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대한민국 探訪

전남 담양 ① 대나무숲과 소쇄원(瀟灑園)

鶴山 徐 仁 2005. 10. 29. 13:18
전남 담양 ① 대나무숲과 소쇄원(瀟灑園)
  2005
김신묵      

전라남도 담양...

어려서 학창시절에 죽세공이 발전한 고장이라고 배웠으면서도 왜 담양하면 대나무(竹)를 떠올리지 못하는지??

자신의 아둔함을 나무라면서 떠난 담양 여행....

먼저 그 유명한 대나무숲을 찾아보기로 했다.

 

호남고속도로 장성 I.C.로 내려서서 24번 도로를 달려가면 대나무숲을 지나 담양에 이르게 되는데

만약 대나무숲은 말고 바로 소쇄원을 보려거든 서광주, 동광주 I.C.를 지나서 창평 I.C.로 빠지는게 훨~ 낫다

왜냐하면 소쇄원은 말이 담양이지 사실은 동광주와 화순 근처....무등산 자락 아래에 있기때문이다.

(물론 행정구역상으로는 담양군 남면 지곡리이다.)

 

그러나 담양이 초행길이라면 장성에서 담양으로 들어가면서 대나무 숲도 보고, 대나무 박물관도 보고나서

남으로 내려가 소쇄원과 가사문학관, 식영정, 송강정, 면앙정등을 보거나

북으로 올라가 담양댐과 추월산, 죽녹원, 관방제림, 금성산성등을 볼 수도 있으니 각자가 판단 할 일이다.

 

 

아무튼

대나무 숲은 장성에서 담양으로 들어가는 길가에 있다.

장성 I.C.를 내려서서 24번 도로를 타면 진원면 - 대전면(대치리) - 수북면을 지나 담양에 이르게 되는데

대전면과 수북면 사이쯤...왼쪽으로 삼인산(570m) 아래에 1만여평 이상의 대나무 숲이 자리잡고 있다.

 

대낮에도 어둡고 무서울 정도로 대숲이 우거진 이곳은 최근들어 영화나 드라마, CF촬영등으로 유명해졌는데

MBC 드라마 '다모'와 '대장금', 한석규가 '잠시 꺼두어도 된다'는 이동전화 CF도 이곳에서 촬영하였다.

 

<대나무 숲 입구... 주의깊게 안보면 안내간판을 놓치기 쉽다>

 

<대나무 숲.....마치 호랑이 한마리가 달려 나올듯~~  바람소리가 쉬쉬쉭~~~ 들리는 듯......>

 

 

 

 

<대나무숲 전원카페...차와 음료, 간단한 식사가 가능한데 죽순은 5~6월에 와야 한단다......>

 

대나무 숲을 둘러보고 담양으로 들어가는 길...

그 유명한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을 기대하고 가고 있는데 길가에 가득 피어난 코스모스가 먼저 반겨준다.

 

이윽고 나타나는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

마치 외국 어디에 와있는듯~~   정말 멋진 길이다...

장성에서 24번 도로를 타고 담양을 지나 순창까지 내내 멋진 풍광이 이어진다.

 

<잘 자란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

 

 

 

그러나 가다보면 중간중간 이빨 빠지듯 아귀가 안맞는곳은 참 아쉬웠다.

새로 심어봐야 크기가 안 맞을테고.... 큰 나무를 옮겨 심기도 그럴테고....

앞으로도 더더욱 잘 가꾸어주기를 바래본다.

 

<이가 빠져 아귀가 잘 안맞는 모습의 가로수 길....>

 

소쇄원을 먼저 둘러보기위해 담양시내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돌려 29번 국도를 따라 광주방향으로 내닫다가

887번 국도를 타고 광주댐을 오른편 옆으로 두고 조금 더 지나니 왼쪽이 소쇄원이다.

이곳의 행정구역은 담양군 남면 지곡리이지만 사실상 광주직할시에 가깝고

무등산 도립공원 자락에 이어지는 지형으로서 증심사와는 반대방향쯤 되는듯 싶다.

 

소쇄원(瀟灑園)은 16세기말에 梁山甫(1503~1557)가 조성한 것으로 스승인 조광조가 유배를 당하여 죽게되자

출세에 뜻을 버리고 은둔하여 이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3代에 걸쳐 70년동안 이룬 정원으로서

소쇄원(瀟灑園)이란 이름은 소쇄옹이라는 양산보의 호(號)에서 비롯되어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소쇄원 입구를 들어서서 담장 밑으로 돌아 들어가는 길옆에 초가지붕 정자 하나 서있다...이름하여 대봉대>

 

<담장 밖에서부터 흘러들어와 경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개울..... 밖에는 작은 우물도 하나 있다.

  오곡문(五曲門) 담장 아래로 물이 흐르고 사람은 다리를 놓아  건네가게끔 하였다>

 

오곡문을 통과한 계곡물은 다소의 낙차를 보이며 아래로 떨어지게 되어 있는데

살짝 그 옆으로 나무하나 걸쳐놓고 나무 속을 파내니 훌륭한 배수관이 되어 옆으로도 물길을 나눠주는데

이 물이 흘러가면 입구의 대봉대 정자아래 연못으로 모이게 되어 있다.

 

 

 

내당의 중앙쯤 되는곳 윗쪽과 아랫쪽으로 두 채의 건물이 있는데

윗채는 제월당(霽月堂)이라 하는데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 이름붙인 주인이 기거하는 곳이고

아래새는 광풍각(光風閣)이라 하는데 '비온 뒤에 해가 뜨며 청량한 바람'이란 뜻의 손님들 사랑방이다.

 

<제월당과 광풍각 모습....윗쪽이 제월당이고 협문을 통해 아래쪽 광풍각으로 이어진다>

 

<제월당(霽月堂)....현판은 五曲門과 함께 우암 송시열이 쓴것이다.>

 

<광풍각(光風閣)>

 

 

<계곡물이 내려오는 가장 낮은 곳에서 소쇄원 전체를 올려다 본 모습...>

 

 

대나무 숲과 소쇄원을 돌아보다보니 어느새 식사시간을 훨씬 넘긴터라 배가 많이 고팠다.

담양의 유명한 먹거리는 떡갈비와 대통밥(대나무통밥)이다.

그러나 간판마다 원조요 집집마다 제일이라.... TV방송 안나온 집이 없으니 어디를 골라야 할지???

망설이다가 들어간 곳이 소쇄원 주차장 건너편....절라도집  (☎ 062-266-4744)

떡갈비도 먹구싶구...대통밥두 먹구싶어 2명이 각각 하나씩 시켰다.

떡갈비는 순 한우고기를 잘 이겨서 노릇노릇 구워먹게끔 해주었고

대통밥에도 돼지고기를 이겨만든 떡갈비가 나왔으며 기타 푸짐한 반찬에 전라도식 상차림은

너무 맛있는 음식 먹거리를 만난 기쁨에 천리길 나들이의 피로가 한순간에 다 풀리고 말았다.

 

 

<소쇄원 여행을 행복으로 마감해준 먹거리...>

<대통밥과 떡갈비 상 차려진 모습.....  돌판에 왼쪽이 소떡갈비, 오른쪽이 돼지떡갈비...각각 3점씩 나온다>

  떡갈비는 그냥 흰밥 한공기.... 대통밥은 영양찰밥을 대통에 넣어서 맛있게 해 나온다.....

 

 

 

<추신>  소쇄원에 대한 평가... 인용한 글입니다.

소쇄원은 주거기능을 갖춘 건축정원이다. 기대승,송시열 등 당대의 유학자들이 드나들었다.
한국의 정원을 일본이나 중국의 조원술(造園術)과 비교하여 한 수 아래로 접는 것을 가끔 보게 된다.

기암괴석을 축조하여 휘황찬란한 경관을 이루는 중국 정원의 형식도 우리에겐 없고, 일본의 정원에서 만나는 그 아기자기하고 섬세하여 숨막힐 듯한 정적의 아름다움 또한 우리가 갖지 못한 경지라 하여 우리의 이 땅에는 정원의 수준이 현저히 낮다고 비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우리 선조들이 가졌던 고도로 세련된 지적 감성에 대한 이해가 전혀 부족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선조들이 가진 자연에 대한 이해의 정도는 명료함을 넘어 지혜로움 그 자체였다.

 

자연을 지배의 대상으로 삼아 인위적으로 과장된 제스처를 가지는 것은 금기였으며 놀이의 대상으로 자연을 농락하는 일은 경망스러운 것이었다. 자연은 그 자체가 선이요 동반자며 공존의 대상이어서 함께 어우러지는 우리 자신인 것이다.

무슨 말인가. 그 실증이 소쇄원에 있다.

담양 땅은 서북에서 솟은 골짜기의 물들이 흘러 영산강을 이루면서 휘돌아나간 탓에 그 평지의 크기가 넓고 토질이 비옥하여 예부터 경제적 풍요를 이룬 곳이다. 그 경제력은 당대의 지식인들로 하여금 학문에 전념하게 하는 바탕이 되어 수 많은 학자들을 배출하였고, 중앙 정계에서 은퇴하거나 각종 사화로 인해 밀려난 선비들은 이곳으로 다시 낙향하여 학문에 힘쓰게 된다.

 

수양과 학문뿐 아니라 선비문화의 형성 또한 중요한 일이었으니 그를 위한 장소인 정자나 별서를 가꾸는 일은 그들의 정신세계의 총체적 결과였다. 소쇄원을 비롯하여 면앙정, 명옥헌, 송강정, 식영정 등이 대표적인 것들인데 그 중에서도 소쇄원은 주거기능을 갖춘 별서의 형식으로 만들어진 최고의 정원건축으로 평가받는다.

 

소쇄원은 양산보(梁山甫ㆍ1502~1557)가 30대에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그 후대에도 계속 확장이 이루어져 왔다. 양산보는 15세에 조광조를 만나 그 문하에서 수련한 유학자였는데,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유배당한 후 그 유배지까지 따라갔다가 사약을 받는 광경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아 고향으로 은둔하여 이 소쇄원을 만든다.

 

소쇄원은 수 많은 기록이 남아 증언하듯 많은 당대의 지식인들이 풍광과 여유를 즐긴 장소요, 그들의 정신세계를 격정적으로 토로하던 문화 담론의 산실로 자리하였다. 성리학의 거두 김인후를 비롯하여 송순, 기대승, 정철, 송시열 등 당대 최고의 지성들이 이곳을 넘나들며 그들 학문의 지평을 넓힌 것이다.

 

물길이 있는 계곡을 가운데 두고 전체 1500평 정도의 경사지에 꾸며져 있지만 사실 소쇄원의 영역은 지금은 차가 다니는 국도변에 심어진 대나무 숲에서 시작한다. 울창한 대나무의 숲이 만드는 벽과 물길 사이로 난 좁고 길다란 길은 세속의 세계를 빠져나와 선계로 오르는 참배길이어서, 흐르는 물소리에 대나무 숲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더해서 만드는 그 오묘한 분위기에 이미 우리의 마음을 씻는다.

 

대나무 숲이 끝나는 곳에 대단히 다이내믹한 풍경의 계곡이 밝은 햇살을 받으며 전개되는데 그 생김새가 대단히 복잡하다. 북쪽 계곡에서 흘러온 물길이 이런 저런 바위 틈과 위를 지나며 부딪치고 모아져서 서로 다른 소리를 만들어 계곡 안을 가득 채운다.

 

건너편에는 집이 두 채가 있는데 위에 있는 3간의 집이 이 소쇄원의 주인이 거처하는 제월당(霽月堂)이며, 아래 가로세로 각 3간의 팔작지붕의 집이 주로 손님들이 기거하는 광풍각(光風閣)이다. 광풍제월이라 했던가.


비갠 후 떠오른 달빛에 부는 청명한 바람…. 참으로 기운이 맑고 밝아 가히 소쇄하지 아니한가. 듣기만 하여도 마음은 이미 맑아진 듯하다.

 

이 작은 두 건물은 지극히 소박하고 간단하다. 따라서 햇살 가득한 아름다운 자연 계곡에 순응하듯 그냥 세운 두 건축…. 이렇게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 소쇄원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몇 개의 레벨 차이로 인해 다양한 동선을 만드는 이 계곡 속에 이뤄진 공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바위 사이에는 다리도 있고 징검돌도 있으며 세족할 공간도 있다. 물레방아도 있고 연못도 있으며 경사진 지형을 오르기 위한 계단과 석축 등이 슬쩍 슬쩍 있는데 이들이 심상치 않은 것들인 것이다. 이들은 모두 인공 건조물이다.

 

이들이 앉은 방식을 보면 대단히 교묘하다. 주인이 기거하는 높은 곳에 있는 제월당의 레벨에는 꽃과 나무와 담장과 수평으로 연결되는 정적 요소들로 이뤄져 있고, 풍류의 손님들이 드나드는 광풍각은 그 모양도 활개치듯 오르는 처마선이 흐르는 물과 변화무쌍한 바위와 그들이 만드는 소리들과 함께 대단히 동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그 두 레벨 사이에 주된 통로가 삽입되어 있는데 이 길은 때로는 단을 디디고 때로는 바위를 건너며 때로는 물길을 도는 유보도(遊步道)가 되어, 두 다른 레벨을 이으면서 서로 교류하게 하고 부딪치게 하여 일체를 이루게 하는 매개공간이다. 그런 목적을 이루기 위해 바위는 때때로 인공적으로 절단되었으며 물길은 간혹 바꿔지기도 하고 지형의 레벨은 조작되어 있다. 어찌 이 공간이 자연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조작의 결과가 결단코 부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에 우리는 주의를 해야 한다. 여기에는 자연을 지배하려 하는 오만이 있는 것이 아니며 자연을 희롱하려 드는 모자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는 자연과 적극적으로 공존하려는 자세이며 자연과 나를 서로 납득시키는 지식인의 창조적 태도이다.

 

이것이 진정한 소쇄의 정신 아닐까. 그렇다. 그것은 순전히 양산보라는 인문학자가 가진 작가정신이며 소쇄원은 바로 그 치열한 작가정신의 소산인 것이다.

 

지나친 아전인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외경한다. 우리 선조들의 그 끝 모를 성찰의 깊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