인사말도 하지 않고 그만 아주 낮으막한 목소리로


“어...”


했다. 옆에 있던 을구가


“몰랐나? 예선이가 내 마누라야. 할망구야. 아들과 딸년이 대학을 나왔네. 당시 자네들 다 떠나고 나 혼자 남았으니 당연한 것 아닌가...총각은 나밖에 없었으니...”


했다.


“...”


아들과 딸을 대학을 시킨 나이라고 하면 도대체 얼마의 세월히 흐른 것인가. 적어도 30년 세월은 흘렀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밥상을 들고 눈을 아래로 내려간 채 들어오는 여인은 도무지 시골 냄새가 나지 않는 현숙한 품위에 특유의 대리석같은 피부를 하고 있었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어허...윤호 무슨 인사말 한 마디는 해주게나. 너무 오래만에 만나서 할 말이 없는가. 그래도 옛날 코 찔찔이 시절에는 애인이었잖어...하기야 촌 할망구를 생각이나 했겠는가마는...내가 예선이를 좋아한다구 날 얼마나 두둘겨패기까지 했었나...”


“무슨 그런....”


“여보, 나가 있어. 의원님이 할 말이 없는가봐...”


문을 향해 발걸음을 떼어놓는 예선을 향해 윤호는 천천히 입을 뗐다.


“아니, 아니...대리석 풍호 어른께서는...?”


“...”


친정 아버지의 생사여부를 묻는 윤호의 질문에 예선이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문을 열고 나갔다.


“장인 어른 돌아가신지가 올해로 스무 두 해쨀세. 세월이 너무 빠르구만...”


윤호가가 재선에 실패한 것은 산정리 사람들의 후원이 첫 번과는 달랐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당선되고 나서는 그는 기이하게도 고향을 자주 찾지 않았다. 그는 분명히 옛날의 윤호가 아니었다. 윤호를 산정리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은 산정리 사람들의 착각이었다. 그는 분명 서울사람이었다.


고향에 어른들의 산소가 있지만, 벌초하러 오는 법도 드물었다. 삼년에 한번 꼴로 사람을 시켜서 벌초를 하는 듯했다.


흐르는 세월 속에서는 모든 것이 파묻혀 버리고, 가루가 되어 없어지는 법이다.


그래서 많은 세월이 흐르고 나서 보면, 있었던 것이 전부 없어지고 없었던 것처럼 변해 버린다. 이렇게 환경이 싹 변해 버리려면 대략 100년의 세월은 필요한 것같다. 그것은 인간의 생명이 대략 7,80이고, 한 사람이 죽고 나서도 한 2,30년은 지나야 그의 삶의 흔적이 지워지기 때문이 아닐까.


환갑을 지낸 윤호의 인생 이야기가 거의 끝난 것같은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하다. 재선에 실패한 그는 한 동안 절망감 속에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더니 모든 것을 털고 일어나 서초동에 법률사무소를 내고 서서이 재생의 기지게를 켜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법관을 지낸 적이 있기에 분명 변호사 자격을 갖춘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정치퇴물로 낙인이 찍혀 그의 법정변호는 먹혀들지 않았고, 그래서 의뢰인들이 거의 없었다. 그는 먹고 살만큼의 여유는 있었기에 그냥 소일하기 위해 사무소에 나오고 있었다.


동창회 사무실은 그가 옛날 정치활동하던 시절 사무실로 쓰던 것이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윤호는 그것을 거두지 않고 동창회에 기증하여 사무실로 쓰게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동창회를 통해 고향으로 향하는 정신의 한 갈래를 가지고 있다는 뜻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날 윤호가 동창회 사무실에 나타났다. 그가 자신의 소유인 이 사무실에 얼굴을 나타낸 것은 아마도 동창회가 입주를 할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윤호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동창회 사무실에 나타난 것이다. 그는 몇 년간 자신 소유의 이 사무실에 대해 동창회 측에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고향의 동창들은 그의 배려에 감사하고 있었다. 이 정도의 사무실을 싯가대로 얻으려면 일억에 월 2백만원은 주어야 한다는 것을 동창생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이고 자네가 우째 여기에 다!”


만년 총무 병헌이 벌떡 몸을 세우면서 그를 맞았다. 너무나 뜻밖의 일이었다.


“왜 그렇게 놀라노! 내가 못 올 데를 왔나...동창생이 동창회 사무실에 오는 기이 무신 큰 일이라고...”


“그야 맞는 말이지. 하지만 자네는 여길 전혀 오지 않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아이가...”


“거참 섭섭한 말이다...그래 별고는 없는가?”


“그럼 별 일이 있을 턱이 없지...자네 덕분일세. 이만한 사무실을 지키니 자연 동창생들이 오다가다 여기로 꼬이게 되더라고! 그래서 잘들 모이고 잘들 만나서 웃고 그래 밥도 묵고 막걸리도 마시고들...”


“그것봐! 사람이건 단체건 하물며 민족이건 나라건 우선에 그것이 붙박고 살 땅과 집이 있어야해! 모든 것은 그 다음의 일이야...”


“갑자기 무슨 말이고? 변호사 나으리의 말을 알아듣기야 하겠네만 깊은 뜻을 모르겠데이!”


“변호사가 무슨 나으리고...그냥 심부름꾼이야...그런데 병헌이...”


윤호는 내오는 커피를 마시면서 정색을 했다.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온 것이 분명했다. 수년간 단 한번도 발걸음을 하지 않던 그가 이렇게 갑자기 불쑥 나타날 턱이 있는가.


“으음 무슨 말이든 해 보더라고...”


병헌은 방 빼라는 말이 나올까봐 적이 긴장하는 눈치였다. 윤호는 정색을 하면서 상체를 기우리고 목소리를 낮추어 천천히 입을 뗐다.


“저어기, 산정리 을구네 아래 위 집터 말일세, 그거 원래는 우리집안 거였잖는가...”


“그야...”


병헌은 방 빼라는 말이 아니어서 우선은 안심하는 투였다. 그러나 주제가 너무나 뜻밖이라 그의 두 눈은 화등잔만하게 떠졌다.


“그거 내가 도로 살 수 없을까?”


이 말을 하는 윤호의 시선은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눈 앞에 있는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머릿 속에 있는 어떤 영상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윤호야, 니 무신 소리하고 있노? 제 정신이가! 그 산골땅 사서 뭐할라고! 다들 농촌사람들... 집 버리고 도시로 간 사람들 탓으로 구신 나오는 폐가가 을마나 많은데....”


“그라마 그 집도 버려져 있나?”


“그 집에는 오갈 데 없는 을구 마누라가 그대로 산다 카드라...머리 하얀 할망구가 돼 갖고...”


윤호는 심부름하는 여자아이에게 녹차를 거듭 시켜 마셨다. 그는 깊은 생각에 잠기는 눈치였다. 한 참 뜸을 들인 그는 천천히 입을 뗐다.


“시세에 두 배 내지는 세 배를 준다고 하고 교섭을 해 다오...그 땅을 사서 적벽돌로 큰 집을 지을 작정이다. 원하신다면 을구 부인이 그 새 집을 죽을 때까지 살아도 좋다고 캐라...”


“그래 자네 원이 그렇다면 내가 나서주지. 총무가 하는 일이란 원래 그런 거 아이가...걱정 말아라. 한 2주는 말미를 다고. 내가 직접 고향에 한번 다녀오꾸마. 내가 직접 해야지 사람을 시키마 말쌍난데이...”


“병헌아, 고맙다. 그라고 무신 말썽이 나지 않도록 우리 둘만 알고 있자. 그쪽 할머니에게도 그렇게 말해 도라.”


“걱정말거라. 을구 할망구 입조심 단디이 시켜놓을끼다...”


윤호는 여비에 보태쓰라면서 수표 두 장을 꺼내놓고 나갔다.


병헌이 말한 2주가 지나고, 윤호가 동창회 사무실로 그에게 전화를 했다. 부탁한 일의 결과를 알고 싶어서 였을 것이다.


“윤호야, 내가 직접 산정리로 가서 할무이도 만나고 아들도 만났다. 그런데 너무 놀라더라. 자네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카드라. 그런데 우리 동창생 그 자식... 이름이 갑자기 생각이 안나네...지독한 놈...그래 그래 참 안갑식이라고 돈 벌었다는 놈이, 작년이던가 한창 가뭄이 심해서 산정사람들 집, 논, 밭 헐값으로 내다팔고 이농하던 때, 그래도 을구네의 땅만큼은 제값쳐주고 사버렸다고 하던데...놈도 여기에 거창한 기와집을 지을 작정이라고 카드라...자네하고 똑같이 을구 할망구를 늙어죽을 때까정 살게한다 카등가...”

 

정소성,

1977년, 현대문학 추천료

서울대, 그르노블대 수학,

단국대명예교수

동인문학상, 윤동주문학상, 월탄문학상 등 수상

단편집 <아테네 가는 배>등 5권

장편소설집 <설향>등 열다섯편

 

 

출처 : 경대사대 부중고1215회 동기회
글쓴이 : 정소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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