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덴에 도착한 날 밤, 유스호스텔에서 뜻하지 않게 두 명의 한국인 배낭 여행자를 만났다. 너무 반갑다. 문창진이란 학생은 6개월
동안 유럽을 배낭여행중이고, 김하나라고 자신을 소개한 아가씨는 역사를 전공하는 학생인데, 3개월 동안 유럽의 문화와 역사의 현장을 답사하고 있는
중이란다.
둘 다 홀로 다니는 용감한 배낭 족이다. 우리는 그들을 우리 방으로 초청(?)해 커피를 한 잔 했다. 초라한
유스호스텔의 방이지만 오랜만에 한국인을 만나 차를 한잔하는 방안은 온기로 가득 찬다.
“문군은 상당히 오랫동안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무슨 특별한 목적이라도?”
“뭐, 특별한 목적이라기보다는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해보고자 시작한 여행입니다.”
“멋진
생각이군. 그래 조국과 부모 곁을 떠나 홀로 여행을 하고 있는 느낌은 어떻지?”
“우선, 조국이 부강해야 한다는 생각과 부모에게 효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느껴집니다.”
밖에 나오면 애국자가 되고 효자가 된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잘 생긴 미남형의 문군을
바라보는 마음은 한국의 젊은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다. 그는 내일아침 프라하로 떠난다고 했다. 역사를 전공한다는 김양은 90일간의
여정이 거의 다 끝나간다고 했다.
“말로만 듣던 유럽의 역사 현장을 체험하는
것도 저에게는 큰 체험이지만 저 역시 여행을 하면서 내내 부모님의 고마움과 소중함 마음속 깊이 느끼고 있어요.”
“세계일주를 하시는 선생님의 여정은 이제
시작이시군요. 만나 뵙게 되서 영광입니다.”
“선생님 나이에… 두 분만이 이렇게 배낭여행을 다니다니… 정말 대단하시고
멋져요!”
“우리야 역마살이 낀 부부일 뿐. 난 오히려 두 사람의 생각에 진한 감동을 느껴요.”
문창진 군은 다음 날 아침
프라하로 떠났고, 우린 김 양과 함께 드레스덴 시가지를 둘러보게 되었다. 아들과 딸 같은 나이의 학생들이다. 조국애가 묻어나고 효심이 깃든
그들이 매우 자랑스럽게 보인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우리는 츠빙거 궁전에서 나와 복원공사를
한참 진행하고 있는 드레스덴 성모 교회를 돌아 보았다. 전쟁의 참상은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다. 배가 고프다. 전쟁 시에는 얼마나 배고픔이
많았을까?
“저어기 햄버거 집으로 들어가 점심을 때우자고.”
“전… 전혀 생각이 없어요. 요즈음 소화가 톤 안
되서요.”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김 양은 정말 여비가 거의 바닥이 난 모양이다. 하루에 한 끼만 먹는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것 같은데, 앞으로 남은 15일을 버티기 위하여 끼니를 굶으며 비상작전에 돌입한 것 같다. 배낭여행자들은 그런 경우가 가끔 있다. 여비를
아끼기 위해 끼니를 거른 다든지, 노숙을 한다든지…
“자자, 그래도 일단 들어가 좀
쉬자고.”
아내는 김 양을 끌다시피 하며 햄버거집 안으로 들어간다. 김 양은 엉거주춤 하면서 아내에 떠밀려 햄버거 집으로 들어간다.
나는 햄버거를 3개를 시켜 테이블로 들고 왔다.
“안 그래도 되는 되요.”
“자 일단 먹자구.”
과부 속은
과부가 안다고… 오전 내 걸어 다녔으니 어찌 배가 고프지 않으리오. 아내가 호스텔에서 마호 병에 담아온 커피에다 햄버거를 먹는 맛이 꿀맛이다.
미스 김도 맛있게 먹는다. 빵 한 조각, 커피한잔이 추위와 굶주림을 눅이고 있다. 말은 아니 하지만 그녀의 눈빛에서 고마운 기색이 역역이
보인다.
거리엔 여전히 흰 눈발이 내리고 있다.
점심을 먹은 뒤 우리는 김 양과 헤어졌다. 김 양은 하루정도 더 이곳에 머물겠다고 한다. 그러나 우린 오늘 프라하로 가기로 했다. 유레일패스를
이용하여 밤에 우린 프라하로 떠나야 한다.
프라하!
마치 춥고 긴 장막처럼만 느껴지는 마치 봄의 서곡처럼 울려 퍼지는 감동을
주는 도시이기도 하다. 프라하의 밤이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