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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事 資料 綜合

주인 찾아 30년 키드급 구축함/ 조선일보

鶴山 徐 仁 2012. 2. 26. 10:45

입력 : 2012.02.22 19:43

미 해군 소속으로 활약하던 당시의 DDG-993 키드. 원래 예정되었던 함 명은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한 위대한 황제이자 이란인들에게 건국의 아버지로 알려진 키루스 2세였다.

무기도 하나의 공산품이므로 생산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많이 팔고 싶어 하고 수요자 입장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좋은 품질의 것을 구매하려 한다. 따라서 한국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 도입 사업(FX)처럼 고가의 무기 도입 시에는 복수 납품 예정자들의 경쟁을 유도시켜 구매하는 방식이 최근의 일반적인 거래 패턴이다. 이처럼 무기의 생산과 수요도 경제적인 원리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무기가 일반 공산품과 다른 점은 정치적인 변수가 경제적인 그 어떤 요소보다 크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가장 큰 이유는 수출국의 의도에 반하여 무기가 함부로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따라서 무기는 단지 의사만 있다고 하여 마음대로 매매될 수 없고 주로 한정 된 국가 사이에서 거래가 이뤄지는 공산품이기도 하다. 그런데 국제 관계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가변적이므로 최초 계약 당시와 달리 거래가 불가능해 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그중 진정한 주인을 찾기까지 무려 30년을 방황한 키드(Kidd)급 함대 방공용 다목적 구축함(DDG)은 이 경우에 해당되는 가장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좌)항공모함 칼빈슨과 작전을 펼치는 DDG-994 캘러헌, 원래의 이름은 나디르
(우)키드급 3번 함으로 미 해군 소속 DDG-995 스코트 당시의 모습

'우방'에게 공급되기로 한 최신예 함


 

1973년 이란은 페르시아 만 제해용으로 사용할 4척의 최신예 구축함을 미국에 주문하였다. 지금은 견원지간이지만 샤(Shah)가 통치하던 당시 이란은 미국의 주요 원유 공급선이자 중동에서 소련의 남진을 막아내던 강력한 친미국가였다. 따라서 미국 외에 유일하게 F-14 전투기를 공급받았을 만큼 최신예 무기의 최우선 공급 대상국이었다. 이때 이란이 도입하기로 한 구축함은 1970년대 당시에 미 해군의 주력이었던 스프루언스(Spruance)급 구축함에다가 상위 전투함인 버지니아(Virginia)급 순양함의 전투 체계를 결합한 형태여서 최강의 스프루언스급이라 할만 했다.


 

이처럼 미국이 보유한 것 보다 더욱 강력한 동급의 구축함을 이란이 도입할 수 있었던 것은 미 해군이 획기적인 새 전투 체계인 이지스(Aegis)를 탑재한 새로운 전투함의 도입을 예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연하자면 무기 도입국이 하루아침에 적성국이 되거나 아니면 군사기밀이 소련처럼 적대 세력에 흘러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미국은 최신예 무기의 대외판매는 극도로 자제하며, 만일 판매가 이뤄지더라도 다운그레이드 형을 공급하거나 아니면 더 좋은 성능의 동급 무기가 미군에 도입되는 시점 전후에 대외 판매를 한다.


 

 

(좌)DDG-996 챈들러. 원래 예정 함명은 인도 델리까지 정복한 정복왕 나디르. 말년에 공포정치를 펼치다 암살되었다.
(우)대만으로 시집와 DDG-1805 마공(馬公)으로 바뀐 챈들러. 대만도 우리 해군처럼 함정 번호에 4를 사용하지 않아 함번이 1804가 아닌 1805가 되었다.

역사가 바꾼 운명 - 우방이 적국이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들이 키드급으로 불린 것은 아니었다. 1978년부터 본격적으로 건조에 들어간 4척의 신예 구축함은 페르시아-이란 역사에 있어 위대한 군주였던 키루스 2세(Kouroush), 다리우스 1세(Daryush), 나디르(Nader), 호스로 1세(Anushirvan) 의 이름으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이 때문에 '샤'급으로 불렸다.


 

그런데 1979년 이란에서 혁명이 발생하고 반미정권이 들어서게 되자 상황은 급변하였다. 양국은 순식간 서로를 증오하는 적대국이 되어버렸다. 이에 미국은 완공 직전에 있던 구축함의 인도를 거부하고 이들을 DDG-993 키드, 994 캘러헌(Callaghan), 995 스코트(Scott), 996 챈들러(Chandler)로 명명한 후 자국 해군이 운용하도록 조치하였다. 이때부터 이들은 키드급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런데 순식간 주인이 바뀐 키드급은 타이콘데로가(Ticonderoga)급 순양함과 알레이버크(Arleigh Burke)급 구축함이 미 해군의 주력으로 속속 등장하자 그 위치가 어정쩡하게 되었다.


 

동종의 여타 전투함들이 급속히 도태되면서 4척의 키드급 구축함을 별도로 유지기가 갈수록 애를 먹기 시작한 것이었다. 결국 1990년대가 되자 이들을 퇴역시켜 외국에 판매하기로 결정하였고 오스트레일리아와 그리스에 구매 협상을 벌이기도 하였지만 모두 실패하였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미 해군에서 이들을 아야툴라(Ayatollah 이슬람 성직자 호칭으로 호메이니를 빗댐)급 또는 전사한 제독(키드, 캘러헌, 스코트, 챈들러 모두가 태평양 전쟁에서 전사한 제독임)급이라 부르고는 했는데, 비록 이런 별명이 모욕적인 것이라 할 수는 없지만 미 해군 내에서 왠지 의붓자식처럼 여겨지고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정박한 대만 해군의 DDG-1801 기룽(구 스코트)과 DDG-1802 수아오(구 캘러헌). 이제 키드급 구축함은 기룽급 구축함이 되었다.

30년 만에 만난  새로운 주인


 

이처럼 제작국에서 조차 서자 취급 받던 키드급이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나게 된 것은 최초 주문이 이루어진지 30여년이 다 된 2004년이었다. 이들의 새로운 주인을 자처하고 나선 것은 중국의 방해로 신예 전투함 확보에 애를 먹던 대만이었다. 미국은 이들 함정을 대만에 공급하면서 중국의 대외 팽창을 적절히 견제할 수 있었고, 반면 최신예 함을 제공할 때 생길 수도 있는 중국의 반발도 억제 할 수 있었다. 더불어 건조한지 30년이 되가는 계륵 같은 함정들을 시원하게 처분하게 되었다. 1석 3조의 효과를 얻은 셈이다.


 

이들 함정은 대대적인 개수 작업을 거쳐 2005년 2척이 대만 해군에 인도된 것을 시작으로 2006년 전량 대만 해군이 취득을 완료하였다. 대만은 스코트 함을 초도함으로 인수하면서 이를 DDG-1801 기룽(基隆)으로 명명하였고 이때부터 사연 많았던 키드급 구축함은 기룽급 구축함으로 다시 한 번 그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이란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지게 되었지만 여러 상황으로 말미암아 이리저리 정처 없이 떠돌다 무려 30년 만에 주인을 찾게 된 키드급 구축함의 역사를 보면 마치 집시를 보는 것 같아 흥미롭다.


 

 

 남도현 / 군사저술가,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히틀러의 장군들》 등 군사 관련 서적 저술 http://blog.naver.com/xqon1.do
자료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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