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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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내가 목격한 탈북자 공개처형

鶴山 徐 仁 2005. 12. 4. 17:09

구가 불을 뿜자 탈북청년은 앞으로 푹 고꾸라졌습니다.

 

고단했던 삶을 마감하기 쉽지 않은듯 그는 마지막 숨을

몇 분 동안이나 몰아 쉬었습니다.

 

기다리기가 지루했던지 옆에서 지켜보던 법원 집행관 중

한 사람이 군화발로 쓰러진 사형수의 목 부분을 지긋이 내려밟았습니다.

그렇게 20대의 북한 청년은 숨져갔습니다.
 

하얀색 판을 목에 건 탈북청년이 두 명의 법원 무장집행관에 이끌려 처형장소로 가고 있습니다. 뒤를 향해 뭔가 소리치고 있고 이를 법원 관계자들이 지켜봅니다. 뒷편으로 공개처형을 구경나온 주민들이 눈에 띕니다.

2001년 7월3일. 그날 제가 목격했던 탈북청년의 공개처형 장면입니다.

 

4년이 지났지만 그 날의 충격은 잊혀지지 않고 생생하게

제 머릿 속에 남아있습니다.

 

중국 연변 용정시 외곽에서 벌어진 한 탈북청년의 공개처형입니다.

 탈북자 문제 취재를 위해 동북3성을 찾았던 저는 용정시 공안국의 한 관계자로부터 마침 공개재판과 처형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재판 당일 용정시 운동장에서는 수 십명의 범죄 혐의자에 대한 재판이 벌어졌습니다.

 

차량안 라디오에서는 판사들의 판결내용이 한국어에 이어 중국말로 순차적으로 흘러나왔습니다. 

대개 10년 이상의 중형이 선고되는 강도,강간,밀수 등등. 

 그런데 재판을 받는 사람 중에는 조선인(북한사람) 한 사람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화룡현에서 홀로 사는 노인을 포함해  3명을 살해하고

돈을 빼앗은 살인강도범이었습니다.

재판관은 그에게 사형을 언도했습니다.

 평소 친분이 있어 저의 안내를 맡아준 공안관계자는 그가 공개처형 방식으로 죽게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왜 북한으로 인도않느냐'고 하자 그는

"북한측에 통보했는데 중국측에서 알아서 하라고 답이 왔다"고 했습니다.

'언제 형을 집행하느냐'고 하자 그는 놀랍게도 "한 두 시간 뒤에는 처형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한참 망설인 끝에  "저도 꼭 그 현장을 보고 싶습니다.

도와주세요"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는 처형현장으로 차를 몰며 "절대로 한국사람이란 티를 내서는 안된다.

 

그저 이곳 주민인 것처럼 조용히 구경하라"고 당부했습니다.

 

공개처형이라 해도 외국인에게는

절대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그가 차를 내려준 곳은 용정시 외곽의 길옆 벽돌공장 공터였습니다.

 

그 곳엔 벌써 주민 100여명 정도가 모여있었고,

법원과 공안 차량 수십대가 줄지어 서있었습니다.



사형집행 후 법원 관계자와 검시관들이 탈북청년의 주검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여성관리는 사진을 찍고 있구요. 벽돌조각들이 어지럽게 널린 공장옆 풀밭에서 처형이 이뤄졌습니다. 

 공안관계자는 "본래 저 산등성이 쪽 처형장에서 하는 건데 트럭이 진흙탕에 빠져 움직이지 못해 그냥 이곳에서 형을 집행하기로 했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정말 흙뻘에 한 쪽 바퀴가 빠진 국방색 트럭 위에는 사형수가 타고 있었습니다.

 빡빡 깎은 머리에 새 트레이닝복과 운동화 차림의 20대 초반의 얼굴. 그의 목에는 죄목을 적은 하얀색 대형 나무판이 걸려 있었습니다. 

 

법원 집행관이 무장경관을 시켜 그를 끌어내렸습니다.

 

관리 한사람이 옥수수 밭 풀밭에 붉은 깃발 하나를 꽂았습니다.

그 곳이 임시 사형집행장이 됐다는 표시라는 겁니다.

 형장으로 끌려가며 청년은 무언가 알 수 없는 소리를 악이 받쳐라 질러댔습니다. 그리고 몇 걸음을 더 질질 끌려가던 그는 무릎이 꿇렸고 거의 동시에 목뒤에 총이 겨눠지고 '탕 탕'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당시 저는 출국때 면세점에서 산 디지털 카메라로 이 장면을 몰래 촬영했습니다. 소니 사이버 샷 P-1 모델인데 당시엔 면세가가 103만원인 신형이었죠.
 

당시 찍은 사진(맨 윗쪽)의 메타기록이 그날 오전 11시30분01초로 돼있고 처형뒤 숨지기를 지켜보는 장면(아래)이 11시32분39초로 기록돼 있습니다. 거의 즉석에서 처형이 이뤄졌음을 생생히 보여주는 겁니다.

 한여름 장대비 소리에 섞여 총소리가 뒤흔들렸고, 제 머릿 속은 웅웅거렸습니다. 속도 메쓱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사람을 죽이는 현장을 목도한다는 것이 주는 충격은 너무 강렬했습니다.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벽돌뒤에 숨어 몰래 셔터를 눌렀습니다.

 그는 식량을 구하러 탈북을 했고 그게 여의치 않자 물건을 훔치려다 살인을 했다는 게 공안측 얘기였습니다. 굶주림으로 국경을 넘어야 했던 그는 결국 낮선 땅에서 비참한 마지막 순간을 맞아야 했습니다.
 

 

당시 저는 이 취재내용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사정이 있었냐구요. 있었죠.

 

중국과의 외교문제 등 우리 국익과 관련된 내용인데...

 

자세한 내용은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에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3월 함북 회령에서의 탈북자 공개처형 동영상이 공개된 이후 머릿 속을 맴돌던  4년전의 저의 경험담을 이제야 사진과 함께 이렇게 털어놓습니다.*

출처 : 혜울
글쓴이 : 인수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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