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文學산책 마당

해질녘의 바다에서/ 이해인

鶴山 徐 仁 2010. 7. 10. 18:35

      해질녘의 바다에서 - 이해인 수녀 1 해질녘의 바다에 홀로 서서 마지막 기도처럼 어머니를 부르면, 나도 어머니가 된다. 세월과 함께 깊어 가는 사랑을 어쩌지 못해 그저 출렁이고 또 출렁이는 것밖엔 달리 할 말이 없는 파도치는 가슴의 어머니가 된다. 2 바다에서 오랜만에 건져 올린 나의 시어(詩語)들에선 늘 비릿한 파래 내음이 난다. 얼마나 더 오래 말려 두어야 비로소 하나의 시가 될 수 있을까. 3 아름답고 쓸쓸하다. 고요하고 평화롭다. 해질녘의 바다는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촛불이 타오르는 기도실에 고요히 무릎꿇고 있는 내 마음처럼. 4 바다에 나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면 지금껏 나만을 생각했던 일을 바다에게 그만 들켜 버린 것 같아 매우 부끄럽다. 이 세상 모든 이를 사랑하고 용서하며 한 마디의 기도라도 날마다 남을 위해 바치고 싶다. 내가 할 일도 조금씩 줄이면서 좁은 마음을 넓은 마음으로 바꾸어 오고 싶다. 5 내가 사랑한 것보다 몇 배나 많이 받아서 더 무거운 살아 있는 마음의 무게, 사랑의 빚을 진 사람의 무게. 이 무게를 바다에 내려 놓고, 오늘은 남빛 옷을 걸치고 있는 끝없는 수평선 위에 내 마음을 눕힌다. 6 바다! 영원을 향한 그리움은 처음부터 그에게 배웠다. 그는 무작정 나를 기다려 주는데, 어느 때나 열려 있는 푸른 문인데, 나는 왜 종종 그가 두려울까. 7 지는 해를 바라보는 저녁 바다에 서면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사라져 가는 것임을 다시 한번 기억하게 해 주십시오. 사랑은 남아도, 사랑했던 사람들은 매일 조금씩 죽음의 바다 속으로 침몰해 가는 것임을 다시 한번 새로이 기억하게 해 주십시오. 8 내가 저녁 기도를 바치면 어느새 내 옆에 와서 시편을 읊는 바다. 더 낮아지라고 한다. 더 낮은 목소리로 기도하며 겸손의 해초(海草)가 자라는 물 밑으로 더 깊이 내려 가라고 한다. 9 무엇이 배고픈가, 오늘은 바다가 울고 있네. 내 탓으로 흘려 버린 사랑의 시간들을 채 줍지 못해 안달을 하던 내가 가슴을 움켜쥐고 그 바다에 누워 아이처럼 울고 있네. 10 저녁 노을 가슴에 안고 온몸으로 하프를 켜는 바다, 나는 한마리 새가 되어 춤을 추네. 물 위에 앉아 잠시 뜨거운 그리움 식히다가 다시 일어서서 춤을 추는 새가 되네. 11 해질녘 바다에 서면 나는 섬이 되고 싶어. "함께"이면서도 "홀로"일 줄 아는, 당당하면서도 겸손한, 고독하면서도 행복한, 하나의 섬으로 솟아오르고 싶어. 세상이란 큰 바다 위에 작지만 힘차게 온몸으로 노래하며 떠 있는 희망의 섬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