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아이, 내 아이, 우리 아이
지난 주, 사르코지 신임 프랑스 대통령이 취임 서명을 하는 자리에는 부인과 다섯 자녀가 빙 둘러섰다. 이날 정장 차림을 하고 한 자리에 모인 자녀들은 재혼한 부인 세실리아 소생 두 딸, 사르코지의 두 아들, 그리고 재혼 후 얻은 막내 루이다.
대통령 취임식에 ‘당신 아이들’과 ‘내 아이들’, 그리고 ‘우리 아이’로 이뤄진 대통령 가족이 공식 등장한 모습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다섯 자녀를 양쪽에 거느리고 당당하게 엘리제 궁 취임식장에 들어서는 마담 사르코지의 모습은 재혼 가정과 비혈연 가족의 새로운 역사적인 표상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사르코지 대통령 가족만큼은 안되지만, 비혈연가족이 공식적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는 예가 그렇게 드문 것은 아니다. 얼마 전 한국을 다녀간 호콘 마그누스 노르웨이 왕세자 부부만 해도 그렇다. 메테 마리 왕세자빈은 미혼모로, 왕세자와 결혼할 때 네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왔다. 국왕 하랄드 5세를 필두로 15명의 왕실 가족을 소개한 주한 노르웨이 대사관의 ‘노르웨이 왕실’ 공식 홈페이지에는 왕세자빈 소생 마리우스 보리 회비(10세)를 ‘도련님’(Master) 칭호와 함께 “왕세자 가족 자녀 중 맏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왕가의 공식 사진에도 마리우스는 왕세자 부부 사이 맨 앞줄에서 활짝 웃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등을 보인 사람)이 16일 엘리제궁에서 취임식을 가진 뒤 자녀들의 박수 속에 아내 세실리아와 입을 맞추고 있다. | |
결혼과 이혼, 재혼, 심지어 불륜까지도 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이니 굳이 상관할 것 없다고 생각하는 유럽에서니까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럽에서도 왕실이나 대통령, 총리가 이처럼 재혼 가족의 모습을 공공연하게 미디어에 드러내는 일은 오래되지 않았다. 100커플 중 42커플이 헤어지는 프랑스에서는 ‘재구성 가족’을 이제 일반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인구 대비 이혼율이 세계 2위까지 갔던 우리는 어떨까. 지난 한 해 동안 이뤄진 결혼은 33만2000건(통계청 자료). 이 가운데 재혼이 7만3000건으로 22%나 된다. 프랑스 식으로 말하자면, 한 해 새로 태어나는 가족 중 5분의 1 넘는 수가 재구성된 가족이라는 이야기다. 재혼 남녀의 평균 나이는 남자 44.4세, 여자 39.7세. 한국 부부의 불임률이 10%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적어도 6만 건의 재혼에는 자녀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가능성’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은, 재혼 가정 자녀나 한 가정 내 비혈연 자녀 구성에 대한 국가 통계가 없기 때문이다. 이혼 재혼이 이렇게 흔한 일이 되었는데, 그 같은 변화에 대처할 정책이나 정책의 기초 자료가 될 통계 수치조차 없는 게 우리 현실이다.
가족은 변한다. 혈연 가족만을 정통으로 여겨온 우리 사회도 어쩔 수 없이 그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데까지 왔다.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가족의 법적 범위는 오히려 넓어졌다. 예전에는 호주의 배우자와 혈족, 그리고 혈족의 배우자만을 가족으로 여기던 완고한 ‘부계 혈연’ 가족이었지만, 개정 민법은 배우자의 직계 혈족, 형제자매까지도 가족으로 여긴다.
하지만 우리들 마음에서 ‘재구성 가족’에 대한 관용도는 얼마나 성숙했을까. 그런 점에서 한국 TV 드라마들이 질리도록 우려먹는 ‘출생의 비밀’은 정치적으로 위험하다. 혈연 가족에 대한 뿌리깊은 편애를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재혼 때 아이들이 가장 큰 ‘짐’이라는 한 재혼 회사의 통계 조사를 보며, 현실이 된 ‘재구성 가족 시대’를 생각한다.
박선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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