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대한민국 探訪

'동백숲' 거제 지심도

鶴山 徐 仁 2009. 3. 10. 18:18

봄! 난 네가 그립구나

 매년 어김없이 봄은 온다. 그것이 때론 조금씩 늑장을 부리기도 하지만 결코 거르는 일은 없다. 그럼에도 뭐가 그렇게 애가 타는지, 때가 되면 으레 찾아올 그 봄을 매번 기다리다 공연히 지쳐버린다. 이제 겨우 설이 지나 벌써 봄 타령이냐고? 그러게나 말이다. 이놈의 조급증은 말릴 길이 없다. 그러니 어쩔까? 봄 기다리기가 벌써부터 지친 경박스러운 마음은 결국 이른 꽃구경을 위해 거제 지심도로 향하는 배로 달려가게 만들었다.

거제 장승포항을 출발한 지 2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배는 작은 선착장에 도착했다. 뭍에서 오는 관광객들을 가장 먼저 반긴 것은 5살배기 강아지 '담비'. 제 먹여살릴 '돈줄'이 온 것을 안 때문일까? 그러나 사실은 오전 일찍 생필품을 사러 뭍으로 나갔다 돌아오는 주인을 마중 나온 것이다. 지심도에 사는 주민들은 모두 12세대 20여명. 대부분 민박집을 운영해 생계를 꾸려간다. 하루 3번 운항하는 배가 이들을 뭍으로 연결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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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심도는 경남 거제시 장승포항 남동쪽 5㎞ 지점에 위치한 작은 섬. 면적은 0.36㎢, 해안선의 길이가 3.7㎞밖에 되질 않는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형상이 마음 심(心)자를 닮아있는 지심도(只心島)는 섬 전체가 하나의 동백숲이다. 해송과 대나무, 후박 등도 간혹 보이지만 수종의 70% 이상이 동백이다.

지심도의 동백은 11월부터 피어 다음해 2월 중순을 지나 절정을 이룬 뒤, 4월까지 피고 지기를 되풀이한다. 그러나 3월 춘풍이 불라치면 사람들의 시선은 이미 매화, 유채 등 봄꽃으로 옮겨진다. 서릿발 심한 어려운 때를 굳건히 견디고도 호시절엔 제 몫을 간사한 자들에게 넘겨버리고 만다. 그래서 붉디 붉은 그 꽃은 당당하면서도 서럽다.

허나 찾아간 날의 동백은 달랐다. 수줍은 듯 붉은 꽃잎이 고개를 숙이고 곁눈질하는 것이 영판 쓰개치마로 얼굴을 가린 여염집 처녀의 모습이다.

마을 사람들 말이, 지난 이틀간 추위가 심통을 부리면서 만개한 꽃은 떨어져버렸고, 채 피지 못한 놈은 되레 몽오리가 움츠려들었다고 한다. '추운 겨울에 꽃을 피운다'해 붙은 이름이 '동백(冬柏)'이라지만 그 또한 추위가 보통 이상이면 배겨내기 어려운 것은 당연할텐데, 왠지 서운하다.

그러나 가지마다 셀 수 없이 매달려 채 벌어지다 만 망울들이 조만간 큰 꽃잔치가 다시 열릴 것임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다만 수일간 이곳에서 망울이 터지기를 기다릴 수 없는 사정이 아쉬울 뿐.

무턱대고 개화를 기다릴 수만은 없는 이들이라면 길을 나서기 전날쯤 선착장(055-681-6007)에 전화를 걸어 개화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자칫 변덕이라도 부린 날이면 모처럼의 걸음이 무색해진다.

그러나 어디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것만 꽃이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지만, 화무(花舞)를 마치고 떨어진 그 꽃들도 여전히 붉다. 붉은 점점이 박힌 오솔길을 지나가는 것 또한 정취가 남다르다. 앞서 가는 아저씨가 한 자락 뽑는 '동백아가씨'도 그 정취를 더한다.

굳이 떨어진 동백으로 아쉬움을 달래려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굳이 동백이 아니더라도 지심도는 충분이 매력적이다. 오솔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길라치면 널린 게 볼거리다.

선착장에서부터 출발하는 오솔길은 곳곳에서 갈지(之)자로 손을 벌려 섬 전체로 뻗어있다. 그리고 그 길의 매끝마다 바다가 절경으로 펼쳐진다. 숲에서 동백에 취하고 숲을 벗어나면 바다에 취한다.

선착장을 지나 민박집들을 벗어난 오솔길은 폐교 운동장으로 이어져 있다. 일원초등학교 지심분교로 10여년 전 폐교되었다고 한다. 폐교가 되어 아이들이 뭍으로 나간 것인지, 아이들이 뭍으로 빠져나가 폐교가 되어버린 것인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고즈넉한 이곳에서 학교 종소리가 사라진 것은 못내 아쉽다. 무성히 자란 잡풀들이 운동장을 들판으로 바꿔버렸다. 교사로 보이는 작은 건물과 실외화장실만이 이곳이 학교였음을 짐작케 한다.

학교를 지난 길은 섬의 북쪽 전망대로 향한다. 전망대에 오르면 우측으로 활대처럼 휜 절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동백이야 피든 말든 올곧이 낚시대만 던져대는 강태공까지. 누군가 살짝 "윤선도의 어부사시사가 전남 완도가 아닌 이곳에서 지어졌다"고 거짓을 풀더라도 따져묻지 않겠다. 단, 파도 한 점 없는 바다 위에 유유히 떠 있는 것이 조각배가 아니라 바지선이라 아쉽다. 우리나라 대표적 조선도시인 거제답다.

이곳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거주했던 시절은 일제강점기. 일본군 1개 중대가 광복 이전까지 주둔했다. 그러다보니 섬 남쪽으로 내려가면 포진지 터와 탄약고 등 당시 군 시설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때부터 이곳은 군(軍)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지금도 이 섬은 실제로 해군의 소유. 주민들은 지상권만 가진다고 한다. 사실 원시의 동백숲이 그대로 잘 보존될 수 있었던 것도 '군의 보호'가 난개발을 막았기 때문이었다.

포진지 터로 가던 중 길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탁 트인 평원이 나온다. 헬기장이라 불리우는데, 실제 헬기가 뜨고 내리는 것을 보기란 쉽지않다. 대신 날씨만 좋다면 한 장소에서 양쪽 바다로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모두 볼 수 있다. 사실 헬기가 뜨고 내리는 것보다야 일출 일몰이 더 낫다.

이 모든 것들을 구경하기에 느린 걸음으로 2~3시간이면 족하다. 그것은 마치 작은 마을을 한바퀴 돌며 마실을 다니는 듯하다가도, 귀한 것들만 잔뜩 모아놓은 어느 부잣집 마당에 몰래 들어온 듯하다.

낮 배로 들어왔다 오후 나가는 배를 타기에 그 시간이 모자르지도 넘치지도 않는다. 단, 일출 일몰을 보려면 이곳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

돌아오는 뱃길, 뱃전에 부는 바람을 맞으며 봄을 기다리는 조급증은 어느새 잦아들고 있었다. 그러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여전히 봄은 더디기만 하다. 남도의 바닷바람을 타고, 뭍의 보리밭 이랑을 지나 봄은 분명 오고 있지만 그것을 느끼기에 일상은 팍팍하기만 하다. 그러다 그 봄이 우리 겨드랑이를 살짝살짝 스쳐 건드릴 때야 비로소 봄이 왔음을 느끼고 이 조급증도 끝이 나리라. 그래도 이제는 그냥 참아볼란다. 남도의 바람에서 이미 그것을 확인했으니 말이다.

 

글=김종열 기자 bell10@busanilbo.com

사진=강원태 기자 wkang@

 

 


지심도는 장승포항에서 하루 3회 운항하는 도선을 통해 찾을 수 있다. 도선은 매일 오전 8시와 낮 12시30분, 오후 4시30분에 출항한다. 주말엔 오전 10시30분, 오후 2시30분 배가 추가된다. 소요 시간은 넉넉잡아 20분. 지심도에 도착한 배들은 이내 장승포항으로 돌아가니, 지심도에서의 출발시간은 장승포항 출발시간의 20분 뒤로 잡으면 되겠다. 장승포동사무소 옆 조그만 컨테이너 건물에서 표를 판매하며, 요금은 어른 5천원, 어린이 2천500원을 받는다.

부산에서 장승포항까지 가는 손쉬운 방법은 두 가지다. 부산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배편을 이용하거나, 직접 차를 몰고가는 게 보통이다.

연안여객터미널 장승포행 여객선은 매일 오전 8시부터 10시, 낮 12시, 오후 2, 4, 5, 6시에 각각 출항한다. 장승포항까지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으며, 요금은 어른 1만9천200원, 어린이 9천600원.

부산에서 오전 10시 배를 타고 장승포항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본 뒤 낮 12시30분 지심도로 들어가 오후 4시50분에 나오면, 장승포항에서 부산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배를 탈 수 있다. 바닷길을 이용하는지라 교통정체의 걱정도 없는 데다 하루 만에 지심도를 다녀올 수 있어 추천할 만하다.

그러나 지심도만 다녀오기엔 포로수용소유적공원을 비롯해, 외도, 해금강 등 거제도의 주변 볼거리가 너무 아깝다. 1박을 결심하고 이들 명소를 함께 둘러보고 싶다면 아무래도 배편보단 승용차를 권한다.

남해고속도로 진주JC에서 중부고속도로로 옮겨 통영까지 내려온 후 거제로 들어오면 된다. 진주JC까지 가지 않고 서마산IC에서 내려 14번국도를 타고 통영으로 와도 무방하다. 양쪽 길 모두 2시간30분 정도 걸리지만, 주말 돌아가는 길은 다소 정체가 심할 수도 있다. 김종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