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산화첩] 위도 망월봉
- 봉산출운과 내원모종에 취해
진막리~망금봉~망월봉~파장봉을 가며 본 풍경들
-
-
-
위도(蝟島)는 주위의 유혹 때문에 찾아가는 것부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섬으로 떠나는 격포항에는 고고하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채석강이 잠시 들렀다 가라 하고, 우람한 변산의 고색 짙은 내소사의 오리숲이 발길을 유혹하며, 백룡이 승천이라도 하듯 변산의 직소폭포가 괴성을 지르며 옷깃을 잡아당긴다. 이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찾아간 섬 위도는 섬 모양이 고슴도치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망월봉에서 내려다 보면 마치 작은 섬들은 고슴도치 무리가 바다 위에서 자맥질을 하는 듯하다.
망금봉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하늘을 가린 신록의 원시림으로 산꾼들의 가슴속까지 초록으로 물들이며, 지천으로 피어 있는 야생화는 천상화원을 연상케 한다. 섬 주위에는 크고 작은 네 개의 해수욕장이 있어 산림욕과 해수욕을 동시에 즐길 수 있어 좋다.
산행 코스는 진막리에서 망금봉(241m)~도제봉(152m:봉수산)~망월봉(254.9m)~파장봉(162m)으로 이어지는 종주코스가 14km에 이르며 약 6~7시간이 소요된다. 그렇지만 종주를 하지 않을 요량이라면 곳곳에 주능선으로 오르는 들머리가 있어 30분에서 7시간까지 다양한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
- ▲ 해식단애의 비경과 해안일주도로.
-
-
변산반도 끝자락 격포항에서 짭조름한 해풍을 맞으며 50여 분 만에 파장금항에 도착했다. 먼저 면사무소를 찾았다. 등산안내도와 산행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총무계장 성태영씨는 등산안내도를 챙겨주며 산행에 관한 설명까지 상세하게 곁들였다.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미영금으로 향했다. 버스 기사의 농담 섞인 구성진 안내방송에 승객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해수욕장이 있는 미영금에 도착해 민박집에 여장을 풀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 후 텅 빈 바닷가 백사장으로 나섰다. 날이 어두워지자 달빛이 휘영청 밝다. 잔잔한 밤바다는 은가루를 뿌려 놓은 듯 반짝이며 가끔씩 철썩이는 파도소리가 적막감을 달래준다. 망월봉에 뜬 달과 은빛 바다를 번갈아 바라보며, 고요한 해변에 홀로 앉아 술잔에 술을 따르니 잔 속에 달이 뜬다. 잔 속의 달을 함께 마시니 가슴속에 달이 뜬다. 심월취안(心月醉眼)으로 깜박이는 작은 등대의 불빛을 바라보니 떠난 여인의 마지막 손짓처럼 느껴졌다.
망금봉에서 내려다본 깊은금과 내원암의 아름다움
밤바다 월색에 취해 가슴으로 스케치를 하는데 잠 못 이룬 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 살며시 찾아와 내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재롱을 피운다. 달빛에 하얀 털이 유난히 곱다. 우리는 오랜 친구를 만난 듯 아무도 없는 해변을 이리 뛰고 저리 달리며 밤이 깊도록 함께 춤추며 놀았다.
-
- ▲ 파장금의 낚시꾼과 파장봉.
-
-
조그만 ‘까금산’ 안내판이 붙은 등산로 입구에서 아침 이슬을 헤치며 산길로 접어드는데 간밤에 함께 놀던 흰 강아지가 쫄랑대며 꼬리를 쳤다. 밤이슬에 함초롬히 젖어 초라해 보였다. 전생에 무슨 연이 있었나 보다.
강아지와 작별하고 물안개 자욱한 오솔길을 따라 조금 오르니 거미줄이 잔뜩 엉켜 심하게 얼굴을 감쌌다. 산에 오를 수가 없다. 권오철(미래기획 대표)씨는 마른 솔가지를 꺾어 들고 연신 흔들며 나아갔다.
능선에 올라 너럭바위에 서니 바지가 우중산행 때처럼 온통 다 젖었다. 아직도 물안개가 확연히 거치지 않아 양쪽 해안 너머로 보이는 희미한 섬들은 안개 필터를 사용한 사진 작품처럼 몽환적이다.
어린 소나무 지대를 지났다. 칡넝쿨과 잡목이 어우러지고 인동초 넝쿨까지 바위를 휘감고 돌아 원시의 숲에 서 있는 듯하며, 산일엽초(山一葉草:고라초과)가 고목에 붙어 수북이 자라고 있어 때 묻지 않은 심산임을 더욱 느꼈다.
-
- ▲ 망금봉에서 바라본 내원암과 깊은금.
-
-
조금 뒤 ‘대리길(대룡샘) 350m’이라 표시된 이정표를 만났다. 섬 산행에서는 샘이 귀하기 때문에 샘이 표시된 이정표를 보면 반갑다. 망금봉으로 오르는 가파른 길은 숨을 몰아쉬게 하지만 하늘을 가린 짙은 녹색의 숲길은 나에게 활력을 불어넣는다. 유난히 이곳에는 인동초가 빽빽하게 군락을 이루고 있어 그 사이로 난 작은 오솔길은 마치 중국 무이산 다동(茶洞)으로 들어서는 듯한 느낌이다. 그렇게도 보기 힘들다는 인동초 꽃이 여기에는 지천으로 피었다. 참으로 인적 없는 심산 산행이다.
숲을 빠져나와 앞을 쳐다보니 우뚝 솟은 암봉이 마치 모자상(母子像)을 닮았다. 조망을 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이곳에 올라 안개 속의 해안 일주도로를 바라보았다. 해식단애의 비경을 끼고 도는 일주도로는 좋은 사람과 드라이브를 한다면 프랑스 영화에서처럼 누구나 영화 속 주인공이 될 것이다.
내원암으로 내려서는 이정표에서 조금 오르니 삼각점이 있는 망금봉 정상이다. 위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다. 사방이 확 트인 조망에 가슴속까지 시원함을 느꼈다. 망금봉에서 내려다본 깊은금과 내원암의 평온함과 아름다움이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와 스케치북에 담았다. 아침 저녁으로 울려퍼지는 내원암의 종소리가 너무 아름답다 해서 붙여진 내원모종(內院暮鐘)은 위도 팔경 중 일경(一景)으로 친다.
깊은금은 위도를 고슴도치 형상으로 보았을 때 음부에 해당하는 곳이라 해서 심구미(深口味)라 했던 것을 지금은 깊은금(지풍금)이라고 부른다.
-
-
-
언덕 위엔 노거수 느티나무 그늘
스케치북을 접고 안부로 내려서니 산딸기가 지천으로 매달려 있다. 바로 옆으로는 춘란(春蘭) 군락지다. 난향천리(蘭香千里)라고 했는데 봄날에 이곳을 찾으면 그윽한 난향에 취해 발목을 붙잡힐 것이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숲은 키를 낮추고 땡볕에 땀이 비 오듯 했다. 키 작은 잡목지대를 조금 지나니 다시 울창한 숲속으로 접어들었다. 숲속에는 의자도 마련되어 있다. 권오철씨와 간식을 먹으며 더위를 식혔다. 휴식을 취하고 나무계단을 내려서니 치도리로 넘어가는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나타났다.
도로를 건너 망월봉으로 오르는 숲길로 들어서니 진말고개까지는 1.3km로 표시되어 있다. 동래 정씨 공동묘역을 지나 능선길을 따라 걷다 보니 마을도 지나고 임도도 건너는 산길이 마치 정맥 산행을 하는 느낌이다.
능선 오른편 발아래는 이곳에서 유일한 60년이 넘은 초등학교가 있는 치도마을이다. 꿩이 많아 치도(雉島)라고 하는 이 마을 앞에서 약 1km 떨어진 큰딴치도와 작은딴치도로 이어지는, 모세의 기적처럼 바닷길이 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아름다움은 격이 높은 수묵화 한 폭을 보는 듯하며, 썰물 때면 섬들로 이어지는 길이 열리면서 걸어서 왕래할 수 있다고 한다.
다시 산길을 걷는데 이곳에는 유난히 까치수영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그 사이사이로 도깨비엉겅퀴 보라색 꽃이 조화를 이룬다. 자연의 오묘함이란 참으로 신비롭다.
-
- ▲ 진말고개에 우뚝 선 노거수 느티나무와 구름다리.
-
-
진말고개에 도착하니 도로 위에 산꾼들이 통행을 쉽게 하도록 철제 구름다리 공사가 마무리 단계다. 구름다리를 통과하니 언덕 위에는 노거수 느티나무가 수호신처럼 고개를 지키고 서 있다. 여름 산행에 지친 산꾼들이 쉬어가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이곳에서 가파른 산길 200여m를 무척 힘들게 오르니 도제봉이다. 숨이 목까지 찼다.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이토록 상쾌하고 감사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온 산천 푸른 신록의 기운이 심폐로 빨려드는 듯했다. 치도마을에서 들려오는 교회 종소리가 이곳까지 생생하게 울려 퍼졌다.
이 봉은 섬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제를 올린 곳이라 하여 도제봉(島祭峰)이라 했다. 일명 새머리를 닮았다 하여 봉수산이라고도 하는데 이곳의 산허리를 감고 도는 흰 구름이 한 폭의 동양화처럼 아름답다 하여 봉산출운(鳳山出雲)이라고 한다.
숲속으로 접어드니 곳곳에 소나무를 감고 올라가는 인동초는 심산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소나무에는 무척 힘들 일이다. 울창한 숲길을 내려서니 원추리의 요염함과 산나리의 우아함이 어우러진 야생화 군락지다. 여름 산행의 재미를 한층 더해주었다. 꽃들의 아름다운 자태를 카메라에 담고 오늘 산행의 최고봉인 망월봉을 올려다봤다. 웅장한 암봉으로 이루어진 거봉이다. 해발 255m라고 만만하게 보았다가는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숲속을 걸을 때는 내륙의 심산에 들어선 듯하며, 능선에 올라 해안 절경을 감상하면 감탄사가 절로 터졌다.
다시 출렁다리 공사현장이 나타났다. 이렇게 곳곳에 도로 위를 통과할 수 있는 교량이 가설되고 있어 산꾼들에게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교량을 지나 가파른 지그재그 등산로를 로프를 붙잡고 힘들게 오르다 조망좋은 곳에서 권오철씨가 건네준 빵 한 쪽과 물 한 모금을 마셨다. 휴식을 취한 후 망월봉으로 향하는데 오늘 산행에서 정읍우체국에 근무한다는 이명수팀을 만났다. 반가웠다. 매주 산행을 하며 위도가 좋다 하여 처음 찾아왔다고 했다. 이명수씨는“조금만 올라가면 됩니다” 하고 우리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며 도제봉으로 향했다.
망월봉 정상엔 팔각정 건립 중
작별인사를 나누고 조금 오르니 망월봉 정상이다. 두 마리의 고슴도치 조형물이 손을 들어 반겼다. 사방이 확 트여 거칠 것 하나 없는 조망 좋은 곳이라 가슴속까지 후련했다. 우리를 반기는 듯 때 이른 고추잠자리가 무리지어 비행을 했다. 꾀꼬리 한 쌍이 재빠르게 앞을 지나쳤다. 이곳에 쉼터와 조망처를 겸한 팔각정을 건설 중이다. 팔각정이 완성되어 이곳에서 달을 바라본다면 망월정이 될 것이다. 그래서 망월봉에 뜨는 아름다운 달을 바라보면 마음까지 맑고 깨끗해진다 하여 망봉제월(望峰霽月)이라 하여 위도 팔경 중 하나로 꼽았나 보다.
-
- ▲ 초등학교가 있는 치도마을과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 바닷길.
-
-
어젯밤 바닷가에서 바라보았던 그 달이 망봉제월이 아니었던가. 술잔에 채워 마신 심월(心月)을 다시 끄집어내어 망월봉에 띄우니 낮에도 푸른 하늘에 달이 떴다. 참으로 망봉제월이로다.
파장봉을 향해 가파른 산길을 내려서니 대평고개다. 대평고개에 설치 중인 구름다리를 지나 다시 힘겹게 오르니 파장봉이라 쓰인 화강암 표지석이 반긴다. 이곳에 서니 파장금항이 발아래 펼쳐지고 손 뻗으면 닿을 듯한 곳에 밥섬 식도(食島)가 한눈에 들어왔다. 파장금항으로 물결을 가르며 카페리 여객선이 뱃고동과 더불어 들어왔다.
나는 이곳 위도를 찾아 새끼 고슴도치의 가시에 찔리면서도 젖꼭지를 새끼에게 물리는 피멍든 고슴도치의 젖가슴에서 깊고 숭고한 사랑을 배웠다. 뭍으로 돌아갈 여객선을 타러 가는데 뱃머리 언덕에는 어미 고슴도치의 피멍든 젖가슴만큼이나 붉디붉은 해당화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월간산 / 그림·글 곽원주 cafe.daum.net/ksejungart -
'대한민국 探訪'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책의 계절 가을 ‘10월에 가볼만한 곳’ (0) | 2009.09.28 |
---|---|
설악산 단풍 (0) | 2009.09.27 |
<스크랩> 2009년에 꼭 가야할 테마별 베스트 여행지 20 (0) | 2009.09.27 |
[스크랩] 고창 학원농장 메밀밭 (0) | 2009.09.24 |
영주 부석사 (0) | 2009.09.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