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50이 되도록 연애 한 번 못해본 베이비붐 세대의 한 남자가
25세 연하(年下)의 여대생과 사랑에 빠진다.
배우 안성기가 열연한 최근 개봉 영화 '페어 러브' 얘기다.
이 영화를 사회학의 시각으로 보면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입지(立地)가 약한 세대 간의 사랑이다.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와 88만원 세대의 만남인 것이다.
6·25전쟁 직후 1955년부터 산아(産兒)정책 도입 직전인
1963년까지 9년에 걸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는 한창 일하고 가족을 부양해야 할 50대 초·중반에
줄줄이 정년 퇴임을 맞아 탄식하고 있다.
40대와 50대의 실업자 실업급여 신규 신청자는
지난 5년 사이 각각 12만여명에서 25만여명, 9만여명에서 21만여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최근 앞으로 75세 이상에 고령화 사회 대책의 초점(焦點)을 맞춰야 한다는
특집을 실었다. 그런 사회에서 50대는 정말 제2의 청년기이고,
파리 마치 등 잡지들은 종종 '인생은 50부터' 특집을 게재한다.
하지만 우리의 50대는 콩나물 교실에서 치인 뒤 사회에 나와 경쟁에 휘둘리면서
청춘과 중년을 다 소진(消盡)한 채 벌써 퇴물 소리를 듣는다.
영화 '페어 러브'의 50대 주인공은 낡은 수동식 카메라 수리로 생계를 잇지만
'장인 정신'의 자부심을 잃지 않는다.
영화의 그런 설정은 50대란 곧 인생에서 노동의 품질이나 생각의 깊이에서
가장 숙련된 활동기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베이비붐 세대의 현실은 영화와 너무 다르다.
청년 실업 110만명 시대를 사는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취업을 한다 해도
88만원 세대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88만원은 비정규직 월평균 임금(119만원)에 20대 평균소득 비율(0.74%)을 곱한 액수다.
스스로 '찌질이' 또는 '루저'(패배자)라고 자조(自嘲)한다.
물론 오늘의 20대는 대한민국이 경제대국 10위권이 된
2000년대에 글로벌 마인드(global mind)를 갖춘 'G세대'로 불린다.
어느 앞 세대보다 뛰어난 외국어 실력과 정보통신 활용력을 겸비하고 있다.
하지만 부모 세대가 누렸던 압축 성장의 혜택을 기대하기 힘들다.
4·19세대에서 386세대까지 청년들이 과시했던 정치사회적 파워도 없다.
광우병 파동으로 인한 촛불시위에 20대가 10대보다 적게 참여했다고 해서
운동권에서 '20대 개XX'론까지 나왔다. '니들은 평생 호구로 살아라.
한국 사회의 희망은 촛불 10대에 걸겠다'는 소릴 들어야 했다.
하지만 오늘의 20대는 꿋꿋하다.
20대 소설가·인터넷 논객·영화인·길거리 가수 등의 삶을 종합취재한 책
'요새 젊은 것들'이 최근 나왔다. 그들의 공통분모는 '자뻑'이라고 한다.
'우리는 다 잘났기 때문에 자신에게 뻑간다'는 얘기다. 부모 세대의 눈에는 안쓰럽게 보이지만,
현재 20대의 초상은 가난했더라도 희망가를 부르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군
베이비붐 세대의 옛모습을 빼닮았다.
1980년생 소설가 김애란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기 드물게
20대의 감성을 대변(代辯)해왔다. 그는 "지금도 취업이 가장 큰 걱정거리인 우리 세대를 위로하면서,
앞 세대의 소시민적 고뇌에도 애정 어린 시선을 던진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의 '요새 젊은 것들'이었던 베이비붐 세대는 정말 '요새 젊은 것들'과 통하는 것이 있다.
우리 사회가 두 세대에게 하루빨리 구체적 희망(希望)을 안겨주지 못한다면,
앞으로 위로는 베이비붐 세대의 절망(絶望)에 짓눌리고 아래에선 20대의 불만이 차오르는
위험한 사태를 맞게 될 것이다.
- 박해현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