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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깽' 후손들의 특별한 설

鶴山 徐 仁 2007. 2. 20. 19:46
2007년2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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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깽' 후손들의 특별한 설 

   

설움도 한(恨)도 녹아 내린 만남이었다. 세대와 공간을 뛰어넘은 만남의 장(場). 장구와 북 소리가 흥을 돋우고, ‘아리랑’ 선율이 울려 퍼졌다. 15일 오후 인천 연수동 사할린동포복지회관. 조선 말기 가난 탓에 멕시코로 떠난 ‘애니깽’의 후손들이 설을 맞아 복지관의 사할린 동포들을 찾았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멕시코 후손 30여명이 두 손을 모으고 세배를 올리자, 80여명의 노인들이 눈물을 글썽였다. 일제시대 강제징용으로 사할린에서 평생을 살다 최근 국내로 돌아온 노인들이다. 할머니·할아버지들은 10대 후반~20대 후반 나이의 이들을 감싸 안으며 어깨를 토닥였다.

“아이고, 꼭 사할린에 두고 온 내 손자들 같아….” 장병술(80) 할아버지는 “비슷한 아픔을 겪은 후손들을 보니, 정말 친손자들을 만난 것처럼 기쁘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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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말 멕시코로 이민간‘애니깽’들의 후손들이 방한, 인천시 연수구 사할린복지관을 찾아 귀국한 사할린 동포 할머니·할아버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용국기자 young@chosun.com

“18세 때 사할린에 가 죽을 고생 했지. 탄광 일부터 안 해 본 게 없어요. 고국이 그리워 명절 때마다 라디오만 틀어놓고 눈물로 보냈어.” 장씨는 “한국에 오니 형제들을 만나 좋지만 몸도 아프고 마음도 편하지는 않다”고 했다. “사할린에 두고 온 두 딸 생각만 나고…. 명절인데 가족과 함께 지내야 좋은 거지.” 그는 당뇨와 심장병 탓에 약을 달고 산다고 했다.

태어나 처음 방문한 한국에서 맞는 특별한 설날. 애니깽 후손 4~5세대들인 이들은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6개월째 산업연수 중이다. 3월 멕시코로 돌아가는 이들은 설을 맞아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기로 뜻을 모으고 논의 끝에 사할린 동포들을 찾았다고 했다. 조선시대 말 멕시코로 이민 갔다가 고국이 일제 식민지가 되는 바람에 돌아오지 못한 자신들의 선조와, 일제에 의해 강제로 사할린으로 떠나야 했던 할머니·할아버지들의 처지가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청년들은 할머니들 앞에서 직접 배운 사물놀이를 공연했다. 텃밭도 일구고, 명절 음식도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박 이반(29)씨는 “할머니·할아버지가 말로만 하던 한국을 직접 보게 돼 감격스럽다”고 했다. “증조 할아버지가 멕시코에 들어온 이후 쭉 멕시코에 살았다고 해요. 할머니께 전해 듣던 한국과는 너무 달라요. 그때는 일제시대였고, 정말 살기 어려웠다고 했는데….” 그는 “여기 와 사할린 동포들을 뵈니 돌아가신 할머니를 만난 것처럼 기쁘다”고 했다.

“우리 할머니·할아버지가 겪었던 아픔을 겪으신 분들이라 생각하니 가족 같아요.” 호르헤 나시프 김(29)씨 말에, 리 사우시(26)씨가 답한다. “할머니가 집에서 늘 한국 얘기를 들려주셔서 한번도 한국을 다른 나라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집에서도 할머니는 늘 한국 음식을 해주신걸요. 비빔밥, 불고기, 김치… 다 맛있어요.”

사할린 동포복지관은 1999년 설립됐다. 사할린 한인 영주귀국자 중 질병이나 장애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한국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게 지원하는 시설이다.

“젊었을 때는 늘 한국이 그리웠지요. 뼈라도 고국에 묻히고 싶어서 왔는데. 막상 오니 가족이 그리워….” 이명순(84) 할머니는 “여기도 고향이고 거기도 고향”이라며 눈물 흘렸다. 최근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이 할머니를 위해 며칠 전 사할린에서 왔다는 딸(52)은 “그나마 명절을 같이 보낼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했다.

이날 함께 방문한 김무선 멕시코유카탄 무지개한인학교 교장은 “국권이 침탈 당했던 조선말기와 일제 강점기에 고생했던 멕시코 이민 1세대의 후손들이 사할린 동포들과의 만남을 통해 선조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허윤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