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鶴山의 넋두리

삶에 대한 학산의 넋두리

鶴山 徐 仁 2010. 1. 3. 22:20

 
 
삶에 대한 학산의 넋두리

짧은 인생여정이라고는 하지만 한 세월을 지나면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노라면,
성인군자도, 영웅호걸이라 한들 모두가 잠시 한 때를 누볐다 사라져 가는 마지막 길이야
일상의 범부와 별반의 차이가 없는 것 같고,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곧 잊혀지고
그냥 역사의 한 장으로 물러날 것인데, 간간히 살아 생전의 모습들을 떠올려 볼 때이면
꼭 그렇게들 살아야 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면서, 그냥 평범한 삶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사람들의 존경을 받던 위대한 인물들이 세상을 떠났다고 하여 지구 상에 변화는 고사하고
그가 살아있거나 죽었다 하여 세상에 무슨 큰 변화가 있었을까 싶은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혹자는 죽어서도 말을 한다는 표현을 쓰고, 북한 같은 곳에선 죽은 김일성의 유훈통치라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일단 세상에 한 번 오가는 사람의 몫은 그들이 살아있을 시기이지
그 다음은 모두가 살아있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저마다 자신이 살아온 기간에 따라 다소 간 생각의 차이는 내재할 수밖에 없을테지만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도 사회 각분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타나고 살아졌는가를
조용한 가운데 생각해 볼 시간이면 유명인사도 무명의 인사들도 주변에서 많이 사라졌구나
느끼게 되고, 때로는 누구나 인생의 무상함을 실감하게 될 때가 있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인생을 낙관적으로 사느냐, 비관적으로 사는 냐에 관한 문제를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누구나 사람은 한 세월을 살다가 본향으로 돌아갈 터인데, 가끔은 삶의 길목에서
조용히 한숨을 돌리는 여유를 가지면서 자신의 삶을 이런저런 모습으로 진단해 보는 것도
나름대로 남은 길을 가는데 있어서 의미있는 테마와 메시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즘 우리는 인터넷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너무 모든 걸 빨리 빨리 하며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얻는 것이 참 많지만 진짜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는 것도 적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저 자신이 본래부터 일상의 삶 속에서 늘 고향타령을 하며 살아온 골통 올드 모델인 탓인지!
같은 또래의 사회생활 속에서는 비교적 일찍부터 선진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었고
첨단장비를 다루는 일을 하기도 하였지만, 편리한 삶의 면에서는 당연 물질문화의 발전에
긍정적으로 공감하지만, 한 생명이 태어나 일생을 지나는 동안 물질문화가 주고 있는 것만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전부라고 할 수 있느냐는 문제에는 부정적이지 않을 수 없었기에

1차공직에서 퇴임 하자마자 너도 나도 다 모이는 우리나라 모든 것의 중심지인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내려와 살다보니,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단순한 관점으로 판단을 한다면
참 어리석은 사람으로 비춰지고, 가만히 가지고만 있어도 수억대가 될 아파트를 처분해서
알거지가 된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일지는 모르지만, 당사자는 조금도 후회스럽지 않습니다.

각자가 가진 인생관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지금도 이 올드 모델의 상상으로는
벤츠승용차로 고속도로를 달리는게 안락하고, 편하기가 소달구지와 자갈 길에 비할까!
고생에 찌들고, 끼니를 걱정하던 시대를 그리워 하는 괜한 오기를 부린다 생각하기도 합니다.
히지만, 산업화로 인해 농경사회의 기반이 허물어지면서 동시에 인간관계마져 허물어지고,
서양의 물질문화의 흡인력에 함몰되어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마져 온전히 사라지고만 세태는

어차피 시대변화의 흐름이니 누군들 거슬릴 수야 없지만, 과연 인간이 무엇으로 살아가나!
가진 건 없어도 인간미 넘치는 예전의 시골, 맑은 냇물이 연중 쉬임없이 흐르는 곳,
여름에는 멱을 감고, 겨울에는 빙판 위에 설매 타고, 팽이 돌리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고관대작이나 한낱 범부 모두가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고 살아있는 사람의 기억에서 지워지긴

매 한 가지거늘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걸까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더라도 일단 부자로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사는 분도 있을 테고,
그러나 저마다 재물보다는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자 하는 분도 있을 테지요.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각 개인 저마다에게 주어진 몫이니 부모도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것
자신의 몫에 맞추어 살아가는 거지만 살아있 때까지가 중요한 제 몫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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