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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시대
위장취업·수배자였던 손학규 경기지사 강연 “中共학생들 박정희를 모델 삼는것 보고 내 생각 바꿨다”
김봉기기자 knight@chosun.com
손학규(孫鶴圭·사진) 경기도지사가 24일 보수 단체인 한국발전연구원
강연에서 ‘한국의 보수, 그 거듭남을 위하여…’라는 주제의 강연을 했다. 손 지사는 여기서 “지금까지 살아온
길을 말씀드리면서 고민을 나누고자 한다”며 자신의 민주화 운동 시절과 운동권을 접게 된 사연을
소개했다. 손 지사는 “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머니가 홀로 7남매를 키웠다. 대학
때부터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다. 나는 운동권 위장취업의 원조였다. 탄광 막장일, 공장 용접일, 청계천 빈민운동도 했다. 당시 2계급 특진에
200만원 현상금이 붙은 일급 수배자였다”며 “1979년 10월 부마항쟁 진상조사하러 부산에 갔다가 체포돼 혹독한 고문까지 당했다. 박 대통령이
갑자기 시해되는 바람에 풀려났다. 박 대통령이 돌아가자 순간적으로 허망했다. 빈 머리를 채우자는 생각으로 영국에 늦깎이 유학을 갔다”고
했다. 손 지사는 “거기서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국제사회에서 박 대통령과 한국 경제의
발전모델이 화제였다. 수교하기 전 공산국가인 중공(中共) 유학생들조차 ‘한국이 자신들의 모델’이라고 했다. 이런 혼란을 겪으며 차츰 세상을 넓게
보는 시각을 갖게 되었다”며 “결국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되,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내세울 유산은 긍정적으로 평가해 미래의
에너지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손 지사는 “제가 추구해온 민주화에 대해 높은
긍지를 갖는 것과 마찬가지로, 산업화를 이룬 박 대통령과 그 시대의 선배들의 업적도 겸손한 자세로 높이 평가한다. 지난 10월 26일에도
국립묘지를 참배해 고 박 대통령 영전에 삼가 머리 숙여 명복을 빌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손 지사는 “이제 저는 지사로서 지난 3년 반 동안
해외를 누비며 약 140억달러의 첨단기업 투자를 유치했다”고 자신의 변화를 설명했다. 손
지사는 “저는 아마 20, 30년 전에 여기 계신 분 상당수와 적대관계였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저는 지금 산업화가 대한민국의 큰 축이라는 점을
겸허하게 수용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화만 있고 민주화가 없었다면 오늘날 민주주의 속의 풍요가 가능했겠는가”라며 “여러분도 민주화를 대한민국의
메인 스트림으로 포용해달라. 한나라당이 두 번의 선거에서 진 것은 시대와 사회를 읽지 못해서였다. 이미 갖고 있는 지지에 안주하지 말고
시대정신을 거머쥐어야 한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