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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없다면
사랑하다’와 ‘살다’라는 동사는 어원을 쫒아 올라가면 결국 같은 말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영어에서는 살다(live)와 사랑하다(love)는 철자 하나 차이일 뿐이다.
살아가는 일은 어쩌면 사랑하는 일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사랑하기 때문에 끝없이 아파하고 눈물 흘리기 일쑤지만 살아가는 일에서 사랑하는 일을 뺀다면 삶은 허망한 그림자 쇼에 불과할 것이다.
-장영희 에세이 ‘내 생애 단 한번’ 중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가슴을 울리는 한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사랑’이란 단어는 너무 흔한 말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 완고히 닫혀있던 나의 마음을, 그리고 상처로 얼룩져 있던 당신의 마음을 두드린 것도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계십니까?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외치십시오.
그리고 오랜 신앙의 경주를 통해 그 사랑을 세상 가운데 나타내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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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한 날 - 전 7:13~22 |
13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15 내가 내 헛된 날에 이 모든 일을 본즉 자기의 의로운 중에서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 중에서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16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케 하겠느냐 17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며 우매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느냐 18 너는 이것을 잡으며 저것을 놓지 마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19 지혜가 지혜자로 성읍 가운데 열 유사보다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20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21 무릇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지 말라 염려컨대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들으리라 22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한 것을 네 마음이 아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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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처럼 영화를 누리며 산 사람도 없건만 정작 그는 <허무한 날>을 살았다고 합니다. 하기야 아무리 의미 있게 살고 화려하게 살았다 한들 영원에 비하겠습니까? 더구나 이 땅에서의 삶이란 누구에게나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 찬 나날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솔로몬 같은 사람이 그렇게 고백하는데 보통 사람들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자, 그렇다면 세상살이가 허무한 날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확인해 봅시다.
멸망하는 의인과 장수하는 악인 <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내가 그 모든 일을 살펴 보았더니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15절). 이는 우리가 늘 보고 느끼는 이 세상 모순입니다. 의인이 자신의 그 의로운 삶에도 불구하고 복되기보다 도리어 멸망하고 악인이 자기의 그 악행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장수하는 부조리.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고 시험에 들고 좌절에 빠집니다. 나봇은 의를 지켰음에도 죽었고, 아벨도 하나님께 산 제사를 드렸음에도 살해당했습니다. 욥의 항변도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어찌하여 악인이 생존하고 장수하며 세력이 강하냐>(욥 21:7). 하박국 선지자의 탄원도 마찬가집니다.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합 1:13). 이런 말도 안 되는 모순 속에서도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고, 어떻게 이 역사를 간섭하시는지를 깊이 사색하며 세상의 온갖 부조리가 믿는 자들의 걸림돌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깨닫는 계시가 되게 해야 진정한 신자입니다.
지나친 의인과 지나친 악인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16-17절). 이 역시 너무나 인간적인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의인도 악인도 늘 극단으로 치닫는다는 겁니다. 요즘 TV 드라마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들이 너무 막장으로 간다는 우려가 적지 않은데 그게 다 이 세상사의 한계입니다. 논어에도 <과유불급>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뜻입니다. 티베트의 한 수도승은 <당신들은 당신들이 가지고 있는 좋은 옷과 가구와 재산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거기에 시간과 기운을 빼앗겨 기도하고 명상하며 차분히 자신을 되돌아 볼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당신들이 불행한 것은 가진 재산이 당신들에게 주는 것보다 빼앗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랬습니다. 현대인들의 정곡을 찌르는 지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시대의 불행은 모자라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 넘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만족할 줄도 감사할 줄도 행복해 할 줄도 모르는 사람들, 의인도 악인도 모조리 다 지나쳐서 탈이라는 현자의 이 말씀이야말로 우리가 다시 한 번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진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지혜자와 열 명의 권력자 <지혜가 지혜자를 성읍 가운데에 있는 열 명의 권력자들보다 더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19절). 10이란 7과 함께 완전수를 뜻합니다. 또한 <권력자>란 <성주> 또는 <주권자>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단 한 사람의 지혜자가 수많은 성주나 나라의 지배자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약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렘 5:1). 이것은 의인 한 사람, 지혜자 한 사람이 전체 운명에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개인의 결단과 처신 여하가 공동체 전체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말씀해 주는 소중한 예언입니다. 의인 한 사람, 지혜자 한 사람은 전체에 함몰된 존재가 아니라 그 전체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결정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지혜, 신령한 지혜로 충만하십시오. 이 시대의 지혜자로 사십시오. 하나님은 언제나 열 명의 권력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의인, 한 사람의 지혜자를 통해 그 시대, 그 공동체를 구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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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