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강경희 경제부 차장
지난해 대형 유통업체 롯데마트가 선보인 '통큰 치킨'은 동네 치킨집들의 반발로 논란 끝에 사라졌지만 '통큰'이라는 브랜드는 여전히 살아있다. '통큰 자전거' '통큰 초밥' '통큰 갈비' '통큰 넷북' '통큰 한우' '통큰 모니터'에 이어 최근엔 '통큰 새우튀김'도 나왔다. '손큰 두부' '손큰 콩나물' '손큰 파프리카' 같은 자매 브랜드 '손큰'도 등장했다.
'통큰 치킨'이 사라져도 '통큰' 브랜드가 살아남은 이유는 소비자들의 뇌리에 제품 대비 가격이 괜찮다는 기대를 심어 주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야흐로 가격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들에게 '몸값'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데도 거리낌이 없어졌다. 문밖을 나서면 순간순간이 선택인데, 그 선택이란 게 대부분 우리 앞에 놓인 여러 대안을 놓고 지불하는 비용과 얻게 될 이득을 저울질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가격에 의해 결정을 내리는 행위다.
유통업체의 '통큰'과 비슷하게 후속타가 이어지는 정치권의 신상품이 '무상·반값'이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 야당인 민주당이 '무상급식' 흥행에 성공하면서 '무상급식·무상보육·무상의료'의 무상 3종 세트를 들고 나왔고, 최근엔 여당인 한나라당까지 '반값 등록금'이라는 자매 브랜드에 편승해 온 나라를 논쟁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무상·반값'이 잠잠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커져 굴러가는 이유는 그것이 사람들에게 민감한 '가격'의 문제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모든 것의 가격(The Price of Everything)'이라는 저서를 낸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에두아르도 포터는 "가격은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했다. 그는 사물의 가격뿐 아니라 생명·행복·여자·노동·공짜·문화·신앙·미래의 가격까지 따졌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복지'는 스스로를 돌볼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공공의 시혜(施惠)로 간주됐다. 하지만 무상급식을 필두로 하는 보편적 복지는 국민 개개인으로 하여금 "내가 낸 세금에 비해 나라로부터 얼마나 돌려받나"를 저울질하는 데 눈뜨게 만들었다. '반값 등록금'이 폭발력을 갖는 이유도 대학이라는 선택적 고등교육의 '비용'과 '효용'에 대해 교육소비자인 대학생과 학부모들이 일제히 '원가'와 '본전' 생각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궁상맞은 살림에, 철없는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아빠, 그랜저 한 대 뽑아줘" 했다가는 "에라이, 녀석아!" 하면서 냅다 뒤통수를 후려칠 것이다. 하지만 대형 승용차 한 대 값에 맞먹는 4년제 대학 등록금 앞에서는 형편 불문하고 상당수 부모가 지갑을 연다. 자식이 갖게 될 미래를 기대하며 너도나도 무리하게 구매한 '대학 교육'이 알고 보니 거품에, 부실도 적지 않다는 현실에 속이 부글부글 끓던 차에, 정치권이 지핀 불씨로 인해 공론의 장으로 불길이 확 번진 것이다.
애당초 유통업체의 '통큰 시리즈'는 사전에 치밀하게 원가 계산을 하고 한정판매로 내놓은 제품들이다. 부실한 제품은 환불도 해준다. 하지만 정치권은 원가 계산도, 품질 관리도 없이 덜컥 '통큰 정책'을 내놓고 국민들의 가격 민감도만 잔뜩 높여놓았다. 내친김에 정치권에 제안하자면 '통큰'과 '무상·반값'의 흥행 요소를 합쳐 더 큰 히트상품을 내놓으면 어떨까. 국민들이 기대하는 정치 서비스로 업그레이드할 자신이 없다면 '반값 세비(歲費)·반값 유지비'로 스스로 거품을 빼는 '통큰 정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