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마애삼존불과 보원사 터를 둘러보구 용현계곡을 빠져나오면 다시 고풍저수지를
만난다.
운산에서 들어오던 방향으로 계속 진행하면 이내 온천으로 유명한 덕산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 덕산에서 가야산을 바라보면서 덕산저수지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가
있다.
이 지역은 도립공원 가야산 지역이다.
<가야산과 덕산 제수지 제방...>
<저수지 옆을 지나는데 저수지 한가운데 풍경이 눈길을 끈다...
차를 세우고 자세히 보니 오리종류의 철새들이 둥글게 모여있는데... 아하~~
저수지가 꽁꽁 얼어있구
가운데 부분은 얼음이 녹아서 물장구 칠 수 있다.... 물가에 모여 앉은
셈이다.....
꼭 모여서 회의중인듯 하다....ㅎㅎ>
<남연군(南延君)의 묘>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 李球의 묘이다....
보이는 전체가 무덤은 아니고 높은 반구형 구릉위에 묘를 쓴것이며 원래 경기도 연천에 있던것을
1846년에 이곳에 옮겼다.
흥선대원군은 풍수지리설을 믿고 '정만인'이라는 자에게 묘자리를 찾아주도록 했는데
바로 이자리가 2대에 걸쳐 왕이 나올 자리라고 하였던 것이다.
원래 이자리는 가야사라는 절이 있었고 묘자리는 바로 탑이 서있던 자리였다.
대원군은 절을 없애고 (불 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옴) 묘을 옮겼으며 그의 아들이 고종이 되고, 손자가
순종이 되었다....
나중에 대원군은 가야사를 없앤것이 마음에 걸렸던지 반대쪽 산자락에 보덕사라는 절을 세우게
된다.
커다란 구릉에는 봉분까지 올라가도록 길이 나 있으며... 올라와보니 봉분이
보인다.
흥선대원군이 세운 묘비...
묘비 옆면에 男 흥선대원군이 세웠다는 글귀가 보인다...
정만인의 말대로 이 자리가 명당이어서 대원군의 후대가 비록 유명무실한 왕이라도 2명이 이어졌는지는
모르지만
그후 1866년 독일상인 '오페르트'에 의한 남연군 묘소 훼손사건이 벌어지며 (관에는 손대지
못하였음)
이때 지리 안내를 천주교인이 했다 하여... 쇄국정책과 더불어 잔인한 천주교 탄압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자리에 묘를 쓸때 대원군은 나중에 누가 손댈까 걱정이 되어 철(鐵) 수만근을 녹여 부었고 그 위에
강회를 다져서 비벼
넣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오페르트가 도굴하다가 실패했다는 얘기도 있다.
아이러니칼하기는 당대를 풍미한 그 유명한(?) 지관...육관 손석우씨의 묘도 이 근처라고
해서
이리저리 뒤져보았는데 결국 찾지는 못했다.
남연군 묘소 바로 옆에는 남은들상여 모조품이 제작, 전시되어 있는데
이는 대원군이 부친을 경기도 연천에서 이곳까지 옮겨올때에 500리길을 통과하는
마을마다
그 마을 주민들이 다음 마을까지 구간을 연결하여 상여를 옮겨주는 방식을 택하였으며
마지막을 운구한 광천리 남은들 주민들이 아주 극진히 해주었기에 그에대한 보답으로 상여를 광천리 주민에게
주었는바
그 이후로 마을이름이 남은들로 불리웠다 한다.
진품은 수덕사와 해미읍 중간 지점 즈음에 있는데... 도로공사장과 인접하여 알아볼수가
없었다.
<남은들 상여>
발길을 돌려 남연군묘소 입구의 주차장 건너편 산자락에 있는 보덕사로 향했다.
대원군이 가야사 절집을 불태운 후 그자리에 부친의 묘소를 정한 뒤에 아들이 고종이 된 후에 죄책감으로
지어준 절인 보덕사이다....
그때 절은 6.25때 불타고 그후 다시 지어놓은 지금의 절에는 비구니 여승들이 기거하고
있다.
보덕사는 큰 절도 아니건만 대원군과 연결된 옛이야기가 흥미롭고 해서 들어가보았다.
<보덕사 전경>
<석등과 석탑>
<장독대 앞 약수 샘물이 특이하다.... 장독대도 위로 올라가보니
재미있다....>
보덕사 극락전... 본전이므로 대웅전인 셈이다.
겹처마에 맞배지붕으로 크지않은 크기이다.. 익공이 궁궐형식인점이 눈에 띈다.....
아마도 대원군이 지어준다던 약속으로 지은 절이기에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남연군 묘와 보덕사를 돌아보고 다시 덕산으로 나와 시내를 통과하여 수덕사로
향하다보니
아직은 여전히 개발중인 덕산 온천지구가 보인다.
그리고 덕산을 벗어날 즈음에는 충의사가 있는데 이는
윤봉길 의사의 사적지이다.
시간 관계상 들러보지 못하고 발길을 수덕사로 돌리었다.
그런데 나중에 충의사 현판을 박대통령이 쓴 글씨라 하여 떼어 던진 이야기를
듣고
그때 못들어가본것이 못내
아쉬웠다.