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회우(以文會友)와 이우보인(以友輔仁)
지난해였다. 신영복 선생님이 감옥에 계실 때 어떤 장기수(長期囚)에게서 한학을 배웠다고 한다. 신영복 선생님에게 한학을 가르쳤다는 그 신비한 선비는 팔순(八旬)을 넘기고서도 여전히 감옥에 계셨다. 그런데 출옥한다지 않는가. 흥미 있는 신문 기사였다. 그 다음날 나는 강남여성개발센터에서 장자(莊子) 원전 강독 관계로 강의실에 들어섰다. 화제는 단연코 신영복 선생님의 한문 선생님이었다. 한국에서 최고의 한학자라고 소문이 나는 모양이었다. 최고의 한학자라 그런 기준이 있는가. 나는 속으로 못내 못마땅하였다. 사실 한학을 하는 이들은 저마다 최고라고 은근히 뽐내지 않던가. 한학은 올림픽 운동경기가 아닌데. 한학은 덕이요 덕은 측정할 수 없는데. 높아도 높다 하지 않는데. 남들이 나를 낮다 하여도 화내지 않는 것인데. 그러나 참견하지 않고 듣고만 있었다.
80평생 뜻을 바꾸지 않았다는 장기수(長期囚) 아닌가. 이 한 가지만으로도 존경할 만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런 분을 두고 당신을 우리나라 제일의 한학자라 합니다. 이렇게 추켜세워 보라. 되려 얼굴을 붉히지 않을까 한다. 세속의 잣대로 최고니 뭐니 하는 말들에 거북해 하지 않을까. 그 학자보다는 신영복 선생님에게 더 마음이 쏠렸다. 그리고 신영복 선생님은 당신 스스로 공부하여도 될 터인데 굳이 누구에게서 배웠다고 하였을까. 그는 누구인지, 그럴 까닭이 있는지, 배울 수준이었는지, 같이 공부한 것을 두고 배웠다고 하신 것은 아닌지 이모저모 궁금하였다. 그러나 나는 말을 아꼈다. 단지 신영복 선생님의 삶의 태도 즉 그의 덕행(德行)을 존경한다고 다소 길게 말을 하였다. 지금은 고인이 된 강남여성개발원의 여x연(呂x延) 원장님이 말씀하셨다. 신영복 선생님은 고결함, 순수함, 성스러움의 표상이 무엇인지 스스로의 삶으로 일러주시었다고. 나는 전적으로 동의하였다.
다음 주 『장자』 강의였다. 또 그 장기수(長期囚) 선생님이 화제의 대상이었다. 다소 정확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여x연 원장과 최x숙(崔x淑) 이화여대 교수가 직접 방문한 거였다. 성함은 노촌(老村) 이구영(85·李九榮). 충북 제천의 6백석지기 지주이자 대제학을 배출해 낸 명문 집안의 종손으로 태어난 노촌은 의병운동가의 후손이다. 장편소설 <임꺽정>의 저자 홍명희의 영향으로 민족운동을 경험하며 사회주의자가 된 그는 6·25 전쟁 당시 월북했다가 다시 남파돼 검거됐으며 그로 인해 22년간 장기 복역했다. 그를 검거한 경찰은, 일제치하 고향 제천의 지서를 습격했을 당시 자신을 체포했던 악명 높은 순사였단다.
인사동에 한옥을 지으시고 후학을 가르칠 채비를 끝내었단다. 여x연 원장님의 방문기를 들으면서 나름대로 객쩍게 몇 마디 거들었다. 유학은 책(文)보다도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德)을 높일 때가 있다고. 두 분의 마음속에 깃들인 덕의 훈향(薰香)을 맡을 수 있어서 감사를 드린다고 하였다.
그러자 원장님은 그 분의 서당(書堂)에 쓰인 현판(?)이 바로 논어(論語)에 나오는 이문회우(以文會友)라고 정확히 기억하였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文을??? 유학자는 文을 내세우지 않는다. 헌데 '文으로 벗을 모은다'라는 글을 내 건다고. 혹시 잘못 보신 게 아니냐고 물어보고 싶었으나 참았다. 수다스럽지 않는가. 언제나 그냥 듣는 것이 좋지 않던가. 그러나 마음속에 남겨진 의문은 가시지 않았다. 신영복 선생님께서 빈 마음으로 스승이라 하였을 리도 없을 터인데. 20여 년 영어(囹圄)의 세월만으로도 더 내세울 것도 없을 터인데. 文을 강조하는 뜻을 알 수 없었다.
유학(儒學)은, 더 좁혀서 『논어』는 文과 지(知)를 내세우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학(學)과 덕(德)을 중히 여긴다. 文이 學이 아니냐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學과 文은 엄연히 다르다. 간혹 學을 덕행과 학문(學文)이라는 뜻으로 쓰기도 한다. 그러나 엄연히 달리 쓴다. 그렇다면 『논어(論語)』를 읽어보자.
배우고 때로 익히니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논어 1-1). 이는 논어 첫 구절이다. 주자(朱子)는 이를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學이란 말은 본받는다(效)는 뜻이다. 인성(人性)이 모두 착하나 깨달음에는 선후가 있으니 후각자는 선각이 행하는 것을 반드시 본받아야 한다(學之爲言 效也 人性皆善 而覺有先後 後覺者必效先覺之所爲). 이 글에서 朱子가 말하는 본받아야 할 학은 性善과 관련된 가치자각심이요 그 실천이다. 그러므로 가치중립적 태도로 학문(學文)을 익힘이 아니다. 이 구절에서 學이 무어냐를 두고 논란이 있었는지 『논어대전』을 편찬한 명의 학자 호광(胡廣, 명 ?∼1418년 몰)은 다음과 같은 朱子의 말을 남긴다. 주자왈 學이라는 글자는 진실로 치지(文)와 역행(德)을 겸하여서 말한 것이다(朱子曰 學之一字實兼致知力行而言). 朱子의 이 글은 흑시 學文을 소홀히 할까 보아 남긴 췌언에 불과하다. 논어의 첫 구절 첫 글자 學이 무엇이냐는 바로 이어지는 구절에서 뚜렷해지기 때문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들어와서 효도하고 나가면 사람들은 존중하는 태도를 지니라, 삼가고 신의를 지키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어진이와는 친히 사귀라. 이런 덕행을 행하고 겨를이 있거든 학문(學文)을 하라(弟子, 入則孝, 出則悌, 謹而信, 汎愛衆, 而親仁. 行有餘力, 則以學文(논어 1-6). 朱子는 문이란 덕행이 아니라 시서육예의 문이라고 규정을 내린다(文 謂時書六藝之文). 정자(程子)는 윤돈(尹焞)의 말을 빌려 덕행과 문예의 관계를 밝힌다. 즉 효도하고 어진 이를 사귀는 등의 일 즉 덕행(德行, 學)은 근본이요 시서육예를 익히는 文은 말단적인 것이다(尹氏曰 德行은 本也요 文藝는 末也)
공자의 자신의 제자를 특성에 따라 분류하여 뛰어난 자를 칭찬한 바 있다. 이를 흔히 사과십철(四科十哲)이라 한다. 다음과 같다. 덕행에는 안연 민자건 염백우 중궁이요, 언어에는 재아 자공이요, 정사에는 염유 자로이며, 문학(文學)에는 자유 자하이다(德行, 顔淵閔子騫 伯牛仲弓. 言語, 宰我子貢. 政事, 冉有季路. 文學, 子游子夏 논어 11-2). 이 장구에서 공자는 덕행(德行)과 문학(文學)을 나누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文으로 유명하여 공자의 제자들로부터 경원시 당하는 자하(子夏)가 학을 중시하는 말을 할 때 후학들은 놀라움을 표한다. 자하(子夏)는 문학으로 이름이 높은 데에도 그가 하는 말이 이와 같이 덕행 즉 學에 힘쓰는 말을 한다(子夏以文學而其言如此 - 如此는 논어 1-7장구임 → 子夏曰, "賢賢易色, 事父母, 能竭其力, 事君, 能致其身, 與朋友交, 言而有信. 雖曰未學, 吾必謂之學矣).
많은 이들이 유학에 대하여 말한다. 그러나 논어의 첫 구절도 오해하는 듯하다. 그리고 유학은 암기나 줄줄 해 대는 보잘 것 없는 학문이라고 폄하한다. 암기나 해 댈 때 이를 보잘 것 없다고 판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말 역시 유학에서 비롯된 것임을 모르고 말하는 듯하다. 유학은 이와 같이 암기만 하는 학문 즉 기문지학(記問之學)을 낮추어 본다(記問之學은 則無得於心 - 논어 2-11 주자 집주).
다시 큰 선비 즉 어떤 장기수가 내걸었던 이문회우(以文會友)로 돌아가 보자. 그는 왜 유학에서 금기시하는 文을 제호로 내걸었을까. 나 같으면 文이 얕아 文으로 선비를 사귄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분은 신영복 선생님의 벗이자 스승이었다. 그래서 스스로는 文으로 사람을 사귄다고 말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분을 만나는 사람들은 그 큰 이름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나 같으면 이우보인(以友輔仁)이 더 마음에 든다. 모자라는 나를 벗들이 채워줄 것이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큰선비의 뜻을 몰라 본 것은 아닌지. 그 날 나는 다시 『논어』를 들추었다. 주자의 집주(集註)는 이러하다. 학(學)을 익히어서 벗을 만나면 도(道)가 더욱 밝아지고, 벗의 좋은 점을 취하여서 나의 모자라는 인(仁)을 보충하면 덕이 날로 나아지리라(講學以會友 則道益明 取善以轉仁 則德日進, 논어 12-24 주자 집주). 내가 잘못읽었는가 싶어서 세주(細注)를 살펴 보았다. '이문회우'는 앎이요 '이우보인'은 덕행의 실천이라(覺軒蔡氏曰 以文會友致知之方 以友輔仁力行之事). 그렇다면 주자가 말한 강학(講學) 역시 문예(文藝)가 아닌 덕행(德行)이라는 뜻이 된다.
그렇다고 이토록 큰선비가 나의 생각보다 얕을 리가 없다. 나는 다시 세주(細注)를 읽어 내려갔다. 아하 그랬었구나 벗을 만났을 때 文으로써 대화를 주고받지 않으면 종일토록 잡담이나 주고받아 義에 미치지 못하는 잘못이 있음이라. 아하 큰선비께서는 文을 자랑코자 함이 아니다. 군거종일(群居終日)에 文을 떠올리지 않으면 義를 잊어버리게 된다. 이러한 잘못을 바로잡고자 애씀이었음이랴.
허겸(許謙)이 말하였다. 인을 실천함에 벗의 좋은 점을 취하여서 나의 못난 점을 보충하지 않으면 고루 과문의 폐단이 있다. 벗을 만남에 文으로써 하지 않으면 종일토록 떼지어 나누는 대화가 義에 미치지 않는 잘못이 있다(東陽許氏 曰爲仁而不取友以爲輔 則有孤陋寡聞之固 會友而不以文 則有群居終日言不及義之失 논어 12-24 大全 細注).
식목일이다. 서울에서는 노지(露地)에 심은 매화까지 흐드러지는 날이다. 다음 주에는 시골에 가서 매화꽃 따서 술을 마셔야겠다. 한학을 공부하는 이 없으니 이문회우(以文會友)의 기회가 없다. 벗이 없으니 이우보인(以友輔仁)마저 꿈꿀 수 없다. 진항(陳亢)은 공자의 아들을 뜰에서 만나 문일득삼(問一得三)의 學을 배웠다고 희(喜)하였다고 한다. 나에게 물어본다. 진정으로 이문회우의 벗이 없는가. 장자 강의를 하던 어느날 송모(宋某)를 친구로 삼아 달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제는 이런 글을 읽는 곳이 이 나라에는 없습니다. 대학에서는 장자 내편 중에서 「제물론」과 「소요유」 정도만 대충 훑어봅니다. 그러니 제가 선생님으로 모셔야 될 분들 아닙니까. 매일 엎드려 절을 하라고 하여도 하겠습니다.
그렇다 실제로 이분들의 사회적 지위는 식객 송명호보다 높다. 박x란, 여x연, 최x숙, 옥x희, 강x숙, 한x인 등이다. 장자 강의가 아니었으면 식객 송모가 어떻게 이분들을 만날 수 있었으랴. 이야말로 이문회우(以文會友)의 복 아닌가. 시골에서 이분들과 매화꽃 따서 술잔에 담아 술 한 잔 올리고 싶다. 술잔을 모은다. 매화꽃 가지가 흔들린다. 분분히 지는 낙화도 깊어가는 봄밤의 흥취를 알아 엷은 춤사위 따라 흐른다. 지난주에는 지난해 날아들던 학(鶴)이 나를 반겨 주지 않던가. 검은 날개를 펴고 둥글게 선회하다가 앞 산 소나무에 앉아 술마시는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청송(靑松)의 백운학(白雲鶴)에게도 술 한 잔 올려야겠다.
신영복 선생님과 그 한학자는 文이 아니면 주고 받는 말이 없었을 터이니 의(義)를 잃지 않았을 것이며 변절이란 몰랐을 터이다. 두 분 선생님을 뵙고 싶은데 文이 얕아 뵙고서 올릴 말씀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봄이다. 저 멀리 봄 하늘 저어면서 날아가는 학(鶴) 한 마라를 바라본다. 고 여운연 원장님이 아니 벗이 말한다. ‘이문회우’의 나래짓으로 살아가는 세상은 고결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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