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미친 스케줄 아닌가요?"
한국계 미국인 지휘자 스콧 유는 서울시향의 봄 시즌 일정을 보더니 이렇게 반문했다. 객원 지휘자가 취재 기자에게 그렇게 물으면 어떻게 답하란 말인가. 난감하기만 했다.
진은숙의 현대 음악 시리즈 '아르스 노바' 두 차례에 이어, 정기 연주회, 오페라 리골레토 연주와 찾아가는 음악회까지. 실제 3월부터 4월로 이어지는 서울시향의 연주 일정은 '강행군'이라는 말이 가장 적합해보였다.
고심 끝에 이렇게 답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렇진 않았어요. 오히려 반대였죠. 어쩌면 지금 그들은 벌 받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
농담의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휘자는 함께 웃었다.
그렇게 웃고 넘어갔는데, 최근 뉴욕 필하모닉의 연주 일정(nyphil.org/concertsTicks)을 보니 '한 술 더 뜬다'는 말이 딱 맞는다. 매주 3차례 정기연주회에 초저녁에 열리는 해설 음악회, 유럽 투어 일정 후에 다시 정기 연주회로 이어진다. "위기의 뉴욕 필이 반성중인가"라는 친구의 심드렁한 농담에 또한 웃고 말았다.
문제는 서울과 뉴욕의 '클래식 기초 체력'이 크게 다른데 있다. 아무래도 서양 고전 음악 수용의 역사가 우리보다 깊은 미국에선 티켓 판매 저변이 우리보다 넓다보니 강행군이 플러스 효과를 자연스럽게 낸다. 반면 한국에선 정명훈 같은 지휘자나 국내외 유명 협연자가 무대에 오르지 않으면, 표 팔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관객 부재를 탓하는 건, 오케스트라 실력 저하의 손쉬운 알리바이가 된다. 공연 기획자와 기자는 때로 마음에 짐을 한가득 안고 산다.
젊은 한국계 지휘자 덕분에 얼 킴의 작품<사진>을 만나게 됐다. 레퍼토리를 넓히는 건 때로 간척 사업 같다는 생각을 한다.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사업이 끝나고 나면 또 땀 흘린 보람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지난 공연이지만, 잊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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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가 현대음악 전문 지휘자가 됐다.
6일 LG아트센터에서 서울시향을 지휘하는 한국계 미국인 스콧 유(Scott Yoo·36)는 12세에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 영재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이다. 스콧 유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버드대 재학시절 그의 전공은 뜻밖에도 물리학이다. 그는 “고교 때까지 가장 좋아하던 과목이 물리학이었기에 서슴없이 전공으로 택했다”고 했다. 지금 그는 60여 곡의 신작(新作)을 초연한 ‘현대음악 전문가’다. 지난 2001년 그가 지휘한 한국계 미국 작곡가 얼 킴(Earl Kim·1920~98)의 성악 음반은 그해 뉴욕 타임스에서 ‘올해의 클래식 음반’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왜 물리학을 전공하고 음악의 길을 택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제가 대학에서 배운 건 ‘맥스웰의 법칙’ 같은 물리학 이론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음악이든 물리학이든 생각하는 방법이 중요한 건 마찬가지죠.”
하버드대 재학 시절, 그를 현대음악으로 이끌었던 교수가 얼 킴이었다. 스콧 유는 얼 킴의 음악 강의를 직접 듣지는 않았지만, 졸업 뒤에도 찾아가 대화를 나누고 함께 음악을 연주하며 ‘스승’으로 모셨다. “세계 2차대전 중에 얼 킴 선생님은 미 공군으로 참전했어요. 하와이에서는 일본군으로 오인되어 사살당할 뻔하기도 하고, 나가사키 원폭 투하 뒤에는 폐허가 된 도시를 저공 비행하며 사진으로 참사를 담았지요. 시(詩)와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을 열광적으로 사랑했던, 인간적인 거장이었어요.”
1993년부터 스콧 유는 자신이 창단한 메타모르포젠 체임버의 음악 감독을 맡으며, 얼 킴을 비롯해 한국계 미국 작곡가 도널드 서(Donald Sur·1935~99), 윤이상의 교향곡 4번 등 한국계 음악인들의 현대 음악을 조명하고 있다.
그의 현대음악론은 독특하다. “나는 미국인 친구들에게 한국 음식에 대해 말하려면 먼저 갈비나 김치를 직접 먹어본 뒤에 그 맛을 판단하고 말하라고 권합니다. 현대음악을 ‘모르겠다’고 말하거나 꺼리는 분들도 마찬가지예요. 한번 현대음악을 100곡쯤 들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 많은 곡 가운데 단 두 곡만 마음에 들더라도 들어볼 시도조차 해보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요.”
그는 오는 6일 서울시향 연주회에서 윤이상의 ‘현을 위한 융단’과 슈만 교향곡 4번 등을 연주한다.
글=김성현기자, 사진=전기병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