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 경고 비웃고 호황 즐긴 미국
'서브 프라임' 덫에 결국 발목
우리경제 곳곳에도 거품 잔뜩
기본 방향부터 다시 생각할 때
1990년대 말 미국에서 인터넷 붐이 일면서, '신경제'의 등장으로 경기순환이 없어지고 주가는 계속 상승할 것이라는 예측이 난무했다. '다우 36,000', '다우 40,000', '다우 100,000' 등, 미국 주식시장의 미래에 대해 어처구니없는 낙관론을 펴는 책들이 쏟아져 나왔던 기억이 난다.
2000년 중반부터 인터넷 붐이 꺼지면서 미국 경제는 잠시 침체했지만, 미국 연방준비위원회는 이자율을 1% 수준까지 낮추면서 경기를 부양하였다. 이자율이 낮아지면서 주택담보 대출이 크게 늘어났고, 많은 사람들이 기존 대출을 저율의 대출로 갱신하였다. 이 과정에서 부동산 가격이 치솟으면서, 주식시장의 거품이 주택시장으로 옮겨갔다.
자신들이 소유한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그를 믿고 소비를 늘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동시에 부동산 주택담보 대출 상환의 부담이 줄어들면서 생긴 여유 자금은 소비 증대를 가능케 하였다. 이 과정에서 미국 사람들은 있는 돈까지 '까먹으면서' 소비를 하게 된다. 전례 없는 소비 붐이 불었던 1980년대에도 7%에 달했던 국민소득 대비 가계 저축률이 대공황 이후 최초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이렇게 하여 미국 경제는 인터넷 붐이 끝난 후에도 호황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소위 '서브프라임' 문제를 통해, 1990년대 말부터 지난 10여 년간 미국경제가 누렸던 호황은 장기적으로 지탱 불가능한 자산가격 거품에 의존했던 것임이 마침내 드러났다.
미국경제가 대공황 이래 최악의 상황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오면서, 그것이 우리 경제에 줄 충격에 대한 우려가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더 큰 걱정은, 앞으로 한국 경제에 닥칠 문제는 단순히 미국경제의 침체라는 외부충격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재정적자 문제만 빼고는, 우리나라 경제의 현재 모습이 미국의 그것과 너무도 흡사하기 때문이다.
2005년 9월에, 11년 전에 달성한 역사적 고점인 1,142(1994년)를 겨우 돌파했던 주가지수가 2년도 안 되어 2,000을 돌파했다(2007년 7월). 일부에서는 그동안 저평가되었던 우리나라 주식이 마침내 제대로 평가를 받는 것이라고 했지만, 2년 만에 갑자기 우리 기업의 수익이 두 배로 뛴 것도 아니고 기업 지배구조에 경천동지할 변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니, 이 상승분의 대부분은 거품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정치지도자들까지 나서 이 거품을 부추기는 발언을 하고 다녔다. 당시 다른 경제지표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주가가 2,000이 되었으니 경제가 잘 되고 있다고 우겼고, 이명박 대통령은 작년 말 선거운동 중에 2008년 말까지 주가지수가 3,000이 되고 임기 말에는 5,000까지 간다는 장밋빛 약속을 했다.
주택시장의 상황도 비슷한 면이 많다.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 속에서 국내적으로는 기업투자의 위축으로 인해 자금수요가 줄어들면서 이자율이 낮아졌다. 동시에 은행들이 소위 '선진 금융기법'을 배워 위험도가 높은 기업대출을 줄이면서 주택담보 대출을 크게 늘렸다. 이 과정에서 부동산 시장에 엄청난 거품이 끼었다. 노무현 정부가 세금을 올리고 기를 썼지만 부동산 가격이 계속 상승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가계 저축 상황은 더 우려를 자아낸다. 은행들이 안전제일주의로 흐르면서, 기업대출을 줄이고 안전한 가계대출을 늘렸다. 그에 따라 그 정도는 좀 덜했지만 위에서 설명한 미국식의 소비 붐이 불었다. 그 결과, 과거에 가계저축을 많이 하기로 이름 났던 나라가, 이제 국민소득대비 가계저축률이 2007년에는 2.3%까지 떨어져 저축 안 하기로 유명한 미국과 어깨를 겨루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 경제는 기본 체질이 괜찮으니 미국발 태풍만 잘 넘기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큰 오산이다. 지금 미국 경제를 위기에 몰아 넣은, 고삐 풀린 시장경제가 가져오는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의 거품, 가계저축의 붕괴 등 여러 가지 병리 현상이 이같이 지금 우리나라에도 심각하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10여 년 동안 추구해 온 우리 경제의 기본적 방향을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왔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3/30/200803300088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