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政治.社會 關係

유신민주와 주체독재

鶴山 徐 仁 2009. 3. 15. 01:06

유신민주와 주체독재
박정희의 유신민주가 김일성의 주체독재를 흡수통일해야 했다.
최성재   
 

 1972년 7월 4일 남북은 눈뜨고 코 베이는 국제 정세에 발맞추어 적십자 정신에 입각하여 '우리 민족끼리' 오순도순 살아보겠다는 성명을 발표한다. 당시 국제정세는 급변하여 닉슨 독트린이 나오는데, 그에 따라 미국은 일본과 손을 잡고 악의 제2 제국 중공을 악의 제1 제국 소련에서 떼 놓는 데 성공한다. 공화당 출신 닉슨은 1972년 2월 21일 북경에 발을 딛기에 앞서 마왕 모택동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보다 1년 전인 1971년 3월 27일 주한미군 제7사단을 일방적으로 철수했다. 당시 한국과 미국은 월남전에서 동맹국으로서 자유민주의 전사로 맹활약하고 있었지만, 미국의 국익 앞에 그것은 크게 고려될 사항이 아니었다. 민주당 출신 존슨 미국 대통령이 훨씬 박정희에게 호의적이었다. 그는 신부를 대하는 신랑처럼 박정희에게 너그러웠다.

 

 미국과 일본에 크게 의존하던 한국은 한국대로, 소련과 중공에 어미 제비에 매달리는 제비새끼처럼 입을 딱 벌리고 칭얼대던 북한은 북한대로 자립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닥친 것이다. 7·4공동성명은 바로 그런 배경에서 나왔다. 그것은 남북 공히 자주국방과 자립경제를 위한 시간 벌기 전략에서 나온 것이었기에 말과 행동이 일치할 수 없었다. 그래서 김일성은 수령절대주의체제를 확립하여 주체독재를 시작했고, 박정희는 미국 없는 자주국방과 전세계의 시장을 안마당으로 만드는 경제강국을 동시에 실현하기 위해 노동집약적인 경공업 체제를 자본집약적이고 기술집약적인 중화학공업 체제로 단기간에 구조조정하기 위해 유신민주를 시작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한국은 북한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세계 경제에 깊은 주름살을 가져온 석유위기 속에서도 한국만은 승승장구하여 잠꼬대만 같던, 북한 입장에선 아무래도 동그라미가 두 개 잘못 달린 듯한 수출 100억 달러를 3년 앞당겨 달성했고, 북한의 2배되는 인구에도 불구하고 통일벼를 앞세워 식량도 자급하기에 이르렀고, 세계 7번째로 미사일도 개발했고, 경부고속도로도 시원하게 뚫렸고, 포항제철도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고, 세계 최첨단 세계최대 규모의 창원기계공단도 부스스 눈을 떴고, 울산정유공장에 이어 여천석유화학 단지도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고부가가치의 신세계를 열었고, 단위 부피와 무게에서 마법의 이익을 창출하는 구미전자공단도 눈을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포항제철과 창원기계공단과 구미전자공단의 성공은 경제와 안보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기막힌 전략이었다. 그 속의 10% 시설만으로 한국형 최첨단 무기를 개발하고 양산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77년 정월 초하루 박정희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김일성에게 식량을 무상으로 지원하겠다고 제의했다. 이어 박정희는 그 해 10월 18일 통일 3대 원칙을 발표한다. 남북불가침협정, 경계선개방과 자유선거를 요구한 것이다. 이것은 1973년 6월 23일 이념을 초월하여 어떤 나라와도 선린외교와 경제협력 관계를 맺겠다는 개방적 공격적 6·23 선언에 월계관을 씌우는 것이었다. 당당한 대북 승리 선언이었다. 경쾌한 발걸음으로 나비같이 날아 벌같이 쏘는 박정희의 예리한 선제공격에 김일성은 카운터 펀치는 생각도 못하고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고 귀도 막고 눈도 막고 방어에 급급했다. 기껏 한다는 것이 남북이 공생(共生)하고 공영(共榮)하는 일체의 제의를 거부하고 검은 아프리카에 귀하디 귀한 푸른 지폐를 마구 뿌려 UN에서 아무 쓸 데 없는 표를 구걸하고 답례로 약간의 생일 선물을 챙겨서 그것을 우물 안 개구리들에게 보여 주며 세계가 떠받드는 지도자에 대한 객관적 증거라고 우겼다.

 

 주체사상, 주체기술, 주체농업, 주체과학, 주체문학, 주체교육으로 김일성은 주체독재를 날로 강화해 나갔고 그만큼 모든 면에서 시계를 거꾸로 돌려 퇴보에 퇴보를 거듭해 19세기로 되돌아갔다. 대신 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머금고 공산체제에서도 유례가 없는 부자세습체제를 확고하게 다졌다. 박지만이 육사에서 평범하게 공부하고 훈련받는 동안 김정일은 1972년부터 제왕급 2인자로 김일성과 공동통치의 발판을 다지더니 1977년 무렵에는 '위대한 지도자' 외에는 누구도 그 앞에서 함부로 웃을 수도 없는 '친애하는 지도자'로 등극했다. 그의 한 마디면 왕자도 거지가 되었고 거지도 왕자가 되었다. 입법 사법 행정의 3권을 움켜쥐었다.

 

 한강의 기적에도 불구하고 박정희는 국내 정치에선 찌푸린 인상을 펼 수 없었다. 이철승이 조금 협조했을 뿐, 뼛속까지 대통령 병에 걸린 김영삼과 김대중이 북한에 비하면 백 배 아니 백만 배 자유로운 체제에서, 대만에 비하면 두 배 자유롭고 싱가포르에 비하면 세 배 자유로운 체제에서 아무리 깽판쳐도 절대 죽을 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서, 눈에 파란 불을 키고 독재타도를 외쳤다. 대학생도 말이 아름다운 그들 편이었고, 재야도 입이 향기로운 그들 편이었다. 유신은 그들에게 일언지하에 독재였다. '유신독재'는 지금도 한국에선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있다. 반면에 '유신독재'에 대한 반대를 사상과 행동의 주춧돌로 삼아 정치권력과 문화권력과 사회권력을 장악한 자들일수록 주체독재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정통성과 평등과 민족주체성과 통일을 되뇌며 은유적으로 그것을 찬양한다.

 

 그러나! 그들은 주체독재에 시달리는 노예동포는 직접 증거가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한다. 광주에서 군인한테 맞았다는 말은 백 배 천 배 부풀려서 듣지만, 함경도에서 평안도에서 황해도에서 맞아 죽고 굶어 죽었다는 말은 1만 5천 명이 한 목소리로 백 리 길을 저승길 구만 리를 돌아 와서 증언해도 백 배 천 배 에누리해서 듣거나 아예 들은 체도 않고, 아니 그런 척 북한의 선전선동은 곧이곧대로 믿고 시위와 폭력으로 보여 준다. 경찰을 패고 군인을 때린다.    

 

 민주와 독재는 상대적이다. 절대적 민주도 없고 절대적 독재도 없다. 그건 각각 천국과 지옥에 있다. 1972년이라면 두 마왕 스탈린과 모택동의 지원으로 작은 마왕 김일성이 동족상잔을 일으켰다가 휴전한 지 20년도 안 되는 시점이고 한창 월남에서 자유민주와 공산독재가 서로 총을 난사할 때이고, 주한미군 1개 사단이 다짜고짜 한반도에서 철수하던 때다. 김일성이 무장공비를 수시로 내려보내던 것은 바로 어제다. 국제공산당에 농락 당한 미국이 책임회피성의 평화협정을 맺고 자국으로 돌아가자마자, 1975년 베트남은 손도 못 쓰고 두 눈 번히 뜨고 발가벗고 엄마야, 하며 백주대로로 달아나다가 적화통일되었다.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자는 세계최강 미국도 어쩔 수 없었다. 민주를 외치며 여차하면 분신자살하던 월남의 쌔고 쌨던 종교지도자와 지식인과 정치인은 다 어디로 갔는가. 언제 한국이 그런 처지로 전락할지 몰랐다.

 

 그런 상황에서 200년 유구한 민주 역사의 서구 선진국이 아니라 동일한 발전선상의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국가에 비하면 가장 너그러운 정치적 자유를 허용한 유신민주를, 만인이 만인을 감시하는 김일성의 주체독재에 비하면 말 그대로 지상낙원인 유신민주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양심으로 '유신독재'라 못박는 먹물들이 오늘날도 한국에선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바로 이 점이 대를 이은 주체독재가 지난 16년간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쥐게 된 연유이다. 일찌감치 1980년부터 대학가에선 주체독재가 유신민주를 몰아내고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유신을 민주라 부르는 자는 얼씬도 못했지만, 주체사상을 구원의 빛으로 삼는 자들은 점 조직의 벼리를 쥐고 민주의 탈과 통일의 복면을 쓰고 독버섯처럼 대학가에 퍼져나갔다. 그것이 햇볕정책의 이름으로 정치권에서도 표면화된 것은 김대중 정부 때 일이다.

 

 유신민주가 주체독재를 흡수통일해야 했는데, 한강의 기적으로 배부른 자들의 막무가내 권력욕과 생지옥 비극의 60년 연속 세계최장 장기상연으로 배불뚝이가 된 김일성 부자의 신기막측 통일전선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7천만 한민족에게 가장 큰 비극의 씨앗이다. 이미 비극의 씨앗은 싹 트고 자라서 잎이 무성하고 꽃마저 만발했으니, 바야흐로 열매 맺을 날만 남았다. 오늘날 감히 누가 나서서 유신은 민주요 주체는 독재라고 당당히 나서서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까. 돌에 맞아 죽지 않으면 다행이리라.
  (2009. 3. 14.)           

[ 2009-03-14, 16: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