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대한민국 探訪

[스크랩] 경포대

鶴山 徐 仁 2008. 1. 7. 11:45



정면 6칸, 측면 5칸, 기둥 28주(柱)의 팔작지붕 겹처마기와집의 누대(樓臺)로, 강릉 오죽헌(烏竹軒)에 있던 율곡(栗谷)이 10세 때에 지었다고 하는 《경포대부(鏡浦臺賦)》를 판각(板刻)하여 걸었다.

또한 숙종의 어제시(御製詩)를 비롯하여 여러 명사들의 기문(記文) ·시판(詩板)이 걸려 있다. 특히 누대의 전자액(篆字額)은 유한지(兪漢芝), 정자액(正字額)은 이익회(李翊會), 제일강산(第一江山)은 주지번(朱之蕃)의 글씨라고 하는데, ‘江山’ 두 자를 잃어버려 후세인이 써 넣었다고 한다.

1326년(충숙왕 13)에 안무사(按撫使) 박숙정(朴淑貞)이 현 방해정(放海亭) 북쪽에 세웠으며, 1508년(중종 3)에 부사(府使) 한급(韓汲)이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하여 현재에 이른다.

경포대를 중심으로 8경이 있는데,

녹두일출(菉荳日出) ·
    녹두정에서 동해의 일출을 바라보는 것을 말하며, 옛 한송정으로 서현 강릉 비행장 동쪽에 위치하였으며, 경포대의 正東을 가리킨다. 새벽에 대에 올라 동해를 바라보면, 용광로처럼 붉게 타오르는 웅장한 태양이 바다를 온통 붉게 물들이며 서서히 떠오르는 순간은 신비스러울만큼 황홀하고 아름답다. 이 장엄하고 경이로운 일출을 첫째로 꼽았다.
죽도명월(竹島明月) ·
    호수 동쪽에 있는 섬모양의 작은 산으로서 산죽이 무성하여 죽도라고 불렸는데 현 현대호텔 자리이다. 동쪽 수평선 넘어에서 솟아 오르는 보름달의 달빛이 죽도의 대나무 사이를 뚫어 그 빛이 호수에 비칠때 일어나는 그림같은 장관을 죽도명월이라 하였다. 멀리는 하늘의 달과 가까이는 바다와 호수의 달이 잇닿아 월주를 이루고 은파위의 월굴이 백해중으로부터 호심을 꿰뚫어 대 앞에 까지 수십리를 뻗친 장엄하고도 기묘한 전망을 찬미한 것이다.
강문어화(江門漁火) ·
    강문은 경포대에서 동쪽 호수 하구에 있는 곳으로서 호수와 바다를 상통 교류케 하므로 강문이라고 했다. 밤에 경포대에서 강문쪽 바다를 건너다 보면, 오징어 잡는 고깃배의 불빛이 마치 항구의 불빛처럼 휘황찬란하게 보이는데, 그 빛이 바다와 호수에 영도되는 아름다운 광경을 말한다.
초당취연(草堂炊煙) ·
    초당은 호수의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서 지세가 호수와 바다보다 낮은 듯 보인다. 그래서인지 멀리서 보면 깊은 두메산골 같은 맛을 나게 하며, 마을 둘레는 낙낙장송이 울창하고 대지는 비습하여 잡목과 잡초가 무성하다. 해가 서산마루 시루봉에 기울어질 무렵이면 집집마다 저녁을 짓는데 이때 가가호호 마다 굴뚝에서 피어 오르는 하얀 연기가 노을에 물들어 평화로운 농촌을 연상케 하는데 그 평화로운 아름다움을 말한 것이다.
홍장야우(紅粧夜雨) ·
    홍장은 조선 초기에 석간 조운흘 부사가 강릉에 있을 즈음 부예기로 있었던 여인이었다. 어느날 모 감찰사가 강릉을 순방했을때, 부사는 호수에다 배를 띄어놓고 부예기 홍장을 불러 홍장은 가야금을 켜며 감찰사를 극진히 대접했는데 미모가 뛰어난 홍장은 그날 밤 감찰사의 사랑을 흠뻑 받았다.

    그 감찰사는 뒷날 홍장과 석별하면서 몇개월 후에 다시 오겠다고 언약을 남기고 떠나 간다. 그러나 한번 가신 님은 소식이 없다. 그리움에 사모친 홍장은 감찰사와 뱃놀이 하며 즐겁게 놀던 호수에 나가 넋을 잃고 앉아서 탄식하고 있는데, 이때 자욱한 안개 사이로 감찰사의 환상이 나타나 홍장을 부른다. 홍장은 깜짝 놀라면서 너무 반가워 그쪽으로 달려 가다 그만 호수에 빠져 죽는다.

    이때부터 이 바위를 홍장암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안개낀 비오는 날 밤이면 여인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려 온다고 전한다. 꽃배에 임을 싣고 가야금에 흥을 돋우며 술 한잔 기울이던 옛 선조들의 풍류정신을 회상하기 위한 기념으로서의 일경이다.
증봉낙조(甑峯落照) ·
    시루봉은 경포대 북서쪽에 있으며, 그 생긴 봉우리 모양이 시루와 비슷하다하여 시루봉이라고 한다. 해가 서산마루에 기울어질 무렵이면 채운이 시루봉 북쪽 봉우리에서 경포 호수에 반영되는 일몰의 낙조가 잔물결에 부서지는 아름다운 광경을 말한다.
환선취적(喚仙吹笛) ·
    시루봉의 상선봉에 신라 선인들이 풍류를 즐기며 바둑을 놓고 놀던 곳이 있었는데 고요한 날 밝은 밤이면 어디서부터인가 구슬픈 피리 소리가 바람결에 은은히 들려왔다 한다. 지금도 달밝은 밤이면 산자수명한 제일강산에 구름밖으로 부터 피리 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무튼 경포대의 환선취적은 신선경인듯 하면서도, 속세를 떠난 속세인듯 하면서도 신선경으로 생각되는 곳에 옛 신선들이 바둑 놓고 피리 불며 즐기던 지난날을 회상하는 것을 말한다.
한송모종(寒松暮鍾)
    한송정은 지금의 비행장 동쪽에 있다. 녹두정이라 불렸던 이 정자는 화랑도들의 수양의 도장으로 지었던 것으로 지금은 석조.석지.석정만이 남아 있다. 신라 불교의 중흥기에 한송정에서 해질 무렵 치는 종소리가 경호의 잔물결을 타고 신선이 놀던 경포대까지 은은히 들려오던 옛 정취를 회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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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이곳은 허난설헌의 생가로 경포대에서 볼때... 경포호 건너편 초당동에 있다...꽃은 칸나







21. 문신 허엽이 살던 집으로 조선시대 대표적인 시인 허난설헌과 허균이 태어난 집이다







22. 오늘은 시간이 늦어 밖에서 담장 넘어로 안을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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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양천(陽川). 호 난설헌. 별호 경번(景樊). 본명 초희(楚姬). 강릉(江陵) 출생. 균(筠)의 누이. 이달(李達)에게 시를 배워 천재적인 시재(詩才)를 발휘했으며, 1577년(선조 10) 김성립(金誠立)과 결혼했으나 원만하지 못했다고 한다.

불행한 자신의 처지를 시작(詩作)으로 달래어 섬세한 필치와 여인의 독특한 감상을 노래했으며, 애상적 시풍의 특유한 시세계를 이룩하였다. 작품 일부를 동생 균이 명나라 시인 주지번(朱之蕃)에게 주어 중국에서 시집 《난설헌집》이 간행되어 격찬을 받았고 1711년 분다이야 지로[文台屋次郞]에 의해 일본에서도 간행, 애송되었다.

작품으로는 시에 《유선시(遊仙詩)》 《빈녀음(貧女吟)》 《곡자(哭子)》 《망선요(望仙謠)》 《동선요(洞仙謠)》 《견흥(遣興)》 등 총 142수가 있고, 가사(歌辭)에 《원부사(怨婦辭)》 《봉선화가》 등이 있다.



24. 빈녀음
    手把金剪刀.....가위로 감을 잘라 옷을 마른다
    夜寒十指直.....추운 겨울밤 손시려 굳어 가는 손가락으로
    爲人作嫁衣.....남이 시집갈 때 입을 옷을 만드네
    年年還獨宿.....밤새워 바느질을 하건만 가난으로 시집갈 날은 점점 멀어져 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