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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나는 삶의 의욕을 잃었었다/ 조선일보

鶴山 徐 仁 2011. 1. 5. 18:30
사설·칼럼
종합

[ESSAY] 나는 삶의 의욕을 잃었었다

  • 김창준 전 미 연방하원의원

입력 : 2011.01.04 23:32 / 수정 : 2011.01.05 10:12

김창준 전 미 연방하원의원

쫓기듯 찾아간 곳은 어릴적 살던 인왕산 골목길
아름다운 꽃들이 눈에 들어왔다
세상 욕심만 가득했던 때에는 그 꽃들이 보일 리 없었다
성공에 대한 집착과 욕망을 털자 마음의 평화가 내게 찾아왔다

나는 미국 연방 하원의원에 세 차례나 당선됐다. 한국인으로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해서 국내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그러나 추락은 갑자기 찾아왔다. 미국 언론들이 연일 정치자금 의혹을 제기하면서 결국 의원직을 잃었다. 결혼 생활은 이미 파탄 났다. 애써 키워온 회사도 망했다.

내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호주머니엔 달랑 200달러가 있었다. 내가 50년 전 미국에 건너왔을 때 들고 온 돈이 200달러였다. 정말 죽으려 해도 총을 살 돈조차 없었다. 미국 생활에서 피땀 흘려 이룩한 모든 것을 한순간에 정치와 바꿔 버렸다. 과연 정치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는가. 나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다.

화려한 정상에서 하루아침에 생의 절망 한가운데로 내려앉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희망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어디에서 탈출구를 찾아야 할지 막막했다. 어디에도 빛은 보이지 않았고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곳도 없었다. 생(生)의 의욕마저 잃었다.

그런 사람이 마지막으로 갈 수 있었던 곳은 결국 고국과 고향이었던 것 같다.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어릴 적 살던 인왕산 골목길을 찾았다. 그 골목길에 들어서자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군 제대를 한 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캘리포니아 채피 대학 입학허가서를 품고 미국으로 홀로 떠났다. 언어도 환경도 생소한 이국 땅에서 나는 아침이면 신문을 돌리고, 병원에서 쓰레기 청소를 하면서도 새로운 인생을 꿈꿨다. 대학원에서 하수처리를 전공하고 하수처리 회사에 취직했다.

당시 미국은 환경보호 운동이 일어나면서 주마다 하수처리장 건설이 붐을 이뤘다. 나는 '바로 지금'이란 생각에 내 이름을 딴 고속도로·하수처리공사 설계회사인 '제이 킴 엔지니어스'란 회사를 차렸다. 파트타임 비서 하나를 두고 시작한 회사였지만, 낮에는 사업계약을 따내고, 밤에는 주문받은 설계를 하며 도면과 싸워 150명이 일하는 회사로 키웠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로스앤젤레스 인근의 다이아몬드 바 시(市)의 시의원에 출마할 기회가 오던 날 나는 주저 없이 그 길을 택했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시의원에 당선됐다. 다시 시장에도 도전해 성공했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중앙 정치 무대로 갈 기회가 생겼다. 인구 60만명이 넘는 백인 지역구에서 당시 내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고작 6%였다. 가능성이 없다고 사람들이 얘기했지만, 나는 1992년 민주당 후보를 이기고 미 연방 하원의원이 되었다.

그날, 내게로 향하던 카메라 플래시와 환호, 박수갈채…. 정치인으로 완벽하게 성공했다고 남들이 부러워했고, 나도 우쭐한 마음이 들었다. 가슴에 하원의원 배지를 달고 의원선서를 했다. 어머니는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고 만세를 외치셨다.

추락한 뒤 나는 빈 주먹으로 가슴을 수없이 쳤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해도 나는 해냈다. 그런 내가…."

그 순간, 불현듯 어릴 적 인왕산으로 향하던 그 골목길이 떠올랐다. 스무 살이 넘어 고국을 떠난 후 잊고 살았던 동네였다.

그렇게 찾아온 그 골목길 위에 나는 서 있었다. 그런데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는 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산등성이의 진달래며 개나리, 그리고 길가의 목련이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나는 봄꽃이 피어나고 있는 골목길을 아주 천천히 걸었다. 그 꽃들은 아마도 내가 어릴 적부터 그렇게 피어 있었고, 나는 그 곁을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세상 욕심만 가득했던 내 눈에, 내 마음에 그 꽃이 보일 리 없었다. 꽃이나 나무에 내 마음을 줄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꽃이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내가 모든 것을 잃은 다음이었다. 화려한 성공이란 겉껍데기를 다 벗어버리자, 텅 빈 가슴속으로 꽃이 내게로 다가왔다. 순간 어머니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창준아, 엄마는 봄이 좋아." "그래 겨우내 얼어붙었던 세상에 생기를 돌게 하는 게 얼마나 좋니." 그 춥던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시작되면 어머니는 방문을 활짝 열어놓으셨다. 맞다. 그때 노오란 개나리, 연분홍빛 진달래 꽃내음이 우리 집으로 스며들었었다.

성공에 대한 집착과 욕망을 모두 털어 버리고 세상을 겸허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을 때 마음의 평화가 내게로 찾아왔다. 인왕산 골목길에서 나는 다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또 곧 봄이다. 봄이 되면 또 고국을 찾을 것이다. 나는 언제부턴지 봄이 되면 고국이 너무나 그립다.

미국 버지니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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