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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山房閒筆 / 제56회 현충일(顯忠日) 아침에(대구일보, 2011.6.6.월)

鶴山 徐 仁 2011. 6. 6. 22:00



제56회 현충일(顯忠日) 아침에



올해의 현충일(顯忠日)인 오늘 6월 6일은 망종(芒種)과 단오(端午)가 겹친 날이다.
현충일은 순국선열과 전몰장병 등 호국 영령의 명복을 빌고, 그분들의 숭고한 정신과 위대한 훈공(勳功)을 추모하는 날이며, 24절기 중 하나인 망종은 벼나 보리 등 수염이 있는 곡식의 씨앗을 뿌리기에 좋은 때를 뜻하는 날이다.
1956년 4월 19일 ‘현충 기념일’ 제정 당시,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같은 날이거나 하루 차이인 청명(淸明)과 한식(寒食)에는 사초(莎草)와 성묘(省墓)를 하고, 망종에는 제사를 지내온 옛 풍습을 따라 망종인 6월6일을 현충일로 정했다고 한다. 실제로 고려 현종 5년 6월 6일 조정에서 장병의 유골을 집으로 보내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는 기록이 문헌에 나와 있다고 한다.

이러히 호국영령들을 추모하는 기념일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 각국에도 그 나라마다 역사적인 전쟁과 관련된 기념일을 정하여 전사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매년 5월 넷째 주 월요일을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로 정하여 1866년 뉴욕 주가 남북전쟁 당시 숨진 군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제정하여 처음으로 참전용사의 무덤을 단장했던 ‘데커레이션 데이’에 뿌리를 두고, 제1차 세계대전 직후부터는 모든 전쟁에서 사망한 참전용사들을 추모하는 기념행사를 치르고 있으며, 영국·프랑스·캐나다에서는 ‘리멤버런스 데이(Rememberance Day)’라고 하여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1월11일 11시를 기념하고 있는데, 전몰 용사 추모의 상징으로 양귀비꽃을 가슴에 달기 때문에 ‘포피 데이’라고도 부른다 한다.
호주·뉴질랜드에서는 11월 11일뿐 아니라 1915년 4월 25일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과 함께 터키의 갈리폴리 상륙작전을 감행하다가 8,000여 명이 사망한 것을 기리기 위해 매년 4월 25일을 ‘안작 데이[Anzac(Australian and New Zealand Army Corps) Day]’라고 하여 기념하고 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의 주범으로 패전국이 된 독일·일본의 경우에도, 일본은 2차대전 패전일인 8월15일에 ‘전국 전몰자 추도식’을 거행하며, 독일은 매년 11월 셋째 일요일을 ‘전쟁 희생자 추모일’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한다.

국방부 전사편찬 자료를 인용한 한 통계 자료에 의하면, 6.25 전쟁 때만도 우리는 전사 149,000여 명, 부상 717,000여 명, 실종 132,000여 명, 포로 9,600여 명 등 총 1,007,600여 명, 미군은 전사 54,246 명, 부상 103,284 명, 실종 8,177 명, 포로 4,853 명 등 총 170,560 명, 유엔군은 전사 57,615 명, 부상 115,312 명, 실종 2,232 명, 포로 6,267 명 등 총 181,426 명의 사상자가 생겨, 전체로는 1,359,586 명의 사상자가 났다고 되어 있다. 이에 비해 북한군은 전사 294,000 명, 부상 226,000 명, 포로 113,000 명 등 총 633,000 명, 중공군은 전사 184,000 명, 부상 716,000 명, 포로 31,000 명 등 총 931,000 명의 사상자가 생겨, 전체로는 1,564,000 명의 사상자가 났으니, 쌍방간 입은 피해는 실로 엄청나서 사상자가 거의 300만 명에 이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야욕이 빚어낸 전쟁의 결과이다. 지금도 필자는 6.25 전쟁을 생각하면 혼란에 빠지고 만다.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고 누구를 위한 희생이었는지 의문이 일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에 대한 확실한 해답은 있는데, ‘색깔론’은 두고라도 남북이 대치하여 아직도 끝나지 않은 우리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마다 버릇처럼 기념식은 치르지만 때 되면 치르는 일회성 행사에 불과할 뿐, 과연 그분들의 희생에 대하여 살아있는 자들 그 누가 진실로 추모의 정신을 가슴에 담고 살며, 과연 국가는 그분들의 희생에 대하여 진실로 상응하는 보답을 하고 있는지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독립 운동가들의 후손이나 나라 위해 목숨 바친 전사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백 번의 현충일 기념식을 치르는 것보다 나을 것이며, 자라는 세대들에 대해 ‘현충일’이 어떤 날인지를 교육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이하는 분량이 넘쳐서 미게재]
보훈의 달 6월, 산야(山野)에 흐드러지게 피는 ‘개망초꽃’을 보며 지은 필자의 졸시로 오늘 첫 칼럼을 끝맺을까 한다.

포화(砲火)가 지나간 지 / 반세기가 더 흘렀어도 / 아픔은 아직 가시지 않았다 / 전장(戰場)에 보낸 아들, 다 잃고 / 미쳐 버린 에미는 / 산과 들 쏘다니며 / 희희 웃다가 이승 떠나고 / 어머니이ㅡ / 부르며 죽어 구천을 떠돌던 / 이름 없는 넋들은 / 6월의 산과 들 / 에미 남긴 발자국마다에 / 해마다 개망초꽃으로 핀다 / 마구 지천(至賤)으로 피어 / 증언(證言)의 몸짓으로, 오늘도 / 애타게 에미를 부르고 있다

출처 : 경대사대 부중고1215회 동기회
글쓴이 : 村長(김철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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