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대한민국 探訪

짝사랑의 추억이 서린 간이역의 벚꽃길

鶴山 徐 仁 2007. 6. 7. 23:42

[오마이뉴스 김정수 기자]

▲ 부부가 아이의 손을 잡고 기찻길을 걷고 있다
ⓒ2007 김정수
어린 시절부터 여행을 좋아하다보니 필자에겐 특별한 추억이 서린 공간이 많다. 그중 기차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공간이 진해 경화역이다. 고교시절엔 진해군항제가 시작되면 버스보다는 주로 기차를 타고 진해로 향하곤 했다.

보통 때는 40여분 걸리는 버스가 군항제 기간만 되면 교통체증으로 인해 주말에는 3시간을 넘기기 일쑤였다. 하지만 기차를 타면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평소와 달리 사람들로 가득 차 제대로 서있기조차 힘든 기차에서 이리저리 부대끼다보면 하얀 팝콘같은 벚꽃이 차창 사이로 눈부시게 다가왔다.

지금은 사라진 비둘기호가 경화역에 들어서자 사람들은 "와!" 하는 탄성을 질러댔다. 아름다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는데,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낼 수도 없었다. 그래서 무작정 내리기로 했다. 그때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으니 벌써 17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그렇게 경화역과 처음 만났다.

'세상에 이토록 아름다운 역이 또 있을까?'

기차에 내려서도 한동안 발길을 옮길 생각도 않고 기찻길과 벚꽃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숨이 막힐 것 같은 아름다움! 그 기찻길 옆 꽃길은 이후 군항제때만 되면 필자를 진해로 끌어들이는 마력같은 힘이 되었다.

혼자서 좋아하던 여학생

▲ 교복을 입은 학생이 기찻길을 지나고 있다
ⓒ2007 김정수
고2와 고3때는 혼자서 좋아하던 여학생을 보기 위해 군항제 때 기차에 올랐다.청소년연맹인 그녀가 진해에서 교통봉사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경화역에 잠깐 내려서 사진을 찍고 출발하기 전에 다시 타야지 했는데, 사람들에 밀려서 탈 수가 없었다. 다음 기차는 3시간 후에나 온다고 했다.

사진 몇 장을 더 찍고는 역을 나왔다. 버스는 거의 움직임이 없어 걷는 것보다 느렸다. 1시간을 넘게 걸어서야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안녕!"

짧게 인사를 나누고는 거의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휴식시간에 잠깐 같이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속만 태웠다. 눈동자만 그녀와 벚꽃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이듬해에도 찾아갔지만 그냥 먼발치에서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을 뿐이다. 그냥 그렇게 바라보기만 해도 마냥 좋은 때가 있었다. 행사가 끝난 후 같은 버스를 타고 오다 집앞에서 내리는 게 다였다. 그녀의 생일 때 그동안 써놓았던 연작 자작시 중 한 편을 선물하는 것으로 고백을 대신했지만, 졸업과 함께 싱거운 짝사랑은 끝나고 말았다.

▲ 진해군항제 셔틀열차가 경화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고교시절 타던 비둘기호는 이제 더이상 만날 수 없다.
ⓒ2007 김정수
사랑에 허우적대면/ 키가 큰다

고독에 몸부림치면/ 가슴이 자란다

보고픔에 목이 메이면/ 눈물이 난다

키가 크고/ 가슴이 자라고/ 눈물이 날 때/ 긴 편지를 쓴다

창 밖의 공간에 흩어진/ 까아만 점들을 모아/ 편지지에 담는다

너에게로 가는 편지는/ 잉크가 필요없다/ 펜이 필요없다

우표 하나에 우정 하나/ 봉투 하나에 사랑 하나

- 고3 때 썼던 자작시 <너에게로 가는 편지 7> 전부


▲ 나란히 기찻길을 걷는 관광객
ⓒ2007 김정수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청소년월간지에 실린 글을 보고 진주에 사는 아가씨가 편지를 보내와 펜팔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그녀가 진해의 경화역 근처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다시 경화역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글솜씨를 뽐낼 수 있는 편지와 달리 직접 만나서는 이야기를 거의 이끌지 못해 만남을 길게 이어가지는 못했다. 오다 가다 경화역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한 것이 수확이었다. 짙푸른 녹음이 우거진 경화역은 참으로 싱그러웠다. 경화역 주변은 좀 더 번화가로 변해갔지만 역 이용객은 더 줄은 듯했다.

더 이상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

▲ 한 관광객이 선로 위를 걷는 가운데 사진작가들이 촬영에 열중하고 있다
ⓒ2007 김정수
2007년의 경화역은 더 이상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이다. 올해도 3월 말 어김없이 경화역으로 향했다. 기차를 타고 가고 싶었는데 이제 더 이상 경화역에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고 해서 차를 몰고 갔다.

간이역이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몇 년 전만 해도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조용한 곳이었는데, 드라마 <봄의 왈츠>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전국적인 명소로 급부상했다.

기찻길 양 옆으로 빼곡히 늘어선 나무들이 새하얀 꽃물결을 이루며 바람에 하늘댄다.연인들이 선로 위를 걸으며 봄의 정취를 만끽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많은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기찻길을 지나고 있어 옛추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경화역 주변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빠앙" 하는 기적소리가 울린다. 마산-진해간 열차가 몇 년 전 끊어졌는데, 이번에 군항제를 맞아 임시로 편성한 셔틀열차가 들어섰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셔터소리가 분주하게 이어진다.

어떤 이들은 선로 위에다 삼각대까지 세운 채로 기차를 피할 생각도 않고 촬영에 열중하고 있어서 무척이나 위험해 보였다.

"빠앙! 빠앙!"

기차가 서행하면서 다소 신경질적인 기적 소리를 계속해서 토해낸다. 무정차 간이역이지만 수많은 인파로 붐비는 곳인데, 안전관리요원이 한 명도 없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몇 차례 기차가 지나갔는데, 사진에 대한 욕심 때문에 위험한 상황을 연출하는 이들로 인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계속되는 기적소리에 귀를 막고 우는 아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기차가 지나가면서 벚꽃과 어우러지는 풍경은 한편의 동화처럼 아름다웠지만, 심한 소음으로 인해 사진 촬영에 열중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렇게 잠깐 멋들어진 풍경화는 기적소리에 묻히곤 했다. 사진촬영을 위해 기차시간표를 챙겨갔는데, 몇몇 사진작가들로 인해 기차는 연착 시간이 조금씩 길어져 갔다.

▲ 연인이 지나가는 기차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07 김정수


/김정수 기자


덧붙이는 글
'철도와 함께 떠나는 여행' 응모. 사진은 2007년 3월 군항제 기간에 촬영한 것입니다.


기자소개 : 김정수 기자는 여행작가로 홈페이지 출발넷(www.chulbal.net)을 운영중이다. 저서로 <남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섬진강>, <남성미가 넘쳐흐르는 낙동강>, <주말에 떠나는 드라마 & 영화 테마여행> 등이 있다. 일본어 번역판인 <韓國 ドラマ & 映畵ロケ地 紀行>이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