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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킬라 하시미 하원의원과 인터뷰 날짜를 잡기가 참 힘들었다. 아프가니스탄 국회에서 받은 전화번호로 통역(아사드)을 시켜 2주 동안 매일 전화를 걸었으나 허탕이었다. 결국 2주일째 되던 날 아사드는 하시미의 아들과 통화할 수 있었다. 그 아들은 “엄마가 오늘 오후 4시경 집에 오니까 그때 오라”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경찰 및 장성급 인사들이 모여 사는 카불의 부촌 ‘시르푸르’ 지역에 살고 있다. 그곳의 주택은 거의가 파키스탄 스타일의 현란한 주택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집은 다른 장군들의 집에 비해 허름했다.
집 앞에는 세 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한 명은 경찰복을 입고 칼라슈니코프 소총을 메고 있었고 담 위로는 한 무장군인이 경호를 서고 있었다. “하시미 의원 인터뷰 때문에 왔다”고 하자 짐 검사를 간단히 한 뒤 집 안으로 안내했다.
이곳에선 암살 시도가 빈번해서 아프간 국회의원의 집은 대부분 이렇게 보안이 심하다. 2001년 북부동맹의 수장 ‘아흐마드 샤 마수드’ 장군은 기자로 변장한 두 명의 자살폭탄범에게 암살당했다. 작년에도 팍티야·라그만 주지사들이 자살폭탄범에 의해 살해됐다.
하시미는 아프간 국회에서도 ‘바른말’을 하기로 유명하다. 때문에 지난해 말, 그녀 대신 그녀의 큰딸이 암살당했다. 올 2월 초에도 그는 암살 위기를 넘겼다.
남편을 비롯한 다른 손님들과 있던 하시미 의원은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는 “딸이 죽은 뒤 정신을 잃고 산다”며 “전화를 계속 못 받아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딸 사진을 보여줬다. 사진 액자 위에는 분홍색으로 ‘베이비(Baby)’라는 장식이 새겨져 있었다.
“우리 딸은 아름답고 똑똑한 16세 처녀였어요. 그런데 적들이 작년 말, 그러니까 ‘이드 (이슬람교의 성스러운 날)’ 오후 4~5시쯤이었을까. 나를 많이 닮은 딸이 집 밖을 나서다가 갑자기 총을 맞고 쓰러졌어요. 응급실로 딸을 데리고 갔지만 이미 숨이 끊긴 상태였어요.”
하시미는 눈물을 흘리면서 딸의 방으로 들어갔다. 사망한 지 3개월이 지났지만 하시미는 딸의 유물을 그대로 보관하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감정이 복받쳤는지 옷장에 있는 모든 물건을 밖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이 옷도, 이 간식도, 이불도, 신발도, 인형도 모두 딸의 것이에요. 딸을 잃은 엄마의 심정을 이해하시겠어요?” 옆에 있던 남편과 둘째 딸이 혼절할 듯 괴로워하는 그를 말렸다.
“적들은 여자들이 정치권에 나와 설치는 걸 싫어해요. 나와 나머지 아이들도 납치나 암살 대상이지요. 언제 어디서 우리 아이들이 적에게 당할지 몰라요.”
그 ‘적’이 과연 누구일까. 그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고 나에게 말했지만 진짜 모르는 것 같지는 않았다. 탈레반 세력일 수도 있고 국회 내 정적(政敵)일 수도 있다. 과거 탈레반 장군이나 내전 당시 서로 세를 과시하면서 만행을 저질렀던 소위 ‘군벌’이 대부분 국회나 장관급에 포진하고 있는 것이 아프간의 현실이다.
카르자이 정부는 그들의 반발을 우려, 다시 장관으로 임명해야 했고 국민도 그들을 다시 선출했다. 암살 위협을 당한 여성 의원은 하시미 의원뿐이 아니다. 아프간 국회에서는 사히마 사닷, 말라라이 조야, 하와 알람 누르스타니 등 여성 의원이 모두 암살 위협을 당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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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히마 사닷이나 말랄라이 조야는 자살폭탄범으로부터 살아남았다. 지난해 말 조야를 인터뷰할 당시에도 밤에 숨어서 마치 ‘간첩 접선하듯’ 만나야 했다. 조야도 집을 자주 옮기고, 집 밖으로 나설 때는 ‘브루카(온몸을 덮는 아프간식 차도르)’로 위장을 한다. 하시미의 경우 굳이 부르카를 입지는 않지만 현재 총 8명의 보디가드가 그의 집에서 경계태세를 갖추고 있다. 자동차도 자주 바꿔 타고 아이들에겐 경호원이 따라붙는다.
아프간 국회에서 여성 의원이 발의하게 된 지도 2년밖에 안 된다. 여성 의원이 남자들과 회의를 하고 발언을 한다는 건, 이곳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가 포진해 있는 남동부 출신 군벌이나 의원들에게 정치권 내 여성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지난 2월 말 카불 운동장에서는 현 정부에서 장관과 국회의원을 맡고 있는 전직 군벌 3만명이 조직한 집회가 열렸다. 남자들은 “말랄라이 조야에게 죽음을!” 이라며 소리쳤다.
이유인즉 말랄라이 조야가 국회에서 “군벌들을 전범으로 처리하고 군사재판을 열어야 한다”는 연설을 했기 때문이다. 28살의 최연소 국회의원인 조야는 군벌을 향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살해 경고를 받은 것이다.
자신을 대신해 암살 당한 딸의 죽음 때문에 괴로워하는 하시미 의원에게 “의원직을 포기한다면 가족도 위험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그의 답은 간단했다. “나는 모든 아프간 여성의 인권을 위해 포기할 수 없어요. 내가 만약 여기서 포기한다면 아프간 여성 정치인뿐 아니라 여성 전체에게 큰 영향을 미칠 거예요. 우리 가족이 죽는다 해도 나는 끝까지 싸울 겁니다.”
하시미의 꿈은 아프간의 첫 여성 내무부 장관이 되는 것이다. 새로 장관이 임명되기까지는 2년여의 세월이 남아 있다. 자살폭탄범을 구하기 쉽고 암살이라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은 아프간에서 여성 정치인이 어떻게 살아 남게 될지 궁금하다.
아프간의 여성 국회의원
현재 아프간 국회에는 상ㆍ하원을 합쳐 총 351명의 국회의원이 있다. 이 중 여성은 상원에 23명, 하원에 68명이 있다. 카르자이 정부는 여성의 정치 진출을 위해 전체 의원 수의 25%를 여성이 차지하도록 배려했다. 이들은 회의 때마다 터번을 쓰고 턱수염을 길게 기른 보수적인 남성 의원 사이에서 발의를 하기도 한다. 이런 풍경이 아프간에서 벌어진 것은 불과 2년밖에 안 됐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 국회의원이 마지막으로 있던 것은 약 30년 전 왕정 때의 일이다. 그 이후 여성은 소련 침공, 내전, 탈레반 집권 기간에 의정활동을 전혀 할 수 없었다. 아예 국회도 없었고 탈레반 시절 5년 동안에는 여성의 교육과 취업활동이 전면 금지됐기 때문이다.
현 국회의원은 2004년 9월 선거와 임명을 통해 선출돼 2005년 초부터 본격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아프간인으로서는 온몸을 부르카로 가리지 않은 여성이 남성과 같은 방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큰 문화적 충격이다.
김주선/위클리비즈 프리랜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