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3國문화원 비교하니 - "파리 잡아야 유럽 잡는다"
일본은 95개 기업이 후원, 매년 700여 차례 행사하고
중국은 3년 전 6층건물 신축, 매년 中도시 하나씩 기획전 "2~3년 뒤 보며 투자"하는데
한국은 日 전시 면적의 9%… 소장한 책 놓을 공간도 없어, 2009년 침수… 누수·누전도
지난 13일 프랑스 파리의 일본문화회관 전시실. 에도(江戶)시대 풍속화인 '우키요에(浮世繪)' 전시회를 맞아 프랑스인 300여명이 평일 낮인데도 전시실을 가득 메웠다. 프랑스에서 처음 공개되는 당대 일본 화가 8명의 작품 150여점을 전시하기 위해 일본 측은 그리스 코르푸 섬의 박물관에서 작품을 직접 공수해왔다. 코르시카에서 찾아온 안젤리카 할머니는 "세밀하면서도 익살과 해학이 넘친다"고 감탄했다.같은 날 저녁, 300석의 지하 공연장에선 일본 현대무용 단체 '바틱(BATIK)'의 공연이 한창이었다. 공중그네에 매달린 여인이 어둠 속에서 휘파람을 불다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장면에서 출발한 공연은 여성 무용수 9명이 80여분간 대사 없이 괴성과 웃음, 탄식을 뱉어내며 몸짓만으로 격렬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었다.
관객 알랭 비용(65)은 "공연 내용 자체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구성과 안무가 참으로 매혹적"이라고 말했다.
'유럽 진출 교두보'인 파리에 상륙하기 위한 한·중·일의 문화 경쟁이 치열하다. 1997년 센강 유역에 문을 연 일본문화회관은 독특한 투명 유리벽 구조로 이미 파리의 명소가 됐다.
전시와 영화 상영, 공연과 강연 등 매년 700여회의 문화 행사를 위해 투입한 예산만 한 해 500만유로(약 80억원)이다. 일본문화회관은 정부 예산 외에 소니와 도요타 등 95개 기업이 후원한다. 고마쿠보 준지 일본문화회관 사무국장은 "파리에서 성공하면 유럽 전역에 반향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파리에 우선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한·일보다 파리에 진출한 시기는 늦었다. 지난 2002년 중국의 해외 문화원 가운데 처음으로 문을 연 파리 중국문화원은 2008년 6층 규모의 현대식 건물을 신축하면서 일본을 바짝 뒤쫓고 있다. 중국문화원은 매년 중국의 대표 도시를 하나씩 선정해 회화와 사진, 전통 공연과 현대미술 등 다양한 문화를 파리에 알리는 동시에, 아시아 전문 미술관인 기메 미술관과 손잡고 중국 현대미술과 도예를 전시한다는 계획에 착수했다. 인푸(殷福) 원장은 "2~3년 뒤를 내다보면서 문화 교류의 통로를 넓히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3개국 중에서 가장 빠른 1980년에 개관한 한국문화원은 역사는 길지만 현실은 초라하다. 파리 트로카데로 광장 인근 아파트의 반(半)지하와 지하 1층 창고를 개조해서 쓰고 있다.
면적으로는 일본의 9%, 중국의 20%, 건립 비용으로는 일본의 1%, 중국의 3% 수준이다. 책자·영상 등 소장 자료는 2만여권으로 중국이나 일본(각 3만여권)에 크게 뒤지지 않지만, 협소한 공간 때문에 6000여권만 비치하고 나머지 1만4000여권은 열람이나 대출 신청 때만 일일이 창고를 뒤져서 찾아주는 실정이다. 2009년에는 문화원 천장으로 지나가는 상수도 배관이 터지는 바람에 문화원 지하가 물에 잠기는 침수 사고를 겪기도 했다.
수차례 누수·누전 사고가 일어난 열악한 환경은 국정감사 때마다 '단골' 지적 사항이지만 대체할 터와 재원 확보가 마땅치 않다는 이유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
K-POP 등 유럽을 휩쓸고 있는 한류 열풍을 더 확산시킬 수 있는 인프라가 부족한 것이다. 이종수 한국문화원장은 "'한류 전파의 기지'로 부르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