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일부였던 모라비아의 프라이베르크에서 유
태인 모직상 아들로 태어나 런던에서 세상을 떠났다. 3살때 빈으로 이사, 80년 가까이 한 도시에
서 산 프로이트는 괴테의 자연에 관한 수필을 읽고 감명받아 전공을 의학으로 선택했다. 빈 대학
을 졸업하고 인턴생활을 하던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사람은 프랑스 신경병학자 장 마르탱 샤르
코. 히스테리 환자들을 연구하며 신경증에 평생을 걸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빈으로 돌아와 개업
한 프로이트를 기다린 것은 의학계의 완강한 보수주의였다. 남성도 히스테리에 걸릴수 있다는 주
장에 의사들은 비웃음으로 일관했다. 1899년 출판한 '꿈의 해석'은 2년간 겨우 351권밖에 팔리지
않았다. 그를 인정한 것은 여성환자들이었고 이들 가운데 일부는 정신분석의가 되었다. 차츰 알
프레드 아들러, 칼 융, 오토 랑크, 어니스트 존스, 빌헴름 슈테겔 등 일급 의사들이 몰려들었다.
드디어 1908년 찰츠부르크에서 제1회 정신분석학회의가 열렸다. 프로이트는 남자 제자들과는 불
화를 빚었지만 평생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지냈다. 유대인 유력 집안 출신의 마르타와 결혼했으나
아내에게서는 편안함을, 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처제와는 정신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니체의 친구
이자 릴케의 연인이었던 루 살로메와도 절친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렇지만 페미니스트들로부터
는 "그의 학문에는 어머니가 없다. 그는 여성은 본질적으로 불행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규정하
고 있다"고 비난받았다. 불합리한 인간의 내면에 이성의 빛을 비추며 20세기 초반을 지배했던 프
로이트는 1938년 나치를 피해 런던으로 갔으나 이듬해 지병인 인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죽기 3
년전 80회 생일축하모임에서 독일작가 토마스 만은 이렇게 칭송했다. "프로이트는 프로이트의 시
대를 창조하고, 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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