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精神修養 마당

[스크랩] 高麗葬(펌)

鶴山 徐 仁 2010. 1. 18. 21:09

 

 

                    

          
          부산에 가는 일이 잦다보니 
          열차를 자주 이용한다.
          지난 토요일 부산역 대합실..
          허리가 굽은 팔순 할매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경찰이 와서 주소와 연락처를 물어도 
          말없이 고개만 살래살래 젖는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아예 모른다고 했다. 
          나중에는 말끝이 흐려지면서
          눈가의 매마른 주름 사이로 내내 
          눈물이 흐른다.
          북극지방에 얼음집을 짓고 사는 
          에스키모들은 나이 들어 늙으면 
          영하 3~40도의 빙판으로 스스로 나간다.
          남자는 어려서부터 
          사냥을 해 식량을 구해야 한다.
          여름에는 먼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고 
          겨울에는 곰이나 물개를 사냥한다.
          여자는 음식을 만들고 
          아이를 양육하고 옷을 만들었다. 
          곰이나 물개의 가죽을 입으로 물고 씹어서 
          부드럽게 무두질을 한다.
          남자가 늙으면 사냥을 할 수 없게 되어 
          노동력을 잃게 된다.
          여자가 늙으면 단단한 가죽을 
          잇빨로 무두질을 할 수 없게 된다.
          평생을 찔긴 가죽옷을 만드느라 
          잇빨이 다 닳아 잇몸만 남았으니 
          가사일을 할 수가 없다.
          추운 긴 겨울을 견디려면 
          양식이 부족하다.
          많은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스스로 
          이글루(얼음집)를 나와야 한다.
          깊은 밤..
          옷을 하나하나 벗어놓고 밖을 나선다.
          얼음과 눈으로 덮인 
          벌판에는 눈보라가 친다.
          늙은 부모는 조용히 외진 곳으로 간다.
          온몸이 추위에 꽁꽁 얼고 만다.
          얼마후 후각이 예민한 곰이 나타난다. 
          곰의 둔탁한 발길 소리가 들리고는 
          곧 잠잠해진다.
          얼음집 안에서 깊이(?) 잠든 자식들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부모가 옷을 벗어놓고 
          밖으로 나가는 것도 이미 알고 있다.
          곰의 먹이가 되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들이 생존을 이어가기 위한 
          전통이고 풍습이기 때문이다.
          먼 옛날부터 조상들이 그렇게 해 왔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그랬다.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지금은 아버지가 그렇게 할 뿐이다. 
          다음은 자기 자신이 그렇게 해야만 한다.
          열사의 사막 중동지역의 
          어느 유목민 부족도 비슷하다.
          농경사회는 한 곳에서 
          정착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유목민은 이곳저곳으로 가축을 몰고 
          떠돌아 다니는 유랑생활이다.
          먼길을 가야 하기에 
          늙은 부모는 함께 갈 수 없다.
          모래 언덕 아래에다 
          작은 천막을 치고는 약간의 음식과 물을 남겨놓고는 
          길을 나서야 한다. 
          천막 밖으로 내다보는 부모도 울고 
          뒤돌아보는 자식도 운다.
          그게 부모와의 마지막 작별이다.
          몇 달 몇 년이 지난 후 
          가축을 몰고 다시 그곳을 지나게 될 때 
          부모의 유골을 거두어 장사를 지낸다.
          그러나 대부분 
          긴 세월이 지났기 때문에 
          부모의 시신은 흔적조차 없다.
          사막의 들짐승들이 가져가고 없다.
          며칠이 지나면 가축을 몰고 또 그곳을 떠난다.
          우리들이 볼 때는 
          인륜도 도덕도 없는 비정함에 
          눈물이 앞을 가리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생활이다.
          후손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죽어야만 한다.
          우리 나라의 고려장 풍습이 사라졌듯이 
          지금은 그런 풍습이 없어졌다.
          부산역에서 본 그 치매(?)할머니 
          분명히 다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주소도 연락처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밝힐 수가 없다.
          부모를 내다버린 자식이라고 손가락질 받을까봐 
          차마 밝힐 수가 없을 것이다.
          오로지 자식들의 체면 때문이다. 
          그게 부모 마음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 부모 안 모시려고 한다.
          서로 다투기도 하고 때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일도 일어난다.
          할 말 다 하고 사는 게 
          요즘 젊은 세대들이다.
          그래서 형편이 되면 분가를 시키거나
          서로 마음 편하게 딴 살림을 하고 있다.
          우리 주위를 한 번 돌아보자.
          솔직히.. 
          남새스러워서 말을 안해서 그렇지
          알게 모르게 쉬쉬하며 
          며느리 시집살이하는 세월이 
          하마, 옛날이 아닌가.
          늙은 부모를 
          산이나 땅에 묻어야만 고려장(高麗葬)인가.
          가까이 살아도 나 몰라라 하다가 
          힘들고 아쉬울 때 찾아드는 자식들이 
          어디 하나 둘인가.
          아니면 아예, 
          낯 모르는 먼곳에다 버리는 세태가 바로 
          21세기 현대판 고려장이 아닌가.
          우리들이 
          어떻게 컸는데,
          우리들이 어떻게 컸는데 저리 하나.
          어머니 젖 물고 컸는데..
          오늘도 많은 눈이 온다는데 
          마음이 춥다.
          -피고지고
          
          
          
                                          

                                         ( 옮겨 온 것입니다 )

 

출처 : 경대사대 부중고1215회 동기회
글쓴이 : 여정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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