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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옥 _ 증산도 본부 중국 1만년 역사 프로젝트 동북공정의 전모가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역사 문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이미 중국은 1996년에 시작한 단대공정으로 하, 상(은), 주 3대 왕조의 연대를 확정짓고 그 실행 프로그램인 서북 서남 동북공정을 통해 위구르, 티벳, 고구려 등 ‘현재’ 중국 영토 안에서 일어난 모든 문명을 중국 것으로 억지로 둔갑시켰다. 그리고 2003년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原工程)’, 약칭 탐원공정을 추가하면서 무시무시한 야심을 드러냈다. 탐원공정은 황제헌원, 염제신농씨 등 중국에서 지금까지 신화로 받들던 중화문명의 시원을 추적해 동북지역 전체 고대문명을 중국사로 편입하고, 나아가 아즈텍, 마야문명을 일으킨 사람들도 상나라의 후예들이라는 논리를 개발, 궁극적으로 중국의 역사를 1만 년으로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무서운 전략인가. 아니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현실인가. 환국, 배달, 단군조선에서 비롯되는, 우리가 그토록 외쳐왔던 한민족의 9천년 역사인데 우리가 복원해야할 우리 뿌리역사를 중국이 통째로 집어삼키고 있는 것이다. 천인공노할 중국의 이런 만행도 분개할 일이지만, 동북공정에 빌미를 제공한 우리 사학계와 수수방관하고 있는 정부에도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우리는 우리 역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해보아야 한다. 그림을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동북공정 불러온 우리 국사 교과서 “단군조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중국 동북공정의 논리에 대응하는데 근본적인 문제점이 생긴다. 일제 식민사관의 잔영이 그대로 투영돼 있는 국사 교과서는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얼마 전 한 월간지 기사에 실린 역사학자 이덕일씨의 말이다. 단군조선을 부정하는 현 사학계가 동북공정이라는 화를 자초했고, 단군조선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다보니 뿌리가 모호해진 고구려와 발해는 덤으로 중국에 넘어가버린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한민족의 역사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단군이 조선을 개국했다고 막연히 알고 있다. 그런데 단군 이전의 환국, 배달국은 차치하고라도 실제로 현재의 국사교과서는 단군조선에 대해 애매모호하게 기록하고 있다. ‘청동기시대가 한반도에서는 기원전 10세기경에, 만주지역에서는 기원전 15세기~기원전 13세기경에 전개되었으며, 청동기시대 족장사회에서 가장 먼저 국가로 발전한 것이 고조선’이라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 <삼국유사>기록에 따르면 고조선은 단군왕검이 건국하였다고 한다.(B.C. 2333)’ 고 써놓았다. 한 교과서에서도 고조선의 건국시기가 800년에서 1300년이나 차이가 난다. 거기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 건국하였다고 한다” 라고 마치 남 얘기하듯 기술하며 사실상 고조선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고조선을 이어 부여, 옥저, 동예 등을 잠시 언급한 뒤 바로 고구려로 넘어가는 등 고조선 2000년 역사는 얼렁뚱땅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우리 스스로 고조선(단군조선)을 유령화 시켜놓으니, 그 헛점을 파고들어 중국은 고조선에 대해 ‘은나라 말 기자가 한반도에 처음 기자조선을 세웠으며, 기자조선이 고구려 발해 역사의 시발점’이라 주장하고 있다. 단군조선조차 이러한 실정이니, 그 이전의 배달국과 환국시대는 꿈도 꾸지 못할 신화 속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말로는 ‘반만년’, ‘배달겨레’라 하지만, 실제로 왜 반만년인지 왜 배달겨례인지 현 국사교과서로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방도가 없다. 사대주의사관과 일제 식민사관의 뿌리 깊은 잔재가 우리 역사를 이처럼 불구로 만들어 놓았고, 그 여파는 중국에 좋은 먹잇감을 만들어준 꼴이 되고 만 것이다. 1만년을 이어온 한민족 역사 그런데 사실상 중국 한족의 시조로 알려진 황제헌원으로부터 소호, 전욱, 제곡, 요임금, 순임금과 그 뒤를 이은 하나라의 주임금, 상(은)나라의 탕임금, 주나라의 문왕과 무왕은 모두 100% 동이족 혈통이다. 고대로부터 중국인들은 우리 민족을 ‘동이족’이라 불렀다. “중국 고전 <초서>를 보면 ‘황제(黃帝)는 백민(白民)에서 태어나고… 그는 동이(東夷)족에 속한 사람이다’라 기록하고 있다. 또 <맹자>와 사마천의 <사기>에는 ‘순임금은 동이인(東夷人)이다’, 또 <사기>에는 ‘창의(昌意)는 황제헌원씨의 아들이다’, ‘창의로부터 7세가 순(舜)이다’라 기록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중국의 고대사는 바로 우리 배달 조선민족의 역사이며, 오늘날 중국은 한민족 역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중국창업의 시조가 된 우리 한민족의 뿌리역사는 어떻게 되는가? 우리의 정통 도가사서인 『환단고기』 「삼성기」상편 첫머리가 ‘오환건국(吾桓建國)이 최고(最古)라’ 즉 ‘우리 환국의 나라 세움이 가장 오래 되었다’로 시작한다. ‘환국’은 파미르 고원에 있는 천산(天山)에서 발원하여 천해(바이칼호)의 동쪽으로 뻗어나가 그 영토가 동서 2만리, 남북 5만리에 달했다. 지금의 중앙아시아, 중국 등에 걸치는 광활한 영토였다. 환국은 초대 안파견 환인(BCE 7197)으로부터 3301년간 존속되었다. 바로 여기에 우리 민족 시원역사가 뿌리를 두고 있다. 이후 BCE 3900년 전, 인구증가와 기후변동으로 환국 백성들은 각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이때 환국의 정통을 계승한 환웅께서 문명개척단 3천명을 이끌고 태백산(백두산) 아래에 ‘신의 도시(神市)’를 열고, 나라이름을 ‘배달’이라 칭했다. 배달국은 1대 거발환 환웅천황을 시작으로 18대를 이으며 1565년 간 지속되었다. 우리민족을 ‘배달겨레’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이 배달국이 실질적으로 한민족 역사의 시조이다. 월드컵을 통해 크게 알려진 ‘치우천황’이 배달국 14대 환웅천황이며, 인류문명의 시조인 태호복희씨, 의학의 시조인 신농씨 등 중국인들이 신화로 모셨던 인물들이 사실상 모두 배달국시대 실존했던 우리의 선조들인 것이다. 이 배달국을 계승하여 초대 단군왕검께서 BCE 2333년 전에 아사달(하얼빈)에 나라를 연 것이 고조선이다. 당시 동북아 전체를 호령했던 그 주역이 바로 단군조선인 것이다. 47명의 단군왕검이 2096년간 다스렸던 단군조선은 BCE 232년 해모수의 북부여로 계승되고, 북부여는 다시 고구려(BCE 58년)와 대진국(668년)으로 국통맥이 이어진다. 누가 우리 역사를 되찾을 것인가 한민사의 국통맥을 보면, 사실상 우리 한민족의 역사는 반만년이 아니라 9천년을 상회하며, 중국사는 오히려 한민족에서 뻗어나간 방계에 불과한 것이다. 이처럼 장대하고 찬란한 배달 조선민족의 역사가 있었건만 우리는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식민사학은 잃어버린 우리 역사를 되찾기는커녕 축소시키기에만 급급하다. 반면 우리가 되찾아야 할 1만년 역사는 중국이 자기네 역사로 둔갑시켜 복원에 나선 것이다. 참으로 통탄스럽고 어이없는 일이 옛 우리 선조들의 땅에서 대대적으로 자행되고 있는데도 우리 정부는 ‘외교’라는 이유 때문에 아무런 대응조차 하지 않고 있다. 나라를 팔아먹는 것만 매국이 아니다. 민족의 혼인 역사를 팔아먹는 것은 장기적으로 영원한 멸망을 자초하는 길이다. 중국의 계획대로라면 머지않아 중국은 자기네가 세계문명의 뿌리임을 자처하고 나설 것이다. 그들을 누가 막을 수 있을 것인가? 1만년 역사의 진정한 주인공인 우리 배달민족이 먼저 깨어나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원시반본(原始返本)의 진리로써 진정한 새 역사의 주인공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조선국 상계신(환인) 중계신(환웅) 하계신(단군)이 몸 붙여 의탁할 곳이 없나니 환부역조하지 말고 잘 받들 것을 글로써 너희들에게 경계하지 않을 수 없노라. (道典 5:34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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