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성명서
[일본의 한국 침략사]를 간행하여 일본만행을 고발하자
한국정신문화선양회
[1]. 섬나라 왜적은 결코 침략의 근성을 버리지 못한다.
일본은 독도 영유권을 중학교 사회교과서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싣고, 2012년부터 시행 된다.고 발표하고 다케시마(竹島)는 일본 땅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한국의 각 단체들은 독도는 한국 땅이다. 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 집회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독도 영유권 문제는 국민적 시위나 일본의 만행을 소리 높여 성토하는 행위는 도리어 한.일 민족 간에 갈등을 증폭시켜 엄청난 경제적 손실과, 국민적 감정을 촉발하여 전쟁의 위험을 고조시킬 뿐 결코 독도 문제의 본질적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독도(獨島)는 과거 수천 년 전부터 우리나라가 점유한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것은 입증할 필요성도 없이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일본인들은 왜 틈만 나면 독도가 일본의 영토임을 주장하는 [일본인들의 독도영유권 주장의 근본적 본질]은 무엇인가?
왜적 일본은 삼국시대부터 수시로 우리나라 신라의 변방 민가(民家)를 몰래 침입하여 보물과 재물을 약탈하고, 심지어 백성을 일본으로 끌고 가 노예로 삼는 일을 서슴치 않았다. 왜적은 고려시대에도 끊임없이 침략했으며, 조선시대 임진왜란(1592년)을 일으킨 왜적일본은 끝내 대한제국을 멸망시킬 때까지 왜적의 끈질긴 침략근성을 버리지 못했다.
조선영토의 지배권을 두고 1894년 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러시아와 친러적 정책을 추구했던 고종을 위협하기 위해 1895년 8월 20일.명성 황후를 시해하여 악랄하고 잔혹한 만행을 자행했다. 결국 1896년 고종은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 할 수 밖에 없었고 조정은 친일파 일색이었다. 1904년 일제는 러.일 전쟁 승리와 동시에 1904년 2월 한국정부를 위협하여 ‘한일의정서(韓日議政書)’를 체결하고 본래 대륙의 조선 땅과 중국 땅을 분활 통치하고 한반도 속의 대한제국 땅만을 지배할 통치권을 열강으로부터 승인받았다.
즉 일본은 1905년 7월 [가쓰라 ․태프트 밀약]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지금의 한반도 땅에 대한 종주권을 인정받고, 8월에는 제2차 영․일 동맹 조약을 체결하여 영국으로부터도 한국 땅에 대한 식민지배 통치권을 인정받았다. 또 9월에는 포츠머스 조약이 체결됨으로써 마지막으로 러시아로부터도 같은 권리를 인정받게 되었다.
일본 왕은 1905년 11월 9일 특명전권대사 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를 한국에 파견하여 하야시공사와 주한일본군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를 앞세우고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신협약안(新協約案)을 체결하고 1905년 11월 18일 발표하였다. 조선 통감부는 조선의 관헌감독권, 병력 동원권 등 국정 3권을 완전히 장악하여, 명실 공히 조선을 보호한다는 미명으로 최고 통치기관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대한제국 융희 4년 1910년 8월 22일 5시 어전(御前)회의에서 매국노 총리대신 이완용과 일본 통감 데라우찌 마사다께 사이에 한국 땅을 일본 영토에 합하는 조약서에 조인(調印)하고 8월 29일 공포했다. 이로써 조선조(朝鮮朝)는 27대 519년 만에 멸망하고, 1945년 8.15 해방 될 때 까지 35년간 한국 땅은 일본 영토이며 대한 백성은 일본 사람이 되고 말았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한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것과 같이 육지 땅을 동경하는 섬나라 고유의 특질적 근성(根性)의 일본인은 우리나라 침략은 끊임없이 연속되었다. 대한민국의 영토를 완전히 잡아먹고 일본 영토가 될 때까지 일제의 침략은 계속 될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 지리적으로 얼토당토 않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언제든지 대한민국을 침략하더라도 국제적으로 묵인 받을 수 있다는 장기적 정략(政略)으로 틈만 나면 수시로 죽도는 일본 땅으로 주장하고 있다는 일본의 흉계(凶計)를 대한민국 정부는 직시하고, 미국과 동맹관계를 튼튼히 하고 일본을 능가할 수 있는 국방력 강화 외는 다른 방책은 없습니다.
[2]. [일본의 한국 침략사]를 간행하여 일본만행을 고발하자
우선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다시는 주장하지 못하게 하고, 일본인들의 뿌리 깊은 침략적 근성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범국민적 대응의 실천 운동이 절실히 요청되는 때입니다. 즉 일본은 삼국시대부터 대한제국이 멸망 할 때까지 기습 공격은 멈추지 않았던 왜적들은 급기야 세계 제 2차 대전을 일으킨 전범(戰犯) 국가로써 속죄와 자숙하기는커녕 언잰가는 미국도 기필코 잡아먹고 말겠다는 야욕으로 쌀미자의 미국(米國)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면 할수록 도리어 국제적 망신과 고립을 자초 하게 된다는 사실을 일본인 스스로 자각 할 수 있도록 대한민국 정부는 왜적 일본이 대한민국 영토를 끊임없이 침략한 [일본의 한국 침략사]와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일본이 독립운동가와 민생을 처형한 참혹한 잔학상 사진 등 홍보책자를 간행하여 세계 각국에 배포하여 일본의 끝없는 대한민국 침략 야욕과 악랄 잔혹한 일본인들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널리 홍보하여 국제적 여론 조성을 강구하는 것이 시급하며, 한. 일간 전쟁을 미리 예방하는 상책이 될 것이다.
[3]. 대한민국은 온전한 독립을 이루지 못한 국가이다.
국토가 육체라면 국사는 민족정신입니다. 1945년 8.15 광복을 맞이하여 육체는 해방되었으나 해방 62주년을 맞은 지금까지 일제의 의해 말살, 왜곡, 변조된 반도조선사(현행 국사)를 철폐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대한민족을 일본사람으로 동화시켜 대한민국을 영원히 멸망시키기 위해 일본인과 식민사학자들이 만들어 준 식민지국사를 그대로 청년학도들에게 가르치고 있으니 어찌 대한민국이 온전한 자주 독립국이 되었다 할 수 있겠는가?
1945년 8.15 해방을 맞아 독립국이 되었으면 나라를 망치는 식민사학자가 만든 망국적 치욕의 반도조선사는 당연히 폐기처분하고, 조국에 목숨을 바친 민족사학자가 저술한 사료(史料)를 근간으로 정통적 국사로 정립해야 온전한 자주독립국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얼빠진 역대 대한민국 정부는 대륙 속의 근세 조선을 한반도 속의 조선 8도로 축소하여 굳이 반도조선사(半島朝鮮史)를 편찬한 일제 만행을 깨닫지 못하고, 오직 개인의 영달을 위해 일본 왕에게 죽을 때까지 충성하며, 우리나라를 일찍 망치는 식민사학자 이병도의 손으로 만든 망국적 치욕의 국사를 해방 62주년을 맞이한 지금까지 그대로 교육하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 당국자는 도대체 제 정신이 있는가? 얼빠진 정신병자들인가?
[4]. 독도문제는 오직 역사로 풀어야 할 과제이다
독도 문제는 한,일간 협상으로 타협할 문제도 아니며, 대한민국 정부 당국자들이 스스로 자각 하고, [일제에 의해 말살된 역사를 복원하고, 왜곡, 변조된 역사를 바로 정립하는 것이 근본적 해결책이다. 곧 일제 잔재의 청산이며 그 외 어떠한 대응책도 국력의 손실만 초래 할 뿐 대응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를 겁탈한 침략자가 만들어 준 망국적 국사를 오늘날까지 그대로 교육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 정권은 독도영유권 주장의 망발을 지속하는 제1의 근본적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독도 문제는 오직 우리나라를 겁탈한 일제식민 통치시대에 일본과 중국이 공모하여 인류 부모국의 대한민국 역사를 말살, 왜곡, 변조하여 천인공노할 [일제의 만행]을 철저히 입증하여 세계 각국으로부터 인증(認證) 받아야 할 역사적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한.일간 독도문제와 한,중 간 갈등의 소위 중국동북공정은 오직 역사로 풀어야 과제 일뿐입니다.
[5]. 8천만 재외 동포여러분...!!
얼빠진 대한민국은
침략자가 만들어준 국사로 교육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강탈한 조선총독부는 대한제국을 영원히 멸망시키기 위해 1910년 조선사편수회를 신설했다. 일제가 설치한 중추원의 조선사편수회는 독립사상을 억제하고, 전통적 고유문화와 고대역사 말살,왜곡,찬탈,황민화교육을 강화하여 대한민족을 일본인으로 동화하는 정책으로 대한제국의 민족존립 자체를 망치는 악질적인 통치정책기관이 바로 중추원이다.
(1). 일제가 조선사를 만든 목적
조선총독 사이토마코토는 1922년 중국에 파견하여 각처를 수색 수거하여 돌아온 <일본인 학자 실무자>들을 독려하여 조선사 편찬 시책을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먼저 한국의 국내와 중국 각처에서 수거한 “조선사 사료”를 조선인들 몰래 모두 다 불태워 없애고 고대사 또한 짤라 없애버리면, 조선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대사, 전통적 문화를 알지 못하게 될 것이고, 조선인들은 민족정신과, 전통적 민족문화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조선의 조상과 선인들의 무능과 악행을 과장하게 들추어내 조선사를 편찬하여 조선인 청소년들에게 가르치게 하므로서 조선인 청소년들은 부조(父祖)들을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는 하나의 기풍이 조성될 것이다. 조선인 청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역사적 인물에 대하여 부정적인 지식을 얻게 되면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 때 일본의 사적, 일본의 문화, 일본의 위대한 인물들을 소개하면 조선인들이 일본사람으로 동화되는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이것이 조선인을 반일본인으로 만드는 요결이며 제국일본이 조선사를 만들어 주는 목적인 것이다.[조선사 편수회 사업 개요]
(2).대한민국 정부 기관은 눈멀고 귀먹은 불구자들 입니다
대한민족의 반역자 이병도는 세계 인류 부모국의 우리역사를 말살하고. 세계 인류의 4대문명을 주도한 우리나라를 문명이 제일 뒤 늦은 열등한 민족으로 비하 하고, 세계 인류를 구제했던 종교 원천국의 성군(聖君)을 무능한 조상으로 둔갑하여, 철저히 폄하 조작하고, 역대 제왕들의 허물을 과장해서 청소년들이 조상님을 멸시하도록 변조했다.는 [조선사편수회 사업 개요]가 정부기록문서 보관소에 소장돼 있습니다.
[정부 기록문서 보관소에 소장]된 상기 본문은 대한민국의 중학생이 탐독해도 우리나라를 강탈한 일제가 “조선사편수회”를 설치하고 조선사를 만든 목적과 조선사편찬 지침에 따라 편찬된 현행 국사는 거짓 가짜로 만든 “일제만행의 명백한 증서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제가 설치한 [조선사편수회]가 반민족적 연구기관이라면 [조선사편수회]의 법통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기관의 [교육인적자원부, 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은 반민족적 기관인가? 대한민국의 국민교육기관인가? 대한민국을 망치는 교육기관인가?
도대체 대한민국 국민 교육기관의 역대 교육부 장관과 역대 국사편찬위원장은 정부문서 보관소에 비치된 [조선사편수회사업개요]를 단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단 말인가? 또한 망국적 치욕의 역사로 구성된 현행 국사의 내용을 단 한 번도 통찰하지 못했단 말인가? 민족혼을 말살한 식민사학자 이병도를 추종하며, 민족사학자의 저술은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농아(聾啞)와 맹아(盲啞)와 같은 불구자가 어찌 중국의 동북공정과 대응할 수 있단 말인가?
[6]. 도대체 이따위 국사로 교육하고 있단 말인가?
[현행 중,고등 국사교과서] 우리나라는 기원전 10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국가가 성립했다. 문명은 기원전 2세기경, 서쪽 지방에서 세력을 키운 위만이 준왕을 몰아내고 고조선의 왕이 되고(기원전 194년)부터 철기 문화가 확산되면서 (위만의) 고조선은 이를 바탕으로 주위의 여러 부족을 통합하여 세력을 크게 확장하였다. 또, 한반도 남부 지방에 위치한 진의 여러 나라와 중국의 한 사이에서 중계 무역을 하면서 경제적인 이익을 얻어 부강해졌다.
고조선이 강성해지면서 한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커 가자, 한은 대군을 보내어 수도인 왕검성(평양성)을 포위, 공격하였다. 위만의 손자인 우거왕은 막강한 한의 대군을 맞아 1년 동안 버티면서 잘 싸웠으나, 결국 (한무제(漢武帝)의 막강한 군사들에게) 왕검성(평양성)이 함락되고 고조선은 멸망하였다(기원전 108). (한무제는 북한 지역에 한4군(낙랑, 진번,임둔, 현도)을 설치하고 조선을 속국으로 삼아 식민지로 다스렸다) 그리하여 그 세력은 점차 약화되었고, 결국 고구려의 공격을 받아 소멸되었다. (중학교 국사 18쪽)
[현행 국사교과서의 삼한] 위만 조선이 있었던 기원전 2세기경에 남쪽에는 진(辰)이 있었으며, 여기에서 마한, 변한, 진한의 삼한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기원전 1세기경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과 더불어 부여, 동예, 옥저 등이 공존하고 있었다. 부여 및 마한의 목지국은 왕을 칭할 정도로 연맹왕국 단계에 이르렀다. 이후 동예, 옥저, 삼한의 소국들은 연맹 왕국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로 통합되었다. 이 시대를 고고학에서는 철기 시대 후기(기원 1~300년)라고도 한다. [고등 국사 도움글 39쪽]
[마한]은 천안, 익산, 나주 지역을 중심으로 경기, 충청, 전라도 지방에서 발전하고, 마한은 54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져 모두 10여만 호였는데 그 중에 큰 나라는 1만여호, 작은 나라는 수천 호였다. [변한]은 김해, 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12개국으로 이루어졌다. [진한]은 대구, 경주 지역을 중심으로 12개국으로 이루어졌다. 변한과 진한은 각기 모두 4만~5만 호였는데, 그 중에서 큰 나라는 4천~5천호,작은 나라는 6백~7백호였다.
[마한 목지국]은 처음에 성환, 직산, 천안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하였으나 백제의 성장과 지배 영역의 확대에 따라 남쪽으로 옮겨 익산 지역을 거쳐 마지막에 나주 부근(오늘날의 대안리, 덕산리, 신촌리, 복암리)에 자리 잡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등국사 41쪽 도움 글)
[7].대한민국 정부는 독도와 동북공정에 대응 할 수 없다
현행 중,고등 국사는 고조선은 나라가 아니고, 단군왕검은 임금이 아니고 부족장이다. 특히 세계적 대국의 고조선 3한(진한,마한, 변한) 중의 변한 왕 이었던 준왕을 몰아내고 연나라 사람의 위만이 고조선을 계승한 왕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연나라에서 도망쳐온 위만은 [한나라가 조선을 처들어오니 왕험성(하북성)을 지키겠다는 거짓 보고를 준왕에게 올리고] 수도인 왕검성(하북성,현국사 평양성)에 쳐들어와 고조선국 3한 중 변한의 준왕(기준)을 몰아내고 BC 194년 스스로 왕이 되었다. 그 후 계유(BC 108년)에 漢(한)의 劉撤(유철)이 수륙양면으로 대규모 침략을 감행하여 왕검성(하북성)이 함락되어 위만의 손자 右渠(우거)를 멸망시키고 한무제는 북한지역에 한4군을 설치하고 고조선을 식민지로 다스리고 한나라에 조공을 바쳤다. 라고 고조선의 역사를 요약 할 수 있습니다.
도대체 우리 국사는 중국 역사인가 한국의 역사인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여 처음 배우는 우리나라의 국사에서 첫 장부터 고조선은 멸망하고 중국의 식민지나라가 되어 대한민국 백성들은 노예가 되었습니다.
도대체 대한민국 국사는 고조선의 2천년 역사는 삭제하고, 배은망덕한 연나라 사람 위만을 우리조상으로 삼고, 멸망의 역사부터 가르치는 현행 국사는 어느 나라 국사 인가? 또한 한무제는 지금 북한지역에 한4군(낙랑,진번,임둔,현도)을 설치하고 조선을 속국으로 삼아 식민지로 다스렸다. 어찌 망국적 국사가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현행 국가교과서가 소위 중국의 동북공정을 입증한 국사로 어찌 중국 동북공정에 대응할 수 있단 말인가?
소위 중국의 동북공정과 중국의 국사는 중국의 고대사료(古代史料)에 증거 한 주장이 아니고, “현행 한국의 국사에 준거”하여“ 중국의 국사교과서가 편찬 ”돼 있기 때문에 중국의 동북공정은 허세가 아니며, 한국의 역사를 왜곡한 것도 아닙니다. 또한 “현행 한국의 국사에 준거(準據)”하여 편찬된 “중국의 국사교과서”에 대해 무슨 증서로 항변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일본과 중국에 대해 역사왜곡을 철폐하라고 항변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며 남의 나라 국사 편찬에 어찌 항변 할 수 있단 말인가?
[8]. 대한민국이 병들어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인류 4대문명의 발상지” 중에서 하나의 중국 황하문명은 BC 3500년에 황제가 등극하여 황금 문화가 발달되었으나 중국과 이웃한 고조선의 단군왕검은 국왕이 아니고 부족장이며, BC 4세기경에 비로소 철기를 쓰기 시작하여 우리민족은 세계에서 문명이 제일 뒤떨어진 미개한 민족으로 철저히 비하된 내용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상기와 같이 우리민족을 철저히 비하하고, 一生 동안 신명(身命)을 바쳐 일본왕에게 충성하며 죽을 때 까지 일본왕의 명령에 복종했던 충견(忠犬)이며, 민족의 반역자 이병도가 편찬한 현행 국사를 개편하지 않고 그대로 교육하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기관의 교육인적자원부,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은 정녕 대한민국이 빨리 멸망하기를 바라는가? 일제의 앞잡이인가? 일본정부 대리 긴관인가? 대답하라...! 대답하라...!!
또한 조국을 배신하고 민족혼을 말살한 민족 반역자 이병도를 추종하는 무리들은 조국에 모숨을 바치신 민족사학자 계연수 선각님이 편찬한 대한민족의 국보적 정통사서의 환단고기를 온갖 궤변으로 호도하며 부정하고 망국적 치욕의 국사 개편을 적극 저해하고 있는 소위 강단사학자들 역시 어찌 대한민족의 반역자가 아니고 무엇인가?
특히 중국은 현재 모든 국사교과서에 한(漢)나라시대에 한반도 북한 지역을 다스린 한4군을 지도로 표시하여 가르치고 있으며, 한반도 남쪽 경남 김해의 가야(임나)지역에 일본이 임나본부(任那本府)를 설치하고 통치했다. 라고 일본의 국사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인은 독도가 분명한 대한민국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으나 일본 정부의 음흉한 공작에 의해 미국 연방정부 기관인 지명위원회(BGN)의 홈페이지에 독도 표기는 없어지고, '리앙쿠르 록스(Rocks:암석)로 표기돼 있고 특정국가 주권이 미치지 않는 '주권 미지정 지역(Undesignated Sovereignty)'으로 표기하기 시작했다.고 금일 조선일보에 보도되었다.
머지 않는 장래 소위 중국의 동북공정에 의한 중국 국사왜곡과 간도 영유권 문제와 일본의 우리 역사왜곡과 독도 영유권 분쟁 등의 난제(難題)가 한 .중. 일 3국간에 심각한 갈등으로 비화되어 한반도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한 것과 같이 전운(戰雲)이 감돌게 될 것이다. 침략자가 만들어 준 망국적 치욕의 현행 국사를 개편하지 않고는 결코 일본 독도 영유권 주장과 중국의 동북공정을 무력화 시킬 수 없고, 망국적 국사가 망하는 것은 필연이며, 나라가 멸망한 후에 통탄 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 영유권 분쟁 등의 한 .중. 일, 3국간의 심각한 갈등을 무력화시키는 첩경은 오직 일제와 중국이 공모(共謀)하여 인류의 부모국이며, 4대문명과 종교원천국의 한국역사를 말살하고 거짓 가짜로 만든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일본의 만행을 전 세계에 폭로하여 국제적 공감대를 형성하여 일제의 침략 근성을 분쇄해야 합니다. 아울러 “ 한반도 속의 소국 적 사대역사관(事大歷史觀)과 식민지사관의 망국적 치욕의 국사교과서 ”를 반드시 철폐하고, 중국에 빼앗긴 3황5제의 역사를 복원하여 본래의 [대국적 聖君(성군)의 국사로 정립] 하는 길 밖에 다른 방책은 없습니다.
[9]. 일제에 의해 말살, 왜곡, 변조된 현행 국사는
“역사학계에서 논쟁할 사안”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자국의 국사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며 논쟁하는 나라가 한국 외에 또 어떤 나라가 있단 말입니까? 우리나라 국사는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이 우리 국민의 손으로 만든 국사가 아니고 우리나라를 강탈한 침략자가 거짓 가짜로 만들어준 국사에 대해 무슨 논쟁을 한단 말입니까?
1945년 독립국이 되었으면 침략자가 거짓 가짜로 만든 국사는 당연히 폐기하고, 바른 국사로 개편해아 마땅한 것을 얼빠진 정부당국자가 7천만 국민을 기만하며, 책무를 기피함으로서 논쟁하고 있을 뿐이지 올바른 정통국사라면 어찌 국사가 논쟁의 대상이 된단 말입니까?
망국적 현행 국사를 사수하고 있는 고질적 강단사학자 들과 학술적으로 토론하여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없으며, 국회에서 신법을 창제할 필요도 없습니다.“근본적으로 뒤틀린 국사”를 바로 세우는 국가적 大業(대업)은 오직 대한민국 대통령이 반드시 개편하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결심을 갖고 국책으로 삼았을 때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조국을 배신하고 오직 개인의 영달을 위해 일본왕의 충견이었던 대한민족의 반역자 이병도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현행 국사를 적극 사수(死守)하고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 대통령도 대한민국을 망치는 망국적 치욕의 국사를 개편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즉 망국적 치욕의 현행 국사를 철통같이 사수하는 무리들이 사회 각처에 기생하고 있기 때문에“근본적으로 뒤틀린 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위해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염려하시는 민족사학 단체와 시민단체가 연대하여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여 정부당국자와 맞서 투쟁하는 방도 외는 다른 방책이 없습니다.
[10]. 한국의 신문,방송은 먹통이고,국민은 멍청이들인가?
우리나라의 국사는 조국을 배신한 한민족의 반역자 이병도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2권을 근간으로 현행 [국사교과서]를 편찬한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 할 수 없을 것이다. 유구한 우리나라의 고대사가 도대체 어찌하여 오직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2권 밖에 없게 되었으며, 일제는 무슨 목적으로 남의 나라 국사를 만들어 주었겠는가?
『조선 반도사』 편찬 실무자 스에마쓰(末松保和), 이케노우치(池內宏), 경도제대 이마니시(今西龍)등 20여명의 일인 학자들과 한민족의 반역자 이완용의 후손 이병도,신석호․ 홍희 같은 한인역적들이 참여하여 1938년(소화13년) 3월에 드디어 24,409쪽에 달하는 『반도 조선사』 34권이 완간 했던 것이다.
결국 일제는 인류최초로 개국했던 1, [환인의 환국 BC 7199년)]부터 ⇒ 2, [환웅의 배달국시대] ⇒ 3, 3황5제의 진단국시대 ⇒ 4, [단군왕검의 고조선 삼한시대)] ⇒ 5, [해모수의 북부여 후 삼한시대의 마지막 변한왕 계왕(稽王) BC 17년] 까지 무려 7천년의 우리나라 역사는 짤라 없애고, 세계 인류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이 우리나라를 강탈한 왜적이 남의 나라 역사를 말살, 왜곡, 조작, 유린해서 국사를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를 강탈한 일제는 환인의 환국(BC 7199년)시대부터 조선 고종 34년(1897)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칭하고, 1910년 8월 22일 한국 땅을 일본 영토로 합하고 1926년 4월 25일 53세로 순종이 일생을 마치고 대한제국이 멸망할 때까지의 우리역사를 왜곡, 변조, 조작해서 소위 [반도조선사]를 편찬했던 것이다.
즉 중국 대륙에서 건국되었던 신라,백제,가야국의 3국 영토를 마치 한반도 속에서 건국된 것 처럼 한반도 속으로 얽어 맞추었던 것이다. 특히 중국 대륙의 대조선국을 반도국가로 만들기 위해 소위 대동여지도, 조선선국지리도, 동람도, 조선여지도, 동국지도, 등은 우리나라 사람이 만든 지도가 아니고, 우리나라 사람을 가장한 일본인들이 만든 지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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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의 지도는 대륙속의 대조선국(大朝鮮國)을 마치 한반도 속에서 건국 된 것 처럼 한반도 속의 조선 8도로 얽어 맞추고 거짓 가짜로 편찬된 [반도조선사]를 한국인들이 의심 없이 확실히 믿을 수 있도록 일본인들이 조작해서 만든 가짜 지도인 것이다.
일본인의 손으로 가짜로 만든 독도(獨島) 표기 지도가 오히려 독도가 한국의 영토로 입증하는 자료로 이용되고,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무력화시키는 입증자료가 되고 있으니 약탈을 일삼은 왜적의 억지주장은 이를 두고 적반하장(賊反荷杖)이 아니겠는가?
[1938년 조선사편수회에서 만든 조선사]와 [2005년 3월 1일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된 중, 고등 국사]와 근본적 내용이 똑 같습니다. 또한 일제가 조선사를 만든 목적의 요결문과 조선사 편찬 지침과 똑 같이 현행 국사는 철저한 식민지사관의 망국적 치욕의 국사로 곧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장래를 염려하며, 제 정신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일제와 이병도의 만행에 울분을 참지 못할 것입니다.
식민사학자는 조국을 배신하고 일본왕에게 충성하며 모두 다 죽을 때까지 명예와 부귀를 누린 반면, 민족사학자는 하나같이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모두 다 처참하게 참살되어 조국에 목숨을 바쳤습니다. 즉 우리나라를 침탈한 일제에 의해 1905년 국권을 잃고,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조국과 민족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민족사학을 정립하고, 독립투사들은 국내의 처자식을 버리고 이역만리 이국땅에서 온갖 고통을 참으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 철천지한을 안고 조국에 목숨을 바치고 돌아가셨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나라를 빼앗겼던 일제 40년 동안 나라 없는 서러움 속에서 온갖 수난을 겪어야 했던 지난날의 일제만행을 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부림친 선열님들의 애국애족정신과 조국에 목숨을 버린 민족사학자님들의 거룩하신 희생정신이 없었다면 어찌 대한독립이 될 수 있었겠는가?
일제 압박 40년 동안 우리 선조님들은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그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던가? 우리가 오늘의 번영을 누리는 것도 우리 선조님들의 흘린 피의 값이 아니고 무엇인가? 우리는 순국선열의 애국 애족정신을 계승하여 온전한 자주독립국을 완성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해방 62주년을 맞은 지금까지도 일제와 일본왕의 충견(忠犬) 이병도의 만행을 깨닫지 못하고 식민지국사를 그대로 배우고 있으니 어찌 얼빠진 민족이 아니고 무엇인가?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장래를 망치기 위해 일제가 거짓으로 만든 가짜 국사교육에 무려 62년 동안 세뇌된 거짓 지식으로 분별력을 상실하여 참과 거짓의 역사도 분별하지 못 할 뿐 아니라 소위 지식인들도 식민사학자와 민족사학도 판별하지 못하고,“근본적 뒤틀린 현행 국사의 실상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도 “고증에 의한 역사적 진실”도 쉽게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 한국인의 가장 슬픈 고질적 병폐입니다.
식민사학자 이병도는 일본왕의 지령을 받고 일생동안 신명을 다하여 민족혼을 말살하여 세계사적으로 찾아볼 수 없는 稀代(희대)의 범죄적 사기(詐欺)꾼을 민족사학을 정립한 선구자로 추종하는 소위 강단사학자 들이 한국사회의 각처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망국적 국사개편을 가로막고 있는 자들이 민족 반역자가 아니고 무엇인가?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염려하는 민족적 애국심도 없이 자신의 이익만 쫓아 투쟁만 일삼는 소인배 정객들은 망국적 국사개편에 관심도 없이 방기(放棄)했다면 이들 또한 민족 반역자의 굴레에서 벗어 날 수 없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의 사회 여론을 주도하는 신문 방송의 소위 지식인들은 근본적으로 뒤틀린 현행 국사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도 단 한구절도 보도 하지 않고 방관하는 이들 또한 민족반역자 이병도의 죄목과 다름없을 것이다.
더구나 대한민국 현행 국사는 중국 황제에 의해 책봉되는 속국이며, 주체적으로 발전된 나라가 아니라 항상 소국이 대국을 받들고 조공을 바치며 유지 발전되어 왔다는 요지의 이른바 한반도 속의 “소국 적 사대역사관과, 식민지사관”의 역사부터 교육받고 있으나 대한민국의 장래를 책임 질 청년학도들은 어느 누구 한 사람 일제의 손으로 만들어 준 망국적 치욕의 국사를 철폐하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으니 대한민국의 장래가 암울 할 뿐이다.
역사는 우리 선조들이 살아온 발자취로서 지금 대한민족 자신들의 뿌리입니다. 따라서 민족사는 우리자신의 모습이고, 우리 자신의 문제이며, 우리 민족의 주체성(主體性)입니다. 한국의 대다수 국민들은 정부당국자의 소관으로 인식하고 자신과 무관한 것으로 인식하고, 무관심으로 방관하고 있습니다. 국민적 무관심은 결국 일본의 만행을 묵인 동조하는 반역이므로 8천만 재외 동포는 얼빠진 정부에 맞서 의연히 분기(奮起)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제 강점하의 친일 반민족적 반역자들의 처단만 일제식민지의 잔재 청산이 아니라 1945년 해방이후부터 오늘날까지 반민족적 반역행위자들을 완전히 색출 소탕, 척결해야 진정한 의미의 일제식민지 잔재 청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역사를 말살, 왜곡, 조작한 일제의 만행을 영원히 은폐하기 위한 일제의 공작은 지금도 은밀히 진행 중에 있으나 얼빠진 정부당국자와 각 대학교는 일제의 마수를 깨닫지 못하고 일제의 마수에 동조하는 무리들이 존재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망국적 치욕의 현행국사를 사수하며, 이병도를 추종하고 있는 민족반역자들을 모조리 발본 색출하여 국민적 이름으로 처단해야 비로소 일제 침략자의 손으로 만들어 준 오욕의 역사를 청산하고 망국적 치욕의 국사를 바로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얼빠진 대한민국 정부당국자는 침략자의 손으로 만든 망국적 치욕의 국사를 개편하지 않는다면 종래 대한민국이 멸망에 이르게 하는 큰 죄악을 범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우쳐서 일제와 민족의 반역자 이병도에 의해 말살된 역사는 복원하고, 유린된 역사를 바로 잡아서 정통적 국사로 정립해 주시기를 간곡히 당부하는 바입니다. 끝.
2008년, 7월 28일
한국정신문화선양회
회원일동
==> 이것이 일본의 실체 입니다..
일본군의 잔학하고 악랄하고 무자비한 총칼에 순직 하였습니다.
일본은 1880년경 부터 우리나라에 불법으로 일본군을 주둔시켜
각가지 만행을 자행한 후 결국은 나라를 송두리째 빼았아 점령
하드니 그래도 모자라
다시 독도를 자기들의 영토라고 점령 할려고 합니다.
강점 36년 동안에 자행한 일본의 만행을 들추어
전 세계에 고발을 합시다.
끔찍한 사진이 많으니 심장이 약한분은 주의가 필요 합니다.
광복 독립군과 독립투사, 양민들이 잔학한 일본군에 붙잡혀 온 집결장이다.
일본인에 체포 되어 어디론가 이동하기 위해 대기 하고 있다.
손을 뒤로 묶인채 소리 없이 침묵하고 있다.
1928년 이때부터 일본군은 악랄하고 잔혹한 살육의 강도를 높인다.
독립투사 또는 양민을 학살 하기 위하여 일본도를 손질하는 일본군인 놈들.
독립군, 독립투사를 처형장소로 가기 위해 트럭에 싣고 있다.
일본군놈의 장칼에 목이 떨어지는 독립군-죽일 놈들
일본군 놈들에 끌려 가는 독립군 의병장
무기도 빈약하고 의복도 남루 했지만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본군놈들을 해 치워야 겠다는 의기 투철한 의병대들 모습.
총검으로 처형하기 위해 담장 쪽으로 몰고가고 있다.
이미 총검에는 선혈이 묻어 있다
체포된 독립군은 결국 처형을 당했다.
칼로 목을 칠 때 넘어 가지 않도록 팔을묶고 뒤에서 당기고 있다.
일본인 칼에 목이 떨어지는 순간을 촬영한 것이다.
개를 풀어 인간 사냥을 하는 모습이다. 결국 총살로 생을 마친다.
독립군 간부의 처형 장면이다. 목을 치기전 뒷편 일본군이
웃는 모습을 볼 때 분노보다 일본의 양심과 목적을 혼돈하게 한다
독립군 병사를 작두로 목을 짤라 공중 높이 매달아 놓았다.
추운 겨울 날씨로 오랫동안 매달아 경각심을 주기위해 인간이 할수 없는
최악의 형벌을 자행 했었다.
죽은시신을 구분하지 못하도록 화장을 시켰다.
온 마을이 유해로 가득하고 일본의 원폭 피해처럼 보인다.
손을 뒤로 묶고 물에 수장하는 처형.
처형이라기 보다 학살이라고 하는게 맞을것 같다.
일본 토벌군인 들은 사정없이 민간인 까지 처형 했다.
떨어진 목을 손에 쥐고 미소까지 보이는 것은 사람 목숨을
장난삼아 학살하는 것을 증명 할수 있는 장면이다.
일본놈 들은 포로가 된 민간인 과 독립군을 사정없이 목을 잘라서
담장 밑에 상품처럼 진열하여 두고 있다.
독립군 용사들은 죽어서도 한결같이 한을 품고 눈을 감고 있다.
생매장 되어지고 있는 양민들. 일본놈들의 잔혹함을 엿볼수 있다.
이렇게 돌아가신 분들은 숨이 끊어질때 까지 대한독립을 원했다.
일본군 의사 간부가 세균 생체 실험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마취도 없이 손을 묶고 해부하고 있다, 복부에 창자와 내용물이 나오고
일본인들은 입 마스크하여 지켜 보고 있다.
일본군들이 처형하기전 목에 수건을 감아놓은 것은
칼이 목을 치기전 잘린 몸통에서
품어 나오는 피를 막기 위해 수건을 얹어 놓은 것입니다.
손을 뒤로 묶고 칼로 살육하는 장면.
지독한 고문.
하의가 벗겨지고 혹독한 고문뒤 결국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우리 한국인들은 나무 벌목 과 혹독한 노역을
시키고 난뒤 결국 모두 처형되었다.
총검으로 처형당하는 모습이다.
일본인의 입가에 미소가 무엇을 의미 하는 것일까?
총검으로 심장을 찌르는 장면. 천벌을 받을 놈들이다.
일본도로 목을 자를려고 고개를 새우고 있다.
잔학의 극치를 보여주는 장면. 처형하는 순간.
칼이 지나가 목이 잘린상태.
독립군의 목은 이미 칼이 지나가 목이 잘린 순간.
처형후 두병사의 자랑스런 자세로 기념찰영.
죽음을 기다리는 양민들 일본인 감시아래 손이 뒤로 묶여져 있다.
생매장된 양민들 가족들에 의해 파헤쳐지고 있는 장면이다.
죽은사람의 표정에서 일본인의 잔혹한 흔적을 엿볼수 있다.
처형을 기다리는 소년투사. 긴장된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다.
잔악 무도한 일본군들이 대량 학살 하고난 뒤 처참한 광경. 교랑에
즐비한 시체들 중에 뒤에 흰색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과 애국지사의
가족들이 시신을 찾기 위해 살펴 보고 있다.
잔혹한 살육 장면(1942)
옷이 벗겨진 여인은 온몸이 상처 투성이다.
목은 짤라져 있고 얼굴 모습은 등뒤로 돌려 져있다.
강간후 총으로 치부에 발포한 장면.엉덩이에 총상
구멍이 선명하게 보인다 여성의 음부를 일본군이 가려
좔영 하였다.더 이상 해설이 필요 없는 사진이다.
한국 여인들을 찾으러 다니는 일본군들. 눈에 띄는 여성은 모두
끌고가 강간후 살해했다.이런 여성보급을 당담하는 일본군을 항상
여러명의 한국여성을 데리고 다녔다.
수장된 시신들. 손을 뒤로 묶고 저수지에 수장시켰다. 살기 위해
허덕이는 사람 에게는 긴막대기로 물속으로 밀어 넣었다.
한곳으로 몰아 넣어 집단으로 무차별 학살 한 후 불 태웠다.
(1937년)허탈한 아버지 죽은 어린 자식 시신을 물건
처럼 들고 있을 만큼 어이가 없는 학살 이였다.
여성의 옷을 벗기고 마구 살육당 했던 참혹한 현장.
모래사장에 뒹굴고 있는 시신들.
일본군이 1943년 후퇴하면서 최후 발악을 자행한 흔적들이다.
(1938년)죽이는 방법 시범 실습 현장 장면이다.강변에서 총검으로
살육하는 실습을 자행하고 있다. 이런 현장을 지켜보기 위해 동원된 일본군인들은 관심 깊게 보고 있다.
살이 떨리는 공포.두사람의 양민이 포로가 되어
일본인에게 두손 모아 애원하는 모습이 보이고
일본군은 무엇인가 소리 치고 있다.
산더미 같은 시체. 여성의 하의가 벗겨져 있고
하체에선 선혈이 흘러 나오고 있다.
집단 학살. 가슴에는 죄명아닌 죄명을 달아놓고 사살했다.
얼굴의 선혈을 보아 총살이다.
이성 잃은 일본군. 일본군은 여성의 음부를 손가락으로 장난하고 있다.
전쟁과 관계 없는 일이다. 일본의 숨은 근성을 엿볼 수가 있다.
부녀자 강간. 일본 병사의 손을잡고 애원하는 모습입니다.
이미 젖가슴이 드러나고 반항을 하지만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수난이다.
수장된 시신. 손을 뒤로 묶고 못에 수장을 시켰다.
막대기는 위에서 누르고 있다. 살기 위해 얼마나 바둥 거렸는지 짐작이 간다.
갓난 아기의 죽음. 인형처럼 뒹굴고 있는 아이들의 시체.
일본 놈들은 전쟁으로 이성을 상실 했었다.
너무나도 억울한 죽음. 잡아온 양민들을 표적 삼아 사격 연습을 하고 있다.
부녀자 집단사살. 엄마와 함께 도피 하다가 참변을 당했다.
흐르는 선혈이 계단을 적시고 있다.
집단 사살 현장. 오른쪽 일본군이 죽은 시체를 확인하고 있다.
부녀자 절규. 하체를 강압에 의해.(차마 설명 할수 없음)
손에 실반지가 보인다. 단란했던 가정을 등지고 결국
정신대로 갈것이다. 여성이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은 한숨 뿐이다.
작두로 처형 직전. 작두로 목이 곧 짤러 질것이다.
작두로 목을 짜르고 있다. 작두 앞에 잘려진 목이 하나 보인다.
작두로 수없이 잘려간 양민들의 모습.일본군이 장난 삼아
목이 잘린 시체의 손을 자신의 잘린 목부분을 가르키게 해놨다.
저런 끔직한 일은 일본군에겐 단지 장난에 불과했다.
일본 관동대학살 (1923년)
1923년 일본 관동일원에 대지진이 발생하여 10여만명이 사망 했다
민심이 극에 달하자 일본 정부는 한국인 폭동설을 조작 유포시켜
한국교포 약 5천명을 피살 하였다. (몽둥이,죽창 으로 학살)
창고에서 독살. 엄청난 시체가 당시 혹독한 진실을 보여 주고 있다.
노역자가 운송을 마치면 죽음 이다.
부릴때로 부리고 쓸모가 없어지면 장소와 때를 불문하고 이렇게 죽였다.
3명의 의병 총살 현장.영국여행가 비숍 씨가 촬영한 것이다.
영국왕립 박물관에 소장된 자료.서대문 형무소뒤 야산 공동
묘지에서 독립 의병 3사람이 총살 당하는 모습이다.
일본군들은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을 말살하기로 한것인다.
어린아이들 까지 죽여 불태워 졌다.
온갖 수단으로 자행한 행위는 사진속에는 피할수가 없다.
독립 투쟁을 벌이다가 집단학살된 유해들.
잔혹한 행위로 소리없이 죽은 영혼은 무엇으로 위로할 것인가?
선량한 양민을 단 칼에 처형하는 지구상에는
하나 밖에 없는 족속들이다.
<죽음 앞에서도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며 당당한 독립투사.
참아 볼수 없는 사진이다.
길거리에서 일본군인놈에게 강간을 당하고 맞어서 내장이 나온 상태.
일본군 종궁 위안부(정신대)의 거실 내부-이곳에서
일본군은 성욕을 채웠다.
근심이 가득한 한국여성. 일본군 위문품을 강제로
하는수 없이 만들고 있다. 이곳에서 강제 노동을
하면서 일본군의 노리게로 끌려 갔다.
종군 위안부에 들어 가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일본 병사들.
종군 위안부의 음부를 노출하게 하여 찍은 사진.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는 막사로 실려가는 위안부.
위안부의 휴식시간.
일본병사 근무지에도 불려간 종군 위안부
누구나 이 메일을 자기 블로그,카페에 올리고
이 사진을 메일로 의무적으로 다른 여러분에게 발송해
일본의 잔인함을 알게합시다.
'想像나래 마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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