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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무거운 짐 내려놓으소서”

鶴山 徐 仁 2009. 2. 20. 18:24

 

‘우리들의 바보’ 영면하다   2009-02-20

우리 시대의 진정한 목자 김수환 추기경이 세상의 삶을 마무리하고 하느님 앞의 영원한 삶을 시작했다.

20일 오전 9시 서울 명동성당. 어제 내린 눈, 비는 흔적이 없고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환히 밝히기라도 하듯 성당을 감싼 하늘이 청정하기만 하다.

이른 아침부터 모여든 신자와 시민이 성당 정문부터 들머리,

대성당 입구를 가득 메워 발디딜 틈이 없다.

밤사이 손이 시릴 만큼 쌀쌀했던 날씨마저도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려는 정성의 물결엔 주눅이 들었다.

입당 성가로 시작된 장례미사에서 김 추기경은 신자석을 향해 누운 채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소박하게 치러달라.’는 김추기경의 뜻을 따라 일상 그대로 진행되는 미사의 의식들.

하느님이 고인을 평화와 빛으로 불러주시기를 청하는 기도와 말씀전례.

그리고 이어진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베푸는 사랑이 곧 하느님께 드리는

사랑이 된다.’는 복음은 김 추기경이 생전 즐겨 읽고 인용한 말씀.

성당 곳곳에 흐느낌의 파도가 인다.

성찬전례에 이어 주교단과 유족이 일일이 김 추기경을 돌아 올리는 영성체 예식,

그리고 고별사가 이어졌다. “세상살이가 어려운 시기에 추기경님의 떠나심이

더욱 안타깝고 우리 모두를 불안하게 합니다.”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바보 웃음의 향기에 취하게 하소서.” 떠난 님의 사랑과 나눔의 큰 뜻을 잊지 않겠다는,

남겨진 사람들의 마지막 인사들을 고인은 듣고 있을까.

두 시간 만에 미사가 끝나고 성당 북쪽 문을 통해 서울대교구의 가장 젊은 사제 8명이 운구를 시작하자 구름처럼 모여 있던 신자와 수녀들이 일제히 성호를 긋고 기도를 올린다.

운구차량이 서서히 성당을 벗어나자 아쉬운 듯 뒤를 따르며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는 울음이 명동을 뒤덮는다. 때마침 성당에서 울려퍼지는 33번의 종소리.

추기경은 이제 더 이상 이 종소리를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용인공원 성직자 묘역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1시간20분가량.

남산1호터널과 한남대교를 지나 경부고속도로에 들기까지 길가 곳곳에서 손을 흔들거나 성호를 긋는 시민들을 그저 무심하게 지나치는 운구차량 행렬이 매몰차게 느껴진다.

묘역에 다다라 가파른 언덕을 오르자니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과 성모 마리아상 사이,

첫 한국인 주교이자 서울교구장인 노기남 대주교의 묘 바로 옆에 준비된 추기경의 자리가 눈에 든다.

기다리던 신도들의 찬송과 기도, 산에서 울려퍼지는 정진석 추기경의 축복에 이어 하관이 있자 울음과 기도가 바람에 섞인다. 이제 정말로 추기경을 보내야 한다.

주교단과 수도자, 유족 대표가 관 위에 흙을 덮자 참례자들이 입을 모아 위령 성가를 부른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목마른 사람은 내게 오라.

무거운 짐진 자 멍에 벗겨주고 영원한 생명을 네게 주리.’

김 추기경의 영원한 삶은 그렇게 시작됐다.

글 / 서울신문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을 위해 평생 헌신했던 김수환 추기경이 ‘서로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그가 믿고 의지해온 하느님의 나라로 영원히 떠났다.

 

 

▲ 김수환 추기경 하관식
20일 경기도 용인시 천주교성직자묘역에서

정진석 추기경의 집전하에 고 김수환추기경의 하관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김 추기경의 선종 닷새째인 20일 오전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한승수 국무총리와 주한 외교 사절,사제와 신자 등 성당 안팎에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장례 미사를 열어 김 추기경과

마지막 작별 의식을 치렀다.

 김 추기경은 1969년 우리나라의 첫 추기경으로 임명된 후 개발에 밀린 계층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유신독재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으며 민주화 운동을 후원해 정신적인 ‘큰 어른’으로 추앙받았다.

1998년 은퇴한 그는 작년부터 건강이 나빠져 입원해 치료받던 중 지난 16일 향년 87세로 선종했다.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 추기경이 교황의 이름으로 집전한 장례 미사는

오전 10시 참석자들이 입당송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를 부르면서 엄숙하고 경건하게 시작해 성경의 지혜서와 요한의 서신,

마태오의 복음 등을 읽는 ‘말씀 전례’와 정 추기경의 강론으로 이어지며 1시간 40분가량 진행됐다.

 정 추기경은 강론을 통해 “김 추기경은 우리 사회의 큰 어른으로서 빛과 희망이 되었고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모든 한국인의 ‘사랑과 평화의 사도’였다”며 “(그가) 사랑과 나눔을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유산으로 남겨 주셨기에 한 가닥 희망을 가질 수 있으며

‘죽음은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것’이라는

신앙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희망을 갖고 산다”고 고인을 애도했다.

 말씀 전례와 성찬 예식이 끝나고 열린 ‘작별 예식’에서 정 추기경은

“추기경단 일원으로서 여러 해 동안

교황에게 충심으로 협력해오신 김수환 추기경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억한다”는

내용의 교황 추도사도 대독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부 대표인 한승수 총리가 대독한 고별사에서

“이 나라를 지탱해온 큰 기둥이었고,

우리의 나아갈 길을 가르쳐준 큰 어른인 김 추기경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려 한다”고

고인을 애도했고,

오스발도 파딜랴 주한교황청 대사는 “김 추기경은 전 생애와 영면을 통해

당신이 참된 하느님의 사람이였음을 보여줬다”며 추도했다.

 이와함께 한국 천주교회 주교단 대표인 강우일 주교,

사제단 대표인 전 가톨릭대학 총장 최승룡 신부,

신자대표인 한홍순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협의회장 등

모두 5명이 조사를 통해 고인을 기렸다.

 장례미사 후 김 추기경의 관은 서울대교구에 속한 젊은 사제들에 의해 운구차로 옮겨져

경기도 용인 가톨릭성직자 묘역으로 향했다.

 이어 오후 1시30분부터 정진석 추기경,윤공희 대주교 등 성직자와 유족,사제단,신자 등

모두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관을 땅에 묻는 하관 예절을 벌였다.

 하관예절은 흙을 관위에 덮기까지 30분이 걸렸을 정도로 간소하게 진행됐다.

그는 이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이날까지 빈소가 차려졌던 명동성당을 다녀간 애도 행렬은 무려 40만명에 달했다.

그의 안구 기증이 촉발한 장기 기증 신청도 줄을 이었다.

 이틀뒤인 22일에는 명동성당과 용인 묘역에서 추모미사가 열릴 예정이다.

 김 추기경의 묘비에는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이 없어라’라는

문구가 새겨질 예정이다.

고인의 사목 표어와 가장 좋아했던 성경 구절 중 하나인 시편 23편 1절의 문구다.

 

연합뉴스

 

 

2009-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