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만화동화 작가 존 버닝햄이 2002년 석유재벌 폴 게티의 아들 폴 게티 2세에게 편지를 보냈다.
노년에 관한 각계 인사들의 단상(斷想)을 모은 책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날'을 준비하면서
원고를 부탁하는 편지였다. 게티에게서 답장이 왔다.
"나이가 드는 것에 관해서는 할 말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나이가 드는 줄도 몰랐고, 내가 나이 들었다는 사실에 동의하지도 않습니다."
그때 게티의 나이가 일흔이었다.
▶ '일흔이라면 허리는 불에 튀긴 새우꼴, 손가락은 갈퀴발, 손등은 기름기 뺀 가죽이 된다.
눈은 정기를 잃은 지 오래, 눈물만 지적지적하고 충혈된 동자는 눈곱 처치를 못한다.'
이무영(李無影)이 1950년대 소설 '사랑의 화첩'에 묘사한 '예부터 드문 장수(長壽)'
고희(古稀) 노인의 평균적 모습이다.
불과 50년이 지난 지금, 병자(病者)가 아니라면 주변에서 이런 일흔 노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 우리 공공요금 경로우대나 공식 통계에서 '노인'의 기준은 '65세 이상'이다.
1981년 노인복지법을 만들면서 정한 기준이지만 평균수명 66세였던 시절 얘기다.
지금은 79.6세, 13세 넘게 늘어났다.
회갑잔치가 진작에 사라진 세상에서 65세 됐다고 노인 소리 듣는 게 달가울 리 없다.
보건복지가족부가 60세 이상 1만5000명을 조사했더니
"70~74세는 돼야 노인"이라는 답이 51%였다고 한다.
"75~79세"도 10%였고 "65~69세"는 24%밖에 안 됐다.
▶ 옛말에 신로심불로(身老心不老), 몸은 늙었어도 마음만은 젊은이 행세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이젠 '신불로심불로'라 해야 옳다.
복지부 노인실태조사에서 56%가 "노후 성생활이 중요하다"고 한 것도 이상할 게 없다.
노인의 성적(性的) 욕구를 극적으로 설명하는 일화가 있다.
97세 미국 작곡가 유비 블레이크에게 누군가 물었다.
"몇 살쯤 되니 성욕이 사라지던가요." 블레이크가 대답했다.
"나보다 더 나이 든 사람에게 물어봐야 될 것 같네."
▶ 노인실태조사에서 응답자들은 노후에 가장 하고 싶은 일로 '근로활동'(37%)을 꼽았고,
대부분 "자녀와 함께 살 필요가 없다"(71%)고 했다.
연장자 대접은 좋지만 "노인 취급 받기는 싫다"(42%)고 했다.
뒷방 신세는 되지 않겠다는 21세기형(型) 노인세대의 등장이다.
우리 사회는 이렇게 몸과 마음이 왕성한 '신(新)노인'들을 아우를 준비가 돼 있는가.
-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