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의 軍史世界
국군 기계화부대의 시작
6.25전쟁 개전 당시에 독립 기갑연대(현 수도기계화사단 기갑여단) 예하에 장갑대대가 있었는데 이 부대는 국군 최초의 기계화부대였습니다. 여기에는 1949년 초 미군정이 물러나면서 인계받은 약간의 장갑차량을 비롯한 당시 국군이 보유한 거의 대부분의 기갑장비들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대는 당시 최강의 전력을 갖춘 국군부대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 1945년 M-8 정찰장갑차를 앞세우고 서울에 입성하는 미군
길을 안내하는 패전 일본군의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
그런데 최강의 전력이라는 장갑대대가 보유한 장비는 M-8 정찰장갑차 27대, M-2(일부 자료에는 M-3) 하프트랙 24대과 약간의 지프(Jeep)였는데, 지금 기준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당시의 북괴군 기갑전력과 비교한다 하여도 한 없이 민망한 수준이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국군의 무장이 얼마나 빈약하였는지 알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빈약한 수준에서 국군 기갑(기계화)부대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 관련글 참조 )
[ 1949년 광복절 시가행진당시 ]
그레이하운드(Greyhound)라는 애칭으로 불린 M-8 정찰장갑차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서 정찰용으로 개발된 차량입니다. 지금 기준의 장갑차와 비교자체가 곤란하지만 그래도 당시 국군이 보유한 유일 기갑장비였습니다. 따라서 시가행진 등 공개 행사에서 국군의 위용을 국민에게 어필하는 주요 무기였고 전쟁 바로 직전에 38선 일대에 기획 순찰을 나가 전방의 병사들에게 사기를 불어넣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 전방 부대를 시찰하면서 장비를 전시중인 모습 ]
그런데 장갑대대에 속한 M-8 장갑차들은 집중 운용되지 않고 전쟁이 발발하였을 때 소대별로 분할하여 전방의 각 사단에 배속 운용하였습니다. 사실 이들이 집단으로 북한군 전차와 맞상대 할 수 없음을 당시 군 지휘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고전하고 있던 전방 각 사단에게 단지 용기를 불어넣어 주기 위한 방법으로 이들을 각기 분산하여 파견한 것이었습니다.
[ 열병행사를 하는 M-8 ]
하지만 그보다도 통신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이야 통신강국 KOREA지만, 해방 후 우리나라의 통신사정은 몹시 열악하였고 군이라고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M-8 장갑차에 장착된 SCR-506 무전기는 장거리 통신에 적합하였고, 이런 이유로 서울 남산의 기갑연대 통신소를 키스테이션으로 하여 육군본부와 각 사단의 통신에 유효 적절히 사용되었습니다. 기록에는 강릉의 제8사단에 배속한 M-8 장갑차에서 송신한 육성이 서울에서 수신되었다고 전합니다.
[ 개전 당일 제7사단을 지원하기 위해 출동하는 모습 ]
하지만 그렇다고 선전목적으로 또는 통신용으로만 M-8 장갑차가 운용될 수는 없었습니다. 북괴군의 전차에 속수무책으로 전방의 부대들이 유린되자 M-8은 T-34 전차를 막기 위해 출동합니다. 명령을 내린 상부나 이를 운용하던 병사 모두가 계란으로 바위치기인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망설임이 없이 조국을 수호하기 위하여 용감하게 출동하였습니다.
[ 비록 실전외의 목적에 많이 사용되었지만 전투에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
제7사단을 돕기 위해 출동하였던 M-8의 37mm 주포가 불을 뿜어 수많은 철갑탄을 적 전차에 명중하였지만 대부분 튕겨 나가는 참담함과 함께 차례차례 적 전차의 희생양이 되어 갔습니다. 이런 수모에도 불구하고 M-8 장갑차는 김포와 영등포 일대에서 북괴군 제6사단을 상대로 지연전을 펼칠 때 큰 활약을 하였고, 옥천 지연전에서는 T-34의 캐터필러를 명중시켜 기동 불능 상태에 빠뜨려 전차 공포증에 빠져있던 아군에게 용기를 불어 넣기도 하였습니다.
[ 여순사건 당시 반란 출동한 장갑대대 소속의 M-2 하프트랙
( 기관총 거치대의 장갑판으로 보아 M-3 로도 판단됨 )
미군은 이를 병력수송용 차량정도로 보았지만
당시 국군은 반장갑차로 부를 만큼 애지중지하였습니다 ]
이렇듯 개전 초기에 성능 이상의 활약을 펼친 M-8 장갑차는 여러 전투에서 차례로 파괴되었고, 북진 시 청진부근에서 전투하였다는 기록은 있으나, 흥남철수 적재품목에서 발견 되지 않아 결국 1950년 말 국군전력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비록 어렵고 고단했던 시기에 있었던 짧았던 활약이었지만 그들이 남긴 투혼과 희생은 오늘날 세계적인 기갑(기계화)부대를 보유한 국군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관계하였던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받칩니다. [ august 의 軍史世界 ]
[출처] 국군 기계화부대의 시작+|작성자 aug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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