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國際.經濟 關係

'세계의 정의'를 심판하는 한국인 재판관

鶴山 徐 仁 2005. 11. 26. 14:45
국제재판소의 한국인들
조성관 주간조선 차장대우 maple@chosun.com
입력 : 2005.11.26 13:12 21' / 수정 : 2005.11.26 13:34 59'

지난 6월 22일 오전 뉴욕의 유엔본부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오전 10시에 국제해양법재판소의 재판관을 뽑는 선거가 있기 때문이었다. 독일 함부르크에 본부를 둔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은 임기가 9년(7명), 6년(7명), 3년(7명)으로 3년마다 새로운 재판관을 다시 뽑는다. 이날은 1996년 8월에 당선되어 임기만료를 앞둔 9년 임기의 재판관을 새로 뽑는 날. 2명의 재판관이 건강상의 이유로 출마를 포기해 현직은 5명만이 출마했다. 한국의 박춘호(朴椿浩·75) 재판관도 이 중 한 명이었다.


▲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 취입식 장면. 오른쪽에서 일곱 번째가 박춘호 재판관.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에 선출되려면 입후보자가 유엔 해양법 협약 가입국 147개국 중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박춘호 후보는 유효표 120표 중 101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1차 투표의 최대 이변은 전통의 해양대국인 영국의 후보(데이비드 앤더슨)가 내륙국가인 오스트리아 후보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이었다.

박춘호, 전문성으로 압도적 지지 얻어

박춘호 재판관의 재선은 이미 투표 전부터 예상된 일이었다. 박 재판관이 지명도와 전문성에서 경쟁자에 비해 앞섰기 때문이었다. 정부 차원의 지원도 효과적이었다. 일례로 외교부가 만든 후보 홍보 브로셔에서 우리나라는 경쟁 상대국을 압도했다. 다른 입후보자들은 모두 영어와 프랑스어 2개 국어로 만들었으나 외교부는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아랍어 등 4개 국어로 제작했다. 박춘호 후보로부터 아랍어 홍보물을 받은 아랍권 대표들은 흥분했다. 아랍 대표들은 “이 브로셔를 어디서 만들었느냐”고 물었고, “아랍어 브로셔를 한국서 만들었다”는 말을 듣고 박 후보의 손을 꼭 잡았다.

국제해양법재판소는 1994년 발효된 유엔 해양법협약에 근거해 설치되었다. 유엔은 1982년 급증하는 해양분쟁의 틀을 바로잡기 위해 15년간의 작업 끝에 450개조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바다에 관한 세계법’인 해양법을 만들었다. 해양법재판소는 이 법률을 만든 뒤 협약 가입국이 법을 지키지 않을 경우를 상정해 창설되었다. 해양법재판소는 국제사회에서 발생하는 영해 문제와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EEZ) 경계 획정, 대륙붕과 군도 소유권 문제, 심해저개발 관련 분쟁 등 국가간의 각종 해양분쟁을 조정·중재·재판하게 된다.


▲ 구유고 전범 재판을 하는 권오곤 재판관.
해양법재판소의 본부는 독일 함부르크 엘베강 하구의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강대국의 입김을 배제하기 위해 재판관 21명은 지역별로 수를 안배해 서유럽 4명, 동유럽 3명, 아시아 5명, 아프리카 5명, 미주 4명으로 정했다. 해양법재판소 예산은 협약가입국들이 분담하게 되어 있어 재판소 운영이 독립적이다.

1996년 8월 재판관 선거에서도 박춘호 재판관은 1차투표에서 당선되었다. 박 재판관의 선출직 진출은 1991년에 유엔에 가입한 한국으로서는 최초이면서 최고위직이었다. 당시 박춘호 재판관이 당선되자 김영삼 대통령은 축전을 보내고 정부 차원의 축하행사를 벌였다. 1년 뒤 유종하 외무부 장관 주최로 외무부 장관 공관에서 당선 1주년 자축연을 열기도 했다.

박춘호 재판관의 재선은 2005년 하반기 들어 우리나라가 국제의원연맹(IPU)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출직에 출마했다가 잇따라 실패한 경험에 비춰 그 의미가 더 부각된다. 지난 10월 1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된 IPU 총회에서는 열린우리당 유재건 의원이 아·태지역 집행위원 선거에 나섰다가 떨어졌다. 10월 22일 OECD 사무총장 선출에서는 한승수 전 외무장관이 3명을 뽑는 1차 투표에서부터 탈락했다. 당시 후보는 일본, 멕시코 등 6명이었다.

해양법재판소와 함께 세계적인 권위를 갖는 유엔의 대표적인 사법기구는 국제사법재판소다. 국제사법재판소에는 아직 한국인 재판관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국제사법재판소의 재판관은 15명.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한 자리씩을 갖고 남은 열 자리가 5대륙에 두 자리씩 돌아간다. 아시아에 할당된 두 자리 중 일본이 국력을 앞세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한 자리를 놓고 아시아 40여개국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구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Tribunal for the Former Yugoslavia, ICTY)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본부를 두고 있다. ICTY는 1991년 이후 구 유고슬라비아에서 발생한 국제인도범죄에 책임이 있는 밀로셰비치 등을 처리하기 위해 설립된 국제재판소다. 2차대전 전범을 처리하기 위한 뉘렌베르크재판소와 도쿄재판소에 이어 세 번째다.

권오곤(權五坤·52) 재판관은 대구고법 부장판사 시절인 2001년에 유엔총회에서 정부 추천으로 14명을 뽑는 ICTY 재판관에 출마, 1차 투표에서 당선되었다. 1차 투표에서 12명이 선출되었다. 현재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권오곤 재판관은 전화통화에서 “1차투표에서 10명이 지나도 내 이름이 나오지 않아 틀린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터에 ‘권오곤, 대한민국, 109표’라는 발표가 나왔다. 이 때의 감격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 재판관은 유엔 직원 신분으로 가족과 함께 네덜란드 헤이그에 상주하며 재판관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2004년 재판관에 재선되어 올해 11월 17일부터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권 재판관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77년부터 판사로 활동해왔다. 그는 판사 재직 시절인 1985년 하버드대 법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각종 국제회의에 참석하면서 법원 내의 대표적 국제통으로 자리를 굳혀왔다.

ICTY는 구 유고슬라비아 전범을 처리하기 위해 2008년까지 활동을 목표로 한 한시적 국제재판소다. ICTY는 재판부, 검찰, 사무국으로 구성돼 있다. 재판부는 1심 3개 재판부에 9명의 판사, 항소부에 7명의 판사로 구성되어 있고 27명의 임시판사가 추가로 관여하고 있다. 밀로셰비치 전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은 국가원수에 대해 이뤄지는 첫 국제형사재판이라는 점에서 세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권 재판관은 “이러한 역사적인 재판에 한국인 판사로 참여한다는 것에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 송상현 재판관(뒷줄 오른쪽 두번째)이 코피아난 UN사무총장(앞줄 왼쪽). 둥료 재판관 등과 기념 사진을 찍었다.
권 재판관에 따르면 유고 전범재판에 기소된 인원은 140명이고, 그 중 131명이 이곳에 출두했다. 9명은 현재까지 도피 중이다. 그 중 45명에 대한 재판이 확정되었고 (40명 유죄, 5명 무죄), 22명이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며 10명은 사망하거나 공소가 취소되었고, 44명은 준비절차 단계에 있고, 10명은 보스니아 또는 크로아티아 국내재판소로 다시 회부되었다. 권 재판관은 이 회부사건을 다루는 특별재판부 3명 중의 한 명으로 참여하고 있다. 권 재판관은 “회부사건이란 유엔 안보리 의결에 따라 2010년까지 ICTY 사건을 마무리하기 위하여 사안이 비교적 덜 중하고, 피고인의 지위 내지 책임의 정도가 덜한 사건을 구 유고슬라비아의 각 공화국 국내 특별법원에 보내 재판하도록 한 제도”라고 설명한다.

ICTY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1시45분까지 재판이 열린다. 재판이 끝나면 재판관들은 검찰이나 증인, 피고인들의 재판 중 진술을 기록한 속기록 등을 검토한다. 재판소의 공식 언어는 영어와 프랑스어. 구 유고 전범재판의 경우 피고인과 대부분의 증인이 보스니아·크로아티아·세르비아어를 사용하고, 또 코소보 증인은 알바니아어를 하기 때문에 3~4개 국어가 늘 동시통역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재판관은 헤드폰으로 들리는 영어를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해야 한다. 권 재판관은 “금요일이 되면 파김치가 된다”고 말한다.

한국 위상 비해 국제기구 활동 적어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반인도범죄, 전쟁범죄, 집단살해죄 등 중대한 국제법을 위반한 개인을 처벌하기 위해 2002년 7월 설립된 상설 국제사법기구다. 서울대 송상현(宋相現·63) 교수가 2003년 초대 재판관으로 당선되어 활동하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의 재판관은 모두 7명.

서울대 법대를 나온 송 재판관은 행정고시(1962년)와 사법고시(1963년)를 동시에 합격하고도 학문의 길을 택해 미국 튤레인대에서 법학 석사, 코넬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땄다. 1972년부터 30여년간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있으면서 미국 호주 일본 등 세계 여러나라에서 한국법을 강의하며 왕성한 대외활동을 벌여왔다.

송 재판관은 국제형사재판소 항소심 재판부에 배속되어 현재 기초작업에 전력하고 있다고 한다. 국제형사재판소에는 아직 기소된 사건이 없다. 현재 국제형사재판소 소속 검사가 수단의 다르푸르 사건, 우간다 사건 등을 수사 중이다. 다르푸르 사건이란 수단 서부 지역 다르푸르에서 2년간 벌어진 인류적 재앙을 말한다. 공식적으로는 7만명, 비공식적으로는 18만명이 희생되었고 이 지역의 200만 주민이 자신의 생활터전을 잃은 채 유엔의 구호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 검사는 다르푸르 사건의 책임자로 알려진 10명의 범죄자(이슬람 지도자들과 군사적 지원자들)를 수사 중이다.

국제형사재판소와 구 유고 국제형사재판소는 모두 네덜란드 헤이그에 본부를 두고 있다. 송상현 교수가 ICC 재판관으로 네덜란드에 부임하면서 서울대 법대의 스승(송상현)과 제자(권오곤)가 헤이그에서 해후하게 되었다. 권 재판관은 “송 교수님이 옆에 계셔서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권 재판관은 ICTY에서 재판관으로 근무하면서 느낀 소감을 이렇게 말한다. “내가 ICTY 재판관으로 선출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나라의 국력이 신장되어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이 높아진 덕분이다. 유엔에 내는 분담금 규모(10위 정도)를 보더라도 한국의 비중이 높다. 그러나 이러한 위상에 비하여 유엔 등 국제기구에 근무하는 한국인의 수는 너무 적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