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공기를 찢는 총성이 울렸다. 총성은 연속적으로 울렸다.
적도(敵盜)들이 쓰러지는 것을 지켜 본 안중근은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대한만세'를 세 번 불렀다
군민들은 그제야 몰려들어 중근의 권총을 빼앗아 헌병에게 넘겨주었다.
당시의 정황으로 보아 안중근이 적도들을 포살하고 혼란한 틈을 이용하여 피신할려면 피신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안중근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재판과정에서 당당하게 이토의 죄상과 일제의 침략죄악을 밝히고, 한국의 자주독립의 당위성을 주장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옥중투쟁을 통해 만국공법의 원칙을 밝히고 국제 열강의 지지를 받아서 조국의 자주독립을 쟁취하려는 생각이었다.
이토 그 넘의 오른쪽 가슴과 복부에서 선혈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열차 특실로 옮겨진 이토는 피격 30분 만인 오전 10시 경에 69살로 뒈졌다 (축하한다)
이토 히로부미
거사를 행하시고 감옥에서의 모습 안중근 의사에게 총살당한 이등방문
신부님과 두 동생(좌측)에게 마지막 유언하시는 모습
3월 26일 아침. 안중근은 흰 한복을 입었다. 이때 촬영된 사진속에 안중근은 침착하게 먼 곳을 바라보며 흰 색 가운데 보이는 것은 매우 짙은 흑발,검은 눈썹과 콧수염, 무릎 위에 포개 놓은 손뿐이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느냐는 질문에 '동양평화 만세'를 외치고 싶다고 했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마지막 순국의 형장으로 향하는 안중근의사
만31세에 순국하실 때 입으셨던 마지막 수의
내가 이토를 죽인 이유는 이러하다.
1. 한국의 민황후를 시해한 죄요
|
'想像나래 마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일본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성명서 (0) | 2009.11.03 |
---|---|
500년 왕조의 마지막 기억, 건청궁 (0) | 2009.11.02 |
“박정희 前대통령 말년 개헌 뒤 하야하려 했다” (0) | 2009.10.26 |
추억사진 /콩 심은데 콩 나고 (0) | 2009.10.19 |
역사의 흐름 (0) | 2009.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